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제1권. 이 책은 애신 김진호 목사의 설교집이다. 김...
위의 책<무화과 1>은 본인이 지난해 번역한 책임
모든 빛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반드시 나타납니다. 공중에 큰 빛이 있으면 구름과 안개가 아무리 가려도 그 빛은 막을 수 없고 마침내 밝게 빛나게 되고 맙니다. 지금 여기 등불이 있으면 마땅히 한 집안을 밝게 비추고,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그 빛의 혜택을 받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등불을 곡식 되는 말로 덮어놓으면 빛이 나갈 수가 없고 마침내 꺼지고 맙니다. 이 어찌 애석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런 것을 신도가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데 비유하였습니다. 주님은 문도門徒를 부를 때 렘프, 또는 등불, 또는 밀랍촛불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신도를 좋게 부르는 별호[작호綽號]입니다. 촛불로 불러주는 그 영광을 말로써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촛불 빛은 강약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깜박깜박하고, 어떤 것은 환하고, 어떤 것은 눈부시게 빛나서 각각 같지 않습니다. 아무리 작은 등불이라도 빛이 있으며, 반디뿌리도 빛이 있으며, 인광석의 린燐도 빛이 있어서 가릴 수가 없습니다. 가린다면 마침내 쓸모없는 등불이 되고 맙니다.
비록 등은 있다고 하더라도 불이 없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묘 앞에 서 있는 장명등長明燈을 보지 않았습니까? 분묘 앞에 오래도록 서 있으나 비추어주는 불이 없지요. 만일 등에 빛이 없으면 묘등墓燈과 무엇이 다릅니까? 등에 비록 불이 있어도 숨겨놓으면 역시 무용입니다. 이 두 가지 경우를 불가불 알아야 합니다.
등이 있으면서 불이 없는 것은 빛이 없는 신도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을 믿더라도 이름뿐으로 실제 행동이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빈 등과 같다는 것입니다. 증오하는 마음이 여전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여전하고, 감정이 여전하여 자기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도 반성하여 살피지 못 하는 것은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관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봉급만 축내며, 사람들과 섞여 나갔다가 들어갔다가 할 뿐입니다. 옛날 한국 관리는 회의가 있으면 모두들 이르기를 ‘글세!?’하고 만다고 합니다. 모두 자리만 차지하는 사람들입니다. 공연히 국록만 축내는 것이니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묘 앞의 등과 무엇이 다릅니까? 숨은 등불도 쓸모가 없습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신도들은 이 실수를 많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나도 이 실수에 빠져 부끄럽습니다.
주님을 믿은 뒤에 글을 몰라 읽지 못하고, 말 재주가 없어 설명을 못 하여도 그 신앙의 힘은 열렬하여 막을 수가 없게 됨으로써 사람을 만나면 문득 신앙을 말하고, 신앙이 아니면 행하지 않으며, 신앙이 아니면 말하지 않게 되면 이런 신앙은 등잔대 위에 올려놓은 등불과 같아 온 집안을 밝게 비추고, 사람들에게 그 광택을 입혀 줍니다. 그리하여 가족이 회개하고 사람들은 그 행동을 보고 믿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간혹 이와 반대로 마음속에는 신앙이 있어 늘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나 밖으로는 믿는 것 같지 않으니 신앙을 숨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일러 안으로 밝고 밖으로 어두운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는 동양주의東洋主義로써 동양학자에 도덕을 가진 자는 반드시 말하기를 자기 몸만 잘 다스리고 은거하고 있는 장소나 잘 지키고 있는 것으로 가장 좋은 이상주의로 삼습니다. 이런 사람은 집이 망해도 관계하지 않고, 나라가 망해도 관계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다 신앙이라고 이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앙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안 되고 반드시 말을 해야만 됩니다. 헛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와 같이 침묵을 좋아하고 나무라지 않으며, 안으로 반성이나 하고 남의 잘못을 허물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비록 신앙이 없는 자보다 훨씬 낫기는 하지마는 남을 사랑하는 일을 자기 사랑하듯 하지 않으니 한스럽습니다.
그리하여 말하기를 ‘서구문명은 움직이는 데[동動]에 있고, 동양문명은 고요함[정靜]에 있다’라고 합니다. 처사處士는 세상을 도망가고, 은사는 세상을 피해 삽니다. 이것을 모두 고아한 선비[고사高士]인 양하여 세상일을 조금도 간섭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서구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발명하는 것을 임무로 삼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덕으로 삼아 그 문명은 날마다 계속 향상하여 갑니다.
