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골로새교회의 일꾼인 에바브라의 방문을 받고, 골로새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록한 글이다. 골로새교회가 처했던 문제는 무엇보다도 그 교회에 침투하여 교회의 평안을 위협하고 있는 위험스런 이단에 관한 것이었다. 이 이단의 중요한 특징들은 그리스도의 선재성을 부인하고(1:15-19),신적인 계시보다는 인간의 철학을 강조했으며(2:8), 천사숭배를 요구하고. 그리고 유대교의 요소들, 즉 할례 (2:11; 3:1)와 랍비의 전통(2:8), 금식 규정들과 안식일과 절기 (2:16)등을 강조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바울서신은 1세기에 일어난 사건들을 취급하고 있고, 초대교회의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 바울은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보호하고 바르게 양육하려는 목회적이고 선교적 목적에서 이 서신들을 기록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서신을 바로 해석하기 원하는 설교자는 20세기의 눈으로 성경을 무리하게 해석하려 해서는 안되고, 무엇보다도 기록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1세기의 저자와 독자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으려는 자세기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초대교회의 역사적인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적절하게 복원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도 살펴보아야하고, 기록장소와 연대, 지역적 특성이나 관습등 다양한 배경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종류의 연구 작업 없이는 누구도 바울의 의도를 바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역사적 배경
1.골로새의 지리적 위치
골로새(the of Colossae)는 소아시아의 브루기아주(Phryiag) 계곡에 위치한 도시로서, 에베소에서 내륙으로 약 160킬로미터 더 들어간 동쪽에 있었다. 이곳은 소아시아에서 수리아로 가는 중요 무역로 상에 위치한 동서교통의 요충지로서, 자연히 동서문물의 교류 장소가 되어 무역이 활발히 진행되었던, 인구가 많고 번화한 대도시였다. 주로 많이 거래가 되었던 품목은 양털과 그것을 가공하여 만든 양털 직물이었다. 이처럼 한때 이 도시는 아주 중요한 상업도시였지만, 인근 성읍들(골 4:13)의 증요 도시인 라오디게아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급성장으로 인해 신약시대에는 상대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은 도시로 전락하고 만다. 그럼에도 모든 무역 도시가 그러하듯 이 도시도 많은 상인들과 여행객들의 출입이 잦은 관계로 각종 철학과 종교사상이 혼합되는 양상을 보였다. 따라서 이곳에 세워진 골로새교회는 각종 이단 사상이 난무하여 어려움을 당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그 도시에 복음을 확고히 심는 것은 주변지역에 복음이 확산되도록 돕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도시는 리쿠스 계곡을 강타한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네로의 도움으로 다시 세워졌고, 요한계시록이 쓰였던 기원후 95년경엔 온천으로 유명한 히에라폴리스와 더불어 냉천으로 그나마 이름이 나 있었다. 그리고 후대에 오면서부터 골로새는 문헌에서조차 잘 언급되지 않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바울이 이 편지를 썼을 당시 골로새시(市)의 주민은 주로 브루기아 원주민들과 헬라 시민들, 그리고 이주민들로 구성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들 이외에도 상당수의 유대인들도 그 도시에 함께 거주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 근거를 우리는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책에서 두 가지 발견할 수 있는데, 첫째는 "안티오쿠스(Antiocus) 3세가 메소포타미아와 바벨론에서 2000명의 유대인들을 골로새 지방으로 이주시켰다“라는 기록이다(Josephus, Ant. 12.147-53). 둘째로는 기원전 62년에서 61년 무렵 '방시 이곳의 로마 총독이었던 플라쿠스(Flaccus)가 골로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세로 20파운드(pound)의 금을 수송하려고 하는 것을 금했다'라고 하는 기록이다. 당시 금 값을 유대 성인 남자의 수로 나누어 계산해 보면 골로새를 중심으로 한 라오디게아 지역에 적어도 11,000명 정도의 유대성인 남자가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골로새 지방에 이 정도의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골로새서의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왜 골로새서에 유대적 특징들이 그렇게 많이 나타나고 있는지, 다시 말하면 거짓 교사들이 축제일과, 새 달, 그리고 안식일 준수를 요구하고 음식에 대한 규정들을 만들고(2:6,21),또한 엄격한 금욕주의적 규정을 강조하는 유대주의적 성향과 특징들이 나타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 된다. 더 나아가 골로새교회를 위협하던 이단들의 실체를 밝히는데 있어 중요한 배경을 얻을 수 있다.
