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사이비를 경계하자 / 딛 1:10-16
딛 1:10-16
이단 사이비를 경계하자
얼마 전 중국 상해에 갔을 때 일입니다. 와이탄이라는 곳에 차를 세우고 강변으로 나섰는데 한 청년이 한국말로 “롤렉스있어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개에 10만원”이라 하는 것입니다.
일행 중에 한 분이 가짜인 짝퉁인데 정품은 수백 만원한다는 것입니다. 얼핏 봐도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럴 듯했습니다.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까 더 가까이 와서는 1개에 1만원이라고 하더라구요. 아무 소리하지 않고 차에 타니까 창문에 대고 1만원에 두개라고 하더라구요. 한 분이 말씀하시기를 몇 년 전에 하나 샀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하기도 전에 시계가 섰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짝퉁의 나라입니다. 비즈니스 위크지에 따르면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가짜 상품 짝퉁이 전 세계에서 나돌아 다니는 짝퉁의 60% 이상에 해당하는 3400억 달러어치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비아그라를 만드는 세계적인 제약회사 화이자의 CEO 헨리 맥키널이라는 분이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중국 내의 위조 공장이 우리 본사 공장보다 크다” 이 말은 짝퉁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가짜 짝퉁은 진짜 정품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우선 싼 값으로 정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매출에 타격을 입힙니다. 그리고 저급한 품질로 제품의 이미지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제품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킵니다.
경제계에 짝퉁 문제가 있다면 종교계에는 이단 사이비 문제가 있습니다. 기존 종교에 이단 사이비들이 나타나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 안팎에 이단 사이비가 나타나 개인의 심령에, 개 교회에, 나아가 기독교 전체에 혼란을 야기하고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단 사이비란 무엇인가?
개념적으로 이단과 사이비는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1. 이단이란?
이단이란 한자어 표기로 다를 異에 끝 端을 씁니다. 글자 그대로 한다면 다 같은 데 끝이 다른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같은 기독교인데 무엇인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종파나 교회나 개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Heresy라는 말을 씁니다. 이 말은 헬라어 “하이레시스”에서 온 말입니다. 이 하이레시스는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오늘 본문 바로 뒤 딛 3:10을 보면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이단이라는 말이 이 하이레시스입니다.
이 말의 뜻은 “자력으로 취하다”, “분리를 조장하다”, “불화와 논쟁을 일으키다”입니다. 그러니까 정통 교리를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교리를 만들어내서 분란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분리해 내는 집단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단이란 기독교 안에서 정통 교리를 따르지 않고 자의적으로 교리를 만들어 공동체 안에 혼란을 일으키고 파당을 지어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집단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기독교 이단의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국내에서 생겨난 이단입니다. 대표적으로 구원파를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한참 오대양 사건과 세모 문제로 시끄러웠던 권신찬 계열, 요즘 활동이 활발한 박옥수 계열, 그리고 이요한 계열입니다. 그 외에 기독교 복음선교회의 정명석, 만민중앙교회의 이재록, 베뢰아 아카데미의 김기동, 한국 예루살렘 교회의 이초석 등이 한국교회를 가장 어지럽히는 국내파 이단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외국에서 수입된 이단입니다. 대표적으로 몰몬교라 하는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라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등을 들 수 있습니다.
2. 사이비란?
사이비란 한자어로 같을 似, 말 이을 而, 아닐 非를 씁니다. 글자 그대로 한다면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본질은 완전히 다른 것이거나 가짜를 뜻합니다.
이 말을 기독교에 적용해 보면 사이비 기독교란 기독교와 비슷하지만 기독교가 아닌 종교집단 또는 기독교를 빙자한 유사 종교집단을 말합니다.
이런 사이비 기독교 집단들은 예외 없이 기독교에서 나간 무리들이 세웠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미혹해서 끌고 나갑니다. 전반적인 교리 체계가 기독교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는 기독교의 교리를 부정하거나 비판합니다. 그리고 그 비판 위에서 자기들의 교리를 정당화합니다.
대표적인 사이비 기독교 집단을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통일교 문선명 집단, 전도관이라 일컫던 천부교 박태선 집단, 영생교 조희성 집단, 그 외에 셀 수 없이 많은 군소 기독교 사이비 집단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이단 사이비의 정체를 깨닫게 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마 13:24-30입니다. 흔히 “가라지 비유”라고 부르는 말씀으로 주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인이 정성들여 씨를 뿌리고 밭을 가꾸어 곡식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곡식이 자라고 결실할 때 보니까 거기 가라지도 있더랍니다. 알고 보니 주인이 잠 잘 때 악한 사람들이 몰래 가라지 씨를 뿌리고 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이단 사이비의 정체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성스럽게 가꾸신 밭 곧 교회 안에 알곡인 하나님의 백성들 외에도 가라지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이 몰래 와서 가라지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악한 자들은 사탄 마귀를 말하고 가라지는 곧 이단 사이비를 말합니다.
