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히브리서 서론

열려라 에바다 2024. 4. 15. 08:19

히브리서 서론

 

한글 개역 성경에서 히브리서는 바울의 13개 서신들과 공동서신들 사이에 위치하며, KJV를 비롯한 영역 성경에서도 이 순서는 같다. 불가타(Vulgata)에서도 같은 순서로서 신약성경의 19번째 책으로 수록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헬라어 사본에서는 데살로니가후서와 디모데전서 사이에 수록되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는 비록 서신이라 불리지만 저자의 이름이나 수신인도 나타나지 않으며, 기록상의 어떤 특별한 동기나 목적도 발견되지 않는다. 히브리서는 처음부터 본격적인 신학적 논문으로 시작되지만 인사말로 종결짓는다. 따라서 본 서신에는 어떤 규칙도 발견되지 않는다. 때문에 본 서신은 바울서신에서 제외되었으며, 구성과 내용, 형식과 목적, 저자, 수신지, 기록 연대 등에 대한 많은 의혹을 사고 있다. '스코트'(Scott)는 이러한 일련의 문제점들을 연구하고 나서 히브리서는 신약성경 중의 수수께끼로서 연구하면 할수록 더 많은 문제가 생긴다고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는 신약성경에서 중요한 주석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Tenney). 즉 히브리서는 시 110:4의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는 메시아에 대한 구절을 해석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에게 전적으로 새로운 확신의 토대를 제공한다. 또한 히브리서는 초대교회에 있어서 가르침에 관한 훌륭한 모범이다. 많은 바울 서신과는 달리 그것은 서로 특별한 관련이 없는 다양한 물음들에 대답하기 위해 그 양식에 얽매이지 않도록 되었으며, 청중들에게 연설하는 설교도 아니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해설서이며, 잠재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구약의 말씀들에 근거를 두고 마지막까지 정연한 수사적 형태로 전개된다. 그리고 이들 인용 구절의 사용은 1세기의 기독교 교사들에 의해 사용된 구절들과 해석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주는데 그것을 주경 신학에서 이론화한 것이 모형론(Typology)이다. 따라서 히브리서의 연구는 1세기 이후 교리 형성 과정에서 구약 성경이 미친 영향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제1부 히브리서의 역사적인 배경

 

   I. 명칭

 

   KJV는 '히브리인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서신'이라는 표제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것을 지지해 줄 만한 초기 사본의 증거가 없다. 현존하는 사본에서 가장 오래된 명칭을 찾는다면 <prov"  jEbraivou" ; 프로스 헤브라이우스>로서 '히브리인들에게'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명칭조차도 3세기 이전을 넘지 않을 뿐더러 본래의 명칭이 아니라 필사상의 추가일 것이라는 점이 흔히 주장되어 왔다. 만일 이 가정이 입증된다면 '히브리인들에게'라는 명칭은 본 서신의 내용으로부터 추론된 것에 불과하다. 더욱이 KJV에서 발견되는 추가 용어, 즉 '사도 바울의 서신'이라는 어구는 후대의 추가일 뿐만 아니라 서신의 저작권에 대한 교회들의 전통을 반영한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에게'라는 명칭이 비록 편집적인 추가로 취급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반드시 부정확한 것으로 가정될 필요는 없다. 다만 본 서신의 명칭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거나 언급하는 경우 '히브리인들에게'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이 점은 초대교회 내에서 본 서신이 히브리인들에게 보내어진 것이라고 인정하는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명칭에 관한 불확실성은 본 서신의 역사적 배경을 고찰하는 데 있어서 불리한 점이 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물론 본 서신의 내용에서 역사적인 언급들을 찾아내어 추론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 서신에서 역사적인 언급들은 매우 애매하고 단편적이다. 따라서 본 서신의 명칭에 관한 한 누구도 확정적인 주장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만 여기에서는 편의상 본 서신의 명칭을 한글 개역 성경에 따라 '히브리서'로 간주하겠다.

