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주일설교. 끝까지 사랑 하시니라 /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요 13장 21-30절)

열려라 에바다 2022. 8. 22. 09:29

주일설교. 끝까지 사랑 하시니라 /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요 13장 21-30절)김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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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은 사랑을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랑의 본체이신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날 밤에는 최후의 만찬이 있었습니다. 만찬을 나누실 때에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요?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 조차 괴로운 시간이셨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을 다 아시고도 너무나 의연하게 행동하셨습니다.


13장 1절을 보시겠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아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라는 말씀이 참으로 인상적이고 눈물이 나는 구절입니다. 잡히시기 전 감람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면서 죽음에 대한 인간적인 두려움과 고뇌의 모습을 보이신 것과는 다르게, 제자들과 함께 하는 최후의 만찬장에서는 그러한 일체의 마음의 고심을 드러내시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보여 주시기 위해서 제자들의 더럽고 냄새 나는 발을 손수 씻어 주셨습니다. 발을 씻어준다는 의미는 다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지닌 가장 더럽고 추한 죄의 모습들을 깨끗이 씻어 주시고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너희들도 나와 같이 세상에 나아가 이렇게 행할 수 있도록 주와 선생으로 불리는 내가 먼저 모범을 보여 주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에는 너희들이 앞으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에는 이토록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죄를 다시는 짓지 말라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세족식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21절, 22절을 읽어 드립니다. “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아멘.


예수님이 “진실로 진실로” 심령이 괴로울 정도로 꺼내기 힘드셨던 그 실체는, 바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자신을 배반할 자를 미리 아시고, 그런 자가 있다는 것을 공표 하시기까지 얼마나 심적인 고통이 있었는지 우리로써는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면서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서 철저하고도 계획적인 배신을 당해서 몸과 마음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피폐함을 겪는 일이 생긴다면, 그 감정은 그냥 죽고 싶은 마음 뿐일 겁니다.


차라리 모르고 당하는 편이 낫지, 가족이나 친구나 지인 중에 나를 배신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다 알게 되었다면, 그 때부터는 마음이 썩어 들어가고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그저 생병 앓이를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배신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요한복음 6장 70절에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라고 간접적인 언급을 하신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나를 팔 사람이 너희 중에 있다”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라는 단어(헬, 프뉴마티)는 영혼과 같은 말이며, 괴롭다는 단어는 개역 개정에서는 ‘민망하다’라고 번역 되었는데, 평정심을 잃어버리도록 마음 속을 휘저어 놓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면서 육체적인 마음의 괴로움 뿐만 아니라 영혼이 요동칠 정도로 큰 파장을 겪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손도 부들거리면서, 이빨을 꽉 다물면서, 분노의 눈빛으로 쏘아 보면서 말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만큼 돈받고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일은 정말 충격적인 대 사건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청천병력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두리번 거렸습니다.


이어지는 23, 24절을 읽어 드립니다 “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아멘.


여기서 주목하여 볼 것은 이런 급박하고 긴장된 상황에서도 예수님 품에 평안하게 누워 있는 제자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 누워 있던 제자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고 콕 집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품에 누워 있던 이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입니다. 어떻게 요한은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의 품에 누워 있게 되었을까요?


고대 유대인들의 식사 예절은 오른팔이나 왼팔을 식탁에 걸친 채 반쯤 누워서 음식을 먹는 것이 예법이었습니다. 상체는 식탁 쪽으로 향하고 하체는 바깥으로 뻗은 상태가 식사 자세였습니다. 예수님 시대를 다룬 영화들을 보면 예수님이 나, 헤롯왕이나, 유대인 지도자들도 다 이렇게 식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런 자세로 옆으로 누울 때 예수님 곁에 가까이 붙어 있으면 거의 품 안에 안기는 모양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예수님 신체와 맞닿아서 접촉할 정도로 가까이 몸을 기대는 것은 감히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요한의 의지만 가지고 되는 것도 아니라, 예수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 자세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자라고 스스로 말했지만, 다른 제자들도 이에 동의 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어느 누구도 이렇게 말하는 것에 반감을 갖거나 질투심을 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정말로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안길 정도로 사랑을 받았던 제자 였음이 맞는 듯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품에 누워 있던 요한에게, 예수님을 팔 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라고 재촉합니다. 본인이 물어보면 될 것을 왜 요한에게 물어보라고 했는지 짐작이 됩니다. 그만큼 지금의 분위기가 무겁고 말을 건네기조차 힘들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느 누구도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는 그 말씀의 위압감에 눌려서 감히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요청을 받은 요한이 예수님에게 대화를 시도 합니다. 25절과 26절 중간 부분까지 읽어 드립니다. “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아멘


