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聖誕節, Christmas)
영어 명칭인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께 드리는 미사(Christ mass)라는 단어의 줄임말로 우리의 구주로서
성육신하여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는 날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또 성탄절은 X-mas라고도 표기되는데, X는 희랍어로 그리스도를 뜻하는 크리스토스(kristovs)의
첫 글자로 이도 결국 크리스마스와 같은 뜻의 명칭입니다.
1. 기독교 역사에서 12월 25일이 성탄절로 지켜진 것은 상당히 오래된 전통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네 주간의 대강절 행사가 끝나면 교회 절기의 절정인 성탄절이 돌아온다.
예수의 탄생 사실에 대해서는 마태복음(1장, 2장)과 누가복음(1장, 2장)에 기록되어 있으나 그 시기는
호구 조사가 실시된 헤롯왕 때라는 기록 외에 구체적인 연대와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후세의 학자들은 성경과 천문학 관계 자료를 바탕으로 예수 탄생일을 거꾸로 추적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학설이 생겨났는데 10월설, 1월 6일설, 12월 25일설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서 12월 25일이 성탄절로 지켜진 것은 상당히 오래된 전통이다.
이러한 사실은 독일의 한 역사학자 모므젠(1817-1903)이 발견한 4세기 중엽 로마 역사가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이 자료에는「가이사와 바우러스의 임기 중 서기 1년 12월 25일 금요일, 신월(新月)로 15일째 되는 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좀더 세밀히 살펴보면 초대 교회 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로 인하여 성탄절을 잘 지키지 못하다가
A.D. 313년 기독교가 공인되자 이를 기념일로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그리스도의 탄생의 정확한 일시를 알 수 없게 되어 로마에서 이미 지켜지던 민속적 축일을
성탄절로 대체하였다. 그리하여 A.D.354년 로마 교회의 리베리우스(Liverius)교황 때부터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삼아 본격적으로 지켜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379년 동, 서로마 교회의 축제일 통일작업이 있은 후부터였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태어난 정확한 날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므로 이미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12월 25일 성탄절을
구태여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2. 기독교화된 성탄절을 지키게 된 유래
성탄절을 교회가 공식 절기로 지키게 된 것은 354년 로마 교회의 리베리우스 교황에 의해 12월 25일 성탄절이
공식적인 교회 절기로 교회력에 제정된 것이 그 시초라 하겠다. 성탄절이 교회의 절기로 지켜졌다는 최초의 기록은
필로칼루스력에 나타난다.
필로칼루스력의 336년 복사본을 보면 이 당시 로마에는 이미 성탄절과 관련된 풍습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동로마 교회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도 주현절(1월 6일)을 그리스도의 육적, 영적 생일로 생각하여
강탄일로 지켜오다가, 379년 동, 서로마 교회의 축제일 통일 작업으로 그날을 12월 15일로 변경하여 지키게 되었다.
그런데 12월 25일은 절기상 동지(冬至)와 가까운 날로서 로마에서는 농신제(농사의 신을 경배하는 축제로 서로
방문도 하고 가면을 쓴 채 길거리에서 술잔치도 벌였음)가 열렸으며.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낮이 길어짐을
기념하여 민속 절기 행사가 행해지는 때였다.
따라서 이들 민속적 세속 문화와 교회의 기독교 문화의 혼합은 불가피한 것이었기에 초기에 교회는 세속 문화의
유입을 막아 보려고 했으나 현실적으로 뿌리 깊은 세속 문화의 영향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교회는 이들 문화를 흡수하되 나쁜 점은 버리고 좋은 점은 살려 점차 기독교화시켜 나가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과 같은 형태, 즉 이제는 기독교화된 성탄절을 지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선교사들이 들어온 1885년 이후부터 성탄절이 지켜지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성탄절은 여러 나라에서 파견된 선교사의 영향으로 미국과 유럽의 풍습을 혼합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각 교회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풍성한 행사로 주님의 오심을 경축하고 있다.