문화적 배경
로마 제국은 동쪽으로는 지금의 인도 서부 인더스 강에서부터 서쪽으로는 대서양까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라인강과 다뉴브 강에서 남쪽으로 북부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지중해 연안을 둘러싼 막강한 국가를 건설했다. 또한 로마인들은 그의 제국내에서 군대의 빠른 이동을 위해 직선 도로망을 구축했고, 이것으로 로마제국의 많은 도시들을 거미줄처럼 연결했다. 그리고 로마군대는 이 군사로를 잘 정비하고, 또 바다에서는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여 사람들의 여행이 아주 자유롭고 편리해지도록 만들었다. 결국 이것은 로마제국내의 다양한 민족들과 그들 문화의 상호 이동과 혼합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특히 안전하고 편리한 여행이 보장되자 떠돌이 철학자들이 상인이나 노예들, 그리고 군인들과 더불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옮겨 다니면서 자기들의 철학사상, 관습, 종교들을 전파함으로 이런 것들이 서로 뒤섞이는 혼합주의(syncretism), 특히 종교적,문화적 혼합주의가 만연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로마 제국은 문화적으로는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이 이루었던 헬레니즘(Hellenism)의 계승자였다. 이 헬레니즘이란 로마가지중해 연안에 이뤄 놓은 광대한 제국에 헬라인들과 동양인들의 인종적 혼합을 도모하고, 헬라의 사상과 문화와 그리고 동양의 문화와 종교성을 융합시켜서 이루려고 했던 혼합 문화를 가리킨다. 또한 헬라의 종교 정신은 혼합주의였다. 그래서 어떤 것도 그 체계 안에 녹여 가지고 그 혼합 종교의 한 요소로 삼으려고 했는데, 바로 기독교의 복음도 그러한 위험을 지금 골로새에서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문화가 끼친 영향은 헬라사람들에게 어떻게 나타났을까? 이 점에 대해 바울은 헬라인들은 많은 신(神)들과 많은 주(主)들을 섬긴다고 평가하고 있다(고전8:5). 바울이 헬라인들을 그렇게 평가했을 때 과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들은 많은 신들과 주를 섬겨야 했을까?
신약시대의 헬라 세계는 고전적 헬라철학, 즉 플라톤주의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가르침이 무너지고 그것들이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이해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느냐’ 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 나타나는 헬라의 철학학파로는 아주 물질주의적인 것을 추구하는 에피큐러스학파(Epicurianism), 자연에 순응해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친 스토아 학파(Stoicism), 그리고 회의주의(Scepticism)나 또는 냉소주의(Cynicism)등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학파들은 그들 각자의 철학자들을 배출했고, 이들이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자신의 철학을 전파하고 가르치던 상황이었다.
그 결과 당연히 사람들 사이에는 물질주의적이고 회의주의적인 사고가 일반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철학 사조는 주어진 숙명에 순응해야 할 따름이지 숙명을 거슬러 갈 수 없다고 하는 숙명주의적 사고였다. 이숙명론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그 영향은 사람들을 절망으로 몰아넣었으며 이 절망의 분위기가 팽배했던 때였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연히 도덕적으로 무책임하게 되었고, 결국 타락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도덕적 타락이 또한 당시의 주요한 특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신(神)들과 주(主)들로부터 도움을 얻으려고 했는데, 그래서 자연히 발달하게 된 것이 점성술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별들이나 또는 그 별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보고 그 별들이나 별들에 존재하는 신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노력이 점차로 그 신들에게 제사하는 형태의 신비종교로 발전한 것이 바울 당시 선교지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또 한편 이들은 영지주의(Gnosticism)적 비밀지식을 얻어 이 물질적인 세계로부터 자신들의 영혼을 해방시켜서 신적인 영역으로 진입시킬 수 있다고 보았는데, 그래서 이 시대에는 영지주의가 발달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당시 헬레니즘의 영적 ,덕적분위기는 회의주의와 숙명주의와 절망의 상태에서 구원을 간절히 원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들은 점성술이나 또는 영지주의의 비밀지식, 혹은 신비종교들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했다. 도덕적인 면에서 보면 숙명주의와 물질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적인 무책임성을 유발시켜 심한 타락상을 보였는데, 이런 상황이 당시 골로새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종교적 배경
1세기 중반 로마제국내에는 여러 종교들이 융성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일반적인 경향들 외에 골로새는 즘더 특징적인 종교적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바울 당시 골로새가 위치한 브루기아지역은 마술과 신비스러운 것들로 가득 찬 혼합 종교의 특색을 아주 강하게 나타내던 곳이었다. 골로새 도시에 널리 퍼져 있었던 대표적인 종교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1.키벨레(Cybele)를 섬기는 이교
골로새에는 곡식 결실의 표상이며, 거대한 어머니 신(神)으로 표현되는 키벨레(Cybele)를 섬기는 이교가 성행했다. 또한 이 신을 섬기는 의식(rituals)은 아주 강렬했는데, 이 의식은 열광적인 엑스타시와 동시에 금욕주의를 겸하는 것 이 두 가지를 특징으로 한다.
