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감사와 사랑의 봉사 / 요 12:1-8,막14:3

열려라 에바다 2011. 10. 31. 15:17

감사와 사랑의 봉사 / 요 12:1-8,막14:3

 

사도 베드로는 그의 말년에 아시아 각처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에게 말하기를 ‘겸손해야 할 것’과 ‘서로 봉사해야 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언제나 봉사와 함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믿음의 열매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봉사입니다. 그러니까 봉사는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성도이면 반드시 해야할 일입니다.

성경은 성도가 믿는 순간부터 삶의 변화가 생기는데, 신앙이 자라면서 이웃에 대한 구체적인 봉사의 행위가 점점 많아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웃에 대한 봉사와 사랑의 의무를 외면하는 기도와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안으신다고 사1:11-1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12:7-13절에 보면 성도들의 봉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약해서 말하면 ‘이웃을 섬기는 일’과 ‘구제하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쓸 것을 공급하는 일’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분문에서 우리는 봉사에 대한 세사람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세 사람이 바로 문둥이 시몬과 마리아와 가롯 유다, 세 사람입니다. 이것은 오늘 날 예수님에 대한 봉사의 세가지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세 사람의 예수님에 대한 봉사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시몬은 감사하므로 봉사였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 아래에 있는 작은 동네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마26:6). 이 시몬은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살 소망이 없이 하루 하루를 고통 중에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그 불치의 병을 고침받게 되었습니다. 천하를 얻은 것보다 더 기쁘고 감사한 일어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그 은혜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해도 부족한 일이었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주님의 은혜를 보답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대접하였습니다.

물론 그 대접하는 정성이 제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어찌 주님의 은혜를 다 갚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시몬은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도무지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예수님을 초대하여 대접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받은 성도의 삶입니다.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원망과 불평에서 감사로 바뀌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말로만의 감사가 아니라 반드시 정성과 희생이 따르는 감사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주님의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있습니까? 그런데 감사한 마음엔 언제나 기쁨과 화평이 깃들게 됩니다. 같은 병을 앓아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치료를 받는 사람이, 감사하지 않고 불평불만을 말하는 사람 보다 훨씬 일찍 퇴원하게 된다는 임상결과가 발표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일 것입니다.

참 신앙인의 가슴 속에는 이러한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덕입니다. 일찌기 로마의 대문호 키케로는 ‘감사의 마음은 최고의 덕일 뿐만 아니라 모든 덕의 어머니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감사한 마음은 모든 덕의 어머니로써 선행과 봉사와 희생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2.마리아는 사랑으로 봉사 하였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붓는 장면을 한폭의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곁에 있어서 예수님을 섬기고 봉사하는 모습은 예수님의 고난과 역경의 생애에 있어서 주님의 큰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주변에는 언제나 여러분들의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들도 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크게 깨닫고 감사하며 섬긴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눅8:3절에 보면 자신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정성껏 섬겼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때도, 예수님께서 못박히셨을 때에도 그 십자가 밑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변치않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예수님 곁에서 봉사한 분들입니다. 그 결과 안식후 첫날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분들 가운데 대표적인 분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은혜에 너무나 감사 감격하여 옥합을 깨뜨려서 향기로운 향유를 온전히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어드렸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보은의 심정과 진정한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봉사는 예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 삼백 데나리온이나 나가는 비싼 향유를 옥합채 깨뜨려서 예수님의 발에 붓게 만들었고, 그 향기는 온 방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랑의 향기는 그때 그방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이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서는 시간과 장소, 인종을 초월하여 아름답게 풍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슈바이처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읍니다. 1960년대 슈바이처가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향했읍니다. 그는 박사 학위만도 정식 학위가 3개이며, 명예박사 학위는 20여 개나 됩니다. 그리고 그는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의 칭호를 받은 귀족입니다.

그는 파리에 내려서 노벨상을 주는 덴마아크를 향해 기차를 타고 갑니다. 슈바이처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하기 위해서 그 기차를 탔읍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1등칸에도 없었습니다. 또 2등칸에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3등칸에 가보니까 가장 가난한 시골 사람들과 같이 나무로 된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있읍니다.

그들 속에 슈바이처가 앉아서 그들의 진맥을 짚어주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슈바이처에게 ‘어떻게 선생님께서 이렇게 남루한 3등칸에서 고생하며 가십니까?’하고 물었읍니다. 그러자 슈바이처가 대답한 유명한 말이 있읍니다. ‘나는 내가 즐길 곳을 찾아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그곳을 찾아다니며 살아왔읍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사는 것뿐입니다.’ 그는 또 언젠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은 성공해야 한다는 이상을 추구할 때가 아니라, 봉사해야한다는 이상을 추구할 때이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남은 여생을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마음으로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섬기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헌신한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이와 같은 삶의 자세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바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섬기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도 마리아와 같은 사랑의 봉사자가 되어 예수님을 온전히 섬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물질의 옥합과, 시간의 옥합과, 인격의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온전한 향기로 드려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가롯 유다는 입설로만 하는 봉사하였습니다.

유다는 유대의 남방 가롯이란 땅의 사람인데 그는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녔으므로 회계의 귀한 직분까지 맡게 되었지만, 그는 믿음에 있어서는 인정받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스승인 예수님을 은30에 팔기까지 한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그런 가롯 유다였기에 그는 마리아가 옥합을 깨어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는 것을 보고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안느냐?’고 추궁하였습니다.