그(요한)가 예수의 가슴(품)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질문)하였다는 대목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예수님의 품에 누워 있던 그 자세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 눈을 마주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요한의 심리상태가 얼마나 고요하고 침착했었는지 그 깊이가 조금이나마 느껴집니다. 정말로 예수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의 두려움이나, 근심이나, 불안함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요한은, “주여 누구니이까” 간결하며, 단도 직입적으로 질문합니다. 진짜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이라면, 어떤 대화를 하든 서론이 필요 없고, 주저할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그냥 편하게 질문을 던지는 요한의 모습이 점점 부러워 집니다. 물론 예수님을 팔자가 누구인가 이런 말 자체를 입에 담기 싫어하면서 최대한 간결하게 질문을 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답 하십니다.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누구를 지목하여 말씀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공동 식사 자리에서서는 주최자(상석자)가 떡을 떼어서 발효시킨 포도즙에 적신 후에 대접을 잘해 주고 싶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 떡을 받은 사람은 주인이 여러모로 좋게 평가하면서 감사하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떡을 찍어 나누어 주실 때 다른 제자들은 그 행동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자기를 팔아 넘길 자인지를 공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팔 자가 흥분한 나머지 떡을 나누어 주는 행동을 물리적으로 막아서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시려는 차분한 의도 였습니다.


예수님이 떡을 주신 행동과 가룟 유다의 반응을 살펴 보겠습니다. 26절 후반부에서 29절 까지의 말씀입니다. “~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아멘


떡 한조각을 적셔서 가룟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이 때 가룟 유다의 심리 상태나, 표정 등이 전혀 언급이 나오지 않고 옆에 있던 다른 제자들의 추측하는 말들만 나옵니다. 떡을 건네 받은 유다의 표정은 어떠 했을까요? 아마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받을 때 유다에게 고정된 예수님의 시선을 맞받지 못하고 시선을 떨군채 간신히 떡만 받았을 거라 상상해 봅니다.


유다는 자신이 은 30을 받고 예수님을 팔려는 자임이 동료들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태연한 척 해야만 했습니다. 철저하게 위선적인 표정과 행동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보이지 않는 마음은 산이 무너지고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나는 것 같은 격동이 멈추지 않았을 겁니다. 떡을 받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간신히 참았을 겁니다.


유다의 이러한 가식과 위선의 모습이 철저하게 사탄의 모습과 똑 같습니다. 사탄(마귀, 귀신)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끝장입니다. 퇴마 영화에서도 사탄, 마귀, 귀신들이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고 거울 등에 자신의 정체가 보여지면 그의 활동은 정지당하고, 멀리 쫓겨 가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에 사로잡힌 유다는 자신의 이름과 정체가 드러날까봐 의로운 척, 정직한 척, 담담한 척, 온갖 척을 하면서 예수님의 떡을 받았습니다.


유다는 그렇다 치고 사랑의 본체이신 예수님의 행동은 너무나도 호의적입니다. 그냥 이름을 확 드러내시지 아니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떡을 건네셨습니다. 예수님이 건네신 그 떡은 수치를 가려 주는 떡이며, 마지막 기회를 주는 회개의 떡이며,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자비의 떡입니다.


