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시34:3-5]여호와께 구하매 응답하시고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열려라 에바다 2022. 6. 14. 10:01

34편 3절-5절: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3절: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누구와 함께? 궁극교회 교인들과 함께. 진리를 따르면서 주님을 믿는 성도들과 함께. 신령천국에 올라갈 성도들과 함께.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광대’란 넓고 큰 것을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그 계획과 그 진행과 그 목적이, 그리고 그 분의 뜻이 얼마나 높고 크시고 고상하고 위대한 것인지 인간의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다윗의 간증을 들었는데, 다윗이 미친 체를 해서 구원을 얻었다. 비상수단을 써서 구원을 얻은 다윗의 간증을 듣고 영적인 면에서 곤고를 당하다가 탈출을 하여 구원을 체험한 자들은 다윗과 함께 이구동성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된다.

 

우리가 이웃사람들의 얘기나 친구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서 도망을 했다’ 그러면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즐거워서 ‘참 잘 했다’ 이러는 걸 볼 수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가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 틈에 살 때 일가친척이나 형제들이 ‘제사를 지내자. 추도식으로 하자’ 라고 한다거나, 아니면 ‘주일날 놀러 가자’ 라고 할 때 어떤 방법으로건 꾀를 써서 거기에서 나왔다고 자기의 경험을 말을 하면 그 말을 듣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잘 나왔다’ 라고 하느냐, ‘그들을 따라가지 왜 나왔느냐?’ 라고 하느냐? 잘 나왔다고 한다.

 

자기 집 어른들이 주일날 다 놀러 가는데 주일학교에 다니는 어린학생이 ‘나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고서 교회로 나왔다고 하면 교인들이 그 아이를 어떻게 보겠느냐? ‘이놈아, 왜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느냐?’ 라고 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들어 쓰시기 위한 역사를 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가겠느냐?

 

옛 속담에 크게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한다.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신앙 면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리가 들어간 교육의 살이 얼마나 붙었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장래를 가늠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부모들이 이걸 느끼느냐? 주일날 교회에 나가는 대신 학원에 공부하라고 보낸다면 그 아이나 그 부모나 앞날이 빤한 거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은 다 불에 타느냐? 타는 게 확실하냐? 결국은 다 탄다. 하나님은 뒷전으로 하고 불에 타질 세상의 명예 영광을 얻은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거다. 사망 아래 있는 것은 아무리 잘 돼봐야 죽은 것밖에 없다.

 

다윗이 미친 척 하며 비상수단을 쓴 것이 인간들이 보기에는 우스운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을 건져내시더라. 하나님께서 그 다윗에게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거다.

 

4절: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인간이 왜 두려워하느냐? 왜 두려움이 오느냐? 일반적으로 보면 사람이 병이 들면 두려움이 온다. ‘이 병을 앓다가 일어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이런 두려움이 온다. 사람이 병이 들면 두려움이 오고, 죽는 것도 두려움이 오고, 죽는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면 두려움이 오고, 가난해져도 두려움이 오고, 뿐만 아니라 갑자기 돈이 많이 생겨도 두려움이 온다. 갑자기 돈이 많이 생기는데 왜 두려움이 오는 거냐? 자기 몸에 칼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작은 돈이라도 가지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이 돈을 뺏으려 하면 자기 얼굴이 드러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돈을 뺏어가는 일도 있는데 많은 돈을 뺏어갈 때 안 죽이겠느냐?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경우는 어떤 때 두려움이 오느냐? 세상 사람들과 같은 두려움이라면 이건 사람이 바꿔지지 않았다. 옳은 신앙이 아니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문제에 두려움이 오느냐? 옳은 진리신앙을 잡고 사는데 환난 핍박이 오면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된다. 그 다음에 더 두려운 것은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는 것이 참으로 두려운 거다. 그 다음에 더 두렵고 떨리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떨어지는 것. 맑은 하늘에 벼락불이 떨어지듯이 하나님의 심판이 떨어지면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언제 죽어나갈지 모른다.

