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복수법2.
천향추천 0조회 923.11.30 05:10댓글
동해 복수법2(마5:38-42)
모세율법은 옛 백성과 이스라엘의 삶의 질서이다.
이는 창조 이후의 옛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경륜이 성문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법은 옛 백성과 이스라엘이 나타낼 윤리의 토대이다.
모세율법에 부착하여 살 때 이스라엘은 의로운 백성이다.
그런데 율법은 동족 사이는 형제 관계로, 이방인과는 거래 관계로 대하라고 명한다.
형제에게 은혜를 베풀고 보호한다면 여호와께서 더 큰 복을 베푸시리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형제가 된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 동해복수법이다.
그래서 모세율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서 대라”고 말씀하신다.
모세율법에서는 상대가 이스라엘의 오른뺨을 치면 이는 여호와의 수치이다.
뺨을 맞은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소유된 백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도 상대의 왼뺨을 쳐서 수치스러운 죄를 씻어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사람을 죽였다면 그도 죽여서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배제해야 한다.
이는 여호와의 소유된 백성의 생명을 파괴하였기 때문이다.
오른뺨이나 왼뺨, 속옷과 겉옷이라는 말은 모세 언어이다.
예수께서 사용하신 모세 언어는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말이다.
오른뺨이나 왼뺨, 속옷과 겉옷의 의미를 잘 안다는 말이다.
이러한 말들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성을 나타내는 언어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윤리는 개인의 도달한 수준이나 도덕적인 훈계를 나타내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 나라 백성의 본질과 특성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은 옛 언약 백성이다.
그들이 율법에 신실하면 의로운 백성이다.
이는 언약 당사자로서 언약에 신실하기 때문이다.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남은 자, 언약에 신실한 제자들과 같은 자를 구원하기 위함이다(갈4:4-5).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부르실 때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
율법 아래에서 먼저 되고 큰 자인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은 거절하였으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다(마4:20,22).
예수께서 갈릴리산에 앉으셨을 때 그들은 예수께 나아간다.
율법 아래에서 70인 장로들은 산 중턱까지만 나아갔으나(출24:1-2)
제자들은 산에 앉으신 예수께 나아가서 함께 거하였다(마5:1).
이는 율법의 통치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에 거하는 일이다.
이는 다윗왕국 백성에서 천국 백성으로 세워지는 일이다.
이처럼 예수께 나아감으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계에,
율법 아래처럼 휘장의 장벽이 있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교제하는 관계에 서게 된다.
이것이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 목적이다(갈4:4).
이것이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말이다(갈4:5).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는 새로운 윤리가 요구된다.
율법 아래에서는 종의 윤리가 요구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아들(자녀)의 윤리가 요구된다.
그래서 모세율법은
“상처는 상처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라고 명하지만(레24:20),
예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갖고자 하면 겉옷까지 주라.
오리를 가고자 하면 십리를 동행하라.
누가 꾸고자 하면 거절하지 말라”
고 말씀하신다(마5:39-42).
산상수훈은 모세율법과는 다른 하늘의 질서이다.
이는 종말에 보내신 아들을 통해서 시행되는 하나님의 통치질서이다.
이는 율법 아래에서 요구된 종의 윤리와는 다른 하나님 아들(자녀)의 윤리이다.
이는 율법과는 다른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온전한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심으로 율법의 통치질서는 종결된다.
죄 아래에 있는 옛 백성의 완악한 수준을 따라,
옛 백성의 종과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에 맞춘 동해복수법으로,
악한 자를 대적하던 옛 시대는 끝났다.
종말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심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율법이 시행되는 자기 땅에 직접 오셔서,
율법과는 다른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질서를 선포하심으로,
하나님의 참된 뜻과 경륜이 시행되는 새 시대를 여신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율법과는 다른 새로운 통치질서,
율법 아래에 있을 때의 종의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자녀)로서의 윤리를 제시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보내신 아들을 통해서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신 결과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모세율법의 언어와 개념의 틀을 가지고 새로운 질서를 선포하신다.
예수께서는 나아온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을 선포하신 것이다.
산상수훈은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율법과는 다른 하늘의 질서,
다윗왕국의 통치질서이었던 모세율법과는 다른 천국 율법이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을 선포하셔서 모세율법과 제도를 폐하시고 온전케 하신다.