3. 크리스마스 풍습
① 크리스마스 트리(Christmas tree)
성탄절에 크리스마스 트리, 곧 전나무나 소나무로 만든 성탄목(聖誕木)을 세우는 풍습은 서독에서 시작되었다.
아담과 이브에 대한 인기 있는 중세 연극의 주요 주제가 사과가 달린 전나무(낙원의 나무)였는데
그것은 에덴동산을 비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일인들은 아담과 이브의 축일인 12월 24일에 그들의 집에다 "낙원의 나무"를 세웠다.
그들은 그 나무에 과자(예수님의 몸을 상징함)나 초들을 이용해 장식했다.
이러한 관습이 18세기에 이르러 독일의 루터교 교인들 사이에 널리 행해졌지만 그것은 그 다음 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독일 전통에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19세기 초에 영국에 소개된 크리스마스 트리는 19세기 중엽에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독일의 알버트 공작에 의해 널리 보급되어 대중화되었다.
빅토리아시대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초, 과자 그리고 리본과 종이 사슬들이 달린 가지에 달아맨 데코레이션
케이크 등으로 장식되었다.
17세기 초에 독일인에 의해서 트리는 미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이 전통은 19세기에 이르러서 절정에 달했다.
그리고 미국의 선교사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한국에도 트리가 전해졌으며 오늘날의 화려한 트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독일에서 Martin Luther가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하늘에 별이 빛나고 그 밑에 상록수가 서 있는 모습이 Luther의 마음속에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상록수의 끝이 뾰족하여 마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 같이 보여 이와 같은 나무를 준비하여
자기 집 방에 세우고 거기에 별과 촛불을 매 달아서 장식을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② 크리스마스 카드(Christmas card)
크리스마스 때 감사의 마음을 적어 보내는 성탄절 카드가 정확히 언제부터 실시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최초의 카드는 1843년 영국의 헨리 코울 경을 위해 존 호슬리가 제작한
코올 - 호슬리(Cole-Horsley)카드였는데 이 카드를 같은 영국 사람인 조빈스라는 사람이 석판 인쇄를 이용해
수 천장씩 만들면서부터 판매되기 시작했다.
특히 1860년 새로운 원색 인쇄 기술이 발달하여 카드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값도 내리면서부터 성탄절이 오면
예쁜 성탄절 카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 주며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고 있다.
③ 크리스마스 실(Christmas seal)
실(seal)이란 우표와 같은 형태의 증표로서 성탄절 카드나 편지에 이 실을 붙이는 풍습은 1903년 덴마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덴마크의 한 우체국 서기였던 아이날 홀보엘(Einar Holboell)이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 가는 결핵 환자들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 크리스마스실의 판매를 생각해 낸 것이다.
1903년 덴마크에서 판매가 시작된 이래 그 판매의 취지가 알려지면서 급속도로 여러 나라에 전파되어 판매되었으며,
판매 수익금은 결핵 환자를 위해 쓰여져 그 치료와 예방에 큰 성과를 가져오게 했다.
한편, 과거 많은 결핵 환자들이 있었던 우리나라에서 결핵 퇴치를 위한 크리스마스실이 발행, 판매된 것은 1933년부터였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에 의료 선교사로 와 있던 미감리회 의료선교사 홀(Sherwood Hall)이 미국에서 실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와 1932년에 일제 총독부의 허가로 발행 작업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그 결과 1933년 한복 입은 자매와 소나무가 그려진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실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실 발행은 1940년 일제에 의한 미선교사의 강제 추방과 함께 중단되었으나 해방 후 대한결핵협회에서
다시 이 사업을 펴 오늘날까지 계속 발행하고 있다.
④ 크리스마스 캐롤(Christmas carol)
성탄절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그 소식을 알려 주며 성탄절의 기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바로 곳곳에서 들려오는 캐롤이다.
