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로마와 기독교. 페르시아와 그리스

열려라 에바다 2011. 10. 19. 10:17

로마와 기독교. 페르시아와 그리스

페르시아와 그리스

대제국 바벨로니아도 결국 파사(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다리오) 장군에 의해 멸망당하고, 다리우스는 키루스 (고레스)왕에 이어 페르시아의 황제가 되고 페르시아의 왕궁인 페르세폴리스를 건립하였습니다. 그림은 페르세폴리스에 조공을 바치러 온 수많은 사신들의 벽화입니다. 60여개의 나라들이 페르시아에 조공을 바치러 나아 왔습니다. 페르시아는 지금의 이란이지요. 그 엄청난 통치하에 남들도 잘 대해주고 했으면 좋았을텐데, 크세르세스 황제때 바다 건너 그리이스까지 다 정복하려 하다가, 스파르타, 아테네 같은 도시국가들에 불과한 그리이스에게 전쟁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마라톤이란 것도 시작되었고요. 그리이스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크세르세스는 국내에서 폭정이나 하면서 시시하게 지냈는데, 성경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이 바로 크세르세스 왕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페르시아의 대단한 왕이었던 다리우스와, 그 앞에 조공을 바치려고 나아오는 그리이스 사신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페르시아에서 하도 조공을 많이 바치라고 하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며 조공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페르시아군이 쳐들어가 전쟁을 일으켰지만 페르시아는 그리이스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왼쪽 그림은 다리우스 왕의 도장입니다. 이것을 두루룩 돌리면서 찍으면, 이렇게 나옵니다. 실린더형으로 되어 있지요. 이 전성기를 누리다가 결국은 그리이스가 힘이 더 강해져서 알렉산더 대왕 때, 철천지 원수로 여겨온 페르시아를 완전히 진멸합니다. 알렉산더는 본래 점령을 하면 융화정책을 썼는데, 역사적 이유 때문에 페르시아만은 용서하지 못하고 완전 초토화시켰습니다. 그 웅장하던 페르세폴리스는 모래바람에 묻혀버리고 그후 수천년 동안 잊혀졌다가 근래에 다시 발굴되게 되었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아테네 도시의 파르테논 신전입니다. 이 신전은 아테네 도시의 수호신 아테네 여신의 신전입니다. 아테네는 평생 처녀로 살았기 때문에 처녀신 아테네로 불리었습니다. 그리스말로 처녀는 파르테노스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도 '아테네 파르테노스'가 된 것입니다.

로마와 기독교

그러나 그 위대했던 알렉산더왕과 그 나라들도 모두 망하고 결국은 멀리 있던 나라인 로마가 중동을 점령하고, 전 세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줄리어스 시이저의 암살 사건을 성공적으로 해결한 옥타비아누스가 최초의 가이사로 오른 것입니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에 명하여 호적하라 할 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가게 한 그 가이사가 바로 이 사람입니다.

그 시절에 중동과 서구에 가장 안정된 평화가 왔기 때문에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라고 불리고, 왼쪽 그림은 그당시에 건립된 로마의 도로입니다. 오른쪽 길가의 양과 비교해 보면 도로의 넓이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로마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길부터 닦았습니다. 이렇게 로마가 전세계를 지배하던 당시에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여기까지 모든 역사의 흐름이 다니엘서의 예언대로 다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보았던 금신상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이 다 맞아 떨어진 것이지요. 참으로 성경은 놀라운 책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그 당시에 로마 총독으로 있던 빌라도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도 남아 있습니다. 빌라도의 보고서에도 예수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요, 오른쪽 그림은 빌라도의 비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별로 학식도 없었고 숨고 도망다니던 사람들이었으나,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 너무나도 담대하고 똑똑한 사람들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래서 전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고, 그 시대에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에 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이 콜로세움에서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렇게 시체만 들어있던 지하묘지 카타콤에서 집회를 하고 하다가, 결국은 황제의 가정에까지 복음이 다 전해진 것입니다. 특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경우는 그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 콘스탄티누스가 황제가 되기 위해서 기독교의 세력이 필요하게 되어, 급격히 양성화시킨 것입니다. 그 결과 경건하지 못한 형식적인 기독교인이 많이 생기면서 초대 기독교정신은 희석되고 타락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