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열려라 에바다 2020. 7. 3. 08:32

[시18:28-30]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1828-30: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던 저희들을 진리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중생시키시고 그 즉시 하늘나라로 데리고 올라갔으면 하는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치 아니하시고 더 좋은 부활을 얻게 하려고 말씀 깨달음으로 영능의 실력을 키우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크고 작은 사건 환경 속에서 깨달은 말씀을 적용시켜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많이 입도록 하려고 이 땅에 살게 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기 위해서 성령님을 보내시고, 영의 눈이 밝은 당신의 종들을 동원시키시고, 우리 몸 밖의 여러 가지 많은 사건 환경을 거치면서 우리고 깨닫고 고치고 하나님 앞에 거짓이 없는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기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간섭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단 마귀와 사단 마귀의 종들은 진리신앙의 성도들을 하나님의 온전을 입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흉허물을 만들어 잡아 뜯고, 환난을 주고 핍박을 주고 하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볼 수 있고, 우리의 주위에서도 많이 볼 수가 있나이다. 우리 주님 당시에도 성경 학박사들이 우리 주님을 모함하고 헐뜯고, 그리고 성경을 가지고 정죄하고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오늘날 거짓된 교인들이 옳은 진리이치의 말씀이 자기에게 왔는데도 이것을 저버리고 무시하고 진리성도를 헐뜯는 것은 분명히 아가페 사랑이 아니고, 믿음의 사람도 아니요, 거짓 종들에게 휘말린 자들이요, 악한 일을 하는 자들인 줄 압니다. 이들도 분명 하나님의 종들이요 하나님의 성도들일진대 그들이 모르는 것을 깨우쳐서 알게 해 주시고, 넘어지지 않게 해 주시고, 성경을 깨닫게 해서 우리 주님처럼 만들어질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아무리 믿음이 없고 부족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진리이치를 깨닫게 해서 거짓된 것을 밝혀주고, 성령의 역사인지 악령의 역사인지 바로 지적을 해서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바로 살아가게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시고, 그렇게 해야 만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을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성경 전체로 볼 때 믿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자신들 속에 아버지 하나님과 같지 않은 지혜나 지식이나 도덕성이나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않은 모든 것을 다 제해주시고, 말씀의 길을 열어주시고 말씀을 보는 눈도 열어주셔서 하나님의 의사와 뜻을 가지고 그 본질로 자라날 수 있도록 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기쁨으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복된 자녀들로 삼아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 성령님의 역사로 깨달음으로 함께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성도들의 등불이 뭐냐? 하나님의 말씀이다. 진리이치의 깨달음이 등불이다. 등불이 있으면 정체를 분별하고, 정관을 분별하고, 색깔을 분별하고, 그 다음에 속을 분별할 수 있다. 뭘 가지고 그렇게 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 얼른 알아듣지를 못한다. ‘말씀이라고 하면 진리이치, 참 진리다. 그런데 모두가 자기는 진짜 참 진리라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만 들을 것이 아니라 뭐가 참인지, 뭐가 진리인지, 뭐가 거짓인지를 알아야 한다. 본질적으로 알아야 하고, 성격적으로 알아야 하고, 성질적으로 알아야 하고, 성분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고 갈라낼 수가 있다.

 

하나의 예를 들면 하나님께 구하라. 입을 크게 넓게 열어서 구하라라고 한 말씀을 문자 그대로 알아듣는 목사들은 입을 크게 넓게 벌려서 구하면 주신다고 하는 그런 집회에 가서 글자 그대로 하늘을 향해 입을 크게 넓게 벌리고 하나님께 세상 것을 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 입은 워낙 작아서 아무리 넓게 벌려봐야 복 받기는 다 틀렸다.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하면서 성령을 받겠다고 그러고 있으니 아니, 성령이 막걸리냐? 참 어리석다. 어리석은 것만 아니라 이건 둔팅이요, 다른 말로 하면 석두다.

