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가르치는 남녀(男女) 관계(關係)
1. 남존(男尊) 여비(女卑)
어떠한 남성이 여성에 대한 입장을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들을 수 있는 "간 큰 남자는 이렇고 저렇다"는 유행어 등은 여성들이 남녀 동등(同等)이라는 산정(山頂)을 훨씬 넘어서 기탄(忌憚)없이 인권(人權)을 누리며 삶을 즐기는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언젠가 아득한 옛날에 놀웨이 작가 입센(Ibsen,1828-1906)이 지은 소설 "인형의 집"을 읽으면서 한국도 여성의 입장이 좀 개방(開放)이 되어야 할텐데 하던 생각은 아무에게도 흥미를 줄 수 없는 옛날 얘기가 되었습니다.
1950년대 말엽(末葉)에 공군 소위, 중위로 있으면서 버스 통근을 하던 생각을 합니다. 고급 장교가 버스에 승차하면 자리를 양보하지만 군인이 아닌 문관인 여성들은 버스 안에 서서 출근 하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남존 여비의 시대가 옛날 얘기가 아니고 반세기(半世紀)도 안돼는 근래의 얘기라고 한다면 지금은 세상이 여존(女尊) 남비(男卑)의 시대로 변하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가를 짐작하게 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의 얘기를 아무리 재미 있게 할 수 있다 손치더라도, 일약 남성과 대결하면서 사회의 각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20세기 후반에 사는 여성들에게 흥미를 끌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기야 지금까지 써온 제 글이 흥미를 끌 목적도 아니고, 그러한 방법을 생각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변명할 필요가 없이 흥미 없는 얘기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2. 현대 문화 문명이 여성을 해방하였는가?
인간이 인간 구실을 하고 살도록 만들었다는 문예부흥(文藝復興)은 여성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20세기 문화 문명의 디딤돌이라고 하겠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비교하면 문예부흥이야말로 인간이 하나님을 등지고 달려가는 배역(背逆)의 속도를 더한 것이며, 20세기의 문화 문명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리 격리(隔離)시켰다고 하겠습니다.
"내가 다시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마지막 때가 되면서 모든 교회가 세상화(世上化)되었으며, 교인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합니다. 교회가 사회에 끼칠 영향력은 전혀 없어지고, 오히려 교회는 모든 것을 세상에서 배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잘한다고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잘하는 것을 성경도 인정 하는가를 따져 보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남녀 관계에 대해서 성경을 펴 놓고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우리 마음 속에 다짐을 해야 할 일은, 성경 말씀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완벽(完璧)하시기 때문에 그의 말씀에는 오류(誤謬)가 있을 수 없고, 또한 그가 창조한 피조물이 오묘 막심(奧妙 莫深)하고 아름다운 것 같이, 그의 말씀도 아름답고, 오묘하며, 우리에게 분명한 지침(指針)을 주시는 것을 믿게 됩니다.
이러한 신앙에서 남녀 관계를 성경에서 공부한다면, 역시 그 시작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을 창조하셨는가를 공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6-29)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獨處)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
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0-24)
3. 남녀를 창조(創造)하신 뜻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인간을 창조하신 뜻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창조는 천지(天地) 창조의 중심(中心)이 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인간이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시리라"고 하신 것은 천지의 창조가 인간을 위함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인간이 지상(地上)을 통치하도록 계획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의 결실을 인간이 어떻게 하는가를 하나님께서 지켜 보시고 계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둘째는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그 남자(아담)의 일부를 가지고 여자를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여자가 남자의 일부니까 여자는 남자에게 속하였다는 것이 아니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한 것은 여자는 나의 골육(骨肉)임으로 세상의 어떠한 피조물과 비교할 수 없다는 아담의 간증입니다.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은 명령(命令) 계통(系統)을 가르침을 고린도전서 11장 7-10절은 설명합니다.
세째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신 것은 남녀의 결혼은 하나님의 근본적인 창조의 계획이며, 이것으로만이 하나님의 창조가 성공적으로 결실할 것을 암시합니다. 가령 세상의 모든 인구가 갑자기 다 동성애(同性愛) 자들이 되었다면 세상은 몇 년 후에 종결을 볼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읽는 인간 창조의 뜻을 한 말로 종합하여 말한다면, 우주의 창조는 인간을 위함이요, 인간은 남자와 여자를 말하며, 이 남녀가 결합(結合)하는 것은 하나님의 근본적인 창조의 계획이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창조의 완성을 기대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우주 창조를 공부하면서, 세상이 어느 정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을 인류가 얼마나 거역(拒逆)하고 있는가를 측정함으로 세상의 종말이 얼마나 임박(臨迫)해 있는가를 또한 알 수 있습니다.