이들의 예배 의식은 신봉자들이 잔뜩 취한 듯한 무절제 속에서 거행되었고, 심지어 이들은 의식을 행하는 가운데 몸에 자해행위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 2장 23절과 2장 11절에서 몸에 자해행위를 하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2.미드라(Mithra)를 섬기는 신비종교들
1세기 중반 로마 제국 내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종교는 다양한 민족들에게 종교적인 만족과 영원한 소망을 약속하는 미드라이즘(Miraism)과 같은 신비 종교였다. 바울 당시 골로새에서 미드라(Mira)를 섬기는 이 종교가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 종교는 페르시아에서 유래되어, 특히 기원후 2-3세기경에 이르러서는 로마제국에서 수많은 추종자를 가졌다. 빛의 신으로 숭배되었던 미드라는 승리의 영웅으로 그의 편에 및을 가지고 있었으며, 어두움을 물리치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특히 이 종교는 기독교와 비슷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 기독교와 강한 대립을 일으렀다. 예를 들면 미드라의 투사들은 빛의 승리를 위해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도덕적인 계명들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이 신을 믿는 사람은 죽은 후에 빛의 세계가 믿는 자들에게 열려지기 전에 그의 행위에 따라 신의 심판을 받아야했다. 또한 이들은 세례식을 거행하고, 성만찬을 시행하는 등 기독교와 유사한 의식들을 행했다.
당시 무절제가판을 치는 종교적 상황 속에서 도덕적인 의무를 강조하고 어두움과의 싸움을 주장했던 미드라 종교는 강한 매력을 발휘하였으며, 당시 널리 전파되어 있던 기독교와 날카로운 대립을 일으켰다. 비록이 둘의 대립은 기원후4세기에 기독교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바울 당시 골로새에서 이 종교는 강한 영향력을 발회하고 있었다.
또한 이들 이방종교들 외에 '세상 요인들,''요소들(elements)을 섬기는 것'으로 이들의 종교적인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골2:8,20).우리 성경에는 이것을 '초등학문이라고 번역했는데, 이 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은 번역뿐만 아니라 그 주석도 매우 어렵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이것을 elemental spirit 혹은 elemental thing으로 번역해, 하나의 마력을 가진 힘으로 보고 이것들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냐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들' 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대 헬라사상에 의하면 이 세상은 네 가지요소들로 구성되었다고 말한다. 즉 물, 불, 흙, 그리고 공기인데, 당시 사람들은 이 네 가지를 신들로 숭상하고, 그들을 기분 좋게 해야 자신들의 운명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 골로새의 일반적인 종교적 경향이었고, 이런 사상에 골로새 교인들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바울이 그것을 경고하지 않았는가 생각이 된다.
3.영지주의 (Gnosticism)
영지주의는 바울서신을 해석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이것은 이 사상이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선교지 전체에 퍼져 있었던 시대정신이었기 때문인데, 당시사람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들도 어떤 모습으로든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지주의는 그 기원이 분명치 않은 일종의 혼합주의 사상체계로서 그 사상이 완전히 꽃피운 것은 기원후 2세기 중반이었다. 이 사상은 헬라 철학과 동방의 신비주의와 유대교의 율법주의 등이 혼합하여 이룬 사상적인 혼합주의로서, 그 세계관은 극히 이원적이다. 즉 신의 세계는 선한 반면 물질계는 악하고,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것이다. 신은 아주 거룩하고 물질은 너무도 더럽기 때문에 그가 직접 물질계를 창조할 수 없었고, 신에게서 제일 밀리 떨어진 에온(aeon:신성을 지니고 있는 반신반인적 존재)이 물질계를 창조했다고 한다.
