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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청년의 연애와 결혼

열려라 에바다 2023. 12. 27. 14:35

" 기독청년의 연애와 결혼 " (창2:18)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Ⅰ. 성경에서 말하는 결혼
Ⅱ. 결혼의 소명
Ⅲ. 결혼의 준비
Ⅳ. 연애

 Ⅰ. 성경에서 말하는 결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당신이 직접 만든 기관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정이고, 둘째는 교회, 그리고 세 번째로 국가입니다. 그러나 국가는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기관이 아니라, 인간의 고집을 허용하신 것임으로 하나님의 직접 만드신 신적인 기관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신적기관 결국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이 세우신 신적인 기관, 하나님의 뜻과 의지가 담겨져 있는 조직체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기관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 땅에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신앙에 눈을 뜨게 되면, 이 두 가지 기관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국 이 두 기관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그의 영성, 신앙의 깊이, 신앙인격의 성숙도를 점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빛 아래서 오늘은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고, 어떻게 가정을 세우고, 연애를 할 것인지 성경의 원리와 신앙의 빛 아래서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오늘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결혼보다, 연애에 더 많은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깊은 영적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된 비유가 가정의 남편과 아내입니다. 그리스도와 신자와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이 비유가 의미하는 중요한 것은 이 두 관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영적인 연합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신자,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의 본질은 영적인 연합체입니다. 이 비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성경은 남편과 아내를 예로 든 것입니다. 즉 남편과 아내는 그야말로 영적인 연합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할 때 이런 영적인 연합을 남편과 아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자연인이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자기 깨어짐, 자기 버림을 경험합니다. 이런 경험을 구원론적으로 회심의 경험이라고 하고, 이 경험을 통해서 그는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됩니다. 즉 그리스도의 참 신부가 되어 결혼을 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한 일원으로 섬기게 됩니다. 그 때부터 그 사람은 이제 자기 생각과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뜻과 목적을 따라 살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삶이 신자의 성화의 삶이고, 이러한 성화의 삶을 통하여 그는 거룩해져가고, 하나님의 백성다워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여인이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는 그는 자기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남편의 뜻에 따라(남편도 마찬가지임) 살게 됩니다. 가정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개별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 인간이 참으로 인간다워지고,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연애, 결혼, 가정 신자가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사랑함으로 자신의 존재가 그리스도 안으로 함몰됨으로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가 살게 되는 거룩한 삶을 사는 것처럼, 신랑과 신부가 가정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개별적 존재의 목적을 가정에 함몰함으로 가정을 위해서 자신들이 죽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애는 반드시 결혼이라는 지향점, 목표점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결혼은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러한 연애관, 결혼관 가정관이 깨어지고 있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연애, 결혼, 가정은 자신의 개별적 자아를 세우고, 도와주는 것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기를 위하여 연애하고, 자신을 위해서 가정을 세우고, 그것이 자신과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연합 한 여자의 신랑인 남편과 한 남자의 여자인 아내는 개인적인 존재이기 이전에 가정이라는 공적인 기관, 신적인 기관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이 관계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정신적이고, 영적인 연합이 강하게 있느냐 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결혼을 했는데 믿지 않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렇다면 영적인 연합이 가능할까요? 이런 상황에서는 완전한 영적인 연합은 불가능하고, 잠정적인 연합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남편과 아내가 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의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고서는 완전한 영적인 연합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결혼, 선택인가? 의무인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결혼이라는 것은 꼭 해야 하는 것일까요? 결혼을 하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일까요? 창2:18절의 본문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신 이유에 대해서 본문은 뭐라고 합니까?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라고 합니다.