4. 결혼 후 이혼(離婚)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창조의 뜻은, 인간이 결혼(結婚)할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하며, 결혼 후 이혼(離婚)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이혼을 한다는 것이 50년 전에, 특히 거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한국 사람들의 이혼율도 미국을 부지런히 따라오고 있습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이방인(異邦人)들에게는 이혼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있는 줄 압니다. 배우자(配偶者)의 불륜(不倫)이라든가, 배우자의 폭행(暴行)이라든가, 어떤 이유든 간에 이혼하기로 합의하였을 때 쉽게 이혼할 수 있는 편리한 법이 생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이혼률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들도 이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할 때 많은 기독교인들이 쉽게 마태복음 19장 9절을 지적하면서 배우자의 불륜을 발견할 때 이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혼 후 다시 딴 사람에게 결혼하는 것도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정
당하다고 합니다. 하기야 장로교의 근본 교리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信仰告白)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이혼을 정당화하고 있는 잘못을 수 백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공부하겠습니다.
5. 부부간에만 있을 수 있는 성 관계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通姦)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신 22:22)
이 성경 구절은 간음하는 죄가 얼마나 악한 것인가를 설명합니다. 구약에서 "돌로 쳐 죽일 죄"는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영원히 지옥에서 멸망할 것을 상징하며, 부모를 불경(不敬)하는 자, 살인하는 자, 간음하는 자들에게 적용이 됩니다. 이러한 엄한 벌로 보아서 마태복음 19장 9절이 간음한 배우자를 이혼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가 쉽습니다. 사람들에게 바라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이 구절의 뜻을 알아 보려고 노력치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 신명기 말씀의 영적인 뜻은 부부(夫婦)의 관계 외에는 남녀가 관계를 가질 수 없으며, 따라서 결혼한 부부의 이혼은 있을 수 없음을 로마서 7장 1-4절이 설명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主管)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淫夫)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이 구절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인간은 나면서부터 하나님의 법 아래 살게 되며,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부(新婦)가 될 수 있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여자가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다른 남자에게 갈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이 원리는 하나님께서 세운 것이며, 완전 무결한 남편이신 하나님께서 매일 같이 음행하는 아내(인간)들과 이혼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은 다음과 같이 또 말합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이 구절도 인간이 불륜(不倫)한 관계를 가지고 부부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을 가르치는 동시에, 인간을 "여자들이여"라고 부름으로써 인간이 하나님의 법과 결합(結合)한 처지이며, 그 법을 어기는 것은 간음하는 일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법은 간음하는 자들이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법은 일단 결혼한 부부(夫婦)는 이혼(離婚)이 불가능 함으로, 인간의 완전한 신랑(新郞)이 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배우자(配偶者)인 인간을 둘째 사망을 받는 날까지 버리지 않으실 것을 또한 가르칩니다. 이 관계는 고린도전서 7장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고전 7:27)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自由)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전 7:39)
27절에 "매였느냐"는 "내 결혼이 하나님의 법 아래 있음을 믿을 때"를 말하며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는 이혼할 생각을 할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아내에게서 놓였
느냐"는 믿지 않은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여 독신이 되었을 때 다시 결혼할 계획을 할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39절의 말씀은 여자의 재혼은 오로지 남편이 죽는 경우에만 허락이 됨을 가르칩니다.
이상과 같이 인간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은 영적으로 알게 되는 인간의 구원 계획과 1대 1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결혼(結婚)은 하나님의 법 아래 있으며, 배우자가 죽는 일이 아니고는 이혼할 수 없으며, 인간을 배우자로 정하신 하나님께서 거듭 간음하는 인간을 보고도 이혼하시지 못하는 것은 그가 정한 법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배우자가 죽으면 다시 결혼할 수 있는 법은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 과정과 비교가 되며, 거듭난 자들은 율법 아래 더 이상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다스리는 자가 아니고 친구가 되었음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신랑(新郞)으로 삼고 그리스도와 결합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법과 사별(死別)하고, 재혼(再婚)할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성경이 가르치는 법은 배우자가 죽지 않는 한 이혼(離婚)이 있을 수 없으며, 이혼을 당한 사람은 다시 재혼하는 것을 성경은 허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혼은 이방인들의 행실(行實)이며, 이방인을 배우자로 가진 믿는 자는 이혼을 당할 수 있으나, 이혼을 한 배우자가 죽기 전에는 다시 재혼할 수 없습니다.
6.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결혼하셨음
그러나 아직도 마태복음 19장 9절에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가지고 이혼을 정당화 할 수 있음을 주장하게 됩니다.