 

뭐가 진리냐?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 말 자체는 옳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역할을 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 역할도 안 하는 거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라고 했다. 또 무슨 운동을 하느냐? 눈으로 보든지 귀로 듣든지 해서 말씀을 받게 되면 자기에게서 무슨 운동이 일어나느냐? 예수 믿은 지가 얼마나 되었으며, 직분이 집사고 장로고 목사인데 말씀이 자기에게 오면 무슨 운동을 하느냐?

 

자기에게 말씀이 들어오면 세상 물질적 풍부성을 요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느냐, 아니면 예수님처럼 닮고 싶고, 예수님처럼 만들어지고 싶은 역사가 자기 속에서 일어나느냐? 성경에 너희들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라고 했는데 착한 일이 뭐냐? 일반적인 착한 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일반적인 착한 일은 선악과 따먹고 나온 차원이다. 예수를 안 믿는 세상에서도 착하다, 선하다, 좋다, 나쁘다하는 게 있지만 그건 전부가 선악과 따먹고 나온 차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는 생명이요 진리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생명과를 따먹고 자기 속에서 운동이 벌어지게 되는데,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질적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질과 똑같은 인격의 성품, 도덕성의 성품, 지혜지식의 성품이 닮아지게 하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면 이런 성도의 기도는 어떻게 나오겠느냐? 예수이름으로 세상을 달라? 아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내가 가졌던 세상 것을 왜 뺏어가는 거냐? 착하니까 뺏어가느냐, 깡패 같으니까 뺏어가느냐? 깡패 같은 사람에게 돈을 주면 자기도 죄를 짓고, 남도 죄를 짓게 하고, 사회도 못 쓰게 만든다. 세상의 부모도 자식이 이러고 있다면 그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 주었던 돈을 뺏어간다. 그리고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 매를 든다. 그냥 내버려 두면 그 자식은 천하에 고약한 사람이 돼버린다. 하나님도 예수 믿는 우리들을 이와 같은 이치를 보시는 거다.

 

자기 속에 말씀이 깨달음으로 들어오면 첫째는 그 말씀 깨달음으로 인한 기쁨이 자기 속에서 용솟음친다. 반드시 그렇게 돼 있다. 그러면 그 기쁨이 다냐? 아니다. 거기에서 그 다음에 한 이치 두 이치 세 이치 깨달음의 성장이 돼 나간다. 이게 믿음실력이다. 이게 신앙실력이다.

 

교회에 아무리 오래 다녀도, 충성봉사를 아무리 많이 했어도 이런 깨달음의 지식이 없으면 그 사람은 물질 이해타산적인 소원 목적을 가지고 예수를 믿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얼마나 말이 많은지? 자기가 한 활동을 기준으로 해서 그렇지 못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쑤시고 찌르고, 그러니 자기에게 부딪히는 게 굉장히 많다. 왜냐? 타락적 세상성적 성질이 자기의 주격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모든 게 부딪히는 거다. 이런 사람 속에는 고통이 많다. 늘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거다. 부정적인 스트레스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단 마귀가 집을 짓고 사는 거다. 이러면 환경적으로 사건적으로 자기 속에 든 것이 확 튀어나오는 때가 있다. 마귀가 그 순간을 노리는 거다.

 

악한 자도 악한 자의 날에 적당하게 하나님은 써버린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귀하게 높이 올라간 자는 또 하나님께서는 적당하게 써서 올려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우리는 일반이치로도 밝아야 하고, 영적인 이치로도 밝아야 하고, 도덕이치도 밝아야 하고, 생명이치나 지혜지식적인 면에서도 이치가 밝아야 한다. 생명이치를 모체로 하고 일반적인 면도 이치적으로 보면 속지를 않게 된다.