1.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사람이라고 번역된 히브리 단어가 아담(!d;a;)입니다. 앞에 관사가 있으니까? 그 아담( !d:a;h) 즉 창세기 1장에서 흙으로 만든 아담을 가리키는 것이지, 보편 인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일차적 의미로 독처하는 것이 선하지 않는 것은 아담 자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독처하다는 바드(dB) 라는 단어는데, 기본적인 뜻이 분리되다. 고립되다.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좋지 못하다는 토브(b/f)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 아담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홀로 있는 것)이 선하지 못하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리되어 있다라는 의미 속에는 원래 아담은 하와와 하나로 되어 있었다. 라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하나로 되어 있는데, 분리된 것 처럼 느껴집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각각 개별적 인격자로 독립체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없는 교회가 교회 될 수 없는 것처럼, 교회의 머리로서 그리스도가 항상 계시는 것처럼, 남자와 여자도 하나의 연합된 존재로 있어야 합니다. 결론은 사람은 결혼을 해야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독신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이후에 논의 하겠습니다.) 한 사람의 개별자가 나와 다른 타자를 내 인생과 존재 속으로 받아들임으로 자기 깨어짐, 자기 버림 속에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이로서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 나를 찾는 여행 "그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은 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셨을 때 이미 그 속에 하와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연합으로 하나님의 선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교회가 있고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의 배우자를 찾고,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좋은 배우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는 그리고 한 가정을 세우는 좋은 배우자가 되도록 준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은 배우자를 만날까? 나 중심으로 생각을 합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좋은 배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연애를 하는 것, 결혼을 준비하는 것은 그냥 그것 하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인생 전체 속에 연애가 있고, 결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준비는 나를 준비하는 것이됩니다.
 

2. 그를 위하여 두 번째로 "그를 위하여"의 의미를 해석해 보겠습니다. 본문은 하와가 아담을 위하여 돕는 베필이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여자가 남자의 종속적 존재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돕는 베필은 종속적 의미가 아닙니다. 돕는 베필은 히브리어로 "에제르 네게드"입니다. 에제르는 군사 용어로 응원군이라는 뜻입니다. 적군에게 밀리고 있을 때 응원군이 와서 전세를 뒤집는 군대를 에제르 라고 합니다. 이것은 전쟁 승패의 절대적 위치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베필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네게드"라고 합니다. 이 네게드는 베필이라는 의미보다, ~의 맞은 편에, ~과 상응하여(correspondence) 그런 뜻입니다. 다시 말래서 아담이라는 존재와 상응하는 그와 같은 존재로 하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을 번역하는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와 상응하는 도울 자를 만들겠다."

 존재적 파트너 하와는 아담과 같은 그와 상응하는 존재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의 사역은 단지 아담을 도와주는 조력자 정도가 아닙니다. 아담의 사역과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파트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의 머리뼈에서 취하지 않으시고, 또는 다리뼈에서 취하지 않으시고, 심장 가까이 있는 가슴뼈에서 취하신 것입니다. 머리뼈에서 취했으면, 아담을 발을 수 있는 위치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다리뼈에서 취하였으면 밟힐 수 있었을 텐데.. 가슴뼈에서 취하심으로 아담과 같은 위치, 그의 파트너, 그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결혼은 영적인 결합인 동시에, 육체적인 결합으로 창조의 질서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만약에 모든 인간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류는 자손을 번식하기 위해서 혼외 출산을 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창조의 질서를 깨지게 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이룰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죄가 들어온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복잡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과 인류의 관계가 파괴된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도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가장 이타적인 관계가 서로의 욕망으로 충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정 안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가정은 또 다른 대립의 장이 된 것입니다.

  결혼: 죄의 극복의 문제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도 결국 신앙의 원리 안에서 본다면, 죄의 극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질의 다소나, 세상에서 말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결국 가정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자기 안에 있는 육욕적 자기 사랑을 극복하고, 성화의 삶, 거룩한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가정의 원래 모습의 회복의 정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처음부터 불신자와 결혼하기로 결정한 사람은 신앙 안에서 가정을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같은 신앙도 결혼하면 깨질 수 있는데, 하물며 신앙 자체가 없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정말 도박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고, 자아 성취가 아니라, 자기 깨어짐이고, 번영이 아니라, 성숙함이다. - 한성민

 
Ⅱ. 결혼의 소명

카톨릭에서는 결혼을 매우 성스러운 종교 행위로 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결혼을 가장 세속적인 일, 세상적인 일로 보니다.