이 문제의 바른 이해는 구약의 한 법을 공부하고, 다시 마태복음 19장으로 되돌아와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대화를 더 살펴 봄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구약의 역사(歷史)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選民)으로 정하시고 이스라엘에게 법을 주신 기록입니다.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렘 3:14)고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신약시대의 교회가 탄생 된 것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이혼의 법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그 후부(後夫)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내었거나 혹시 그를 아내로 취(娶)한 후부가 죽었다 하자 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어보낸 전부(前夫)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지니---"(신 24:1-4)
이 법은 바로 이스라엘이 행음 함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혼하실 수 있도록 정하신 법임을 다음 성경 말씀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채주(債主)에게 너희를 팔았느냐 오직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너희 어미는 너희의 허물을 인하여 내어보냄을 입었느니라"(사 50:1)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음으로 내가 그를 내어 쫓고 이혼서까 지 주었으되 그 패역(悖逆)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렘 3:8)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떠남같이 너희가 정녕히 나를 속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20)
이상과 같은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행음함으로써 이혼하실 것의 예언이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그 이혼이 성립되었음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유의할 것은 이 이혼의 법이 오로지 남편이 아내를 이혼할 수 있는 법이며, 여자가 남자를 이혼할 수 있는 법은 성경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법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이혼하셨을 뿐 아니라, 이 법이 더 이상 효력이 없음을 선언하셨습니다.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離婚) 증서(證書)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淫)行한 연고(緣故)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 5:31-32)
이 말씀은 신명기 24장에 기록된 율법의 설명이며, 그리스도께서 결혼의 존엄성(尊嚴性)을 말씀하시고, 이혼은 범죄하는 것이며, 또한 이혼당한 아내는 다시 결혼할 수 없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말씀 중에서 유의할 말씀은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라고 하신 점이며, 이혼 당한 아내가 죄가 없다 하더라도 그 이혼으로 하여금 간음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이 가르치는 중점은, 이유(理由) 여하(如何)를 막론하고 이혼하는 것은 범죄하는 것임을 가르칩니다.
결론으로 마태복음 19장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편지를 마감하고자 합니다.
7. 마태복음 19장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緣故)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마 19: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本來)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하시니"(마 19:4-6)
"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 버리라 명하였나이까"(마 19:7)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頑惡)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마 19: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행음(行淫)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 19:9)
이 구절 속에 상반(相反)되는 말이 있는 것 같지만 얘기 전체의 뜻을 알게 됨으로 그 상반된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3절에서 읽는 바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었지만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라고 질문한 것은 어떠한 이유를 써서라도 이혼하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심정을 표시하며, 21세기를 눈 앞에 둔 인간사회의 이혼율이 50%가 넘고 있다는 사실과 대조가 됩니다. 4절에 예수님게서 "본래"라고 하신 것은 창조의 목적을 말하며, "한 몸이니"하신 것은 상징적으로 하나가 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마치 두 덩어리의 진흙 을 합하여 한 그릇을 만드는 것 같이 결혼이라는 하나님의 법이 인류(人類)를 다스리고 유지(維持)하는데 근본 단위가 됨을 말합니다.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한다면,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것이 세포(細胞)이며, 결혼은 하나님의 인류 창조의 가장 민감한 세포입니다.
사람 몸의 세포가 어느 정도 파괴될 때 그 사람에게 죽음이 오는 것 같이, 인간 결혼의 세포가 어느 정도 파괴될 때 세상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것을 이 구절은 암시(暗示)합니다.
7절은 모세의 이혼법이 잠시 동안 존재했던 것에 대한 질문이며, 8절은 예수님께서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라고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역하여 타락할 것을 아시고, 이혼할 길을 법으로 마련하신 것이며,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하심으로써 "이혼 증서"의 법이 폐기(廢棄)됨과 동시에, "다른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이 말씀에서 이혼을 정당화(正當化)하기 위하여 "내가 했던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결혼이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하여 각 나라마다, 각 족속마다 결혼의 법을 만들게 하시고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민(銳敏)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될 때 동성애(同性愛)자들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신문 보도는 인간들이 말세를 재촉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증한 일입니까? 만일 지금이 구약시대라면 동성애자들이 다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음행한 연고 외에"의 뜻이 아직도 여러분께 석연치 않은 줄 압니다. "외에"는 그 원어의 뜻이 "if not", "more than"이라던가, 또는 "in addition to"라고 번역된 것은 "음행한 연고라 할지라도"의 뜻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어떠한 방법으로 해석한다 할지라도 음행한 연고로 이혼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지면 관계로 오늘은 이 점에서 편지를 마감하고 다음 편지에는 결혼이 쉽게 깨어지는 이유를 생각하면서 성경 말씀을 공부하고, 성경에 기록된 여성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을 찾아 보고, 보수 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여(女)목사, 여(女)장로에 대하여 성경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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