 

늘 말하지만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성령관 교회관이 어둡다. 그래서 첫째는 교회가 뭐하는 곳인지를 모른다. 성경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곳이 교회다? 물론 껍데기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가 문제다. 예수님 당시 때도 서기관 율법사 등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박사들이다. 세계에도 없는 엘리트 박사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성경을 가지고 뭘 했느냐? 껍데기 운동, 종교적인 세상운동을 했다. 이게 외식운동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바리새교인들이, 성경 학박사들이 로마를 위해서 건설을 하자고 한 것이 아니다. 유대 종교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건설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알맹이 운동이 아니라 껍데기 운동이다. 이걸 외식운동이라고 한다. 성경을 가지고 사람을 하나님의 본질에 맞는 인격으로 성장시키고, 영능의 실력을 가지는 똑똑한 사람, 신령천국에 들어가서도 영원히 영광스럽고 존귀스런 사람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돈을 가지고 충성봉사 노력봉사로 막 모는 거다. 이걸 외식운동이라고 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려면 똑바로 알아야 한다. 교회가 뭐하는 곳인지 똑바로 알아야 한다.

 

그 다음에 뭘 모르느냐 하면 성령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모른다. 교회에서 부흥집회 때 펄펄 뛰면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니다. 설교를 들어볼 때 성경구절을 이용하면서 그 소원 목적이 세상에 붙은 건지, 천국에 붙은 건지 이게 분별이 나면 이건 악령의 역사다, 이건 성령의 역사다하는 게 금방 판단이 나버린다. 그런데 교회에서 목사부터가 이걸 모르니 교인들에게 못 가르쳐 주고, 교인들도 성경을 안 보니 다 모르는 거다. 그러니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면서도 교회에 속고, 거짓 종들에게 속고, 그에 앞서서 자기의 옛사람의 주관성에 자기가 먼저 속는다.

 

예수 믿는 자기에게 크고 작은 사건이 왜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느냐? 자기가 부자였는데 어떤 사건으로 해서 가난하게 되었다거나, 불이 나서 가난하게 되었다거나, 도둑이 다 훔쳐가서 가난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것이 다 사건인데, 자기에게 이런 사건이 왜 일어난다고 보느냐? 하나님께서 세상만사를 돌리시고 모든 성도를 감찰하신다면 성도들의 모든 것을 지켜줘야 하는데 왜 도둑을 맞게 하고 불이 나게 하는 거냐? 하나님께서 그 때 뭘 하셨느냐? 아무 것도 안 했느냐? 불이 나고 도둑질을 하는 것을 모르시느냐?

 

간단히 말해서 자기에게 왜 병이 왔다고 생각을 하느냐? 하나님께서 병이 오는 것을 막아주면 될 텐데 안 막아준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몰라서 안 막아준 거냐? 하나님께서 주무실 때 마귀가 얼른 병을 집어넣어 주었기 때문이냐, 아니면 자기가 병이 들 자로 살았기 때문이냐? 예수 믿는 자기가 그 정신 사상이, 마음 씀씀이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보느냐? 성령님을 어떻게 보느냐?

 

말세에는 성령을 보는 눈이 어둡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뭔지 모르는 인도자도 많고, 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영을 시험하라고 했다. 어떻게 시험할 거냐? 영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러니 영을 어떻게 시험할 거냐? 어떻게 시험을 하는 거냐?

 

예수님께서는 어떤 운동의 배후가 악령인지 성령인지 모르실까? 아신다면 어떻게 알까? 투시를 하는 거냐? 어떻게 아시느냐? 투시의 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너 무슨 죄를 지었다하는 게 성령의 역사냐? 성경에 보면 누가 투시를 하느냐? 성경에 투시라는 말은 없지만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고 죄를 지적하는 것을 한국의 용어로 투시라고 한다. 그러면 성경에 누가 투시를 했느냐? 누가 사람의 속마음을 아느냐? 예수님이 아신다. 그러면 예수님이 무슨 눈을 가지고 사람의 속을 아시는 거냐? 영의 눈이다. 그러면 뭐가 영의 눈이냐? 육의 눈이 따로 있고, 영의 눈이 따로 있는 건데 뭐가 영의 눈이냐?