 

그 다음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두려운 일이다. 성경에 ‘군대가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들랑 산으로 도망가라’고 했는데, 이는 옳은 말씀을 받지 못하도록 세상의 세력들이 내 주위를 에워 쌀 때는 도의 봉우리, 말씀의 봉우리로 올라가라는 거다. 눈으로 보이는 전쟁의 소식이 들리는 것은 일반 자연계시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라는 거다. 그래서 눈에 보이게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고, 전쟁이 있고, 나라와 나라끼리 싸우고 할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 사상적 신앙 면의 그런 상태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교회끼리도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거다. 교회를 보라고 그런 걸 보여주는 거다.

 

온 지구상 어느 곳이건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 지진이 일어나면 과학자들은 ‘지반이 어떻고’ 하겠지만 하나님은 과학자들의 머리에 따르지 않는다. 하나님의 역사는 성도의 구원을 위해 있는 거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보고 영적인 면을 깨달아야 하는 거다.

 

일본에 지진이 참 많은데,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배 무역이 많다. 바다를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려다 보면 위험한 일이 많기 때문에 일본에는 여러 가지 우상이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은 땅이 아주 넓은데, 워낙 땅이 넓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만한 어느 한 지역이 물에 잠겼다든지 꺼져 내렸다고 해도 꿈쩍도 안 한다. 믿는 우리는 이런 걸 보고 신앙적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

 

자기 몸 밖의 환경 조건을 눈으로 보고 듣고 이로 인해 마음이 두려운 경우도 있고, 그런가 하면 외부환경은 평화롭고 좋은데 자기 자체 속에서 스스로 두려움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자연목숨에 관한 두려움이 있고, 신앙 면에 문제가 있을 때 오는 신앙적인 두려움이 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갈 때 외부로부터 풍랑이 왔다. 말하자면 여러 가지 환난 핍박 박해의 사건이 왔다 그 말이다. 고통스런 일들이 왔다 그 말이다. 그래서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그 풍랑 파도 위를 걸어서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에 같이 타셨는데, 예수님이 배에 탄 후에도 열두 제자들이 여전히 벌벌 떨었을까, 아니면 ‘이제는 염려 없다. 아무렴 풍랑 파도가 예수님을 집어 삼키랴. 예수님과 함께 있는 우리들을 집어 삼키랴’ 라고 했을까? 후자다. 그러다 보니 언제 닿았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니까 외부의 풍랑 파도를 느끼지 못했다 그 말이다.

 

이게 뭘 말해주느냐? 외부에서는 여전히 두려움을 주고 있지만 예수님을 의지해서 마음이 평안해지니까 그 평안한 마음이 외부에서 주는 두려움을 삼켜버린 거다. 몸 밖의 사건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 사건을 보고 있는 내 속에 두려움이 없어진다면 몸 밖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들은 자기 몸 밖에 있는 일들을 보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자기가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의 손에 달린 거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자기 몸 밖에 사건이 오면 ‘그것으로 인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는지, 안 끊어지는지’ 하며 신앙 면으로 그 사건을 보지 않고 자기 육신의 안위를 생각하며 두려워한다면 이게 얼마나 위험한 신앙이냐?

 

다윗의 경우는 외부로부터 오는 곤고에 처했을 때 신앙 면에 대해 건짐을 받고 싶어서 여호와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러면 다윗의 이 기도가 ‘내가 이때까지는 잘못 믿어왔지만 앞으로는 잘 믿을 테니 내 주위의 악한 조건들을 다 없이 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를 한 거냐? 그리고 그런 기도를 하니까 응답이 온 거냐? 이런 기도는 잘못된 거다.