서양 사람은 새로운 빛을 바라보고, 또 천국과 미래의 풍부함을 바라보지만, 동양 사람은 모두 옛것을 돌아보고 상고시대를 가장 살기 좋은 시대로 여기며 안녕과 즐거운 생활을 가장 좋은 정치로 여깁니다. 공자는 요순을 성인으로 받들어 추앙하나 모두 빛을 숨겨 쓸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북송시대 위야魏野 같은 이는 좋은 덕을 가졌으므로 송 진종황제는 그 덕을 사모하여 직접 찾아가 만나려고 하였으나 위야는 피하고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화공을 보내어 그 얼굴을 그려 오라고 하였더니 위야는 얼굴을 이불로 가려 그리지도 못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상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 신자들도 이러한 사람이 있습니다. 학식도 있고 말솜씨도 있어서 설교를 해 줄 만한데도 여러 사람이 모여서 설교를 해 달라고 하면 온갖 핑계를 대고 피합니다. 본회本會나, 혹은 지회支會나, 혹은 속회屬會를 인도할 만한데도 다 물리치고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불이 없는 빈등이나 아니면 위야 같은 사람과 무엇이 다릅니까? 교회에 각종 회의가 있어서 문득 책임을 질 명칭을 주려고 하면 능력이 없다고 사양합니다. 또는 자격이 없다고 사양합니다. 그런 사람의 신앙은 자기 스스로만 구원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털끝만큼도 도움이 못 됩니다. 안타깝고 안타깝습니다. 밖으로 보면 겸손한 것도 같고, 또 비겁한 것도 같습니다.
간혹 기도회가 있을 때 사람들은 다 기립하여 간증을 하는데 남의 간증은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자신은 간증을 할 수 없는 자가 있습니다. 신앙이 없을 때의 경험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 신앙인으로 사람을 대하면 간혹 핍박 받은 일도 있으며, 혹은 감사할 일이나, 위로할 일들이 모두 족히 간증이 될 것들인데 애초부터 신앙의 눈으로 상대하지 않기 때문에 대충대충 평평하게 지나가니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게 된 것입니다. 믿음이 비록 마음속에 있지만 처음부터 이용하지 않으면 마치 잘 드는 칼이 오래 쓰지 않으면 녹이 쓸어 쓸데없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됩니다.
어떤 이는 가난과 병으로 거의 죽게 된 사람이 도움을 청하면 허락해 주지 않습니다. 돈이 없으면 할 수 없지만 충분히 남을 도와 줄 수 있는데도 문득 사람을 시켜 도와 줄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옛날 예리고[야리가耶利哥]의 제사장 레위족 사람[리미인利米人]이 다 이런 부류의 사람입니다. 어떤 교인은 스스로 수천 석의 곡식을 가졌고, 수십만 엔의 돈을 주무르면서도 교회에서 자급할 돈을 청하면 5십전이나 혹은 마음 내키면 1엔을 냅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은 월급을 받으니까 자급自給 돈을 낼 수 있지만 나는 봉급이 없으니 지급支給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가 지적한 봉급을 받는 사람이란 매월 1백여 엔을 받아 1십 엔씩을 지급합니다. 이런 핑계를 대는 사람은 가히 불 없는 빈등이라고 이를 수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물건은 다 자신이 주장해 얻은 것으로 믿기 때문에 남에게 베풀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히 숨은 등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웃에 신앙을 가지지 않는 자가 많이 살고 있으나 전도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교당에 간다고 하면서도 함께 가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가족은 이미 회개하였고 가족예배를 행하느라고 찬송을 할 때 이웃 사람이 듣고 와서 들으도 주님을 믿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신앙은 가족 내에 그치고 이웃집까지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는 이웃에 있는 숨은 등불입니다.
이런 사람은 지식도 있고 얼굴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친구가 많습니다. 그러나 친구를 대할 때 신앙에 대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친구 중에는 회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는 그 친구에게 신앙을 권하는 일을 들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술친구나 바둑 친구가 도리어 신자를 욕하더라도 신자에 대하여 변명하지 못하니 그의 신앙이 빛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없는 것입니까?
교당에 들어가면 신자이고 교당에서 나오면 불신자와 같으며, 교우를 대하여서는 진리를 말하나 외인을 대하여서는 세상사를 이야기 합니다. 각각 그 일에 해당하는 말이기는 하나 신앙의 맛을 알려 주는 일이 없으니 이런 것들이 숨은 등불입니다. 그 불빛은 깜박거리다가 오래잖아 꺼지고 맙니다.
등불이 빛이 없고 또 곡식 되는 말 아래 숨어 있으면 등불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안타까운 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어 등불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라고 하였는데 등불의 직책을 행하지 못하고 교우들 가운데서 숨어 있으니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그리고 남과 휩싸여 나왔다가 들어갔다 하니 안타깝고 안타깝구나, 헛되이 하나님께서 보낸 명분을 저버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9월 3일 저녁. 체부?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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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초문) : 탈초자 조면희
◇隱燈 太五章 十五졀.