 

우리가 하나의 예로 사람을 모양새로만 볼 때 인물은 번지르한데 이 사람을 사겨보니 이기주의로 욕심이 어떻게 많은지? 이 사람은 뭘 닮은 거냐? 짐승으로 말한다면 어떤 짐승과 같으냐? 돼지와 같다고 한다. 왜 돼지와 같다고 하느냐? 돼지가 밥 먹는 걸 보면 자기가 밥을 먹는 밥통 속에 두 발을 집어넣고 그 밥을 먹고, 거기에 또 똥오줌을 싸고 그 밥을 먹는다. 다른 돼지가 자기 밥을 먹으려고 하면 주둥이로 밀어내 버린다.

 

사람이 겉으로는 번지르한데 만날 적마다 싸운다고 하면 짐승으로 말하면 어떤 짐승과 같으냐? 개는 개들끼리 만나기만 하면 잘 싸운다. 그래서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도 이런 사람을 개 같은 놈이라고 하는데 왜 개 같은 놈이라고 하는 거냐? 사람인데 개 같은 짓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술을 먹는 사람도 여러 질이 있는데, 술에 취하면 방에 들어가서 그냥 자는 사람도 있고, 잠도 안 자고 거리를 누비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을 잡고 싸우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사람인데 하는 짓이 고양이 같고, 개 같고, 곰 같고, 독사 같고 한 사람이 있다. 행동을 보고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성경에서는 이단자들을 개라고 했다. 왜 그런 거냐? 개는 잘 싸운다. 이단자들은 이론적으로 막 잡고 싸운다. 그들과 싸우는 것은 아무 이득이 없다. 사람이 개를 잡고 싸운다면 그 사람이 누굴 닮은 거냐? 개가 사람을 닮은 거냐, 사람이 개를 닮은 거냐? 사람이 개를 닮은 거다.

 

다니엘서 7장에서 다니엘이 환상을 보는데, 곰도 나오고, 곰 발바닥도 나오고, 표범에 날개가 달린 것도 나오고, 염소가 뿔이 있는데 가운데서 뿔이 길게 나면서 온 세계를 점령하는 것도 있는데 이걸 역사적으로 보아서 알렉산더다. 나폴레옹이다. 바사 왕이다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 역사는 뭘 말하는 거냐? 사람이다. 사람 속에 들어있는 사상을 정신을 말하는 거다. 그 정신이 들면 그 일을 한다는 거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이런 운동은 염소운동인 줄 알아라. 이런 운동은 거짓운동인 줄 알아라. 이런 운동은 마귀운동인 줄 알아라하고 성경으로 알게 했다. 따라서 우리가 그런 성경을 보면서 자기가 보여져야 하고 고쳐야 한다.

 

