우리 부부는 2003년 한 교회의 50주년 기념 파송선교사로 마다가스카르에 갔다. 교회는 당시 후원 모집에 몹시 서툴렀던 우리에게 사역에 필요한 전액을 후원해줬다. 그 후원으로 마다가스카르에 많은 열매가 열렸다. 그렇게 5년 정도 흘렀을까. 교회로부터 갑작스레 연락이 왔다.
“선교사님 죄송합니다. 교회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내년부터 마다가스카르 사역을 후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청천벽력. 수개월 안에 다른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러나 사역이 바쁘다 보니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종결 시점에 이르게 됐다. 주위 사람들에겐 안식년을 위한 준비를 한다고 둘러댔지만, 사실 한국에 갈 항공료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대학시절 함께 의료선교를 꿈꾸며 활동했던 친구들이 비행기값을 보내줘 겨우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역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태어나 의사 한 번 보지 못한 채 질병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을 치료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지역에서 무당이 “나는 기독교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마치 패잔병 같았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교사로 인정하지 않으시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후원 교회를 찾기 위해 여러 교회에 지원서를 냈지만 “힘들다”는 대답뿐이었다. 이전 교회에서 왜 후원을 중단했느냐고 따져 물으며 우리 부부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는 교회도 있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어 아프리카 의료선교사를 서원했던 어린 시절부터 현지에서 의료사역을 하며 고군분투했던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알겠습니다. 그만하겠습니다.’ 스스로에게 대답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응급실 당직 아르바이트나 대진의(대리 진료의사)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예전에 지원서를 넣었던 서울영동교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마다가스카르에서 활동하시던 이재훈 선교사님 되십니까?”
협력선교사 등록을 위한 인터뷰가 필요하다는 연락이었다. 이 인터뷰에서도 ‘왜 이전 교회에서 후원을 중단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마치 ‘당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 전 교회에서 후원을 중단했는가’처럼 들렸다. 다른 말 대신 한마디를 남겼다.
“저희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회에서 앞으로 후원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을 뿐입니다.”
결국 교회는 협력교회로서 후원을 결정했다. 그러나 후원금액은 이전 교회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한 장로님께서 말했다. “선교사님, 우리는 그 전 교회처럼 많은 액수를 후원할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후원금이 채워지지 않아 선교지로 못 가게 되는 일이 생기면, 꼭 다시 저희 교회에 돌아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선교사님이 어떻게 해서든지 선교지에 돌아가실 수 있도록 돕고 기도하겠습니다.”
후원금액보다 장로님 말씀에 힘을 얻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있는지 못 받고 있는지 고민하던 내게 “조금만 기다려 봐. 내가 너를 다시 선교지로 보낼 거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 듯했다. 그 말씀이 없었다면, 병원 아르바이트 자리가 구해졌더라면 아마도 선교지에 다시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역이 아니라는 결론이었다면, 나는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이라고 독하게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부부를 결코 그렇게 두지 않으셨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역경의 열매] 이재훈 <12> 갑자기 끊긴 후원… 귀국할 항공료도 없어
대학 친구들이 비행기값 보내줘… 후원교회 찾기 위해 백방 노력
![[역경의 열매] 이재훈 <12> 갑자기 끊긴 후원… 귀국할 항공료도 없어 기사의 사진](http://image.kmib.co.kr/online_image/2017/1123/201711230000_23110923853759_1.jpg)
이재훈 박재연 선교사 부부가 2008년 1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세계선교부 선교사 업무교육을 받던 당시 예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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