모세의 율법을 온전케 하심은 율법이 주지 못하는 것을 주심으로 온전케 하신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서
모세율법이 요구한 윤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윤리,
종의 윤리를 대체하는 하나님 아들(자녀)의 윤리를 제시하신다.
구약의 하나님 나라는 다윗왕국이다.
다윗왕국은 모세가 율법을 선포하여 설립한 나라이다.
구약의 하나님 나라는 모세가 설립하고 모세의 말이 시행되는 율법의 나라이다.
이러한 율법의 나라를 봉사한 자들이 선지자나 제사장, 왕이다.
그들 모두의 사역 토대와 기준은 모세의 율법이다.
따라서 구약의 선지자와 제사장, 왕은 하나님 앞에서 종이며 어린아이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러하다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종과 어린아이로 대하셨다는 말이다.
종말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유대 땅에 보내신다(갈4:4).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구원하여 아들(자녀)로 세우기 위함이다(갈4:5).
이는 휘장 밖에 있는 종(머슴)을 하나님의 아들(자녀)로 세우기 위함이다.
종말에 보냄을 받은 아들이 설립한 나라가 천국이다.
이 나라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 백성인 이스라엘을 완성한 나라이다.
하나님 앞에서 종이던 옛 백성을 하나님의 아들(자녀)로 온전케 한다.
이 나라는 구약의 하나님 나라 통치질서인 율법을 완성한 나라이다.
율법의 통치는 사람 중보자를 통한 간접통치이나
그리스도의 통치는 하나님께서 직접 집행하시는 직접통치이다.
이는 구약의 하나님 통치는 대리자를 내세운 수렴청정 체제이나
신약의 통치는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친정체제이다.
예수께서 부르실 때 제자들은 즉시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라나선다(마4:18-22).
그러나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거절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신다(마5:20, 19:14).
왜 천국이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라고 말하는가?
제자들과 어린아이는 예수께 나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자 관헌에 대해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쉽다”
고 말씀하신다(마19:23).
이는 부자관헌은 예수를 떠나갔기 때문이다.
이는 율법 아래의 부유한 삶을 포기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율법 아래에서 크고 먼저 된 자는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과 부자 관헌과 같은 자들이다.
반면에 율법 아래에서 작고 나중 된 자는
변방 지역인 갈릴리 출신 제자들과 어린아이,
죄인의 대명사인 세리와 창기들과 같은 자들이다.
그런데 제자들과 어린아이는 예수께 나아오나(마19:13-15, 27-29)
부자 관헌은 율법 아래의 부유한 삶을 포기하지 못하여 예수를 떠나갔다(마19:21-22).
그래서 예수께서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말씀하신다(마19:30).
이처럼 마태는 율법 아래에 있는 동족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신 예수에게 나아와서 천국을 소유하라고 권면한다(마16:16).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율법을 선포하여 율법의 나라를 설립하신다.
그러나 종말에는 아들을 통해서 산상수훈을 선포하심으로 종말의 천국을 세우신다.
출애굽기에서의 율법 선포는 나라를 조직하는 일이다.
신명기에서의 율법 선포는 가나안땅을 하나님 나라로 경영하신 일이다.
그러나 종말에서의 산상수훈 선포는 천국을 세우시는 일이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을 선포하셔서
구약의 하나님 나라 백성인 이스라엘과 구약의 하나님 나라 통치질서인 율법을 완성하신다.
동해복수법은 개인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규정이 아니다.
이는 율법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재판법이며 통치질서이다.
동해복수법은 출21:24, 레24: 20, 신19:21절에 언급된다.
출애굽기의 동해복수법은 백성의 권리를 보존하기 위한 규정이다.
그래서 권리를 침해한 자에게 반드시 그에 상응하게 배상케 하라고 명령하신다.
레위기의 동해복수법은 여호와께 헌신된 이스라엘은 본토인이든지 거류민이든지
이웃에게 상해를 입힌 자에게는 상응한 벌을 주고
원래의 상태대로 갚게 하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신명기의 동해복수법은 신중한 재판에 대한 규례이다.
재판은 율법을 따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두세 증인의 증거를 통해서 판단해야 한다.