창 6:1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눅 17: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결혼이 모두 성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결혼을 하는 사람이 결혼을 통하여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고, 이루고자 하는 것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그 결혼이 거룩할 수도 있고, 세속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그 자체에 성스러운 힘이 있다고 하면 안됩니다.

소명이 있는가? 그렇다면 독신으로 사는 것은 거룩한 것일까요? 중요한 것은 결혼을 하든 독신으로 살든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거룩한 결혼이 있을 수 있고, 세속적인 독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혼이든 독신이든 소명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결혼을 해야 합니다. 독신은 특별하게 소명을 받고, 은사가 있는 사람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을 왜 하는가? 나이가 차서.... 결혼을 안하면 안되니까? 주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또 어떻게 하다가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그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이든 독신이든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준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누구와 할것인지, 그리고 결혼을 통해서 무엇을 이룰 것인지, 이런 것이 소명이 있는 결혼입니다.

결혼하면 행복할까요? 여러분 결혼을 하면 행복합니까? 여러분 생각에 결혼을 하면 행복할거 같습니까? 영국 속담에 집을 사면 1년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말을 사면 한 달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면 일주일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류의 선조들이 오랜 역사와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것입니다. 연애는 즐겁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얽매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결혼은 실제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애를 생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연애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혼은 생활입니다. 삶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결혼 생활, 가정생활이라고 합니다.

비유를 하면 비유를 하자면 연애를 하는 것은 노을 비추는 저녁 바다를 바라보며 시를 읊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참 좋습니다. 배고파도 좋고, 추워도 행복합니다. 비가와도 낭만적입니다. 그런데 결혼은 해지는 저녁 바다에 배타고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조그만 배타고 망망대해를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배고프면 고통스럽고, 비오면 추워집니다. 거기다 폭풍까지 오면, 이것 죽을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애는 준비가 없어도 됩니다. 그냥 눈 맞고, 번개 치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을 위하여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딱 3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살아야 합니다. 함께 폭풍 치는 바다는 항해해야합니다. 한 사람은 노를 젓고, 한 사람을 물을 퍼내야 합니다. 실제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소명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Ⅲ. 결혼의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육체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2. 인격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신앙이 좋은 사람과, 인격이 좋은 사람 두 사람 중 오직 한 사람만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와 결혼을 하겠습니까? 신자에게 있어서 신앙은 정말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고, 매우 중요한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나 신앙이라는 것도 결국 인격이라는 그릇에 담겨지게 됩니다. 신앙이라는 영적인 가치가 우리의 인격에 영향을 주어서 인격도 변해야 됩니다. 어쨌든 신앙이 담겨있는 그릇은 인격입니다.

인격적인 성숙 모든 사회생활이 마찬가지 이지만, 특히 결혼에 있어서 인격적인 성숙은 매우 중요합니다. 돈이 없으면 벌면 됩니다. 그러나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않는 사람에게 돈이 있으면 그는 언제라도 그 돈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돈이 없으면 자신이 가정의 가장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압니다.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않으면 가정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신앙: 인격의 총합 이것은 신앙이 좋은 사람도 만찬가지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인격의 총합니다. 그래서 신앙이, 하나님의 은혜가 인격에 영향을 주지 못하면 그것은 충분한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현재의 신앙의 상태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의 인격은 그의 신앙의 수준을 설명해 줍니다.

지금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그 신앙은 가변적인 것입니다. 삶의 위기와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 올 때 그의 신앙이 그의 인격을 붙잡지 못하면, 그의 모난 인격이 신앙도 무너뜨립니다. 그래서 가장 안정적인 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인격적 성품이 있느냐 입니다. 즉 영적인 성품이 얼마나 견고하고 깊게 맺혀져 있는가 입니다.

자연적인 성품, 영적인 성품 사람의 성품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자연적인 성품과 영적인 성품입니다. 자연적인 성품은 그의 본성, 환경(양육 받은 부모님의 영향), 교육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사람의 성품과 기질 중에는 조용한 성품도 있고, 까다로운 성품도 있습니다. 그것은 윤리적인 영역에서는 선악의기준이 안됩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 만나서 양육을 잘 받고, 성실하게 공부하고, 자신의 책임을 잘하는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무난한 삶을 삽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성품입니다.

