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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제자를 보내심 : 개론.

열려라 에바다 2024. 3. 21. 14:25

열두 제자를 보내심: 개론(마10:1-4)
천향추천 0조회 1424.03.21 03:55댓글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속량하셔서 아들로 세우기 위함이다(갈4:4-5).
이러한 바울의 주장은 마태복음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따라서 마태는 예수께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한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종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가나안에 입성한 후에는 이스라엘을 모세율법으로 다스리셨으나,
종말에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셔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천국 백성으로 구원하신다고 말한다.
그것은 모세를 통한 구원은 이방 권세로부터의 구원이나
아들을 통한 구원은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태복음에서 구원의 대상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이다.
이는 율법 아래에서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는 자들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율법으로는 부정한 문둥병자를 손을 대셔서 깨끗하게 하시고(마8:1-4),
율법 아래에서는 교제가 금지된 이방인 백 부장을 접견하시고 믿음을 칭찬하시며(마8:5-13),
율법 아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시며(마9:1-8),
율법이 금하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고(마9:9-13),
율법이 금하는 혈루증 여인과 접촉하셔서 치료하시며(마9:20-22),
율법이 금하는 관헌의 죽은 딸 손을 잡아서 일으키신다(마9:18-25).
이처럼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은 그가 다윗 후손이라는 증거이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도 비방한다.
그들은 천국 문을 닫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으며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바리새인 아래에 있는 백성들은 목자가 없이 유리하는 양과 같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추수하는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추수할 백성은 많고 추구할 일꾼은 적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자신과 함께 사람을 낚기 위함이다(마4:19).
따라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권능을 위임하셔서 추수하도록 보내신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함을 고치도록 권능을 주셔서 보내신다(마10:1).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영을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심과 같다.
모세는 여호와의 종(머슴)이다.
따라서 모세에게 주어진 성령은 두려워하는 종의 영이다.
그러나 종말에 보냄을 받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주신 성령은 양자의 영이시다.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성령은 언약의 영이다.
언약적 관계를 따라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런데 모세를 통한 구원은 바로의 권세로부터의 구원이다.
이는 세상의 권세로부터의 구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를 통한 구원은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이는 율법이 주지 못하는 온전한 구원이다.
이처럼 여호와께서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같이,
종말에는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신다.
따라서 종말의 구원은 율법 아래의 구원을 완성하는 일이다.
이는 더러운 귀신의 권세와 모든 질병과 약함에서 해방되어서 천국의 생명을 누리는 구원이다.
이러한 구원을 위하여 예수께서는 자신의 권세를 제자들에게 위임하셔서 보내신다.
따라서 열두 제자는 천국 왕의 대리자이며 천국의 일꾼이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모태가 되었던 것처럼 열두 사도는 천국의 모태이다.