형제를 해하려고 위증한 자에게는 위증한 대로 벌하여 다른 사람이 두려워하게 해야 한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악한 자에게 행한 대로 갚아서 다른 자의 권리를 보존하였다.
그러므로 동해복수법은 더 큰 악으로 갚으려는 복수심을 제어하는 규정이 아니다.
이는 다툼을 해결하는 개인 간의 규정이 아니라
율법의 나라를 경영하는 통치질서이며 재판법이다.
원고는 재판정에서 동해복수를 요구할 것이며 재판장은 피해자의 요구대로 판결해야 한다.
율법은 범죄자의 권리도 보장하나 악을 행한 자는 그가 행한 만큼 벌을 받는다.
율법에서 연좌제는 없다(신24:16, 겔18: ).
형벌 중에서 매질은 40대를 넘기지 말라고 규정한다.
40대를 넘기는 것은 형제를 경하게 여기는 일이기 때문이다(신25: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고 명하신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라고 명하신다.
이에 대하여 누가복음에서도 마태복음과 대동소이하게 기록한다.
누가복음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희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고 하지 말라”
고 기록한다(눅6:27-30).
그러나 차이점은 누가복음은 보편적인 사랑을 강조하고
마태복음은 이스라엘 법정 다툼이 배경이다.
두 복음서가 말하는 내용은 대적하지 말라는 것이다.
두 복음서에서 겉옷과 속옷을 언급하는 순서가 바뀐 것은
겉옷과 속옷에 대한 유대인과 이방인의 가치 판단의 정도 차이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핵심은 작은 것을 요구하면 더 큰 것까지 주라는 것이다.
마태복음이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한 것은
상대를 멸시하고자 할 때 손등으로 뺨을 치는 유대인의 관습 때문이다.
따라서 말하는 핵심은 이 뺨을 치면 다른 뺨도 돌려대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의 재판정에서 하인에게 뺨을 맞자
잘못을 입증하지 않고서 때린다고 항의하셨다(요18:23).
바울도 빌립보 관헌의 불법한 대우에 강력하게 항의를 하였고(행16:37),
유대인을 대항하여 로마 황제의 법정에 상소하였다(행25:9-10)
이러한 사실은 예수의 말씀이 단순히 문자적인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는 말씀은 구제를 가리킴이 아니다.
이는 율법 아래에서 거래가 금지된 악한 자와의 요구를 거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종말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심으로 율법의 통치질서는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은 천국의 설립식이다.
예수께서는 천국 율법을 선포하셔서
모세가 전한 율법과 율법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하늘의 질서로 완성하신다.
구약의 하나님 나라인 이스라엘은 율법의 판결로 악을 제거하는 나라이다.
그러나 종말의 천국은 완전한 화해로 하나가 된 사랑의 나라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먼저 화해하시고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셔서,
나아온 제자들에게 천국 율법을 선포하셔서 세우신 나라이기 때문이다.
천국 율법은 모세율법의 토대에서 선포된다.
그러나 천국 율법의 선포는 모세율법의 정신을 해석한 연장선이 아니다.
이는 옛사람이 들었던 모세율법과
아들이 선포한 천국 율법을 대비한 종말론적이며 기독론적인 선포이다.
하나님 나라와 나라의 통치질서인 율법,
나라 백성이 살아갈 삶의 질서와 그들이 나타내야 하는 윤리는 서로 일치한다.
산상수훈은 모세율법의 인양이 아니라 이전에는 시행되지 않은 하늘의 질서이다.
이는 구약 아래에서는 감추었던 하나님의 참되고 온전한 뜻이다.
이는 이전에 시행된 율법과는 다른 하늘의 통치질서이다.
예수께서는 모세율법의 동해복수법을 천국 율법으로 대체하셔서
이스라엘과 모세율법을 하늘의 질서로 완성하신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동해복수법의 내용대로 백성들을 판결하여 율법의 강제력으로 악을 제거하였다.
그들은 율법에 부착하여 하나님의 옛 통치질서를 시행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세우신 천국은 사랑으로 하나가 된 나라이다.
예수께서는 모세가 명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 맹세하지 말라’ ‘악한 자를 대적하라’는
모세율법의 내용을 온전한 화해와 사랑으로 완성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율법을 완성한다(롬13:10).
하늘에 속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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