그런데 이 성품 말고 더 중요한 성품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성품입니다. 영적인 성품은 교리에서 말하는 성화의 삶을 통하여 자신의 인격에 맺혀진 성품입니다. 부단한 자기 깨어짐, 자기 부인, 자기 버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고, 복음의 정신을 따라 사는 삶이 있을 때만 만들어지는 성품입니다.

콩깍지가 씌워서 그런데 연애를 하면 상대방에 대하여 흔히 말하는 콩깍지가 씌워서 그 사람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상대방의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에게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결혼을 하게 되면 잘해도 90인데, 못하면 생고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가 걸어온 인생의 길을 보고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의 인생 속에서 만들어진 그의 성품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연적인 성품도 중요하지만, 영적인 성품도 매주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변화된 그의 성품, 성화의 삶을 통해 열매 맺은 삶, 자기 깨어짐과 자기 죽음 속에 경험된 신적이고, 초월적인 은혜가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3. 사회적인 성숙
사회적인 성숙이 없이는 결혼하면 매우 힘이 듭니다. 대학생인데 사랑한다고 결혼을 하려고 한다든지, 아직 직업도 없는데 사랑 하나 만으로 하려고 하는 것은 훈련 받지 않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성숙한 남녀가 되어야 가정에 헌신하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게 됩니다.

4. 신앙적인 성숙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정말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녀와 결혼하지 말라!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압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결혼을 하게 되면 미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진리입니다. 사랑과 미움의 감정은 항상 공존합니다. 지금은 너무 사랑해서 상대방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데, 미음의 감정이 언제라도 변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도 미울 때가 있고, 함께 살아온 동기간도 싫을 때가 있는데, 아니 20년,30년 다르게 살았던 사람을 단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죽을 때 가지 사랑하고 용납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감정의 균열이 생길 때 그렇다면 문제는 이것입니다. 이런 감정적인 균열이 생길 때, 인격적인 결함의 문제가 생길 때, 의견에 차이가 깊이 있을 때 어떻게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이 없는 사람은 이러한 균열이 생길 때 회복의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의 가정이 많이 깨지는 것입니다. 법적으로는 깨지지 않았어도, 이미 정신적으로는 이혼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정이 있음에도 남자친구, 여자 친구 사귀는 유부남 유부녀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 있어야 복원과 회복이 가능합니다.

저 사람은 용서가 안 되는데,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용서하라고 하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아래서 서로 용납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부부관계에서도 필요한 것인 헤세드의 사랑이고, 아가페의 사랑이며, 까리따스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적인 성숙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가정 배경도 중요합니다. 살아온 과정도 중요하고, 실력이 있느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고,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오직 신앙적인 성숙이 있어야지만, 부부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연합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찾듯.. 그래서 신앙 없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안됩니다. 미래의 여러분의 배우자는 아주 탁월한 신앙인격과 성품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 신앙인격과 성품은 전혀 없는데,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만나고 싶은 그런 신앙과 인격을 가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나의 배우자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Ⅳ. 연애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연애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연애가 가지고 있는 점을 공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애의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을 설명하고 그 대안에 대해서 논하겠습니다.

1. 연애의 긍정적인 점

가정의 기초는 사랑입니다. 연애도 결국 사랑을 함께 배워가는 것입니다. 연애감정에서 느끼는 사랑은 순간적이고, 감정적입니다. 그러나 가정의 기초에서 말하는 사랑은 더 깊고 견고한 것입니다. 연애는 이러한 가정의 가장 기초인 사랑을 함께 배워가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충분한 연애기간을 가지고, 사랑하고, 서로를 용납하고, 이해하는 경험을 한 커플은 결혼의 기초인 사랑을 더 깊고 견고하게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연애를 결혼에 필수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연애에서 느끼는 감정적인 사랑은 결코 결혼 생활에 필요한 사랑과 신뢰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연애 감정이라고 하고, 결혼 생활이라고 합니다. 한 번 이 말을 바꾸어 보십시오. 연애 생활, 경혼 감정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쨌든 연애를 하면 결혼 생활에 필요한 서로를 독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됩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이러한 감정적인 강점은 결혼 생활에도 매우 긍정적인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연애 기간이 긴 연인들이 결혼을 하면 그래서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랜 연애를 통해서 산전, 수전, 화생방전까지 겪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폭이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연애는 긍정적입니다.