당대의 유대 사회는 모세율법이 시행된 율법 사회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율법으로 이스라엘과 세상을 다스리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율법이 시행되는 유대 땅에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보내신다.
이는 아들을 통해서 율법과는 다른 새로운 통치를 시행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기존의 율법 사회에 예수를 통하여 새로운 통치가 시행된다.
모세율법과는 다른 새로운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서 온 유대로 퍼져나가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의 공생애 동안에는 기존의 율법통치와 새로운 통치가 공존하게 된다.
그 결과 기존의 율법통치와 새로운 통치 간에는 긴장과 대립이 있게 된다.
이러한 긴장과 대립은 율법 아래의 관료인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새로운 하나님 통치의 전파자인 예수와 제자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갈등과 대립의 원인이 무엇인가?
모세율법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고 말씀하신다(마10:5-6).
이는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언약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호와 가까이에 세워진 제사장 백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복음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선포되어야 한다.
이는 여호와의 장자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이 먼저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의 길로 가지 말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라고 말씀하신다(마10:6).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에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
고 명령하신다(마28:19-20).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성되고 예수께서는 만유의 왕으로 취임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성된 후에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종말의 유일한 통치질서로 확정되어서 시행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신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신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라”
고 말씀하신다(마10:21-22).
이러한 가르침은 기존의 모세율법과 새로운 천국 복음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내용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와 제자들에게 고난과 핍박이 따르게 된다.
이는 조상 대대로 모세율법을 붙들었던 동족과 형제들로부터 고난과 핍박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예수의 가르침은 모세율법과 다른 이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를 율법과 다른 가르침을 전파하는 이단의 괴수라고 정죄한 것처럼,
제자들도 백성들로부터 율법과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이단의 무리로 여기고 핍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율법과 복음의 다름은 산헤드린 공회가 제시한 두 증거로 압축할 수가 있다.
대제사장은 예수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
는 주장을 사형에 합당한 죄목으로 제시한다(마26:60-64).
그것은 하나님 아들이라는 주장은 예수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율법 아래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에 계신다.
그런데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신다.
그래서 대제사장은
    “보라.
     너희가 지금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라고 분개한다(마26:65).
이는 갈릴리 사람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사칭하였기 때문이다.
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헐면 사흘 만에 다시 세우리라”
고 주장하신다(마26:61, 요2:18-20).
이는 당대의 예루살렘 성전을 부인하는 주장이다.
성전을 부인함은 당대에 시행되는 성전제사와 제사장 제도, 십일조를 부인하는 주장이다.
그래서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를 사형에 합당하다고 판결한다(마26:66).
율법과 다른 가르침을 전파하는 이단의 괴수라고 정죄하여 십자가형에 처한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다면 형제와 동족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겠는가?
예수를 믿는 백성들은 부모나 형제로부터 핍박과 고난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예수께서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이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고 말씀하신다(마10:36-38).
이는 당대에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모세율법(구약성경)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라는 강력한 권면이다.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천국 왕의 권세를 강조한다.
이는 사도들이 권세가 있는 천국의 제자이며 일군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는 마태가 율법 아래에 있는 동족들에게 예수와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천국의 참 목자는 열두 사도이다.
그들은 천국 왕께서 권세를 위임하셔서 보내신 천국 왕의 대리자이다.
그래서 마태는 열두 사도가 천국 왕이 보내신 참 목자이며 천국 왕의 대리자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제자들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가 있는 전도 특공대라고 말한다.
열두 제자 가운데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특별한 이름을 받은 제자이다.
제자들은 둘씩 짝을 지어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예수께로 인도해야 하는 천국의 전파자이다.
이에 대하여 마가복음은
    “또 산에 앉으시어 자기가 원하는 자를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부르시어 전도도 하며 귀신을 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라고 기록한다(막3:13-16).
제자들을 파송할 때에도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고 기록한다(막6:7, 12-13).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기도하시려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라고 기록한다(눅6:12-1).
이처럼 누가는 제자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다고 말한다.
사도가 하는 일은 예수와 함께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해서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고 말한다.
열두 사도의 이름과 순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언급된 이름의 다른 점들은
공관복음서 기자가 각 복음서의 주제에 일치하도록 강조하는 내용이다.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고
나아온 그들과 항상 함께하시며 능력이 있는 전도 특공대로 삼기 위하여 택하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마가가 말하는 제자는 예수께서 원하시는 전도 특공대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특별한 이름을 주신 세 제자의 이름을 맨 앞에서 언급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열두 사도를 천국 왕께서 잃어버린 이스라엘 양에게로 보내신 대리자로 말한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열두 사도를 예수께서 기도하시고 응답을 받아서
제자 중에서 뽑은 하나님 나라 전파자로 말한다.
이처럼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처음 부르신 제자 네 명을 순서대로 앞에 언급한다.
그러나 차이점은 누가복음에서는 ‘마태와 도마’라 하고
마태복음에서는 ‘도마와 세리 마태’라고 말한다.
이는 도마를 자신보다 앞세운 마태의 겸손이라 생각된다.
맨 뒤에 가룟 유다에 대해서는
누가복음에서만 유다의 배반을 미래형으로 기록하여
구원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작정을 강조한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를 판 자라고 기록하여 반역자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요한은 ‘다는 깨끗하지 않다’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통하여
유다가 사탄에게 속한 자라고 말함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예수의 사역에 포함시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배교자 유다를 대신하는 맛디아를 선택하여
열두 사도를 완성하시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셨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