고집이 센 자식들이 있는데, 부모가 말을 해도 도무지 듣지를 않는다. 힘 대 힘으로는 자식이 부모를 이길 수가 없으니까 성질이 나면 자기 머리로 벽을 받아버리는 자식도 있다. 이게 뭣과 같은 거냐? 자기 머리를 벽에 박으니 뭘 닮은 거냐? 그런 짐승이 어떤 짐승이냐? 자기 속에 타락적 주관성이 강하면 그 강한 것이 사람을 막 떠받는다. 소가 싸움을 하는 것처럼 사람을 막 떠받는다. 그래서 이런 자식을 소 같은 자식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계시를 모체로 해서 사람을 정신 사상적으로 봐야 만이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겨지는 건데, 그런데 일반적인 이치로도 아기에게 계속 우유만 먹인다면 그 아이가 커가면서 어떤 성질이 자랄까? 몸의 덩치는 커지지만 그 머리통 속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인간의 온전한 성품으로 자라지를 못하니 이렇게 자라서 힘이 세어지면 누구를 떠받겠느냐? 우리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힘만 세면, 고집만 세면 사람노릇을 하는 거냐? 아니다. 이런 사람은 자타에게 고통을 준다. 사람이란 깨달음이 있어야 하고 인격적인 면에 성장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성경을 왜 준 거냐?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하나님을 닮는 사람이 되라는 거다. 우리 인간이 존재적으로는 하나님이 아니로되 가슴에 품는 정신이 하나님의 정신과 마음을 닮아라 그 말이다. 하나님의 자식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야지 마귀 속을 닮는다면 이건 마귀자식이다. 지금 이건 지옥, 천당차원의 말이 아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주님처럼 속이 바꿔져서 닮아져 가는 거다. 말씀 깨달음이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의 고차원적인 인격과 성품을 닮는다. 이렇게 되면 이런 사람이 말을 하게 되면 이치가 나오고, 행동도 고상하지, 할 말 안 할 말을 분간해서 하지, ‘이 사람을 잡고 싸워야 되겠다. 안 싸워야 되겠다하는 것이 분간이 돼 나간다. 사람이 아주 비범해진다. 사람의 속이 넓다. 남이 일반적인 면에서 잘못하는 것에는 마음이 굉장히 넓지만 진리다. 아니다하는 것에는 칼날 같이 들어간다. 이게 진리의 사람이다.

 

진리의 사람이 아니면 인간적인 것을 가지고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려고 하고, ‘진리냐, 아니냐하는 것에는 덤덤하다. 이런 것에는 신경을 안 쓴다. 그러니 그 속이 얼마나 좁아 터졌느냐? 얼마나 꼬장꼬장하냐? 이러면 늘 고통스럽고 병이 나는 거다. 여기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이 지경까지 간다면 이건 부끄러운 일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의 가정이 왜 찢어지느냐? 이런 경우는 찢어질 수가 있다. 한 사람은 절로 가려고 하고, 한 사람은 교회로 가려고 한다면 헤어질 수 있다. 그리고 부부가 같이 있으면 늘 싸운다고 하면 따로 살다가 보고 싶거든 만나기도 하고 그렇게 하라. 헤어지는 것은 나쁜 거다. 성경적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부부라면 이것이 최대한의 방편이구나.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캄캄할 때 뭐가 필요하냐? 일반 이치적으로 불이 없으면 그 사람은 캄캄하다. 캄캄하면 등불이 필요하듯이 예수 믿는 사람이 사건이 왔을 때 그 사건이 왜 왔는지 그 뜻을 알지를 못해서 답답하거든 하나님께 말씀의 등불을 나에게 주옵소서하고 기도를 하라. 그러면 답답한 자기 마음속에 지혜도 생기게 되고, 지식도 생기게 되고, 그 사건을 어떻게 하나님 뜻에 맞도록 처리를 해야 되겠다고 하는 게 나오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 그렇지를 않다. 자기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불러서 무조건 도와달라고만 한다.

 

아니, 그 일을 누가 준 거냐? 하나님 아버지가 준 거다. 그러면 왜 줬느냐? 고치자 그 말이다. ‘너는 이 면이 잘못됐기 때문에 그걸 고치게 하려고 이 사건은 준 것이니까 이 사건에서 네가 깨닫고 고치자그 말이다. 그 사건에서 못 고쳐도 그 사건은 지나간다. 사건은 시간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 그 사건도 지나가는 거다. 환경 역시도 시간과 함께 지나간다. 이 사건과 환경 속에서 내가 깨닫지 못하고 만들어지지 못해도 이 사건과 환경과 존재는 지나간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이 온다. 다른 것이 와도 또 모르면 계속 계속 그렇게 그냥 지나가는 거다.