 

   II. 저자 및 수신자

 

   1. 저자

 

     멜기세덱에 관하여 본 서신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히 7:3)고 하였는데 히브리서야말로 출처와 정체가 애매한 서신이다. 물론 이 글에서 '서신'이란 표현을 씀으로 해서 히브리서의 정체를 암시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히브리서를 서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통과 편의를 위한 것일 뿐 히브리서의 정체를 위한 선입견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실 히브리서의 애매한 저작성에 관해서는 '오리겐'(Origen)의 언급을 소개한 '유세비우스'(Eusebius)의 역사적 자료들에서도 발견된다. '오리겐'은 '내 의견을 말한다면, 본 서신의 사상은 바울의 것이라 하겠으나, 그 어구들은 사도의 교훈을 받은 어떤 사람의 것이며, 그가 스승의 말한 바를 여가를 이용하여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가 본 서신을 바울의 것이라 하거든 그렇게 하도록 두라. 왜냐하면 선조들이 이를 바울의 서신으로 전해 온 것은 까닭 없이 한 일이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인즉 본 서신을 누가 기록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하였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 문제에 관한 한 '오리겐'의 언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 글에서는 본 서신의 저자 문제에 관한 그동안의 논의들을 일괄하여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외증

   대체적으로 초기 기독교 내에서 히브리서의 저작권에 대한 확고한 전통은 성립되지 않았다. 다만 본 서신을 최초로 인용한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는 히브리서의 존재를 알았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자신의 서신에서 히 11:37 및 히 1:3, 4을 거의 문자 그대로 인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점은 히브리서가 기독교 초기 시대에 로마에서 권위를 지녔다는 사실을 시사한다(Westcott). 또한 본 서신이 '폴리캅'(Polycarp)과 순교자 '저스틴'(Justine)의 저작들 속에서 나타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이 본 서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겠으나 확실치는 않다. 한편 '말시온'(Marcion)은 자신의 비평적 정경 목록에서 히브리서를 제외시켰다. 더욱이 '무라토리 단편'(Muratorian fragment)에서도 히브리서가 생략되었다는 사실은 보다 깊은 의미를 준다. 이 점은 모두 바울 서신에 히브리서가 포함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외증이 갖는 의미는 절대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개인에 의해 포기되거나 취해지는 지극히 자의적인 분류에 포함되거나, 혹은 누락된 사실이 정경으로 삼는 기준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은 히브리서가 1세기 경에는 단편으로 회람되다가 2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초대교회의 전승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히브리서가 바울 저작이라는 생각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나타났다. 즉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바울이 다른 서신들과는 달리 히브리서에서는 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지를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바울이 히브리 백성들에게 보내는 히브리서에서 그들의 대사도가 되셨던 그리스도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에 더하여 본 서신은 원래 히브리어로 쓰여졌으며, 누가가 그것을 헬라어로 번역하였다고 추정하였다. 그러나 누가가 번역하였을 것이라는 가정은 '클레멘트' 자신의 추론으로서 본 서신과 사도행전 사이에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에 기인한 것이었다. 즉 그는 본 서신이 헬라어 바울서신과 다른 반면에 사도행전과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이 같은 추론을 전개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가정은 어떠한 진정한 전승에 기초한 주장이 아니다. 한편 '오리겐'은 히브리서의 바울 저작권에 대하여 최초로 결정적인 증언을 하였는데, 그는 바울서신과 히브리서간의 문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내에서의 사상들이 바울적 특성을 지닌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저자에 대해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선언함으로써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물론 4세기경 동방 정교회에서 본 서신을 바울 저작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로 바나바가 본 서신을 기록하였다는 고대의 다른 전승을 살펴보자. 물론 이 전승은 제한된 지역에서만 주장되었다. 왜냐하면 이 전승의 유일한 전거는 '터툴리안'(Tertullian)인데 그의 의견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아프리카 지역의 교회들의 일반적인 견해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는 히 6:1, 4-6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바나바의 히브리서'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터툴리안'의 이 인용구에서 히브리서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매우 짙으며, 실제로 히브리서에서의 인용이 예로 든 구문은 하나인데 비해 온통 바울서신의 소개로 일관한다. 이 점에 대해 '버논'(Bernon)은 '터툴리안'이 허마스 목자서를 낮추기 위해서 히브리서를 찬양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모팻'(Moffatt)은 이러한 견해 배후에는 어떤 로마 전승이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버논'이나 '모팻'의 견해는 증거가 너무 미약하다. 더욱이 이 견해는 매우 지엽적인 것으로서 오늘날 대다수 학자들에 의해 도외시된다.