요 8:4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결국 이단 사이비는 사탄 마귀가 교회 안에 심어놓은 하수인들이요 사탄 마귀의 자식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들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할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단 사이비를 왜 경계해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의 종교를 믿고 따를 수 있고, 누구라도 남의 종교에 대해서 경계하거나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단 사이비를 경계해야 할까요? 그냥 내버려 두거나 잘 설득하고 전도해서 개종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단 사이비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저들이 기독교를 공격하고 교회에 위해를 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이 땅에 교회를 무너뜨리고 성도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이단 사이비의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1. 미혹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바울 사도께서 제자 디도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복종치 않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성도들을 속여서 바른 믿음 가운데 서지 못하도록 미혹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단 사이비이 원조는 저 에덴동산의 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와를 미혹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케 만들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도록 만들었습니다.
오늘도 이 뱀의 후예들이 이단 사이비가 되어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주목할 것은 저들이 자기들 식의 전도의 대상자로 삼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점입니다. 교패가 붙은 집만 골라서 찾아다닙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저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할 특별 훈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교묘한 논리와 현란한 말재주로 성도들의 믿음을 흔듭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단 사이비가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신학교 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예를 들어보면 독일의 신학자 불트만 같은 이들은 ‘오늘과 같이 전기 불을 이용하는 과학시대에 귀신이 존재하는 것을 믿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성경 안에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들을 신화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소위 비신화화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경을 성경이 되지 못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런 자유주의 신학 사조에 많은 신학자들이 동조하고 있고, 수많은 신학생들이 심각한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자유주의 신학 사상, 인본주의적 신학 사조 또한 위장된 이단이요 사이비로서 경계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2. 분열을 조장시킨다는 점입니다.
딤전 6:3-4를 보면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단 사설로 교회에 다툼과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이 있으니 저들을 경계하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오늘도 이단 사이비들은 일단 기성교회를 욕합니다. 기성교회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기성교회 목사들은 엉터리들이고 문제가 많다고 강변합니다. 그런 교회에 있지 말고 나오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라고 지시합니다. 실제로 이단 사이비의 공격을 받은 교회들은 심각하게 분열됩니다. 서로 싸우고 다툽니다. 교회가 분열이 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비판하려는 세력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교회의 잘못과 문제를 지적하고 개혁해 가려는 움직임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판을 위한 비판일 때 그 문제는 심각합니다.
요즘 일부 진보적 기독교 언론 매체들 사이에 기독교 비판은 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치밀한 논리와 그럴듯한 주장으로
건설적 비판이 아니라 파괴적 비판을 일삼고 있습니다. 다 함께 회개하고 창조적 대안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고 마치 유대인들이 죄인에게 돌을 던지듯이 이 시대 기독교인으로서 책임의 연대감과 함께 옷을 찢는 자세를 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온 라인을 통한 기독교 비판이 도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홈 페이지 게시판에 익명으로 특정인을 비방한다든지, 그럴듯한 논리로 교회 지도자들을 음해한다든지 하여 교회의 하나 됨을 해하는 일들이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이 또한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이단 사이비적 경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며 하나를 이루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위배하게 만들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이단 사이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1. 주의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마 24:4-5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이단 사이비의 등장을 예언해 주신 말씀이고, 이를 주의하라고 경계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흔들고 성도들을 미혹하려는 사탄의 세력이 끊임없이 우리를 넘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단 사이비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는 걱정 없어, 나는 능히 이겨낼 수 있어 라고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나와 우리 가정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늘 주의하며 경계를 늦춰서는 안됩니다.
요 1서 4:1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단 사이비가 많으니까 무조건 다 믿지 말고 분별부터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말한다고, 신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무조건 내편이란 생각에 마음을 열어서는 안됩니다. 올바른 영인지, 올바른 신앙인지, 올바른 교리요 주장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말씀 가운데 바로 서야 합니다.
한국 출신으로 미국 장로교회 총회장을 지나신 이승만 목사님께서 취임 감사 예배 때 이런 슬로건을 내 건 일이 있습니다. “Back to the Basic!” 미국 장로교회가 신학적으로 실천적으로 앞서가고 있지만 복음의 본질 곧 성경 말씀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복음의 능력이 약화되고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의 흐름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단 사이비가 횡행하게 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굳게 서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본질을 굳게 붙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 4장에서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시는 장면을 기억합니다. 마귀가 갖은 감언이설로 주님을 미혹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긴 말씀이 없으십니다. 고민이나 주저함이 없으십니다. 아주 단호하게 그리고 간단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이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마귀가 더 이상 어쩔 줄 모르고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 가운데 굳게 서 있으면 이단 사이비가 다가오지 못합니다. 미혹하다가도 어쩔 줄 모르고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Back to the Basic” “말씀으로 돌아가자. 말씀 가운데 굳게 서자”
3. 멀리 해야 합니다.
딛 3:1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우리가 순진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으니까 잘 타이르고 사랑으로 돌보면서 가까이 하여 변화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들은 일단 사탄에게 붙잡힌 자들입니다. 우리의 말로 우리의 노력으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능력으로 역사하실 때문 바뀔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들과 대적할 능력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저들과 가까이 할 때 우리에게 피해가 너무 큽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큰 피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멀리해야 합니다.
이단 사이비가 다가올 때 이단 사이비라고 분별이 되면 토론하거나 논쟁하지 마십시오. 먼저 타이르십시오. 물론 선선히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 하십시오. 그리고 저들의 불쌍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단 사이비를 경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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