 

학생 같으면 평소에 공부를 실력적으로 준비를 하고 있으면 언제 시험을 쳐도 좋다. 그러나 평소에 실력이 없는 학생은 시험이 없으면 좋겠다하게 된다. 이런 학생은 시험을 쳐봐야 빵점이다. 이러면 이 학생에게 무슨 칭찬이 들어가겠느냐? 마찬가지로 예수를 몇 년을 믿었느냐? 오래 믿을수록 성경 깨달음의 실력이 있어야 한다. 성경을 봤다면 성경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성경에 다른 사람이 너에게 성경에 대해 묻거든 대답할 수 있는 준비를 하라고 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인간은 이렇게 사는 겁니다. 세상은 이런 곳입니다. 당신에게 천국은 이렇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이렇습니다하고 깨닫게 하는 게 성경을 깨닫게 하는 거다.

 

세상 사람들은 다 똑똑하다고 하지만 천만에다. 똑똑한 사람 참 보기 힘들다. 세상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똑똑한 거냐? 아니다. 세상공부를 아무리 많이 했어도 마귀에게 붙잡힌 사람이 많이 있다. 그래서 죄를 짓고 도망 다니고 감옥에 들어가고 하지 않느냐? 말씀의 깨달음이 인격적으로 밝아지는 게 등불이다. 이게 참 귀한 거다. 말씀 깨달음이 되면 모든 종교적 운동을 다 밝혀낸다.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지난 시간에 다윗이 말하는 흑암이 뭐라고 했느냐?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게 흑암이다. 세상 학박사라도 성경에 관해서 캄캄한 사람은 흑암이다. 아무리 학박사라도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아느냐 하면 전혀 모른다. 그러나 우리교인들은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만 똑똑히 알고 그 뜻대로 산다면 참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돈이 없더라도 믿음이 참 좋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잡고 은혜를 주신다.

 

우리가 이치적으로 말을 하자면 한이 없다. 시집간 딸 중에 한 딸은 부자지만 속이 아주 못돼서 어떻게 욕심이 많은지? 그런데 한 딸은 시집을 가서 가난한데도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안다고 하면 어머니의 사랑이 어느 쪽으로 가겠느냐? 돈 많은 딸에게냐? 이 자식에게는 사랑이 안 간다. 사람을 무시하고, 부모를 모실 줄 모르고, 자기 욕심만 내는 딸에게는 마음이 안 가고 가난한 딸에게 마음이 간다. 인물 좋고 마음이 고약한 사람이 좋으냐, 인물은 나처럼 못 생겼어도 마음이 넓고 지혜로운 사람이 좋으냐? 이치가 빤하지 않느냐? 신앙적으로도 이치적으로 들어가면 깨닫게 되는 거다.

 

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다윗이 남의 담을 뛰어 넘었느냐? 이게 무슨 말이냐? ‘내가 주를 의뢰하고.’ 알아야 의뢰를 할 수 있는 거다. 모르면 의뢰를 못한다. 모르면 못 믿는다. 모르면 못 맡긴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돈을 나에게 맡겨라한다면 내가 당신을 어떻게 알고 돈을 맡기느냐?’ 할 것이다. 그 사람의 속 중심을, 마음을 다 안 후에 맡기든지 안 맡기든지 하는 거다.

 

적군에 달리며.’ 적군 가운데 들어가서 달리다가는 칼에 맞아 죽는다. 여기서 적군에 달린다는 것은 모든 사고방식 이해타산 평가성을 영의 눈을 가지고 진리로 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적군 속에 뛰어 들어가도 다침이 없다. 인격 면에 손상이 없다. 마음 상하는 게 없다. 속아 넘어가는 게 없다. 무장이 됐다 그 말이다.

 

우리교인들도 진리이치의 말씀으로, 생명이치 진리이치 도덕이치로 무장이 돼 봐라. 모든 면에서 적지적소에 그것이 나가게 된다. 이렇게 할 때 내가 멋대로 달려도 상처를 안 받는다. 이게 적군에 달리는 거다. 신앙 믿음의 실력이 그렇게 좋다는 것이다.