2. 연애의 부정적인 점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겠습니다. 연애를 하면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됩니까? 덜 사랑하게 됩니까? 연애를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긍정적인 효과를 줍니까? 부정적인 효과를 줍니까? 연애를 하면 학교 성적이 오릅니까? 떨어집니까? 연애를 하면 엄무 효율이 높아집니까? 낮아집니까?

마음으로 하는 일 인생이 다 그러하겠지만, 특히 연애는 우리의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 받은 인생은 일평생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 신자의 소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를 하면 우리 신앙에 손해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도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여자 친구를 열애하는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충만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쉽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잘 하려면 반드시 우리의 마음이 바쳐져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이성에게 나뉘어져 있으면 아무래도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 만만치 않는 것입니다.

성숙의 방해 이런 점에서 연애를 우리의 성장과 성숙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열렬하게 연애하면서 공부를 잘하기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만만치 않는 것입니다.

특히 학생은 자신의 분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흔히 고등학교 때 이성 친구 사귀는 것을 막을 때 부모님이 쓰는 전략이 대학교에 붙으면 이성친구 사귀라고 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대학교에 가면 자유롭게 이성친구 사귀는 것이 일반화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 친구 없는 학생은 무엇인가 모자란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 세상의 풍조에 속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 열심히 해야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대학생때 대학원 때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사실 고등학교 공부는 공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짜 깊은 학문을 연구하고, 한 분에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참 공부할 나이에, 연애를 하며 사귀고, 좋아하고, 싸우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현재의 나: 과정의 총합 여러분의 젊음은 30년 후에 지불해야 할 만기 어음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떻게 있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모습은 지금까지 살아온 여러분의 인생의 총합입니다. 과거에 게으르게 살았으면 그 게으름에 대한 대가를 지금 받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열렬하게 살았으면 그 열렬함의 대가를 지금 경험하는 것입니다. 20살은 10대에 어떻게 살았느냐를 설명하는 거울이고, 30대는 20대를 어떻게 살았느냐를 설명하는 거울입니다. 그런 점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자신의 분야에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고, 또 여러분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연애는 우리의 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때보다 마음이 더 쉽게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3. 정욕의 위험

또한 연애를 하면 정욕의 위험이 여전히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서로에게 범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랑하게 되면, 자꾸 둘만 있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둘만 있지 않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둘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꾸 배타적인 관계만 되는 것입니다. 만족이 안 됩니다. 그러면서 좋은 관계로 지속되는 좋은데, 사실 젊은 청춘남녀가 건강하고 육체적으로 욕구가 있는데 그 시험을 견디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더욱이 요즘같이 성 문화가 자유로운 시대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함께 연애하고, 여행 다니고, 하룻밤 자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에서 여자 친구,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은 섹스 파트너가 있다는 의미가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의 육체적 정욕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매우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랜 사연 속에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연애 기간이4-5년 되는데,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겠습니까? 굉장히 많은 시험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향하여 마음이 열리면, 육체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입니다. 그런 과정 속에 많은 사연 속에서 결혼을 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면죄부는 되지만, 신앙적으로는 만만치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사회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되지만, 신앙의 영역에서는 별도의 회개와 회복의 과정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에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더 어려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극복하기 어려운 죄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신앙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죄를 세 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가 살인이고, 두 번째가 배교이며, 그리고 세 번째가 성적인 범죄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 위험들을 다 안고 연애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청년을 향한 권면

결혼의 계획이 없으면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을 해야 합니다. 결혼 계획이 세워지지 않은 경우에는 연애하지 말고, 자신의 생활에 열심히 하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미래에 만날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고, 그를 위해 자신을 준비해야합니다. 자신에 세울 가정을 위해 준비하면서 신앙과 인격, 그리고 실력 성숙에 전념하라는 것입니다.

