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지혜롭게 사는 길 / 왕상3:16-28

열려라 에바다 2011. 10. 31. 15:33

지혜롭게 사는 길 / 왕상3:16-28
왕상3:16-28
지혜롭게 사는 길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알고 있음직한 이야기입니다.

소위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 이야기’입니다. 한 여인이 솔로몬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자기가 아이를 낳고 삼일 뒤에 또 다른 여인이 아이를 낳아서 한 집에서 두 산모와 두 아이가 살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다른 여인이 잠을 자다가 잘못해서 아이가 죽게 되었답니다. 그 여인이 밤에 몰래 죽은 아이와 자기 아이를 바꿔치기 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아이를 달라고 청했더니 그 여인이 자기 아이를 그 여인의 아이라고 잡아떼더랍니다.

문제는 그 집에 이 두 여인 밖에 없어서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이 이 문제에 해결책을 내놓았습니다.

칼로 산 아이를 반으로 잘라서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진짜 엄마는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자기가 포기할 테니 그 아이를 그 여인에게 주고 아이를 죽이지만은 말아달라고 청을 하더랍니다.

다른 여인은 그렇게라도 해서 내 것도 저 사람의 것도 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더랍니다. 솔로몬이 죽이지 말아달라고 청한 여인이 진짜 엄마이니까 그 여인에게 아이를 주라고 판결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지혜의 힘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도 이런 지혜를 가지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솔로몬처럼 지혜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인생을 지혜롭게 살 수 있을까요? 본문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1. 지혜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약성경 열왕기는 솔로몬의 통치 이야기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특히 1-10장까지는 솔로몬의 성공적인 왕으로서의 사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의 3장은 1-2장과 4-10장을 연결지어주고 있습니다.

1-2장은 솔로몬이 다윗 왕의 후계자로 결정되고 후계 작업이 견고하게 이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2:46을 보면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고 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이 성공적으로 후계 작업을 마무리하고 왕권을 든든하게 장악했다는 이야기입니다.

4-10장은 솔로몬의 왕으로서 성공적인 통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선 정권교체를 부작용 없이 잘 마무리했고, 성전도 지어서 봉헌하면서 백성들을 신앙 중심으로 통합함으로써 내치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외국과의 교역을 활발히 전개하고 국제적인 위상도 높임으로써 외치에도 성공하게 됩니다.

이렇게 4-10장을 읽어보면 솔로몬이 왕으로서 성공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3장을 살펴보겠습니다.

3장은 단적으로 솔로몬이 어떻게 왕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지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로부터 남다른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3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솔로몬이 어떻게 지혜를 얻게 되었는가를 설명합니다.

3장 앞부분을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이야기가 나옵니다. 3:5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나님께서 일천번제를 받으시고 너무 기쁘셔서 솔로몬에게 선물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9를 보면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청을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지혜도 얻을 뿐 아니라 그 위에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일찌기 지혜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일 먼저 지혜를 구했습니다. 잠 3:13절 이하를 보면 솔로몬이 이런 잠언을 남겼습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희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자녀들이 무엇보다도 지혜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혜가 무엇이기에 그렇게도 소중한 것일까요? 왜 우리에게 지혜가 있어야 할까요? 이 답을 찾으려면 먼저 지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느 공장에서 기계가 고장이 나서 모든 작업이 중단이 되었습니다. 공장 내부의 전문가들이 아무리 살펴도 원인도 모르겠고 해결책은 더더욱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부 기술자를 불렀습니다.

이 사람이 기계를 살펴보더니 어느 한 곳을 망치로 몇 번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기계가 곧 작동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술자가 수리비로 100만원을 청구했습니다. 공장장이 화가 났습니다.

망치 한번 두드린 것으로 그렇게 큰 돈을 요구하느냐는 것입니다. 기술자가 내역서를 제시했습니다. “망치로 기계를 두드린 수고비 1만원, 어디를 쳐야 할지를 발견한 통찰비 99만원” 그렇습니다. 지혜란 사물을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세상의 원리와 인생의 이치를 꿰뚫어보고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흔히 지혜는 지식과 구분합니다.