 

가령 성경도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 날 도와주옵소서. 내가 저기에 들어가서 사명적으로 복음의 일을 하겠나이다라고 한다면 말씀으로 무장도 안 됐는데 어떻게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고 이기겠느냐? 성경으로 무장도 안 하고 세상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말씀의 십자가 군병으로 내보내시겠느냐? 아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우스꽝스런 짓은 안 하신다.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왜 담을 뛰어 넘은 거냐? 다윗은 인격의 수준이 이방 불신자들보다는 질적으로 본질적으로 하늘이다. 예수님의 인격의 수준은 하늘이다. 하늘의 눈을 가지고 본다 그 말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인격의 수준은 땅에서 올라왔다. 기초가 땅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고 나라의 일을 걱정한다고 해도 세상에 있는, 해 아래에 있는 것을 걱정을 하지 해 위의 것은, 천국의 것은 생각을 못한다.

 

담을 뛰어 넘나이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의 인격의 수준을 알아야 한다. 담을 뛰어 넘는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의 인격의 수준을 능가한다 그 말이다. 세상 사람들의 수준을 뛰어 넘는다. 예수 믿는 사람이 진리이치로써 영의 눈이 밝아지면 신앙 면의 적을 바로 알 수 있다.

 

안 믿는 사람들의 벽은, 보호막은 물질성이요 물질적 사상이다. 그러나 우리 기독자들은 그걸 다 뛰어 넘는 거다. 뛰어 넘어야 한다. 자기의 신앙수준이 잘못 됐으면 올바로 성장을 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자기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첫째는 자기가 자기에게 이용을 당한다. 옛사람이 주격이 되어서 자기 속의 새사람을 죽이게 된다. 이건 영적 살인이다. 그 다음에 거짓된 교훈에 자기가 이용을 당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자기를 이용하는 거다. 우리는 거짓 종들에게 이용을 당하면 안 된다. 우리는 주님에게, 진리운동에, 영의 운동에, 천국 복음운동에 이용을 당하는 게 아니라 수종을 듦으로서 계속 은혜를 받아야 한다. 이게 자기 성장이다. 이걸 알아야 한다.

 

자기가 과거에 교회를 그렇게 다니고, 헌금도 많이 하고, 물질적 충성봉사를 했다면 깨달은 믿음이 있느냐? 이게 없다면 자기는 이용을 당한 거다. 노력봉사, 물질봉사, 시간봉사, 활동봉사 전부는 이용당한 거다. 이용을 당했는지, 안 당했는지 이치를 가지고 생각을 해보면 스스로 금방 느낄 수 있다.

 

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하나님의 말씀의 도가 성도가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는 면에서, 인격적 성품적 온전을 닮는 면에서 뭐가 빠졌거나, 부족하거나, 더 보탤 것이 있다거나, 필요가 없어서 버릴 것이 있다거나 할 것이 있느냐? 전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입히는 면에서, 깨닫게 하는 면에서, 참 사람 되게 하는 면에서, 신령한 사람으로 신령적 성품을 갖게 하는 면에서 100% 완전하다. 하나님의 도는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

 

하나님의 도는 지혜지식적인 면으로 완전, 하나님의 도덕적인 면으로 완전, 능력적인 면으로 완전, 이치적인 면에서 완전, 생명적인 면에서 완전, 질적으로 완전, 양적으로도 완전이다. 모든 면에 100% 완전이고 온전이다. 한 마디로 하면 하나님 당신은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처럼 만들어 주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말씀을 집어던진다면 이건 없는 거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말씀을 안 보고, 말씀을 아무렇게나 여기며 딴 것을 더 귀중하게 여긴다면 이는 말씀으로 인해서 지혜지식이나 도덕성이나 모든 사고방식이나 이해타산 평가성적인 면에서 고차원적으로 올라가지를 못하고 저질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런가 안 그런가를 시험을 해봐라. 예수 믿는 잘 아는 친구가 있다면 서로 약속을 해봐라. ‘지금 이 시간부터 나는 3년 동안 성경을 안 볼 테니 너는 3년 동안 성경을 봐라하고서 3년 후에 말씀의 실력이 누가 더 올라갔는지를 봐라.