캐롤의 기원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성탄절 노래의 최초의 편집자는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라 할 수 있다.
그가 쓴 누가복음 1장,2장에는 마리아의 찬가(눅 1:46-56) 스가랴의 축가(눅 1:67-80)등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몇 편의 찬송이 실려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성탄절 캐롤의 기초가 되었다.
한편 성탄절을 즈음하여 불리는 캐롤은 사람들에게 예수 탄생을 전하고, 또 그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게 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⑤ 성탄절 양말
성탄절 전날 밤에 양말을 걸어 놓는 풍습은 산타클로스로 더욱 잘 알려진 성 니콜라스 당시로부터 내려오는 풍습이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소아시아의 미라(Myra)라는 도시를 관할하던 니콜라스 주교가 우연히 거듭되는
사업의 실패로 몰락한 귀족과 결혼 지참금이 없어 결혼을 못하고 있는 그의 세 딸에 대한 사연을 듣게 된다고 한다.
마음씨 좋은 주교는 그들의 딱한 처지를 외면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울까 하고 생각한 끝에 묘안을
하나 생각해 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성탄 전날 밤, 주교는 살며시 그 귀족의 집을 찾아갔다.
모두가 잠든 것을 확인한 주교는 준비해 간 지참금이 든 지갑을 굴뚝을 통해 안으로 던져 넣었는데
그것이 공교롭게도 말리기 위해 벽에 걸어 놓은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양말을 신으려다 양말 속에 들어 있는 돈을 발견한 세 딸은 너무나 기뻐했고,
누군지 알진 못하지만 은총을 베푼 그 사람과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렸다.
이후로 아이들은 뜻밖의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성탄절 전날 밤 잠들기 전에 양말을 걸어놓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풍습의 영향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불우한 이웃에게 자비와 구제의 손길을 베푸는 일들이 행해지게 되었다.
⑥ 선물 주기
성탄절에 행해지는 '선물 주기'는 동방박사들이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를 위해 황금, 몰약, 유향
같은 선물을 드린 것을 본받아 유래되었다.
남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은 소유하려고만 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극복한 것으로 주는 이의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남에게 주는 것은,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인간들을 대신해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⑦ 크리스마스 장작
고대 Scandinavia에서는 동짓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큰 화로에 불을 붙이는 전통이 있었다.
이것은 동지까지 해가 짧아지다가 이 날로부터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여 "태양이 다시 살아나는 것"
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다. 태양이 없는 겨울을 지내는 북극지방의 사람들에게
태양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전통이 영국에 와서는 큰 장작(크리스마스 장작 또는 Yule log)을 미리 준비해 두었다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벽난로(fire-place)에서 불을 붙여 밤새도록 태워 방도 따뜻하게 하고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도 돋우는 풍습으로 지켜 왔다
(8)촛불예배
예수는 "세상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요한복음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참 빛이시며... 그 빛이 어둠에 비치니 어둠이 이기지 못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천주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전날밤에 자정 촛불 미사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의 빛"되신 예수가 이 세상 에 빛으로 등장하시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개신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자정 촛불예배를 별로 지키지 않는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이외에 촛불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경우는 고난주간의 세족 목요일 저녁예배이다.
이 경우의 촛불예배는 크리스마스의 경우과는 정 반대이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가 죽으심으로 밝았던 세상이 다시 어두어지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칠언을 한마디씩 읽고 명상하든가 또는 합창단이 노래하고 나면
촛불을 하나식 꺼 나가는 것으로 명상이 계속되 는 동안 촛불은 둘 셋 넷... 꺼져
종국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왕촛대의 불만 남기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예배를 마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개 신교회 중에서 는 새문안 교회가 매년 크리스마스와 세족 목요일에 촛불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크리스마스 촛불예배는 1982년에, 고난음악 촛불예배는 1983년에 필자가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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