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지혜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잠1:20-33)

열려라 에바다 2022. 10. 3. 16:54

지혜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잠언1:20-33 (권호만 목사)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2:52)
어린 예수가 4가지 영역에서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요,
①지혜가 자라갔다는 말은 정신적인 성장을 말하고
②키가 자라갔다는 말은 육체적인 성장을 말합니다.
③하나님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셨다는 말은 영적인 성장을 말하고요
④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웠다는 말은 인격적인 성장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이렇게 모든 영역에서 아름답게 성장하였습니다.


이렇게 성장하신 예수님이 한 번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한 여인을 데리고 와서 율법에는 이런 여인은 돌로 치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하면서 예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대로 돌로 치라고 하면 지금까지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던 주님의 가르침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율법을 무시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땅에 앉으셔서 글을 쓰십니다.
무슨 글을 쓰셨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글을 쓰신 것 자체가 사람들의 감정을 누그려 뜨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죄가 없느냐?’ 이런 종류의 글을 쓰셨다면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일어나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이 여자를 치라’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두 손에 들었던 돌을 놓고는 그냥 돌아가 버립니다.
흥분한 감정을 내려놓고 자신들을 돌아보니 이 여인을 책망할 자격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지혜가 예수님과 이 여인을 살렸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지혜를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
골로새서 2장 3절에서는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있느니라.”말씀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받는 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구원받는 지혜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지혜이신 예수님을 잘 믿을 때 지혜로운 자가 되고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지혜를 의인화시키고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사람같이 생각하여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한다고 합니다.
지혜가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기에 지혜가 말한다는 말은 지혜로운 어떤 존재가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잠언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지혜는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1장 7절의 말씀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말씀을 생각하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지혜가 말한다는 말은 지혜의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전달자가 누가 되었든 오늘 본문은 지혜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528장을 보면,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여 방황치 말고 나에게 오라고 온유한 음성으로 부르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 그대로 오늘 말씀에서는 지혜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지혜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지혜가 오라고 부르는 대상은 크게 3종류의 사람입니다.


첫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어리석다는 말의 원래적인 의미는 ‘마음이 열려있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열려있어서 모든 유혹과 미혹과 덫이 던져질 때 다 받아들입니다.
이단이 와도 좋고 죄의 유혹이 들어와도 좋고 악인이 그 마음에 들어오려고 해도 마음 문을 열어주는 자를 말합니다.
줏대가 없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런 사람은 결국 꼬임에 빠져 잘 넘어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14장 15절에서는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는다.”고 증언합니다.
성경에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나옵니다.(눅12장)
이 부자가 농사를 잘 짓고 수확이 풍성해지자 창고를 더 많이 짓고 곡식을 저장합니다.
그리고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자고 생각합니다.
이 부자의 어리석음은 자기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자기의 생각대로만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자기 생각대로만 움직이겠습니까?
자기의 생각대로 움직이고 자기의 생각대로 행동하며 자기를 받아들이는 자는 진정 어리석은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사람은, 거만한 자들입니다.


이 말의 본래의 뜻은 비웃는 자 조롱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22절에서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했는데 이 말은 ‘거만한 자들은 남을 비웃으며 또는 남을 비방하며 희열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자기 지식과 힘을 자랑하고 남의 흉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리석은 자라고 조롱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부모님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우습게 여기며 부모의 책망을 듣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함부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들기도 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의 심판을 비웃고 내세가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반면에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면 크게 분노하고 화를 냅니다.
그래서 잠언 13장 1절에서는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듣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미련한 자들입니다.


미련하다는 말은 ‘더디다’ ‘무겁다’ ‘느리다’는 뜻인데 22절에 보면 ‘미련한 자는 지식을 미워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들은 참된 지식을 배우기를 싫어하고 배우는 일에 게으름을 피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된 지식이라고 수도 없이 들으면서도 말씀을 배우지 않고 말씀을 읽지 못하는 것은 또 하나의 미련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또한 고집이 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자기의 고집을 꺾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미련한 모습을 계속 보이게 됩니다.


구약 사무엘 상 25장에 보면 나발이라는 부자가 나옵니다.
그는 미련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양떼들을 지켜주고 양털을 깎는 좋은 시기에 약간의 먹을 것을 구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나발은 다윗의 합당한 말을 듣지 않습니다.
다윗이 베푼 은혜를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윗을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장도로 무시합니다.
다윗은 비록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였지만 이미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습니다.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였음을 모든 사람이 인식하고 있었지만 나발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당시 시대의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나발은 미련한 자였습니다.
다윗 같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고집은 나발을 더욱 미련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나발은 모든 상황을 알고 나서는 갑자기 죽게 됩니다.
지금까지 모아온 재산을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죽게 되는 나발은 미련한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문제는 그들이 각자의 무지상태를 즐긴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리석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좋아합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이 신천지 이단에 빠져있는데요, 문자로 돌아오라는 말을 보내면 이분은 자신은 지금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말을 합니다.
자신이 지금 멸망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 현재의 상태를 기뻐하고 있습니다.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한다고 했는데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삶을 그들은 기뻐하고 즐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행복한 줄 생각하고 거만하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들도 지식을 미워하면서 자신이 미련하게 살아가고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참된 지식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지혜는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고 말씀합니다.


23절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축복은 우리의 잘못된 것을 책망한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아시아의 7교회를 향하여 그들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서 책망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서는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 고 책망하시고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서는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를 향하여서는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데 교회를 향하여서는 ‘네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책망하시는 내용은 회개하고 돌아서라는 말입니다.
오늘 잠언의 지혜자는 어리석고 거만하고 미련한 자들을 향하여 책망하면서 그 모습에서 돌아서라고 말씀합니다.


왜 책망을 듣고 돌아서야 하겠습니까?
①그럴 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기 때문입니다.
23절에 보면,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성령을 가리키는데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우리는 올바른 길로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까지 그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어리석음과 거만을 기뻐하며 그것이 행복한 삶인 줄 착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고 우리의 마음 문을 열어주실 때 그 삶이 얼마나 잘못된 삶인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삶을 후회하며 올바른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의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②두 번째는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23절)
어리석고 거만하고 미련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올 수가 없고 결국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살다가 자신의 삶을 후회하게 하는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귀에 들려오는 것이 축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고 평안으로 인도하고 영원한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미국 텍사스 주에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한 경찰관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이 경찰관이 밀수꾼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밀수꾼들이 궁지에 몰리자 자기들이 타고 다니던 나귀들을 그대로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이 경찰관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데 이사야 1:3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사야 1:3에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이라는 말씀이 기억나서 나귀를 몇 일간 굶긴 후 풀어 주었습니다.
풀어준 나귀가 가는 곳을 따라 갔더니 밀수꾼들이 숨어 있는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밀수꾼들을 쉽게 검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구원의 지혜를 얻게 되며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빅톨 유고는 말하기를 "영국은 두 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성경이고 하나는 섹스피어의 작품이다. 영국은 섹스피어를 만들었으나 성경은 영국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③세 번째로 지혜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32절을 보면 “어리석은 자들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에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고 나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꼭 필요할 때 하나님이 외면하시고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할 때 고개를 돌리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지혜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부르시고 책망하시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에게는 책망할 것이 없다, 나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교만한 마음을 갖고 귀를 막으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을 회개하고 거만하고 교만한 마음을 회개하고 주님께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33절에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지혜가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 평안히 살고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게 됩니다. (2022.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