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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에 대해서는 상당한 오해

열려라 에바다 2023. 12. 26. 13:15

금식에 대해서는 상당한 오해가 있다.
하나님을 설득하는 힘이 더 강력한 기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금식을 하면 응답이 빠르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무속신앙에서는 정성을 동원해서 신을 감동시키려고 한다.
심마니는 산에 들어가기 전에 일정 기간 부부관계를 갖지 않는다.
신에게 정성을 바쳐야 하는 마당에 쾌락을 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정성이 극대화되면 자기를 괴롭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새벽마다 정화수 떠놓고 치성을 드릴 때 찬물로 목욕재계를 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몸을 씻는 것이라면 더운물이 낫다.
하지만 더운물로 목욕재계를 하는 법은 없다.
언제나 찬물이다.
자기를 괴롭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밀레종 전설이 왜 있을까?
종을 만드는데 어린아이를 넣으면 불순물이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소리가 더 탁해지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전설이 만들어진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 심리에 맞기 때문이다.
자식을 바치는 것보다 더한 정성이 어디 있을까?
사람들한테는 신을 감동하게 하려면 정성을 동원해야 한다는 본성적인 종교심이 있다.
이런 식의 생각이 교회에 들어올 수 있다.
그러면 금식 기도가 밥 먹고 하는 기도보다 더 센 기도가 되는데, 설마 하나님이 우리가 밥 먹고 기도하는지 밥 굶고 기도하는지에 따라 응답을 달리 하실 만큼 유치한 분일까?
에스더가 금식 기도를 하지 않고 밥을 먹으면서 기도했으면 유다 민족이 다 멸망했을까?
사람은 먹어야 힘을 낸다.
사흘만 굶으면 성경책도 무겁게 느껴진다.
금식은 힘의 근원을 스스로 끊는 행위이다.
그러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결국 금식은 “저는 대책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만 의지합니다.”라는 고백이 된다.
기도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신앙고백인 것처럼 금식 또한 그렇다.
에스더가 이런 금식을 삼 일 동안 했다.
성경에서 삼 일은 새로운 국면 전환을 위한 기간으로 자주 나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까지 삼 일 길을 갔고 히스기야가 병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삼 일만에 낫게 하겠다고 하셨다.
요나가 물고기 배에 삼 일을 있었고 예수님이 삼 일만에 부활했다.
에스더가 그런 삼 일을 금식하고 아하수에로를 찾아간다.
“이역만리 머나먼 땅에서 복음 들고 수고하는 선교사들의 사역에 은총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기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도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렇게 기도했으면 그다음에는 그 기도 내용을 자기에게 적용해야 한다.
선교헌금은 한 푼도 안 하면서 그렇게 기도만 하는 것은 무효다.
마치 일주일 내내 공부는 한 시간도 안 하면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격이다.
에스더가 삼 일 동안 금식하면서 어떤 기도를 했을까?
아마 죽음을 무릅쓰고 아하수에로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또 아하수에로가 그런 자기를 용납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고, 아하수에로의 마음을 움직여서 자기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면 죽음을 무릅쓰고 아하수에로 앞에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
종종 기도를 하나님을 움직이는 리모콘인 양 엉뚱한 기대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법은 없다.
기도를 했으면 그다음에는 그 기도에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할 일을 대신 해주시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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