유다는 타산적인 성격의 사람이었기에 진정한 사랑의 발로로 드리는 것에 까지 금전적인 계산을 끌어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라고하는 것은 ‘계산할 수도 없고, 갚을 수도 없는 빚’을 말합니다. 세상의 물질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계산이 앞선다는 것은 은혜를 받지 못했던가 혹은 받았지만 아직도 그 은혜를 깨닫지 못했든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감사에는 환경과 여건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하는 봉사는 환경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저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합당한 감사와 봉사의 자세입니다.

가롯 유다가 말하는 소리를 한번 들어보세요. 얼핏 생각하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의 소리로 그러듯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그의 속셈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향유를 팔아서 돈으로 자기 수중에 들어오면 그것을 슬쩍 도적질 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성경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더욱 중요한 것은 주님께 정성과 사랑을 우선 드리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마리아의 봉사에 대하여 비난했습니다.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나을 것이라고 예수님께 은근히 항의를 하였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들으세요. 충성스러운 일군이나 진정한 봉사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했으면 했지, 다른 사람의 봉사에 대해서 이렇궁, 저렇궁 비판하지 않습니다.

가롯 유다는 지금 주님을 위해서 감사하는 마음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하는체 하는 자였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봉사자가 아니라, 주님을 팔 기회를 찾는 간교한 자요, 다른 사람이 하는 봉사까지 막고 다니는 자입니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잘 하는 사람까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이었습니다. 자신도 안하고, 남도 못하게 하는 자입니다.

자신이 못하겠으면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다른 사람들을 끔찍이나 생각해주는 것 처럼...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고 불평이 많은 자가 바로 가롯 유다입니다.

오늘도 교회 안에는 언제나 가롯 유다와 같은 자들이 있어서 자신도 안하고, 다른 사람도 못하게하는 사탄의 역사가 언제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봉사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의 감사생활과 봉사생활에 대하여 염려할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만 염려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갚을 길없는 영생의 크고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 크고 놀라운 은혜를 받고도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진정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위하여 뭔가를 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척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감사와 사랑의 봉사입니다. 시몬처럼 감사하므로 봉사하며, 마리아처럼 사랑과 희생의 봉사를 드리는 자만이 은혜를 받은 자요, 참으로 복있는 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은혜 받은 자로써 마땅히 감사와 사랑의 봉사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감사가 없는 봉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무에 불과한 것입니다. 노예가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봉사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없는 봉사는 진정한 봉사라고 말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봉사는 감사가 있는 봉사입니다. 매우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문다면 주고 받는 것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봉사입니다. 이것은 영원하고 불변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봉사야 말로 자신에게는 복이요, 받는 자에게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봉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몬과 같이, 그리고 마리아와 같이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므로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몸된 교회를 위해서 우리의 몸과 물질과 시간과 우리의 재능을 드려 봉사할 때에, 우리 주님께서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위해서 적은 것이라도 봉사할 때에 또한 우리 주님께서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골3:23-24절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나 혹은 교회 밖에서 봉사 할 때에는 언제나 주께하듯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봉사를 우리 주님께서 기뻐 받으실 것입니다.

(예).어떤 40대 아주머니가 정신과 의사에게 말했다. ‘저는 요즘 이상하게도 일손이 잡히지가 않습니다. 집에 있으면 나가고 싶고 나가면 들어오고 싶고, 앉으면 서고 싶고 서면 앉고 싶고, 울고 싶다가 웃고 싶고, 내 마음 내가 몰라서 야단입니다. 어쩌면좋지요?’

이 말을 들은 의사가 말했다. ‘그것은 갱년기 증세인데 아무 병도 아닙니다. 일거리가 없어서 허전해서 그렇습니다. 일거리를 만드세요.’,‘아무병도 아니라고요? 일거리가 있면 낳는다고요?’,‘예, 그 이름을 굳이 붙이자면 안절부절병입니다.

아마 교회에나가시는가 본데 봉사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으시나보지요?’,‘예. 교회에 나가서 믿기만하면 되지, 굳이 뭐 봉사니, 심방이니 하면서 돌아다닙니까? 그런 것이 뭐 신앙입니까? 조용히 믿어야 지요’

‘그것 보세요. 아뭇소리마시고 이제 안벌부절 병을 고치려면 교회에 가서 일을 달라고 해서 열심히 봉사하세요. 교회에는 당신이 필요로 하는 일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봉사하면 즐거움이 절로 날 것입니다. 나한테 오지말고 당신네 교회 목사님에게 가서 상담하시요’하고 그 환자를 보냈습니다. 그 후에 그 신자는 열심히 교회봉사를 하며 즐겁 그리고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봉사할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나가면 끝납니다. 그러므로 밤이 오기전에 오늘이 나의 마지막 처럼 생각하고 힘써야할 것이 바로 봉사하는 사람의 지혜로운 자세입니다.

요9:4절에 보면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무한정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지 모르며, 언제 나의 생명이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저와 여러분은 깨어 경성해야 합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부터 우리는 구체적으로 주님을 위한, 은혜에 감사하는 참된 감사와 사랑의 봉사를 시작해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봉사자들이 되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잘했다 칭찬과 상급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