학생이면 열심히 공부하고, 그냥 학과 학점 따는 수준으로 하지 말고, 미래의 자신과 가정을 위해 그리고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며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직장인이면, 자신의 업무에 자부심을 갔고,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겨우 월급 몇 푼 때문에 일하지 말고 그 분야에서는 최고가 되겠다는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합니다. 업무가 어려우면 업무 능력을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힘쓰고 점심 전력해야 합니다.

인생의 계획표 여러분의 인생에 대한 계획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몇 년 후에 뭐하고, 어학연수 가고, 자격증 따고, 대학원가고.. 그런 준비를 하면서 결혼을 계획하고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뜬금없이 살다가 좋은 자매 만나면 장가들고, 백마 탄 남자 나타나면 결혼하고, 그런 생각으로 살면 안 됩니다. 그냥 살다 보니까? 나이차면 결혼하고, 그렇게 하지 말고, 소명을 찾는 것처럼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 속에 적절히 개입하셔서 결혼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그런 관점에서 청년들을 지도하는 교역자로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신앙의 성숙과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지체들을 하나님께서 그의 배우자를 책임져 주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성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되지 말고, 매력 있는 사람이 되도록 여러분을 준비해야 합니다. 생명이 있으면 생명이 오는 것처럼, 매력이 있으면 이성이 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붙잡아 주셔서 사회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하면 배우자를 보내주십니다. 그런 믿음 안에서 노력하고, 애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지금 연애하고 있는 지체들, 그리고 앞으로 연애할 지체들은 어떻게 연애를 해야 할까요?


1. 연애 기간을 너무 길게 하지 말아야합니다. 연애기간을 줄이도록 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결혼 상대자라는 확신이 들고, 이미 결정되었으면, 가능한 빨리 결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힘들어도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다.

2. 연애를 할 때 공통된 신앙의 추구 점을 찾아야 합니다.(서로를 향한 성숙에 도움을 주어라) 교회는 다니는데 주일예배만 참석한다. 그 정 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심지어 회심하지도 않았다면, 상대방이 회심하도록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요즘은 교회 다니는 사람과, 회심한 사람을 구분해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해서 신앙적인 공통점과 동질의식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 동질감 한 사람은 교리를 공부하면서 말씀을 연구하자고 하고, 한 사람은 찬양 집회 가서 찬양하고 기도하자 그러면 그 사람이 신앙적으로 맞을 수 있겠습니까? 남자는 교회에서 제자훈련 받고, 여자는 기도원 가서 은사집회 참여하고, 그 두 사람이 만나면 무슨 신앙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친밀감과 동지애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신앙적으로 함께 같은 시야를 가지고, 인생과 교회, 신앙과 인격과 가정을 볼 수 있는 같은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친밀함 속에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연합할 수 있게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신앙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신앙 안에서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항상 만나는 이야기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가방 얼마주고 샀나, 옷이 명품이다. 그런 이야기 가지고 두 사람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연합할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이 만나서 메타담론을 나눌 수 없는데, 하나님의 나라와 진리의 내용과 주님께서 말씀으로 나를 찾아온 사건을 이야기 할 수 없는데 어떻게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청교도들은 결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일평생 함께 걸어갈 신앙의 인생의 동지를 만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안목, 육체의 정욕으로 보지 말고, 인간의 겉모습을 뛰어넘는 그의 내면세계를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서로의 관심 자체가 복음, 신앙, 교회, 진리, 사명, 이런 것이라면 함께 나누고 공유할 것이 얼마나 많고 좋겠습니까? 함께 있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두 사람의 성장과 성숙은 더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주일의 모든 사역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을 나누고, 영혼을 돌보고 섬기는 어려움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우리의 연애가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두 사람의 관계가 서로를 향한 창조적인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신앙과 인격에 있어서 더욱 그러합니다.

2. 함께 한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연인의 관계를 배타적이기 때문에 두 사람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청춘남녀가 두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은 곧 육체에 집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적인 기쁨보다 함께 책을 공부한다든지, 설교나눔을 한다든지, 섬기고 있는 영혼들의 영적 변화에 대해서 나눔으로 의식적으로 관심사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한 선한 일로 두어야 합니다.

