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자료

아담의 가죽 옷이 갖는 의미

열려라 에바다 2024. 3. 22. 08:43

 

아담의 가죽 옷이 갖는 의미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세기 3:21)
The LORD God made garments of skin for Adam and his wife and clothed them.(NIV)
Unto Adam also and to his wife did the LORD God make coats of skins, and clothed them.(KJV)




1. 옷의 기능
우리가 매일 입는 옷의 기능을 살펴보자. 옷이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지 논리적으로 얘기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기능을 이용하고 있다.
1.1 체온 유지
사람은 정온 동물이다.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면 신체 기능에 문제가 발생한다. 때문에 너무 더운 때에는 시원한 곳을 찾고,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거나 옷을 입는다. 추울 때 몸을 떠는 것도 몸을 떨어 열을 발산하여 적정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이다.
1.2 피부 보호
주변 환경의 날카로운 것, 먼지, 세균 등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하여 옷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의사와 실험을 하는 사람들에겐 가운이 필요하며, 물 속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각종 슈트(suit)나 잠수복을 필요로 한다.
1.3 신분의 표현
각종 제복은 사회에서의 자신의 신분을 나타낸다. 대표적인 것이 교복, 경찰복, 군복 등이다.
1.4 개성의 표현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수단으로서 옷이 많이 활용된다. 다양한 디자인, 색상 등의 옷을 선택하여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게 된다. 아울러 옷의 종류 또는 색상으로 자신의 감정상태도 표현하게 된다.
1.5 예의
때와 장소에 맞는 옷을 선택함으로써 사회인으로서 조화를 이루고 남에게 적절하고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2. 자연주의(Naturism) 또는 나체주의(Nudism)
야외에서 옷을 걸치지 않고, 어떤 강요도 받지 않고 완전한 전라(全裸) 상태로 놀이나 스포츠를 함으로써, 육체적이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인격체를 경험하는 것과 성에 대한 자연스럽고 건전한 접근을 목표로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집단의 문화이다.
자연주의와는 다소 다르지만 비건 패션(vegan fashion)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동물 털이나 가죽을 쓰지 않은 의류만 입는 스타일을 일컫는 것으로, 동물 털이나 가죽을 만들기 위해서 동물의 도축이라는 과정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각종 동물 보호 단체들은 이러한 가죽 의류를 굉장히 싫어한다.


하나님은 가죽 외 다른 재료를 사용하여 옷을 입힐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셨을까?


3. 아담의 가죽옷이 갖는 의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후 그들은 발가벗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 원래는 그들이 발가벗었어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세기 2:25)


그렇지만 죄를 지은 후에는 부끄러워서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서 입었다. 치마를 만들어 입은 이유는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서다. 여기서 부끄러움이란 몰상식한 일을 당하여 수치심에 빠지거나 비상적인 것에 접하여 당혹스러워하는 것을 뜻한다. 즉,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것은 벗은 것을 느꼈다는 뜻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예전에는 그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하나님의 영에 의해 성화되어 있어 그들의 전인격이 하나님께로만 집중되어 있었으나 죄를 지은 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전과 같지 않게 되고 육체적인 부끄러움과 함께 영적인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세기 3:7)

 

The Rebuke of Adam and Eve(1740)_Charles Joseph Natoire

아담과 하와는 앞서 언급한 옷의 기능과는 달리 그들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면 그것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사회적으로도 잘못이 밝혀지게 되면 숨어버리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하나님이 아담을 찾을 때(창세기 3:9) 아담은 벗은 것을 부끄러워하여 숨었던 것이다.(창세기 3:10) 그래서 하나님도 아담에서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고 되물었던 것이다.(창세기 3:11)
한편으로는 아담은 벗은 것을 두려워하였는데, 벗은 것은 부끄러운 것임과 함께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담과 하와가 나뭇잎 옷을 입은 것은 벌거벗은 부끄러움 때문에 입은 것이지 자기 안에 있는 죄악의 부끄러움 때문에 입은 것이 아니었다. 아담과 하와는 나뭇잎으로 자기 몸을 가렸고 그 순간에는 벌거벗었다는 수치감이 사라졌다.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다는 외적인 부끄러움을 보았지 자기가 하나님 앞에 범죄 했다는 내면의 부끄러움은 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은 아담(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 배신의 장소에서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은 아담의 부끄러움을 즉, 잘못을 덮어주기 위해 가죽 옷을 마련하였다. 가죽 옷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동물을 죽여야 하며, 죽는 과정에서 피를 흘려야만 한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이 가죽옷을 만들어 입힌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측면을 생각해볼 수 있다.


3.1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다.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동물 한 마리를 죽였다. 이것은 인간 죄를 속하기 위한 첫 번째 희생이자 구약 속죄 제사의 원형이며(레위기 4:13~21), 장차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예표하는 원시적 사건이다(로마서 3:25). 이 그리스도의 희생이 없이는 우리에게 구속함이 없다. 때문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를 짊어진 어린 양의 희생이 반드시 필요하였던 것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한1서 4:10)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베드로전서 1:18~19)


3.2 그리스도란 가죽옷을 입어야 한다.
기독교의 신앙은 나를 포장하고 있는 모든 경건의 나뭇잎과 자기 의로움의 나뭇잎을 다 떨쳐버리고, 나를 위해 수치를 당하시고 자신의 의로움을 덧입혀 주신 예수의 가죽옷을 입는 신앙이다. 이러한 가죽옷을 입혀 주시기 위해 예수는 발가벗겨지는 수치를 당하였으며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가죽옷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남아 있어 아직 죽지 않고 우리의 숨이 붙어 있을 때 우리 자신이 만든 부질없는 나뭇잎 옷을 다 벗고 예수께서 주시는 의와 생명과 진리의 가죽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라디아서 3:27)


또한 이사야에서도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 하면 하나님이 구원의 옷을 입히신다고 말씀되어 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이사야 61:10)


4. 맺는말
아담이 범죄한 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연약한 인간으로서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죄를 지은 후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 숨기려고 할 때, 부끄러움을 숨기려고 할 때 거짓말을 하거나 엉뚱한 말로 자신을 가리려고 할 것이다. 그것은 나뭇잎으로 옷을 지어 입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선 사람들의 눈을 가릴 수 있을는지는 모르나 죄의 본질은 숨길 수 없으며, 그 죄를 없애지도 못한다. 때문에 그러한 상황이 되면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복할 필요가 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언 28:13)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잠언 32:5)


그리고는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서 우리의 죄가 용서받도록 해야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홍같이 붉은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나아와 죄인임을 인정하면(변론하자) 그로 인해 죄 사함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이사야 1:18)


아담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은 우리가 죄을 지었다고 할지라도 죄를 자복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만든 의와 생명과 진리의 가죽옷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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