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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왕의 사역 : 이방인 백부장의 종을 고치심

열려라 에바다 2024. 2. 9. 16:38

천국 왕의 사역 : 이방인 백부장의 종을 고치심(마8:5-13)

 

천향추천 0조회 1024.02.09 08:47댓글

 

마태복음은 산상수훈을 선포하셔서 천국을 설립하신 후에(마5:1-7:27)

세 이적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긍휼과 자비의 왕이심을 강조한다(마8:1-17).

마태복음은 예수의 사역을 제자를 부르신 단위로 언급한다.

첫 번째 단위는 제자 마태를 부르심까지이다(마9:9-12).

이 단위는

    “인자는 머리를 둘 곳이 없다.

     그러나 너희는 나를 따르라”

는 말씀을 중심으로 앞과 뒤에서 세 이적을 배열한 대칭 구조이다.

대칭 구조는 히브리 문학의 일반적인 형식이다.

제자 마태 앞에 배치된 첫 번째 이적은 유대인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신 사건이다(마8:1-4).

이와 대칭되는 여섯 번째 이적은 예수께 나아온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 주시는 기사이다(마9:1-8).

두 번째 이적은 이방인 백 부장의 종을 치료하신 기사이다(마8:5-13).

이와 대칭되는 다섯 번째 이적은 거라사 땅에서 많은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신 사역이다(마8:28-34).

세 번째 이적은 제자 베드로의 장모를 치료하시고

집에 찾아온 귀신들린 자와 병든 자를 고쳐주신 사역이다(마8:14-17).

이와 대칭인 네 번째 이적은 바다의 풍랑을 잠잠하게 하셔서 제자들을 구원하신 사역이다(마14:22-33).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한 백 부장이 나아왔다.

그는 유대 땅에 주둔한 로마 병사 백 명을 지휘하는 고급 지휘관이다.

백 부장은 할례를 행하지 않은 부정한 이방인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나 십일조를 드릴 수가 없다.

당시의 가버나움은 로마군이 주둔한 주둔지이다.

이러한 가버나움에 예수께서 들어오시자

백 부장이 나아와서 자신이 거느린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주기를 구하였다.

이에 예수께서는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고 말씀하신다(마8:5-7).

그러나 그는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나이다”

라고 고백한다(마8:8-9).

이러한 백 부장의 믿음에 의한 행동과 고백에,

언약 밖에 있는 이방인 백 부장의 예상 밖의 언행에,

예수께서는 놀라시고 기이히 여기셔서

    “내가 참으로 이스라엘 중에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지 못하였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말씀하신다(마8:10-12).

 

여호와께서는 모든 자의 하나님이시며 어디에서나 계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다.

이는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하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역사를 동행하신다.

그런데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다(갈4:4).

이는 성전에 계신 여호와께서 사람으로 유대 땅에 오신 것이다.

이처럼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의 오심은 하나님의 의의 결과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심의 결과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난 것이다(롬3:21).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이다(롬3:21-22).

이는 율법도 하나님의 신실하심 결과물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율법과는 다른 하나님의 의,

곧 옛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율법 아래에서 크고 먼저 된 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거절하나

가장 작고 나중 된 자인 이방인 백 부장은 예수께 나아온 것이다.

이방인 백 부장은 믿음으로 예수께 나아와서 하인을 고쳐주기를 청한다.

백 부장의 믿음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다.

이는 예수에 대한 소문을 접하고 믿은 결과물이다.

그의 믿음은 유대 땅에 주둔한 로마군의 지휘관으로서 유대 사회의 동향을 접한 결과물이다.

그는 갈릴리로부터 퍼져나가는 나사렛 예수에 관한 소문을 접하였다.

많은 무리가 한 사람을 따르는 일은

점령군 지휘관으로서 예의주시해야 하는 첩보 사항이기 때문이다(마4:23-25).

 

이방인 백 부장은 예수에 대한 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면서 회당에서 가르치고 전파하신 천국 복음을 접하게 된 것이다(마4:23).

그는 온 수리아 지역과 유대 땅에 퍼진 예수에 관한 소문,

예수께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다는 소문,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몰려든 허다한 무리가

예수를 따른다는 첩보를 보고받고 있었다(마4:23-25).

유대 땅을 점령한 로마군은 유대 사회의 동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평소에도 백 부장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라는 인물에 관심이 많았다.

경건한 유대인들이 바라고 소망하는 메시야에 관한 정보에 관심이 있었다.

갈릴리로부터 퍼지는 소문의 주인공 예수에서 메시야라고 믿었다.

예수의 가르침과 행하신 기사와 이적이 메시야임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마4:23-25).

그래서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백 부장은 예수께 나아온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백 부장에게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고 말씀하신다(마8:7).

그러나 그는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시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라고 고백한다(마8:8).

이러한 백 부장의 고백은 이방인으로서는 놀라운 일이다.

할례를 행하지 않은 이방인이 할 수 없는 행동이고 고백이기 때문이다.

이방인은 언약 밖에 세워진 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율법을 가지지 않은 자들이다.

그런데 백 부장은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알고 주라고 고백한다.

예수께서 만유를 다스리고 주관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고백한다.

