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완전 (계 1:4-8)

열려라 에바다 2022. 10. 1. 16:41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완전 (계 1:4-8)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지난 시간에 전체의 대강으로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계시록은 복음이다! 계시록에는 성경이 마땅히 다루어야 할 주제가 다 들어있다! 계시록을 단순한 세속사의 전개로 보지 말라.’ 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계시록의 서론으로 요한의 축복과 영광 돌림 그리고 다시 오실 것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구절 구절에 담겨 있는 메시지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완전성입니다.


이 얼마나 반갑고 믿음직스런 일입니까? 우리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완전성은 놀라운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경은 곧 나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위해 오셨으니 곧 구속사에 관한 것입니다. 수학에서  어떤 문제를 풀기가 난해할 때 거기에 어떤 것을 더한 후에 푸는 대입법이 있습니다. 이처럼 본문을 구속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 의미가 명료하게 나타납니다.


우리 구원을 위한 하나님은 완전하시므로 구원 받고 더 온전함에 이르는 성화 문제 가지고 더 이상 초조하거나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루었다. 내가 하리라. 내가 책임진다. 반드시 해낼 것이다. 너는 믿음과 경외함으로 은혜만 받으면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완전성은 우리에게 한없는 믿음과 용기를 줍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경건훈련을 시작함에 있어서 기장 기초가 되는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완전은 어떤 것입니까?


1. 이미 준비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6절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 말씀은 요한의 축복과 영광 돌림인데 모든 축도가 그러하듯 이 말씀 속에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고, 무엇을 하시고 계시며, 무엇을 하실 것인지, 기독교 핵심교리와 아울러 그 결과로 다가올 우리를 향한 간절한 축복과 희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축도만큼 교리와 신앙이 함축된 것은 없습니다.


4절에서 먼저 성부가 과거 현재 미래 등 구속사의 주관자이심을 말씀합니다. 4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이 표현을 구속사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구원을 만세 전부터 계획하시고 진행해 오셨고 자금도 누리게 하시며 최후의 완성이 있을 것을 시사합니다(엡1:4-5, 롬5:8). 그 주관자가 성부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축도 속에 ‘지금 너희들이 완악한 불신자를 어떻게 구원하며 또 신자들이 어떻게 온전함 가운데 이를 것인지 염려한다만 이 일을 준비하고 성취하는 자는 나 여호와이니라. 내가 시작했으니 내가 이룰 것이다. 죽기까지 충성하며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통해서 구원을 성취한 것처럼 지금 너희에게 전능한 성령으로 구원하시고 온전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용기를 가져라’ 이런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구원의 문제는 난감하기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마19:23-26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셨고, 슥4:6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하셨고, 빌1:6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했습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기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 없이 계시록을 더 나가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이나 우리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에서 복음의 안내자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성경을 알기 전에 참 많이 방황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처럼 잘못하여 율법주의에 떨어져 한 없이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복음을 안 후에도 성령과의 관련하여 알지 못해 구원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서론에서 신앙의 입문에 대한 토대를 잘 닦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심이 신앙훈련이 첫째 핵심입니다.


5절은 구원의 공로자이시고 우리의 만왕의 왕이신 주시며 구원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5절에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부활의 첫열매이시므로 우리도 주와 같이 될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땅의 임금이 되셨으니 우리의 육에 속한 마음을 꺾고 예수를 주로 삼아 높이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를 나라로 삼으셨으니 그 분의 통치를 받고, 그리고 또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열심히 사랑하고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마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오직 예수로 믿는 것이고 그를 왕 삼고 순복하는 것이요, 열심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기초가 잘 닦여야 앞으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훈련에서 대단히 중요한 두 번째 핵심입니다.


그리고 4절에서 성령을 소개합니다.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 보좌 앞은 성령의 위치라기보다 우리를 온전한 은혜의 자리인 보좌까지 이끄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7은 사역의 완전수로 온전케 하시는 성령을 암시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구원사역의 집행자이십니다. 즉 성부는 계획하시고 성자는 성취하시고 성령은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 받지 않고는 충만하신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신앙훈련의 세번째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공부하는 여러분은 예수를 주로 삼고 하나님을 더 열심히 경배하며 성령의 충만 받는데 힘쓰시기 바랍니다. 말씀 찬송 기도 감사를 몇 배로 더 하시고 더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 시간을 정해놓고 3시간 이상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늘 찬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 받는 것은 우리가 경배하던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달리 이상하게 구하다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을 경건훈련의 교재로 삼고 온전한 믿음에 도달하시기 바랍니다. 지식 습득이 아닌 실천으로 경건함에 이르는 성경공부의 목표가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배운 대로 나의 것이 되도록 자주 반복하시기 바랍니다. 경건생활이 나의 완전한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이미 준비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누리시기 바랍니다.