凡光不可隱, 有光必現, 空中有大光, 雲霧雖弊, 其光不可掩, 終當赫赫乃已也. 今有燈火當照耀一家, 使衆人蒙其光澤, 而今反置之斗下, 則其光不發, 終乃耿滅, 豈非可惜乎! 主言此以譬信徒之隱而不現, 主呼門徒(란부?) 或燈火, 或蠟燭, 是皆信徒之綽號也, 其榮不可言也. 然其燭光有强弱, 或耿耿, 或煌煌, 或輝輝, 各不同. 雖小燭亦有光, 螢亦有光, 燐亦有光, 不可掩, 掩之則終作無用之燈矣. 雖有燈, 無火則無用也. 僉位不見墓前之長明燈乎? 長立墳墓之前, 而無火可照, 若燈而無光, 則與墓燈何異也? 燈雖有火, 隱之亦無用也. 此兩者不可不知也. 燈而無火者, 指無光之信徒, 雖信主, 名而已, 無實行也. 譬如空燈. 憎惡如前, 猜忌如前, 憾情如前, 自己爲何人? 毫不省察無光故也. 爲從仕之人, 尸位素餐, 旅進旅退. 舊韓國官吏, 有會議, 則皆曰글셰云, 皆尸位之人也, 空竊國祿也, 其恥甚矣. 與墓燈何異也? 隱燈亦無用也, 此何意, 信徒多陷此過, 余亦陷此可愧也. 信主後無文可讀, 無辯可說, 然其信力, 熱熱不可掩. 故逢人輒說信, 其行非信不行, 其言非信不言, 此等之信, 如?上之燈, 照耀全家, 人蒙其光澤. 家族悔改, 人見其行, 不可不信, 然人或反此, 心中有信仰, 常懷感謝, 外面不似信, 隱之故也. 此等謂之內明外?之信也. 此東洋主義, 東洋學者, 有道德者, 必言獨善其身, 固守東岡, 是爲無上主義, 家亡不關, 國亡不關, 主言此等, 皆不可謂信, 信有生命, 不可安坐必言乃已也. 空信之人, 如此好沈?無謗, 及內省不?而已. 雖遠勝未信者然, 無愛人如己之實可恨也. 故曰 西歐文明在動, 東洋文明在靜, 處士遁世, 隱士避世, 是皆謂之高士然, 與世毫無干涉, 歐人不然, 以發明爲務, 以益人爲德, 其文明日丞丞向上, 西人望新光, 又望天國未來豊富, 東人皆回顧, 以上古爲至善, 以安寧而杯飮爲至治, 孔子以祖述堯舜爲聖, 皆隱無用, 以韜晦爲主. 魏野有善德, 帝慕其德, 往候之, 野避而不見, 帝命畵工圖其像, 野引被韜面, 此何用於世也? 吾信者 亦如此, 此人有學識, 有辯舌, 有可以說敎, 而會衆請說敎, 則百方圖避, 本會, 或支會, 或屬會, 可以引導, 而皆斥而不許, 此卽空燈與魏野何異也? 敎會有各種會議, 輒以任名加之, 則辭以不能, 又辭以無資, 其信自救而已也, 毫無益於他人也, 可惜可惜也. 外似謙遜, 又似卑怯, 或於祈禱會, 人皆起立看?, 而聞人看?之說, 輒不勝喜悅, 而自不能看?者, 無信之經驗, 以信照物, 以信對人, 則或有逼迫, 或有感謝, 或有慰勞, 皆足以看?者, 而初不以信對之故, 泛泛平平, 與凡人無異, 信雖在心, 初不利用, 有利劒, 久而不用, 則綠生無用矣. 或有貧病濱死之人, 請捐助則不許, 無金則不能. 然金足以資人, 而輒以依人不可之說外之. 昔耶利哥(예리고)祭祀長利未人, 皆此類也. 某敎人, 自致數千石, 手弄數十萬円, 而敎會請自給, 則五十錢, 或加意則一円也, 輒曰某人, 有月俸可以自給, 而我無俸給, 不可支給云. 某俸給之人, 每朔百餘円收入, 故每朔十円支給, 如此之人, 可謂空燈, 只信自己之物, 皆自主得, 然不欲施於人, 可謂隱燈矣. 隣居多不信者, 不欲開口傳道, 隣人問何往, 則答曰往敎堂, 而不說同往也. 其家族已爲悔改, 行家族禮拜讚頌時, 隣人聞而來聽, 不言信主, 其信仰, 只止家族之內, 不及隣人, 此爲隣之隱燈也. 此人有知識廣面, 故有多友, 對友人時, 不言信仰, 其友人中, 一無悔改者, 未聞其友之勸故也. 酒友棋朋, 反辱信者, 信者不爲卞明, 其信光有耶無耶? 入敎堂則爲信者, 退敎堂則似不信者, 對敎友, 言眞理, 對外人則言世事, 各當其事, 然無信味可餐也.是等隱燈, 其光耿耿, 不久必滅也. 燈無光而又在斗下, 則又不知有燈矣. 可惜 神遣吾人于世. 而神呼燈火人, 不能行燈火之職, 隱在敎友之中, 有耶無耶? 旅進旅退, 惜哉惜哉! 虛負神遣之名也.
九月三日夕 ?府.
*1. 붉은 바탕글자는 원문이 틀린 것 같아 정정한 글자
2. 붉은 색 글자는 판독이 어려워 의문을 가지고 쓴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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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원고
是等隱燈, 其光耿耿, 不久必滅也. 燈無光而又在斗下, 則又不知有燈矣. 可惜 神遣吾人于世. 而神呼燈火人, 不能行燈火之職, 隱在敎友之中, 有耶無耶? 旅進旅退, 惜哉惜哉! 虛負神遣之名也.
九月三日夕 ?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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