이러한 고백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시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

이다.

이러한 믿음은 점령군의 지휘관으로서 유대인들이 섬기는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이 가진 여호와의 율법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결과이다.

갈릴리 지방에서 퍼지는 예수에 관한 소문과 정보를 흘려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방인 백 부장은 율법을 갖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경건한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을 알게 되었다.

갈릴리에서 퍼지는 소문과 정보의 주인공인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야임을 깨닫고 나아온 것이다.

 

백 부장은 로마군의 고급 지휘관이며 이방인이다.

따라서 유대인처럼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하거나

어려서부터 부모와 선생으로부터 율법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유대인 문둥병자처럼 여호와 앞에서 부정하다.

그러나 로마군 백 부장이라는 직위는

유대인들이 섬기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세율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경건한 백성들이 소망하는 메시야에 대한 지식을 접할 수 있는 위치이다.

그런데 그는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면서 회당에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신 예수에 대한 소문,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는 예수에 관한 정보를 접하게 된다.

온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사람들이 예수를 따른다는 정보를 접하게 된다.

그런 소문의 주인공인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소망하는 메시야임을 직감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오시자 그는 나아와서 종의 중풍병을 고쳐주기를 간청한 것이다.

점령군의 고급 지휘관이 예수께 나아온 것은 믿음의 행동이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모습이며 행동이다.

여호와께서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맡기신 목적이 무엇인가?

제사장 나라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방 나라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알고 섬기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이방 나라 백성이 여호와를 섬길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이스라엘과 화해하고 그들이 가진 모세율법을 따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에서의 여호와 뜻과 경륜은

모든 나라와 백성들이 모세율법을 따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다.

이방인 백 부장은 자신이 몸담은 삶의 질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질서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만유를 창조하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한 것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백 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다.

그 결과 백 부장은 율법 아래에서는 작고 나중 된 자이나

예수께 나아옴으로 천국에서는 크고 먼저 된 자가 된다.

그는 예수께서 함께하시는 종말의 천국에 참여하게 된다.

 

백 부장은 군대 질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는 유대인들이 섬기는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이 가진 율법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예수께서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 아들로 믿고 고백한다.

이러한 백 부장의 믿음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칭찬하시고

천국의 생명으로 종의 중풍병을 치료하여 주신다.

이처럼 마태는 예수께서 유대인 문둥병자의 부정함을 정결케 하시고

이방인이라도 예수께 나아오면 천국에 들이신다는 사실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온 이방인 백 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다.

이방인은 율법 아래에서 가장 작고 나중 된 자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을 가지지 못하고 흑암과 사망 아래에 거하는 자들이다.

로마군대의 고급 지휘관인 백 부장도 할례를 행하지 않은 이방인이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

그들이 섬기고 있는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정보,

갈릴리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예수에 대한 소문을 접하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나아왔다.

그는 율법 아래에서 가장 작고 나중 된 자이나

아들을 통해서 비추시는 큰 빛을 따라 예수께 나아온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백 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신다.

그 결과 이방인 백 부장은 아들의 나라인 천국에서 가장 크고 먼저 된 자가 된다.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은 율법 아래에서는 크고 먼저 된 자들이나

그들은 예수에 대한 소식을 수시로 보고받고 접하면서도 예수를 거절하고 대적한다.

그 결과 천국에서는 가장 작고 나중 된 자가 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들이 많으니라고 말씀하신다(마19:30).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말씀하신다(마8:11-12).

 

마태복음의 특징은 예수의 이적과 기사를 기록한 순서이다.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마태복음은 맨 먼저 유대인 문둥병자를 치료하시고

이방인 백 부장의 종을 치료하는 순서로 기사를 배열한다.

이는 종말의 천국 왕께서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왕이심을 말하기 위함이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다.

모세율법도 이스라엘과 맺은 여호와 언약의 법이고 이스라엘에 대한 통치질서를 담고 있다.

그러나 종말의 천국 왕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의 왕이시다.

따라서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나아오면

천국 왕께서는 그들 모두를 천국 백성으로 영접하시고 인을 치신다.

이러한 천국 왕의 통치는 종말의 하나님 통치질서이다.

종말의 하나님 백성과 세상을 경영하는 경영질서이다.

따라서 이제 모세율법은 종말의 하나님 통치질서가 아니다.

종말의 천국의 질서가 아니다.

따라서 모세율법을 붙들고 고집하는 예루살렘의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은

천국 왕의 심판을 받고 천국에서 제외된다.

율법만을 고집한 예루살렘의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과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통치에 역행하는 자들이다.

이처럼 옛적에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율법은 종말의 천국 질서에는 합당하지가 않다.

모세율법이 말하는 여호와의 임재 방식이나 예루살렘 성전제사,

성전제사를 위한 제사장 제도나 그것을 위한 십일조 제도는

그리스도의 나라 질서에는 합당하지가 않다.

따라서 종말의 천국에서 모세율법은 설 자리가 없다.

옛것을 고집하고 새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모세의 말을 고집하고 예수의 가르침을 거절한다면,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게 된다(마8:12).

이러한 사실을 나타내는 말씀이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는 말씀이다(마9:17).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모세가 말한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