그 떡을 받고 유다가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자신의 죄를 낱낱이 고백했더라면 당연히 그는 용서함 받았을 겁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사랑의 떡을 건네 주신 것입니다. 배신 하고, 팔아 넘기려는 자에게 까지 끝까지 사랑하여 주시는 우리 주님의 참 사랑이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말씀 하셨습니다. 유다도 예수님이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사탄이 들어간지라”는 말씀에서처럼, 이미 사탄에 꼼짝없이 사로잡힌 마음이 되어서 유다는 멸망의 길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듣고 있던 제자들은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 못했으며, 유다 보고 명절 음식을 준비 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가난한 자에게 돈을 나누어 주라는 것이지, 그저 여러 가지로 추측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설마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절 30절을 보십시오.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아멘. 유다는 떡을 받은 후 곧바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도저히 그 자리에서는 더 이상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가 없었고, 다른 제자들이 눈치 채기 전에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머물고 있는 장소를 밀고하러 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다는 밤의 어둠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이 마지막 구절처럼 유다는 이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최악의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합니다. 마태복음에서 보면 유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장면을 지켜 본 후에 죄책감에 시달려 목을 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대 제사장과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는 과정을 보고 목을 메었습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처참하게 매질을 당하고, 조롱과 수모를 당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사탄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죽임 당하시는 것만은 되돌려 보려고 유대인들에게 받은 돈을 돌려 주며 이 상황을 돌려보려 했지만, 사탄은 그를 철저하게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나았었을 뻔한 것처럼 멸망의 인생이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본문을 이번 달 마지막 사랑의 주제 말씀으로 유다의 배신 내용을 선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내용은 분명히 비장하고, 착찹한 내용이지만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주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흘러 넘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 사랑을 받고 품에 누워있는 제자, 사랑 받았음에도 예수님의 괴로운 심령을 십분 공감하지 못하는 나머지 제자들, 그리고 끝까지 사랑의 손길을 베푸는 것을 거부하는 불쌍한 유다의 모습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일치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느니라(고전 13:7)는 이번 달 암송 말씀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크신 사랑의 능력이 계속해서 공급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본문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이 끝까지 사랑하여 주시는 사랑의 능력에 힘입어 넘치고도 넘치도록 강하고 담대하게 되어서,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한 하늘의 평안으로 살아가시라고 응원해 드리고 싶어서 분문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심령이 괴로워 하며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말씀 하시는 예수님의 표정과 눈빛과 음성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유다가 아니지만, 필요와 상황에 따라 예수님이 안 계시는 듯이 그림자처럼 취급하기도 하면서, 예수님을 멀리하고, 때로는 정말 배신적인 말과 행동으로 우리 주님의 심령을 괴롭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끝까지 나를 사랑하여 주시는 사랑의 마음과 예수님을 팔려는 나쁜 죄의 마음이 충돌하면서, 믿음과 양심에 따라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해서 있을 겁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죄인 중에 죄인이 되려는 유다에게 가장 먼저 사랑의 떡, 회개의 떡, 자비의 떡을 건네신 예수님의 그 손길을 느끼고 당장 주님 앞에 무릎꿇고 용서와 은혜를 구하여야 합니다.


사랑을 선택하는 자는 사랑 받은 제자 요한처럼 예수님의 품 안에 누워 하늘 평안을 누릴 것이고, 죄를 선택하는 자는 가식과 위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어둠 속으로 급히 도망 쳐 버릴 겁니다. 오늘 말씀 속에 있는 요한, 베드로, 그리고 제자들, 마지막으로 유다의 모습에 나를 대입시켜 보십시오.


그리고 현재 내 마음의 상태가 누구와 닮았는지를 스스로 진단을 해 보십시오. 우리 모든 성도는 반드시 끝까지 나를 사랑하여 주시는 예수님만 붙들고 예수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는 선택과 결정을 해 나가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해 나시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이미 다 십자가 사랑의 불씨를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 불씨를 조그마한 불씨로만 계속 남겨 둘 것인지,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불길이 되게 할 것인지는 우리 각자의 선택과 결정의 몫입니다.


다시한 번 말씀 드립니다. 가룟 유다에게 끝까지 사랑의 떡을 건네신 우리 주님의 손길을 꼭 기억 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을 한 사람의 영혼을 절대로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사랑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지켜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멸망시키려고 어둠 속에서 손짓하는 사탄의 거짓 유혹에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사랑의 끝판왕 이십니다. 황금장이라고 불리는 로마서 8장의 내용을 기억 하실 겁니다. “만일 하나님(예수님, 성령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어떤 피조물(사탄을 포함한)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읽을 때마다 힘이 솟아납니다. 이 놀라운 사랑의 찬가가 있게 하신 것은 심령이 괴로워 하면서도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여 주신 예수님의 그 고귀한 사랑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인생, 내 목숨 다하는 그날 까지 그 사랑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결코 물러나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이 온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그 사랑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 하시니라는 말씀과, 심령이 괴로워 하시며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신 그 가슴 떨리는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기십시오. 나에게 허락하여 주신 고귀한 그 사랑, 끝까지 풍성하게 더하여 주실 그 사랑, 영원히 누리게 될 그 사랑의 가치를 존귀하게 여기십시오. 그리고 이미 넘치도록 풍성하게 내려 주고 계시는 참 사랑에 감사를 멈추지 마십시오.


백번 강조한다고 하여도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는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주님 품안에 안기는 그 날까까지 오직 끝까지 사랑하여 주시는 그 사랑의 능력에 힘 입어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며, 믿음과 소망과 영생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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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심령이 괴로워 하며 사랑을 빼앗기지 말 것을 증언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일평생 사랑의 품 안에서 하늘 평안의 심령천국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사랑과 평안으로 우리를 안아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