이 에온의 존재는 유출설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유출설이란 신 안에 있는 신성의 충만함이 제일 높은 하늘에서부터 물질세계인 땅에까지 점점 유출되었는데, 이 유출의 충만함은 저 하늘의 가장 높은 신에서부터 점점 유출되어 이 땅의 물질의 세계에 오면 더 이상 없어지게 된다. 이 같은 유출론에 근거해 땅에 사는 인간들과 저 하늘의 신 사이에 신성을 띠고 공중을 지배하고 있는 신인적 존재(aeon)들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인간은 공중을 지배하는 이 에온들로 인해스스로는 신의 세계에 이를 수 없고, 다만 신에게서 내려온 구속자로부터 '지식'을 받은 자만이 신에게 이를 수 있다는 구원론을 전개한다.
또한 이들은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단지 이 여러 에온들 가운데 하나로 비록 신에게서 왔으나 더러운 육신을 입을 수 없었으며,
그의 육체는 천사와 같은 가현적인 육체였다고 한다. 이들은 육체는 무가치하고 악하기 때문에 육적 생활을 죄악시하여 극단의 금욕주의로 흐르는가 하면, 육체로 짓는 죄는 무슨 죄를 짓든지 죄가 아니라고 하여 극도의 방종주의로 흐르기도 했다
4.혼합주의적 유대교
뿐만 아니라 이곳은 특히 신비주의적 경향이 강했던 것 같고, 또 혼합주의적인 유대교의 영향도 상당히 강했던 것 같다. 이들은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으로만 되지 않고 금욕적인 계율이나 유대교의 절기 준수와 율법 준수를 함께 구원의 조건으로 삼았는데, 이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완전히 뒤엎는 거짓 교훈이 아닐 수 없었다. 또 후에는 몬타누스주의로 알려진 기독교 이설들도 이곳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처럼 골로새라는 도시는 여러 신비종교들, 즉 키벨레(Cybele)를 섬기는 신비종교들, 미드라(Mithra)를 섬기는 신비종교들, 그리고 여러 세상의 구성 요소들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들, 게다가 영지주의와 동시에 혼합 종교적인 유대교도 한몫을 해 아주 복잡한 혼합 종교적인 현상을 나타냈던 도시였다. 또한 신을 아는 지식을 터득하기 위해여러 가지 훈련(discipline), 금욕주의적 형태, 그리고 여러 의식(ritual)들이 요구되였던 그런 분위기가 골로새라는 도시의 종교적 분위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골로새교회의 상황
골로새서를 읽다보면, 우리는 이 골로새교회가 골로새 지역에 퍼져 있었던 복잡한 혼합 종교들의 영향을 받고 또 그 영향에 의해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흐려지고 있는 것을 본문에서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 사람은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골로새교회의 주된 구성원들은 누구였는가? 거의가 이방인이었다(1:12, 27; 2:13). 그렇다면 그들은 당연히 믿기 전에 그들이 과거에 지니고 있던 이방사상이나 또는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이방종교적 전통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또 그런 거짓 가르침에 쉽게 넘어갈 위험성이 많았다.
그렇다면 이런 종교적인 현상이 어떤 모습으로 교회 안에 침투되었고, 또한 어떤 모습으로 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왜 그리도 빨리 복음에서 떠나 혼합 종교의 위험에 빠지게 되었을까?
