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 주는 유익 전4:7-12, 엡4:1-6
일본에서 열린 한 집회 제목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였습니다. 그 집회에서 한 소녀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작은 씨앗 하나를 가지고 왔는데 그 씨앗은 작고 아주 시꺼먼 색깔의 보잘 것 없는 씨앗 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씨앗을 심었더니 아름다운 꽃이 피었습니다. 그 꽃을 본 사람들이 그 보잘 것 없는 씨앗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씨앗만 보았다면 결코 씨앗을 달라고 하진 않았을 거예요. 우리도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자들일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만 보면 어쩌면 보잘 것 없는 작고 까만 씨앗처럼 별로 존재 가치가 없는 죄인의 모습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씨앗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 우리 각 사람이 연합하여 주님 은혜로 꽃을 피울 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연두 합이 주는 유익”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도들의 연합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입니다.
신약 본문 엡4:1-3에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했습니다. 1절에서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했는데, 당시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순교를 눈앞에 두고, 그가 3년 동안이나 머물면서 친히 양육했던 에베소 교인들에게 간곡한 심정으로 그들을 향해 권면하면서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을 상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러주신 것은 그들이 잘나서도, 특별히 선한 행위가 보여서도, 어떤 인간적인 능력이 있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엡2:5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했고, 엡2:8∼9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했습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보다 선하거나 잘나서, 우리에게 어떤 공로가 있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입은 것을 알고 그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겸손하게 말없이 충성하는 것이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합당한 모습일 것입니다.
구약 본문 전4:9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했습니다. 이 역시 서로에게 도움과 의지가 되는 협심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라도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면 유익이 없습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숲속에 공작새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들에게 예쁜 딸이 태어나 곱게 잘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숲에 살고 있는 공작새 총각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집을 간지 채 한 달도 안 되어서 딸 공작새가 풀이 푹 죽은 채 친정으로 날아왔습니다. 어미 공작새는 걱정이 되어서 딸 공작새에게 물었습니다. "얘, 왜 그러느냐? 도대체 무슨 일이냐?" 딸 공작새는 어미 공작새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엄마, 도무지 외로워서 살 수가 없어요. 숲의 새들이 다 나를 따돌리고 있어요. 그러니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딸 공작새의 말을 들은 어미 공작새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집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딸 공작새에게 물었습니다. "얘, 너 아무데서나 네 꽁지를 활짝 펴 보이면서 뽐내었지? 어때? 내 말이 틀림없지?" 딸 공작새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듯이 어미 공작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이 아름다운 꼬리는 우리 공작새에게만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다른 새들에게 그것을 조금 펼쳐 보여주는 것이 뭐가 그리 잘못되었나요?" 그때 어미 공작새는 딸 공작새에게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얘야, 내가 한 번은 숲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들은 적이 있었단다. 그때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를 이렇듯 점잖게 타이르더구나! '여보게, 자네의 대화 가운데서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좀 빼게나. 영국의 골퍼들 사이에서는 젠틀맨 골프 상식이라는 말이 있다네. 만일 좌중에 한 사람이라도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절대로 골프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올리지 않는다는 걸세.' 얘야,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니?"
딸 공작새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시집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뒤 그는 다시는 풀이 죽은 채 친정으로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는 숲속에 있는 다른 새들과 잘 어울려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위로하고, 격려해주어야 할 모습들입니다. 우리는 다 허물과 부족한 모습들을 지니고 있기에 서로 받는 모습이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연합된 성도가 되어 부르심에 합당한 성도로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연합을 위한 성도 각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약 본문 엡4:2-3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했습니다.
우리가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들이 있습니다. 가정생활에서도 하나 됨의 서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부부는 한 몸이라고 했는데, 하나가 되지 못하고 갈등하며 원수처럼 지내기도 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이런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이 이렇게 대해주면 좋겠는데, 남편이 이런 점들을 고쳐주었으면 좋겠는데…’ 서로가 자신은 변하지 않고 그저 상대방이 바뀌어 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불만과 갈등만 커집니다. 내가 먼저 변하면 상대방도 변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 됨의 자세에 대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 했고,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겸손이 있어야 하고, 온유함 즉 절제된 능력이 있어야 하고, 오래 참는 인내와 관용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용납이 있어야 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힘써 지켜야 하나가 되는 일이 가능합니다.