지식이 단순히 아는 것이라면 지혜는 깨닫는 것입니다. 지식이 이론적인 앎이라면 지혜는 실천적인 깨달음입니다. 지식이 머리의 작용이라면 지혜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지식은 안다고 표현하지만 지혜는 믿는다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볼 때 머리가 좋다고 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지식을 많은 얻을 수는 있습니다. 마음이 밝아야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깨우쳐야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가 없으면 어리석게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올바른 길을 찾아 그 길로 나가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올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인생을 헤매게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도 행복하고 남들도 행복하게 해 주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도 불행하고 남들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혜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2.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지혜가 이렇게 소중하다면 어떻게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솔로몬은 3:9에서 “지혜의 마음을 종에게 주사”라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12절에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고,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약 1:5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권면입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구하는 지혜를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 12:7-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지혜를 성령의 은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성령이 임하실 때 나타나는 첫 번째 은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혜를 얻으려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밝히셔서 지혜를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금 두 여인이 다투고 있습니다. 서로 아이가 자기의 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과 거짓을 판가름할 아무런 단서도 없습니다. 또한 어떤 증인도 없습니다. 아무리 연구해 봐도 답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도 해결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도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어미의 불붙는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마음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셔서 마음의 눈을 열어주실 때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하나님께 구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 8장을 보면 주님을 함정에 빠뜨려 체포할 구실을 찾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주님 앞에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 명했는데 주님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만일 돌로 치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용서를 가르치신 주님의 가르침과 위배되는 것입니다. 또한 돌로 치지 말라고 한다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대답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입니다. 주님께서 대꾸를 하지 않으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글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저희들이 땅에 쓰신 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고 다 도망쳤습니다. 바로 이것이 지혜입니다. 주님은 저들이 제기한 문제 그 너머를 보셨습니다.

저들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답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지혜는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솔로몬에게 주신 그런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지혜로 지혜롭게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3. 지혜를 올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목적이 나옵니다. 3:7-8을 보면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니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한 마디로 주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약 4:3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구함이니라” 이 말씀은 지혜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내 개인적인 욕심으로 지혜를 구한다면 지혜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쓰려고 구하려 해야 지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고전 12:4-7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한 마디로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교회를 유익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첫째로 꼽히는 지혜의 은사를 주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덕을 세우고 공동체의 유익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혜를 올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받은 바 지혜를 사용하게 되면 그 지혜는 점점 소멸해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이 욕심에 어두워져서 받은바 지혜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김형석 교수의 수필 가운데 “수학이 모르는 지혜”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옛날 아라비아의 한 상인이 임종을 맞으면서 세 아들에게 유언을 했답니다. “내가 남길 재산이라고는 말 17필이 전부이다. 이것을 첫째가 절반, 둘째가 1/3, 그리고 막내는 1/9로 나누어 가지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세 아들의 싸움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첫째의 몫은 8필은 넘고 9필은 부족하고, 둘째 몫은 5필은 넘고 6필은 부족하고, 그리고 막내는 1필는 넘고 2필은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서로 조금 더 가지려고 싸움을 했고 해결이 나지 않았습니다. 세 아들은 마침 지나던 한 목사님께 방법을 구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자초지종을 다 듣고는 자기가 타고 가던 말을 주었습니다. 그 말을 포함해서 서로 가지고 싶은 만큼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9마리를 , 둘째는 6마리를, 그리고 셋째는 2마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외양간에는 이 목사님이 타고 온 말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문제를 풀어주고 또 자기가 타고 가던 말을 그대로 타고 갈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지혜자의 바람직한 태도가 나타납니다.

지혜는 자기의 말을 내어놓는 마음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그 댓가를 얻으려고 지혜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정 그들을 곤경에서 구해 주려는 마음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가 보면 3:14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아지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뒤에 덧붙여주신 책임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를 받은 사람들은 그 지혜를 하나님의 뜻대로 활용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자기의 뜻을 따라 사리사욕에 따라 써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왕상 4:34을 보면 인상적인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민족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천하의 모든 나라가 다 그의 지혜의 혜택을 누리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지혜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이 내게 주신 지혜로 인해 모두가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어리석게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지혜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를 주께 구해야 합니다. 나아가 받은바 지혜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