3. 위험한 환경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젊은 남녀가 어두운 밤에 차 안에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또 요즘에는 왜 이렇게 방이 많이 있습니까? 노래방부터, 비디오방.... 이런 닫친 곳보다 개방된 환경에 있어야 합니다.

결론
오늘날 연애나 결혼은 거의 자기만족, 가지 사랑을 확장하는 방식을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교회가 경계해야할 세상 사랑이고, 육욕적 자기 사랑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연애는 결혼의 준비 과정 속에 있어야 하고, 결혼은 가정이라는 하나님의 나라의 신적 기관을 위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것은 피조물인 나의 존재를 찾는 신앙의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정 속에서 위험도 있고, 고난도 있고, 상처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롭게 헤쳐 나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가정,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섬기는 가정이 되도록 우리 모두 성숙해 가야 할 것입니다.

참고도서

1. 혼인과 가정 (김홍전, 성약)
2. 혼인의 신성함 (최낙재, 성약)
3. 결혼신학 (존 파이퍼, 부흥과 개혁사)
4. 나는 너와 결혼하였다. (생명말씀사)
5. 폴 스피븐스의 결혼이야기
6. 결혼 건축가 (두란노)
7. 결혼을 지켜야 하는 11가지 이유 (김양재, 두란노)
8. 우리들의 거듭난 결혼이야기 (IVP)
9. 결혼설명서(조현삼, 생멸말씀사)
10. 매력남녀-성공적인 인성관계 (베드로서원)
11. 주의 형상 나의 형상(순출판사)
12. 사랑과 행복의 초대(양은순)
13.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IVP)

해석 및 적용질문

1. 하나님이 세우신 신적 기관은 무엇이며,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2. 남편과 아래, 교회와 신자와의 관계를 설명해 봅시다. (영적인 연합의 측면에서)
3. 신랑과 신부가 가정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자기 존재가 함몰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4. 믿지 않는 자와 결혼을 하면 왜 영적인 연합을 이룰 수 없습니까?
5. 본문에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는 어떤 뜻입니까?
6. 설교자는 결혼이란 나를 찾는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7. 하와는 아담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종속적인 존재가 아님을 설명해 봅시다.
8. 설교자가 말하는 "결혼 죄의 극복의 문제"란 무엇입니까?
9.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고, 자아 성취가 아니라 자기 깨어짐이고, 번영이 아리라, 성숙함이다. 무슨 의미입니까?
10. 성경에서는 결혼을 매우 세속적인 일로 말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11. 당신에게는 결혼의 소명이 있습니까? 독신의 소명이 있습니까? 그 이유를 나누어주세요?
12. 왜 영국인들은 결혼을 하면 일주일 행복하다고 했을까요?
13. 설교자가 연애 감정과 결혼생활을 비유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결혼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15. 당신은 결혼 배우자로, 신앙이 좋은 사람, 인격이 좋은 사람 어떤 사람을 선택하겠습니까?(둘 중에 하나만, 그렇게 선택한 이유는?)
16. 인격적 성숙이 결혼 생활에 왜 중요합니까?
17. 당신에게 있어서 인격적으로 성숙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18. 결혼준비 과정에 영적인 성품의 왜 중요합니까?
19. 당신에게 있어서 영적으로 변해야할 성품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0. 결혼 생활에 신앙적인 성숙이 왜 필요하고, 중요합니까?
21. 연애의 긍정적인 점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주세요?
22. 연애의 부정적인 점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주세요?
23. 설교자는 "결혼의 계획이 없으면 연애하지 않는 것이 좋다." 라고 권면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왜 그러합니까?
24. 연애하고 있는 지체들을 향한 구체적인 권면은 무엇입니까?

◉ 배우자를 위한 구체적인 기도제목 10가지를 만들어봅시다.
◉ 당신은 미래의 배우자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 당신이 결혼을 하기전에 변화되고, 성숙되고,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서 당신이 구체적으로 준비할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당신은 어떤 남편 상, 아내 상, 부모상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런 상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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