 

목사님들 세계에서도 보면 성경을 읽은 목사님과, 안 읽은 목사가 금방 표시가 난다. 또 하나는 너는 죽자 사자 성경을 읽었는데도 읽은 그 정신이 다른 것에 붙었구나하는 것도 금방 표시가 난다. 그리고 기도를 많이 해서 성령을 받았다고 팔팔 뛰는 사람도 그게 무슨 영이다하는 것도 금방 표시가 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잘 믿으나 못 믿으나 그 사람의 영은 중생이 되었다고 보는 거다. 우리가 이걸 전제를 하고 말을 한다면 예수를 믿고 영은 중생이 됐는데 자기 주관성이 많고 고집이 강한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성경의 이치대로 말씀이 나가면 이 말씀이 자기 속에 화살처럼 꽂히게 되지만 그러나 속에서 이걸 밀어내 버린다. 그러면서 막 성질이 나는 거다.

 

성경은 전부가 자기에게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심령골수를 쪼개기 때문에 영이 중생된 사람은 옳은 진리이치의 말씀을 들으면 자기 속에서 성령이 역사를 하기 때문에 다 자기에게 하는 말씀으로 들리게 된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기 속에서 밀어내게 되면 속에서 듣기 싫어서 죽으려고 한다. 이러면 그 반응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이러면 누굴 잡고 싸우겠느냐?

 

진리의 말씀이 성령님으로 통해서 자기의 중생된 영을 붙잡고 양심에서 새록새록 깨닫게 하는데 자기가 이 옳은 양심을 죽인다면 이것이 바로 성령 훼방 죄다. 이 죄는 사함을 못 받는다. 지옥에 간다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도 그렇게 나간다면 이건 하나님으로부터 강한 매질이 오게 된다. 왜냐? 하나님의 자녀니까 바로 만들려니 두들겨 패는 거다.

 

기도를 해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진리이치의 말씀을 받으면 어떤 반응이 나오느냐 하면 말씀을 들을 때는 그냥 존다. 그러나 예언 방언 등의 뭔가 신나는 게 있으면 언제 잠이 깼는지 그런 것에 동조를 한다. 왜냐하면 자기 마음에 듣기 좋기 때문이다. 이건 성령이 아닌 악령이 들린 거다. 그러나 진짜 성령을 받는 사람은 그렇지를 않다.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속에서 명철해진다. 눈알이 또렷해지고 사는 면에서 이치가 밝다. 그리고 사람 사는 관계성에서 도덕성이 밝다. 그러나 귀신이 들려놓으면 집안 꼴이 안 된다. 빨래도 제 시간에 못하지, 남편이나 자식에게 제 때 밥을 해주는 것도 없다. 사람이 얼마나 고약한지 이 교회 저 교회 막 돌아다니면서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짝을 짓는다. 이런 사람은 어느 교회에 가도 받아주기가 힘들다. 설령 세상적으로 가르치는 교회라고 할지라도 이런 사람은 골치가 아픈 거다. 이렇게 되니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간판을 붙여놓고 단체로 그런 짓을 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교회 교인들은 성경을 바로 깨닫고 신앙인으로서도 똑똑해야 하고 일반적으로도 똑똑해야 한다. 우리 기독자들은 깨달음에서 차원이 높아야 한다. 인격이 고상해져야 한다. 예수 믿으면서 성경을 멀리하고, 깨닫는 것이 없이 산다면 자기는 저질이다. 목사인데도 성경을 안 본다면 교인들을 어떻게 인도를 하겠느냐? 돈 짜내는 말밖에 더 하겠느냐?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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