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의 사역2(마3:1-12)
마태복음은 이사야 선지자의
”주의 길을 예비하고 곧게 하라고 외치는 자“
라는 내용을 인용하여 백성의 책임을 강조한다(사40:3).
이러한 인용은 예수께서 율법 아래의 지도자를 심판하시고
자신의 나라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말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도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면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심판을 선언한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령이 세례요한이다.
이사야의 예언에서 전령은 시온의 높은 산에서 왕의 오심을 외친다.
그런데 마태는 이사야 예언을 변형하여 인용한다.
개혁신학의 주장처럼 구약성경을 액면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변형시켜서 인용한다.
이것이 사도들 모두가 구약을 인용하는 메시야 성취 인용법이다.
이러한 메시야 성취 인용은
구약에서의 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질서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구약과 신약에서의 하나님 사역의 내용이 다르다는 말이다.
이는 언약의 갱신 때문이며 신구약의 중보자 차이 때문이다.
구약의 중보자는 사람 중보자이다.
그러나 신약의 중보자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메시야 성취 인용의 방식으로 주어진 구약성경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구약성경을 액면 그대로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인 율법을 좇지 않으셨다(히7:16).
엘리야와 세례요한은 광야의 선지자이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싸우는 선지자이다.
죄와 싸우시는 하나님을 대리하는 선지자들이다.
세례요한은 광야의 선지자로서 그리스도의 전형이다.
그는 율법이 시행되는 구약의 마지막 시점에,
사람으로 오시는 하나님 앞에 세움을 받은 전령이고 선지자이다.
천국 왕께서 오심으로 기존의 율법 통치와는 다른 하나님의 직접 통치,
율법의 나라인 다윗 왕국과는 다른 아들의 나라가 세워진다.
이처럼 오시는 종말의 천국 왕을 맞이하라는 것이 광야의 소리이다.
이러한 세례요한의 사역에 대하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고 기록한다(마1-2).
세례요한은
“나는 회개하도록 물로 세례를 베푼다”
고 말한다(마3:11).
이러한 세례요한의 사역을 마태복음은 회개의 세례라고 말한다.
그런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
라고 설명한다(막1:4, 눅3:3).
이처럼 마태복음은 단순하게 회개라고 말하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회개의 세례라고 회개를 강조한다.
털옷을 입은 세례요한은 엘리야 선지자의 모습이다.
엘리야는 광야에 숨어서 비를 그치게 하고
바알 선지자를 심판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였다.
그는 남은 자를 통한 새로운 하나님 경륜을 증거한 선지자이다.
엘리야는 바알에게 속한 이스라엘과 싸운 선지자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도 세례요한을 대적자를 심판하시고
천국을 세우시는 하나님 아들의 전령으로 말한다.
따라서 세례요한을 광야의 엘리야 모습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세례요한을 엘리야의 모습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는 이스라엘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아들의 선구자로 말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은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고 전파하였음을 말한다(마3:2).
그러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세례요한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였고 말한다.
이처럼 마태복음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기록하는 것은 유대인들 언어의 특성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직접 담지 않고 하늘을 하나님을 대체하는 용어를 사용한다.
복음서는 천국이 죽은 의인의 영혼이 가는 곳으로 말하지 않는다.
복음서가 말하는 천국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그의 백성과 함께하시는 나라이다.
이방의 통치 아래에서 구원하시는 역사적인 나라이다.
이는 하나님의 통치가 백성들의 삶 가운데서 시행되는 나라이다.
따라서 마태가 말하는 구원은 죄와 사망 울타리 안에서 시행된 율법의 통치가 아니라,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직접 통치 가운데 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나아온 백성들은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는다.
이들은 율법의 통치 아래에 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그들은 율법이 명하는 바를 따라 세례요한에게 나아와서 죄를 자복하고 물로 씻음을 받았다.
그들이 세례를 받은 것은 요한의 선포 때문이다.
율법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직접 통치에 들어가기 위하여 준비한 것이다.
