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주님 만날 날을 준비하는 삶 / 딤전 4:7-18/ 벧후서3:

열려라 에바다 2011. 10. 31. 15:31

주님 만날 날을 준비하는 삶 / 딤전 4:7-18/ 벧후서3:
딤전 4:7-18 /벧후서3
주님 만날 날을 준비하는 삶

며칠 전 가까운 친구 목사님 어머님 병원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위독해 지셔서 일차 심방 후 두 번째였습니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평안히 천국 가실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 모두 이제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차분하게 그 날을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어머님이 마지막 유언을 하셨는데 너무 놀랍고도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어머님 유언이 한 마디 “예수 잘 믿으라”는 것이었답니다. 이 어머님은 목사님 때문에 예수 믿게 된 분이시고 어떻게 보면 오랜 세월 아들의 영적 지도를 받아온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런 아들 목사에게 예수 잘 믿으라고 유언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늘 자기가 어머님께 예수 잘 믿으시라고 권면했는데 이번에는 어머님이 자기 보고 예수 잘 믿으라고 하셔서 놀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 가운데 굳게 서서 천국 갈 날을 준비하고 계셔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이 어머님은 지금 주님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면서 돌아보니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믿음뿐이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예수 잘 믿으라”고 유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은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한 번은 꼭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 만남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축복의 만남이 될 것이지만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만남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이고, 앞으로 반드시 이루어질 주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의 삶과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의 삶이 다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만남을 준비하며 살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전혀 그 만남을 준비하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더라도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각만 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준비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은 그 만남이 조만 간에 이루어질 것으로 믿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그 날이 막연하고 먼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날은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때 도적처럼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지금이 그 날을 준비할 때라는 점입니다. 지금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중에도 준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한 번은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날을 잘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 사도가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쓴 두 번째 편지의 결론 부분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해 본다면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맞을 준비를 잘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선 본문은 14절에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앞에서 말한 내용과 이제 말하려고 하는 말이 인과관계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그러면 앞에서 말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13절에서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했습니다. 장차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 이후에 우리가 들어가게 될 저 천국을 소망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우리 성도들은 장차 주님과의 만남과 그 이후 우리가 들어가게 될 저 천국을 소망하므로”라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본문은 14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편지를 읽는 성도들도 역시 주님과의 만남과 저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들임을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을 다시 확인하고 있을까요?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께서 정말 자기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재림하실 줄로 믿었습니다.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고 신앙생활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지연되니까 주님의 재림 자체를 믿는 믿음조차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비록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더라도 반드시 그날은 올 것이고 성도들은 깨어서 그날을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우리에게도 같은 약속으로 남겨져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은 언제인지 모릅니다. 그날이 오늘일 수도 있고 내일 일수도 있고 우리가 죽고 난 후 일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언젠가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고, 그 후에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반드시 직접 만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삼성그룹은 이제 한국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세계 일류 기업이 되었습니다. 세계의 주요 경제지들이 삼성의 경영전략을 앞을 다투어 조사 보도하고 있습니다. 전자 업계의 부동의 1위를 고수해 오던 일본의 소니가 손을 들었고 삼성을 배우겠다고 삼성과 본격적인 경쟁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재벌 체제 때문에, 족벌 경영 때문에, 재벌 총수 1인 중심 경영 때문에 삼성은 미래가 없다고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비판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판을 보기 좋게 무산 시키고 이제 세계인들이 한국은 몰라도 삼성은 알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했습니다.

그 원인에 대해 국내외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연구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삼성식 경영비결에 대한 내용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첫 손가락에 꼽는 성공비결은 소위 “준비 경영”이라는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그룹 핵심간부들에게 늘 주문하는 말이 있답니다. “5. 10년 뒤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그래서 그룹 전체는 미래를 내다보고 그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있답니다. 그리고 늘 경고하는 말이 있답니다. “지금 잘 나간다고 자만하지 말라” 그래서 그룹 전체는 늘 위기의식 속에 사로잡혀 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집니다. 5년 뒤 10년 뒤를 내다봐야 합니다. 더 나아가 주님 만날 그날을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날을 바라봐야 하고 천국에 들어갈 그 날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그 날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칫 오늘에 안주하여 준비 없이 그 날을 맞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 만날 그 날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베드로 사도가 오늘 본문에서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선, 성결해야 합니다.