선교 초기 어느 무더운 여름철에 한 목사님이 무악재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교통수단이 변변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막길을 올라갔습니다. 다 올라가 땀을 닦으며 쉬고 있는데, 웬 술 취한 청년 한 사람이 다가와 다짜고짜 목사님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더니 무조건 목사님을 두들겨 패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저 가만히 맞고만 있었습니다. 한참 때리던 청년은 맞는 상대방이 대꾸도 안하고 반항도 하지 아느니 때리던 손길을 멈추었습니다. 그제야 목사님은 청년의 손을 꼭 쥐고서 물어보았습니다. "이제 다 때렸습니까? 도대체 왜 나를 때렸습니까?"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본시 유명한 불량배인지라 얼마나 팔 힘이 세었겠습니까? 그러니 청년은 내심 기가 꺾였을 것이지만, 짐짓 언성을 높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나보다 먼저 올라와 기분 나빠서 때렸다! 왜 어쩔래?" 그 때 목사님은 "내가 도대체 누군지 알고 그러는 것입니까? 내가 바로 김익두라는 사람입니다." 그제야 청년은 화들짝 놀라며 목사님을 알아보고 "아이고, 형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술에 취해서 사람을 몰라보았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하며 싹싹 빌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이놈아, 너 살고 싶거들랑 잔소리하지 말고 날 따라와." 하면서 부흥집회에 참석케 하여 그 날로 청년도 새사람이 되고 나중에는 교회의 장로가 되어 교회를 섬겼다고 합니다. 그러한 김 목사님도 가끔씩 깡패의 기질이 되살아날 때가 있어 그 때마다 스스로에게 “좀 더 죽어라 이놈아!” 하면서 자신을 죽이셨다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노라.’, ‘나를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노라’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육신의 몸을 지니고 사는 동안 그러한 시도와 힘씀이 지속되어야 연합이 가능해 집니다. 우리도 연합을 위해 서로 힘씀으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지킬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성도들의 연합은 주의 일을 이루는데 큰 힘이 됩니다.
구약 본문 전4:10-12에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했습니다.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일 때가 훨씬 좋습니다. 소 한 마리는 6톤의 짐을 끈다고 합니다. 소 두 마리면 각각 6톤씩 12톤의 짐을 끌 수 있다고 계산 되는데, 그러나 소 두 마리를 힘을 합쳐서 짐을 끌게 하면 24톤의 짐을 끌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연합에서 오는 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에 처음에는 아담 혼자 만드셨지만, 아담이 혼자 지내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아 그의 배필이 될 하와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너무 좋으셔서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70명의 전도 대를 보내실 때에 둘씩 짝을 지어 파송 하셨습니다. 혼자보다 둘이 낫기 때문입니다. 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말씀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기도하는 일에, 구제하는 일에, 전도하는 일에, 배우는 일에, 떡을 떼고 교제하는 것도 함께 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날마다 더해 갔습니다.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삼겹 줄처럼 서로 연합하여 협력하게 되면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미국 켈리포니아주 명물인 금문교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데, 그곳은 수심이 90m나 되는데 그곳에 현수교가 놓여있습니다. 다리양쪽에 227m 높이의 교각 탑이 세워져 있고 교각과 교각사이에 2가닥을 줄을 늘여서, 이 선에다가 길이가 2,737m, 폭이 6차선 현수교를 만들어 차들이 지나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교각과 교각 사이에 연결된 2가닥 줄입니다. 멀리서보면 보통줄 같은데, 실제로는 그 줄의 직경이 1m가 되고, 그 안에는 무려 27,000개의 철선이 합해서 큰 줄을 만들고, 그 철선들이 합해서, 육중한 다리를 버티고 있기에 차들이 다녀도 출렁거리지 안 습니다. 이것이 협력의 힘입니다.
성도가 협력하게 되면 우리를 대적하여 넘어지게 하기 위해 우는 사자처럼 달려드는 사단의 권세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갈 때 아말렉과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모세는 산꼭대기에서 지팡이를 든 손을 들어 기도하고 아론과 훌은 그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게 붙들어 주었습니다.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아말랙을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각기 있는 자리는 달랐고, 하는 역할이 달랐지만 그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싸움에 임했을 때 대승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서로 힘을 합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하십니다.
길을 가다 깊은 구덩이에 빠지거나, 길에서 넘어져 크게 다칠 경우 두 사람이라면 한 사람이 넘어졌을 때 다른 한 사람이 도와 줄 수 있으니까 곧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위급한 사고를 당하거나, 실패를 겪거나, 심한 비방과 모함을 받거나, 유혹에 빠져 죄를 짓거나, 심한 질병에 걸리거나 하는 위기가 닥칠 때에도 두 사람이라면 서로 협력하고 도와서 일으켜 세워 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줄 수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삶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라면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화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 연합된 모습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이루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연합이 주는 유익”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성도들의 연합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입니다.
◎.연합을 위한 성도 각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의 연합은 주의 일을 이루는데 큰 힘이 됩니다. 아멘.
<2023. 10. 12.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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