 

하나님의 주권 면으로 볼 때 믿는 우리들에게 오는 외부의 모든 조건들은 성도의 신앙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된, 허용된 사건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가운데서 깨달아서 바로 서 나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하는 여기에는 자기 생명을 내놔야 한다.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자기가 바로만 서면 그 다음에 몸 밖의 사건 환경은 하나님이 알아서 좌우지하는 거다. 그런데 자기가 바로 서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자기에게 있는 문제는 불 줄 모른 채 몸 밖의 일이 자기 뜻대로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한다면 이건 잘못된 거다. 자기 몸 밖의 악한 조건들을 자기 좋도록 바꿔달라고 기도를 하는 것은 이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면 자기 내부에서 두려움이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사람의 마음을 두렵게 하는 것이 외부에서 되어진 조건들로 인해서일 수도 있고, 또 사건은 두려워할 사건이 아닌데도 정신 사상적으로 자기의 마음이 약해서 별 것 아닌 것에 두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그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게 더 무서운 거다. 다윗의 경우에 눈에 보이는 사건보다 자기의 마음을 뺏어가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임을 알고 그런 속에서 두려운 마음이 없어지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한 거다.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할 때는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어린애들이 밤에 혼자 있으면 무섭다. 이 때 누구를 찾느냐? 엄마 아빠를 찾는다. 엄마를 찾아서 엄마 품속에 안겨 있으면 하나도 안 무섭다. 우리도 그럴 때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되겠고, 하나님을 찾았으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을 들어야 이치를 알고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말씀을 찾았느냐? 그 다음에는 참 지혜를 구하고, 참 지혜를 구했으면 판단 분별 분석이 되니까 순종을 해야 한다.

 

순종하는 여기에는 자기의 목숨은 하나님께 속했으니까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물질에 대한 손익을 따지지 말고 하나님 앞에 바로 하되 영의 일이 잘 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신앙 믿음이 잘 되는 쪽으로 나갈 것. 나가면서 부지런하게 살아라. 사람이 깨달아지면 부지런해지고 영리해지고 영특해지고, 이러면 사방이 자기의 구원거리임을 알게 되니 부지런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니까 게으른 사람은 아직 구원을 모르는구나. 전도를 안 하는 사람은 자기의 면류관이 상대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거다.

 

5절: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사람이란 자기가 어떤 사람이 좋아서 그 사람을 따라다니면 그 사람을 닮기 마련이다. 담배 피우는 사람을 따라다니면 담배 피우는 게 닮아진다. 화투치는 사람을 따라다니면 화투치는 것이 배워진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앙망하고 따라다니면 주님께서 교훈으로 깨닫게 하시고, 이적 기사로 깨닫게 하시고, 만물을 보고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을 하시기 때문에 사람이 광채를 입는다. 광채를 입으면 사람이 빛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사람이 빛이 난다는 게 뭐냐? 그 사람의 인격 면에, 말 생각 활동이 모든 사람의 본이 되는 걸 말한다. 이런 사람의 인격이 얼마나 고상한지 빛이 나기 시작한다. 성도의 경우 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다.

 

모세가 하나님을 앙망해서 호렙산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난 후 내려오니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 이것은 우리에게 계시적으로 보여주시는 임시성적인 광채다. 모세의 얼굴에 빛이 날 때 이 모세를 신격화할까 시킬까 싶어서 그걸 가려버렸다. 그러니까 영원히 빛날 광채는 따로 있다는 거다. 그런데 어떤 기독자들은 이것을 모르고 어떤 신비로운 체험을 해서 자기의 얼굴을 신처럼 나타내려고 한다. 신비적인 체험을 하기 위해 밥을 굶고 잠도 안 자며 밤새도록 기도를 하기도 한다. 이건 마귀가 쓰인 거다.

 

이방 종교인들은 자기의 어떤 고행에서 얻어진 것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신처럼 나타내려고 한다. 이를 위해 이방 종교인들이 산꼭대기에 가서 도를 닦는 것과, 세상 속화된 타락된 기독교인들이 40일 금식기도를 해서 무슨 신비로운 체험을 하겠다고 하는 것과 다른 게 뭐냐? 자기의 얼굴을 신처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다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데서 나온 발상들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