2. 예수 안에서 온전히 다가오는 우리 구원의 완성입니다.


7-8절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주님이 임하시면 그것이 임마누엘이요,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그런데 7절에 주님이 임하시면 이 땅에 놀라운 통곡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임하심과 그 통곡에 이어서 8절에 구원의 완성이신 하나님이 소개된 것을 볼 때 주님의 임하심의 임하심의 결과가 무엇임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즉 주님이 임하시면 회개의 역사가 임할 것이고 새롭고 온전한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불변의 영적 공식입니다.


먼저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신다. 구름에 대해서 실재냐 영광의 상징이냐 둘 다냐 학자들의 주장이 있는데,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마 17장과 계 14장에도 나오듯 구름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예수 외에 나머지는 다 가리는 역할입니다.


눅9:36에 “오직 예수만 보이시더라” 예수만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실 때 모세도 엘리야도 없었고 불말도 안 왔고 회리바람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승천하신 모습을 쳐다봤는데 끝까지 예수 한 분이셨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도 그렇게 오십니다. 오직 예수로 재림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에게 적용하면 오직 예수의 믿음을 가진 자만이 예수를 영접할 수 있다는 진리입니다. 사이비 이단이나 다원주의로는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구약만 고집하는 유대교의 율법주의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을 맞이하고 싶다면 오직 예수의 확고한 터전에서 예수만이 나의 생명의 구주시고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 임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임하시면 애곡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7절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애국하는 이들이 누굴까요? 문자적으로는 주님을 박해한 자들이지만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부흥의 영으로 우리에게 임하시면 ‘내가 주님을 찌른 자입니다. 내가 주님을 못 박았습니다. 나 때문에 주님이 고난 받으셨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슴을 치며 통곡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에 대한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주의 성령이 강하게 임하시는 부흥의 현장에는 죄인들이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6:5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했고, 행2:37-38에도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했습니다. 주님의 임하심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시종일관 '아멘 주 예수여 사모합니다. 내게 임하시옵소서. 나와 함께 하신 예수님 사랑합니다.' 고백하며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7-8절에 과거 현재 미래 주님 오심 3대 시제가 나타나 있습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이 하나님의 자기소개의 의미를 알려면 구속사를 더해서 해석해 보세요. 즉 ‘주님은 우리 구원을 위하여 오셨고 지금도 임하시고 장차 온전히 오실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3시제입니다.


그 관점에서 본문을 보면 먼저 알파와 오메가라 하셨는데 시작과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구원을 시작하셨으니 완성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혹은 예수 안에 구원의 완성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완성이신 예수님을 우리가 믿음으로 영접하되 그를 높이고 사랑함으로 온전히 모신다면 예수님이 우리의 의가 되고 거룩이 되고 지혜가 되고 완성이 되십니다. 이 비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를 더 믿고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 우리 안에서 기쁘시게 영화롭게 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 믿음을 위해서 잠시도 쉬지 않으십니다. 여호와의 열심으로 독생자를 준비하셨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서 완성하시고 우리가 온전히 영접하도록 열심을 다하시고 계십니다. 교회가 노력하는 노력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으니 완성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모심으로 그 완전하심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전능한 자라” 이 말씀 역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심에 불가능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전 지을 때 밖에서 다 준비해서 조립만 했듯이 온전하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그것이 구원이고 그것이 온전이고 그것이 성화이고 영화입니다. 예수님이 응답이십니다. 예수님이 완성이십니다. 예수님이 구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시되 이제는 더 영화롭게 모시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변화 받고 온전해 질까 했던 우리의 걱정이 예수를 앎으로 시원하게 풀립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예수 영접했다 하면서도 예수님께 관심 없어 중심에 모시지 못하고 밖에 두고(계3:20) 자행자지합니다. 롬1:21-23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는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을 영성훈련교재로 삼아 더 온전히 예수를 영화롭게 해드리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교역자 여러분!


사랑하는 양떼들에게 계시록으로 경건훈련을 시키시기 바랍니다. 내노라 하는 주의 종들이 성경을 떠난 이방종교적인 것이 혼합된 교재로 신앙훈련에 앞장서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모두 요한계시록을 경건훈련이나 영성훈련의 교재로 삼아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과 아울러 그들이 삶에서 경건하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도록 훈련시켜 하나님께 사랑 받고 칭찬 받는 복된 일군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