지금까지 언급했던 종교적인 전통을 가진 골로새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을 때 그리스도를 에온 가운데 하나로, 아마 그 가운데서 좀 높은 에온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자기들의 옛 종교 체계에 편입시키고, 그리고 기독교 예배의식도 과거 자기들의 종교의식과 혼합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유일성, '그리스도의 구원자로서의 유일성과 절대성' , 그리고 '세상의 통치자로서의 유일성'을 위협받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기독교 예배도 골로새의 토착적인 혼합 종교들의 광란적이거나 금욕주의적인 예배의식과 섞여 진정한 사도적 전통이 위협 받지 않았나 보여진다. 한마디로 헬레니즘 종교의 특징인 혼합종교의 정신! 그래서 어떤 것도 그 체계 안에 녹여 혼합 종교의 한 요소로 삼으려고 했는데, 바로 기독교의 복음도 지금 그러한 위험을 골로새에서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럴때에 바울은 어떻게 이 문제에 대처했는가? 그리스도의 유일성, 그리스도의 절대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우주론적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그 혼합 종교로 기독교의 복음이 녹아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골로새 교회의 이단 사설을 파악하는 , 이단의 가르침과 그 교리는 무엇이었을까? 이것을정확히 밝혀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기란 결코 용이하지 않다. 이것은 골로새서뿐만 아니라 바울의 다른 서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그리고 갈라디아서 등 다른서신 그 어느곳에도 이단 사설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단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바울이 그들의 정체나 주장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하는 바울의 반응을 잘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즉 우리는 '이단사설이 이러이러한 것을 주장했기 때문에 바울이 거기에 대항해서 이런 말을 하는 구나 하고 추론함으로써 이단 사설의 주장과 성격을 대강 파악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1) 대표적인 것을 들면 골로새서 1장 19절에서 바울은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라고 한 것이나 2장 18절에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 -금욕주의적으로 자신을 자해함 - 과 천사숭배함을 인하여 ․.․"라는 말이 나오는데, '충만 이라든지 천사숭배'같은 요소들은 이단사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들이다.
(2) 다음으로 2장 21절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 여기 '붙잡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기도 말라"는 것은 골로새의 이단자들의 구호를 인용하는 듯이 보이는데, 이것도 이들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이다.
(3) 또한 2장 23절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를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이것은 이단사설이 요구하는 금욕주의적인 의식과 자해 행위를 가리키고 있는데, 바울은 이런 것은 진정한 겸손의 덕을 고양시키는 데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서 이단 사설이 강력한 자해 행위를 동반한 금욕주의적 의식을 고취한 것으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다.
(4) 거기다가 덧붙여 2장 8, 20절에 세상의 원초적 힘들, '세상의 원초적 신들'을 신으로 섬기고, 그 신들을 기분이 좋게 해야 운명이 편하다고 하는 그런 사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5) 바울은 2장 8절에서 '철학과 헛된 속임수 에 대해 특별히 경고하고 있는데, 이것은 골로새 교인 중 일부가 그런 잘못된 가르침에 현혹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바울이 어떤 의미로 철학 이라는 말을 사용했는지는 규정하기 어렵지만, 이것은 일반적으로 헬라적 요소를 가리키고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
(6) 거짓 가르침의 또 다른 중요한 단서가 몇 군데에 나타난다. 1장 19절에 '충만이라는 단어와 2장 3절에 '지식' 이라는 단어. 그리고 2장 23절에 '육체를 좇는 것' 이란 용어들인데, 이것들은 모두 영지주의에서 사용되었던 말들이었다.
(7)그들은 유대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2:16 18,21).
배경적 연구의 결론으로 이 이단이 '유대교적 색채를 띠고 있었고 영지주의적 모양을 지닌 것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골로새서는 바울이 전한 기독교의 복음이 헬라의 혼합 종교와 부딪쳐서 그 순수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헬라의 혼합 종교의 체계속으로 녹아 들어가고 있을 때 이것을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되었다. 바울은 이런 혼합주의로부터 복음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유일성, 절대성, 우주론적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골로새 교인들에게 복음을 확고히 하려고 했다.
이 문제는 기독교가 이방 세계에 전파된 이후 수백 년 동안 계속해서 기독교 복음이 부딪쳐야 하는 문제였다. 아니 그때뿐만 아니라 소위 종교다원주의의 시대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도 골로새서에서 바울이 부딪혔던 문제는 아주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특히 다른 종교와 문화권에서 선교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타종교와의 대화가 필수적이고. 기독교 복음을 효과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선교지의 종교를 어떤 식으로든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방종교의 체계에 익숙한 골로새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 에온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하는 것과 동일한 정말 위험한 가르침이다. 종교다원주의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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