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황희상 에세이] 바르트부르크성, 루터를 완벽하게 보호하다

열려라 에바다 2019. 4. 26. 10:09

[황희상 에세이] 바르트부르크성, 루터를 완벽하게 보호하다

어쩌자고 종교개혁지 탐방(13)

 


루터는 이단자로 선언되었지만, 대중은 루터의 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위험은 여전했다. 아무리 루터가 인기를 끌었다고는 해도, 당시 교황청은 또 다른 수단이 충분했다. 암살자를 보내거나, 거짓 선전으로 사람들을 선동해서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도 루터의 신변에 얼마든지 위협을 가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루터는 그냥 무방비 상태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정치적 계산이 빠른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루터는 정말로 길에서 암살을 당해 죽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작센 지방의 선제후 프리드리히(Friedrich Ⅲ, 1463~1525)가 머리를 썼다.

놀랍게도 그는 루터를 납치(?)한다. 교황청보다 먼저 선수를 쳐서 요원들을 보내어 아무도 찾지 못할 숲속으로 빼돌린 것이다. 물론 루터와는 미리 이야기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극소수만 알도록 진행된 철저한 비밀 작전에 의해 그는 대적자들로부터 숨어 지낼 수 있었다. 루터는 안전한 바르트부르크성에서 연구와 저작 활동에 몰두한다. 특히 독일어 성경 번역 작업은 당시 그가 이루어낸 대표적인 업적이다. 독일 백성들이 자국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후 수십 년의 독일 종교개혁은 바로 여기서 힘을 얻은 것이었다. 그렇다. 성경을 알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하자는 것. 그것을 도운 것이 종교개혁이다. 거기서부터 출발한 것이 종교개혁이다.

‘바르트부르크’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아이제나흐’라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이곳은 유명한 음악가 바흐의 생가로 유명해서 종교개혁지 탐방팀이 아니더라도 꽤 많은 한국 관광객이 들르는 곳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지 탐방에서는 과감히 생략하고 식사 정도만 하고 바로 바르트부르크성으로 가자.



바르트부르크성

루터의 전기를 읽으며 바르트부르크가 어떤 곳일까 상상했던 분들은 이곳을 향해 가는 길부터 설렐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러했다. 다만, 실제로 이곳에 와보니, 루터가 “숨어” 지냈다기보다는, 프리드리히의 무력 덕분에 “보호” 받으며 지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옳은 표현인 듯하다. 바르트부르트성은 사방이 탁 트인 언덕 꼭대기에 있다. 언덕 위에 지어진 요새 같은 성. 마녀의 집처럼 깊은 숲속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방팔방 그 지역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이다. 계단을 꽤 걸어 올라가면 점점 더 넓은 전망이 눈 앞에 펼쳐진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바르트부르크성은 천연의 요새처럼 꼭대기에 우뚝 선 성채를 갖췄고 그 속에 마을들이 구비 되어 있는, 중간 규모의 성이다. 중세영화에 전쟁 장면에서 한 번쯤 본듯한 모습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성 입구에 도착하면, 다리처럼 내려오는 육중한 나무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도록 설계된 성문을 만난다. 이 성문만 닫아 버리면 곧장 낭떠러지. 루터가 보호받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든든한 성문 구조를 보니, 혹시 누가 루터를 추적해 오더라도 ‘보안 검색’에 유리하며, 그 사이에 루터가 도망칠 시간쯤은 충분히 벌어줄 수 있을듯했다.



루터가 이곳에서 돌아다니며 지냈을 것을 상상하니, 구석구석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본격적인 성 내부 구경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내부 안내자의 인솔을 따라다니는 자체 투어 프로그램을 따르게 되어 있다. 종교개혁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또 유료로 진행되지만, 아주 잘 구성된 프로그램이므로 웬만하면 참가하자. 특이하게도 안내인이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지고 다니면서 한 팀씩 인솔한다. 스피커에서는 각국 언어로 녹음된 안내 음성이 방마다 나온다. 그래서 떠들거나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 투어 팀이 어느 방에 들어가면 다음 방으로 먼저 나가지 못하도록 인솔자가 문을 잠그고, 다음 방으로 이동하면 다시 문을 잠가서 해당 해설이 끝나기 전까지는 다음 팀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방식으로, 철저하게 다른 그룹과 엮이는 것을 통제한다. 그만큼 자기들의 역사를 제대로 집중해서 알리려는 노력과 의지가 엿보인다. 교육 효과는 확실하다. 해설은 주로 바르트부르크성의 역사에 관한 것이었으며, 12세기 이 성의 주인이었던 왕과 여왕에 대한 스토리텔링으로 구성된다.

성의 역사에 대한 가이드가 끝나자, 우리는 왕족들이 머무는 공간 밖으로 빠져나와 성 입구 쪽에 위치한 조금 더 허름한 건물로 이동했다. 루터가 머물던 곳이었다고 한다. 루터는 바르트부르크성에 1년쯤 머물며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이 건물에는 루터가 머물면서 성경을 번역했다는 바로 그 방도 들어가 볼 수 있다. 그 방은 생각보다 작고 소박하다. 루터는 이곳에 머물면서 얼마나 깊은 고뇌에 빠졌을까. 이 방에서 잠시 루터에게 감정이입을 해보자.



황희상 (‘특강 종교개혁사’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