이는 오시는 천국 왕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푼 것은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에서 인도하여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케 할 것이다”
라는 예언의 성취이다(겔36: 25).
따라서 세례요한의 전파를 들은 자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나아와서 세례를 받은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물로 씻어서 시내산에서 만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보내셔서 물로 씻고 정결케 하셔서,
그들 가운데 사람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게 하시는 일이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그들 가운데 오시는 천국 왕을 영접하게 하는 세례이다.
이는 율법이 주지 못하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이전 언약의 내용인 율법을 범한 모든 죄와 부정을 정결케 하는 세례이다.
세례요한에게 나아온 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들이 자백한 죄는 옛 언약 백성으로서 율법을 범한 죄이다.
세례요한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를 받으려고 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열매가 없는 나무는 찍혀 불어 던져질 것이다”
고 심판을 선언한다(마3:7-10).
누가복음에서는 같은 책망을 백성에게 말하고
세리와 군인들에게는 회개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는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는 마태복음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정죄하며 심판한다.
이를 통하여 율법의 나라를 대체하는 천국의 등장을 강조한다.
이처럼 마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정죄하고 아들의 나라가 설립됨을 말한다.
이는 왕의 등장은 곧 새로운 나라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을 세우시는 것은 다니엘서의 성취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흩어진 양들을 친히 찾으시고 그들을 고토로 인도하시며
신실한 목자를 세우셔서 남은 자를 구원하신다는 에스겔서 예언의 성취이다(겔34: ).
그래서 예수께서는 모세의 자리에 앉은 율법 선생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정죄하시고(마23: ),
예루살렘 선전의 멸망을 선포하시며(마24: ),
율법의 통치를 종결하시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통해서 천국을 설립하신 것이다.
세례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고 정죄한다.
이스라엘의 자랑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율법과 성전이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에도 그들은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
악한 목자들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는 이스라엘은 더이상 아브라함 자손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세우셔서 천국을 소유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푼 것은 그들로 천국 왕에게 복종케 하기 위함이다.
세례요한의 뒤에 오신 분은 천국의 왕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다.
그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참된 구원자이시다.
구약에서 나타나는 능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세례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이는 능력이 많으신 천국 왕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먼저 계시며 위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고 심판하시는 천국의 왕이시다.
그는 종말의 심판과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한 종말의 하나님 구원과 그 나라의 임함이다.
세례요한이 옥중에서 예수께서 행하신 긍휼의 사역을 듣고
“오실 분이 당신입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물었다.
이는 그가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과 천국을 전파한 마지막 선지자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세례를 베푼 것은 에스겔서의 성취이다(겔36:25).
성령세례는 자기 백성을 성령에 속한 자로 온전히 정결케 하는 구원의 일이다.
이는 육신에 속한 자를 영에 속한 자로 세우는 일이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며 알곡을 곡간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타는 불에 던진다고 말한다.
불로 행하는 정결은 마지막 정결법이다.
이는 모든 더럽고 부정한 것을 태우는 온전한 정결법이다.
성경의 원칙은 열매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전적부패와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개혁신학(칼빈주의 신학, 장로교 신학)주의자들에게는 난처한 말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을 본성적으로 정의하는 구원론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의 구원론은 언약적인 구원론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발전 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구원을 말한다.
이처럼 옛 언약 아래에서의 은혜는 종말에 보내신 아들을 통하여 하늘의 질서로 완성된다.
종말의 구원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이다.
이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는 참된 구원과 생명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율법 선생들이다.
그들은 율법을 가르치는 백성의 지도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율법 아래에서 크고 먼저 된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세례요한이 증거한 그리스도의 구원을 보고도 귀신의 대장이라고 비방하며 대적하였다.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무리를 선동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 있던 아들을 다시 살리셔서
만민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고 확실하게 선포하셨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고 확증한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령이다.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광야와 같은 세상 가운데 세워진 그리스도의 전령이다.
하늘에 속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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