14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여기서 “점도 없이 흠도 없이”라는 말은 구약의 제사 용어에서 따온 말입니다. 레 22:20을 보면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은 하자가 있는 것 결격 사유가 있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 만나기 전에 우리가 주님 앞에 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 그렇습니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점도 없고 흠도 없다는 말은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거룩합니까?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우리에게 점도 많고 흠도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없습니다.

어떤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청부업자 즉 킬러들이 주인공입니다. 한참 잘 나가다가 경찰에 쫓겨서 더 이상 빠져나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두 사람이 마지막 죽기 살기로 싸우기로 하고 자기들끼리 인사를 나눕니다. “우리 지옥에서 만나자!”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점도 많고 흠도 많아서 이 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서게 된다면 우리는 지옥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왕 있는 점과 흠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 점과 흠을 없앨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벧전 1:19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의 피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점과 흠을 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믿음으로 우리의 점과 흠을 고하고 회개하면 우리의 점과 흠은 그야말로 흰 눈처럼 양털처럼 깨끗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흰 눈처럼 양털처럼 깨끗케 씻김을 받고 나면 우리의 심령에 평강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담대하게 기쁘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평강 가운데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어린 양의 보배로운 피로 늘 성결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늘 성결하게 살려고 힘써야 합니다.


다음으로 끝까지 견뎌야 합니다.

15절을 보면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 받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 날을 뒤로 미루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 날이 더디 온다고 해도 그 날이 올 때까지 믿음을 지키며 견뎌야 합니다.


우리 교우 가운데 한 분이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완주를 하셨습니다. 과거에 운동을 했다거나 그렇다고 남다른 운동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참가하기 위해서 오랜 세월 준비한 것도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 분입니다. 조금 준비하고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4시간 정도에 42.195키로를 완주했고, 그것도 걷거나 쉬지 않고 계속 뛰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마라톤 완주의 질이 높았다는 것입니다.

이분이 나름대로 그 비결을 말씀하셨습니다. 완주를 염두에 두고 페이스를 잘 조절했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무리해서 앞으로 달려 나가지 않고 자기가 달릴 수 있는 정도로만 꾸준히 나갔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수분이 고갈되어 근육에 무리가 올 것을 대비해서 계속해서 물을 마셨다는 것입니다. 체력이 고갈될 것을 대비해서 계속 사탕이나 초코렛 같은 것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입니다. 시작도 잘해야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완주를 해야 합니다.

우선 오버하면 안 됩니다. 자기 상황과 형편을 봐 가면서 할 수 있는 수위를 조절해야 합니다. 은혜 받았다고 직장도 그만두고 가정도 뒤로하고 덤벼들면 안 됩니다. 나중에 부작용이 생겨서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도중하차하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올 때가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몇 차례 오게 됩니다. 그 때 낙심하고 무너지면 안 됩니다. 잘 견디고 이겨내야 합니다.

딤전 4:7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사도 바울이 주님 만날 날을 앞두고 제자 디모데에게 자랑스럽게 자기 속내를 털어놓은 말입니다. 우리도 훗날 이렇게 우리 자식들에게 우리 후배들에게 말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자라가야 합니다.

18절에 보면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장차 주님 만날 때 성숙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장차 우리가 주님을 만나게 될 때 처음 그 모습 그대로여서는 안됩니다. 더더욱 처음 그 모습보다 못한 모습이어서는 안됩니다. 훨씬 나아지고 성숙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며칠 전 엉터리 강사가 경찰에 구속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을 족집게 강사라고 내세우면서 한 중학생 학부모에게 접근을 했습니다. 자식을 명문대에 입학시킬 수 있다고 속여서 3년간 3억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성적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이 사람은 대학도 중퇴한 엉터리였고, 그 돈을 받아서 유흥비에 탕진했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키워보니까 자식이 잘 될 수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이런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우리가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바로 그 마음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믿음이 자라고자 하는 우리 열망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믿음이 자라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열망입니다.

여기서 우리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영적으로 철이 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려서는 부모의 마음을 모릅니다. 아는 것이 있다면 그저 자기 안에서 끌어 오르는 욕망뿐입니다. 그래서 떼를 쓰고 자기 욕망만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보다는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렇게 철이 들어가는 것을 성숙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주 곧 구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철이 드는 것이고 이것이 성숙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 만날 때 철이 들어서 주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모습으로 성숙되어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숨 가시고 죽음 없는 날 사모하며 기다리니 내가 그리던 주를 뵈올 때 나의 기쁨 넘치리라” (544/4) 이 가사처럼 주님을 반드시 만날 것입니다. 그 날 기쁨이 넘쳐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