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벧전1 나그네 인생 1장 1~2절

열려라 에바다 2011. 10. 31. 15:15

벧전1 나그네 인생 1장 1~2절

 

이번주에 발행된 '기독신보'에 우리의 가슴을 진하게 감동시키는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9살된 '박지민'이라는 아이가 뇌종양으로 처음 쓰러진 것은 6살때였다고 합니다. 이 후로 9살되는 올해까지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넘겨오다가 지난 10월 28일 짧은 인생을 마감하고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지민이는 생을 마감하면서 자신의 안구를 기증하고, 자신의 시신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연구용으로 기증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죽기전까지 늘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난 하늘나라가 좋아요, 난 천국에 갈거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4년 가까이 뇌종양으로 인해 반신불구로 시달리면서도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고 기도때마다 '소말리아의 아이들의 먹을'것을 위해 기도했다는 '지민'이가 작지만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고는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9살난 아이지만 이토록 죽음 가운데서도 용기를 잃지않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천국을 소망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이 땅에서의 삶보다는 천국에서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참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천국을 소망하는 삶입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의 삶은 한낱 '나그네 인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 이 안산(安山)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가 고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고향을 떠나오셨는지요?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분은 돈을 좀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이곳으로 오신분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분들은 다른 친지를 따라서 오신분들도 있을 것이고, 제 같은 경우는 목회지를 찾아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사도 베드로가 띄운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도 그들의 고향을 떠나 여기저기 흩어져서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고향을 떠나서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된 것은 우리가 고향을 떠난 것과 같은 그런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이 당시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로마의 대대적인 박해가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이유는 그들의 황제를 거부하고, 그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해가 얼마나 심했던지 그들은 한 곳에 함께 모여서 살지 못하고 1절에서 언급하는 것과 같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박해를 아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흩어져 사는 동안에도 로마의 박해는 여전하였습니다. 또 앞으로 그들에게 닥쳐올 더 큰 박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후 64년 7월 19일 로마에 대 화재 사건이 일어나는데 네로황제가 로마에 불을 지른 것이었습니다. 네로황제는 자신의 시흥(詩興)을 돋구기 위해 로마시내에 불을 질러놓고 시를 읊었는데,네로는 그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 씌운 것입니다. 이 때부터 가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박해가 시작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심한 박해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조금 후에는 더 견디기 어려운 박해가 있을 것을 내다보면서 그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이 고난을 이겨나갈 것을 권면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편지를 시작하는 첫머리에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서 '흩어진 나그네'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의 말대로 우리모두는 나그네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명절 때 3000만이나 되는 사람이 고향을 찾아 이동을 했습니다. 인구의 절반이상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향을 갈때 어떻게 갑니까?

작년추석에 저도 고향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고향으로 가기위해 미리 여러가지를 준비했습니다. 김밥도 싸고, 음료수도 챙기고, 차 운전할 때 졸음이 오지 않도록 미리 하루전날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또 차를 운전하는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카세트 테이프도 준비를 해서 고향으로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대구까지 4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길인데 명절 때는 도무지 몇시간 걸릴지 예상을 할 수 없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하루 온종일 걸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장시간의 여행을 통해서 오는 지루함과, 피곤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기필코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나섭니다. 왜 그럴까요? 그냥 말 그대로 그곳이 우리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유행가 가수가 노래하기를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을 하고 정을 붙여도 타향은 타향일 뿐입니다. 타향이 고향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항상 슬픔에 잠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북에 고향을 두고온 '실향민들'입니다. 그들은 남한 땅에서 벌써 40년이상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소원은 자신들이 죽기 전에 고향땅을 밟아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죽기전에 고향땅을 밟을 수 없다면 죽어서라고 고향땅에 묻히고 싶다고 합니다.

자신이 살아온 타향이 정이 들지 않아서 그런 말씀들을 하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타향은 고향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사는 인생이 타향살이를 하는 나그네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그네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타향살이에 자신의 것을 모두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집을 떠나온 사람들은 대개 돈을 모으면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집을 짓고 살려는 마음들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은 그곳에 모든 것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남의 집에 세들어 살 때도 내집을 가지고 사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물론 사람의 성격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세들어 살 때는 그 집에 자신의 것을 투자하는 경우는 거의 드뭅니다.

벽지도 왠만하면 그냥 둬버립니다. 주인이 새로 도매를 해주면 몰라도 내 돈을 들여서 도매하면 왠지 아까운 생각이 듭니다. 아파트마다 발코니가 있는데 대개 자기집인 사람들은 그 발코니를 이용해서 아이들의 놀이방을 만들어 준다든지, 아니면 그곳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 투자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집이 아닌 경우에는 그 발코니를 단지 빨래를 널고,화분 몇개 갖다두는 걸로 만족합니다.

왜 그곳에 자신의 것을 투자하지 않습니까? 그곳에 오래도록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경제적인 여건에 따라 언제든지 그 집을 떠나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곳은 자신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자신의 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나그네 인생을 산다는 것도 이와같습니다. 때때로 어리석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자신의 것을 모두 투자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투자하는 것은 훗날 천국으로 이사를 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다 두고 가야합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나그네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은 타향살이에 자신의 것을 모두 투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영원도록 살, 고향에 자신의 것을 투자하는 사람입니다.

두번째는 언제든지 그 곳을 떠날 준비를 해야합니다.

어느 날 주인이 와서 전세를 올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다행히 올려 줄 전세금이 마련되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이사를 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철저하게 타향살이를 실천하면서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에서도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장막을 치고서 생활했습니다. 장막이란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텐트'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텐트를 칩니까? 여름철에 휴가를 보내기 위해 텐트를 치지 않습니까? 잠깐동안 머물기 위해 치는 것이 텐트입니다. 그리고 휴가가 끝나면 그 텐트를 걷어서 집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지난 여름에 보니 어떤 분들은 아예 트럭위에다 텐트를 치는 분도 있는 걸 보았습니다. 잠깐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좋게하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아뭏튼 땅에 텐트를 쳤든, 트럭위에다 텐트를 쳤던 휴가가 끝나면 모두 그 텐트를 걷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브라함도 이 땅에서의 삶이, 우리들이 텐트를 치고 휴가철을 보내는 것과 같이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이 영원토록 살 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그 휴가가 끝나면 떠나기 위해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땅에서 사는 것이 여름날 휴가철을 보내는 것과 같이 짧디 짧은 시간에 불과합니다. 아브라함은 175년을 살면서도 나그네 인생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을 따라 애굽의 고센땅으로 내려갔던 야곱도 바로가 자신의 나이를 물을 때 그가 대답하기를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창47장 8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을 이 사람들에 비한다면 얼마나 짧은 인생입니까? 오랫동안 살 것 같지만 정말 잠깐입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순식간'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고향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합니다.

지난 봄에 교회 3층으로 이사오기 위해서 뒤편에 살던 집을 내 놓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주인 동생이 이사를 온다고 해서 그 계획이 잠깐동안이지만 수포로 돌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계획이 변경이 되어 이사를 오지않을테니 저희보고 이사하라는 것입니다. 저희는 살고 있던 집을 내놓았다가, 취소했다가, 다시 집을 내놓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쪽집에 이사오려던 사람도 또 이사를 오지 않겠다고 해서 애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희는 이사짐을 싸야할 지, 말아야할 지 한 동안 우왕좌왕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사를 해야할 집이 이사할 준비를 하지 못하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땅은 언제든지 이사를 떠날 준비를 해야할 세상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를 부르실지 모릅니다. 어느날 갑자기 그토록 건강하게 살던 친구가 내 곁을 떠나는 것을 보게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만나서 얘기를 나누었던 사람이 오늘 아침에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것이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어느 순간에 부름을 받을지 모릅니다. 지금 여러분은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시는지요?

세번째로 나그네는 길을 가는 동안 불필요한 것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또 떠날 때도 필요한 것은 버리고 떠납니다.

나그네 하면 어떤 사람이 연상이 되십니까? 저는 김삿갓이 생각이 납니다. 그것도 과거에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김삿갓 북한방랑기'가 생각이 납니다. TV가 없던 시절엔 정오에 들려오는 '김삿갓 북한방랑기'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릅니다.

그 방송을 듣노라면 김삿갓의 모습이 연상이 됩니다. 삿갓쓰고, 지팡이 하나 들고, 옆구리에 표주박하나 차고, 도포를 입고,수염을 기른 모습이 연상이 됩니다. 여행하기에 가장 간단한 차림으로 북한을 돌아다니는 김삿갓의 모습이 여러분은 상상이 되시는지요?

요즘이야 어디를 여행하든지 차에 필요한 것을 잔뜩 실어서 다닐 수 있지만 이 때는 많이 가지고 다니면 다닐 수록 오히려 불편할 뿐입니다. 그래서 여행하는데 꼭 필요한 것 외에는 모두 두고 길을 떠납니다.

또 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필요하지 않은 것은 그냥 버리게 됩니다. 또 남에게 주고 오기도 합니다. 저도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캠핑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창때라 배낭엔 먹을 것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누군가 저희들이 캠핑을 간다고 하니까 하는 말이 "캠핑가면 먹는게 남는거다"라고 말하면서 먹을 것을 잔뜩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객지에 가서 배고픈 서러움만큼 서글픈 것은 없다"고 해서 처음 캠핑을 떠난 저희들로서는 먹을 것을 잔뜩 준비해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다 처치하고 돌아 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많은 것이 남아서, 돌아올 때 저희 옆에서 야영을 하던 다른 사람들에게 쌀이며, 통조림이며,양념이며,죄다 주고 온 일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그네는 길을 갈 때 불필요한 것은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돌아올 때도 필요치 않는 것을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오늘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인생이 나그네 인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정말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나그네는 궁극적으로 돌아갈 고향이 있는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받고 있는 유대인들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앞에서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로마의 엄청난 박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오직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지금은 박해때문에 흩어져서 살고 있지만, 그리고 그 박해 때문에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궁극적으로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기에 그들은 천국을 소망하면서 이 박해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에 지치고 힘이드십니까? 여러분에게 고통스러운 문제들이 있습니까? 천국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잠깐이며 천국은 영원한 것입니다. 나그네의 삶은 단지 체류자의 삶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그 의미가 많이 변질되었지만 원래 '여관'이나'여인숙'은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하루 유숙하는 곳입니다.

여관이나 여인숙에서 오랫동안 있는 사람은 그 집 주인 밖에 없습니다. 모두 날이 밝아오면 짐을 챙겨서 고향을 향해 떠납니다. 아무래도 집에서 지내는 것만큼 편하지 않습니다. 고생입니다. 그러니 그 고생 다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오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먼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집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래도 집이 제일 좋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이 때로는 우리들에게 고난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또 고통스러운 순간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불편을 다 경험하고 고향에 돌아갔을 때 두다리 쭉 펴고 편안한 안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 기억하시면서 참된 나그네 인생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