   세 번째로 필자 불명을 그대로 인정한 채 본 서신만 전승되어 온 것으로 생각하는 견해가 4세기 이후 서방 교회 내에서 발전하였다. 사실 본 서신의 바울 저작권에 대한 전승은 '제롬'(Jerome)과 '어거스틴'(Augustine)의 저작에서 최초로 발견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들 중 누구도 히브리서의 바울 저작을 확신하지는 않는다. 비록 그들이 히브리서를 바울서신으로 인용하더라도 그것이 초대교회의 일반적인 견해였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제롬'이나 '어거스틴'을 통하여 동방 교회의 견해가 서방으로 전달되기 전까지는 서방 교회 내에서 익명으로 유통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추론에 근거한 필자 불명 이론은 바울 전승에 대한 최초의 증거가 바울의 이름 부재, 즉 기록자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 의해서 지지된다. 그러나 오늘날 바울 전승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그것이 바울서신의 사상과 유사하다는 점에 근거한다면 필자 불명의 이론은 또다시 혼란만 야기할 뿐 본 서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외증보다는 내증에 더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

 

   2) 내증

   히브리서의 저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도된 모든 외적 증거들의 실패는 학자들로 하여금 내증에 의존하게 하였다. 그러나 내증조차도 너무 드물게 발견되기 때문에 기대에 못 미치고, 해결책은 오히려 가정의 정도에 머문다. 저자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음으로 해서 저자의 인품이나 저자 개인에 대한 자료들이 일차적으로 상실된다. 따라서 간헐적으로 언급된 내증만을 통해 저자의 모든 것을 밝히려고 하는 시도는 본 서신의 저자 문제를 더욱더 복잡하게 만든다. 그러나 몇 개의 세밀한 요소들이 추론될 수 있다. 즉 저자는 헬라주의자, 곧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구약성경 및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관념들에 친숙해 있었으며, 유대인들의 거룩한 역사, 전승들, 제도들의 유산을 제시하며 주장을 하고(참조, 히 1:1), 또한 이러한 것들을 열심히 말한다. 이러한 점은 유대교 개종자는 물론 이교로부터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에게는 있을 법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구약성경을 70인역만을 통하여 알고 있는 듯하며, 70인역이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어긋나는 곳에서조차도 70인역을 따른다. 또한 그는 헬라어를 세련된 문체와 어휘들로 기술한다. 이렇게 볼 때 신약성경에서 보다 근접한 인물을 찾는다면 이는 누가밖에 없다. 더구나 본 서신의 저자는 일반적인 유형론적 사고방식을 사용하며, 알렉산드리아의 토양에 어울리는 용어들을 사용한다. 그럼에도 그의 기본적인 개념들은 바울 및 요한의 문헌들의 가르침과 완전하게 일치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에게 부여된 중심적 위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높은 평가, 그리스도의 죽음이 지니는 구속사적 의의, 윤리적 가르침의 전반적인 경향 등 모든 것들이 본 서신의 저자가 바울의 사상들에 의해 지배되는 기독교 공동체에 속하였다는 추론을 지지해 준다. 따라서 본 서신의 저자를 누가로 보는 견해에서 벗어나는 내증은 없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내증들이 어떤 구체적인 인물에 일치시킬 만큼 결정적이지는 못하다. 때문에 최근에는 본 서신의 저자 문제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3) 다양한 제안들

   종교개혁자들의 시대까지 바울 저작설은 실제로 어떤 도전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에라스무스'(Erasmus), '루터'(Luther), '칼빈'(Calvin) 등은 모두 바울 저작설을 의심하였다. 그중에서도 본 서신의 바울 저작설에 대한 최초로 포문을 연 사람은 '루터'였다. 그는 히브리서의 저자로 바울 대신 아볼로를 제시하였는데, 현대에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였다(De Wette, Tholuck).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태생으로 학문에 능하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뛰어났으며(참조, 행 18:24), 고린도 교회에서 아볼로파가 형성될 만큼 유력한 인물이었다(참조, 고전 1:12). 더욱이 히브리서의 사상은 알렉산드리아의 헬라 사상과 구약성경에 깊이 관계된 것 등으로 추론해 볼 때 히브리서의 저자로 아볼로는 적격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70인역을 전용한 사실로 아볼로설에 유리한 조건이 된다. 그러나 이 가설 역시 추상적인 범위를 넘지 못한다. 더구나 위에 인용된 아볼로에 대한 내용들이 완전하게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아볼로와 같은 인물이 본 서신과 같은 편지를 보낼 이유는 희박해진다. 두 번째로 '하르낙'(Harmack)이 주장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설을 들 수 있다. 이 견해는 그렇게 많은 지지자를 갖지는 않았지만, 확고한 동조자를 가졌다(Peake).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와 같은 지성인을 가르칠 정도로 교양이 높았고, 또 성령의 은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참조, 행 18:26) 교회의 일에 열심이었으므로(참조, 행 18:2, 3) 본 서신의 저자로 인정될 자격은 된다. ② 히브리서에는 '우리'라는 1인칭 복수형이 자주 쓰이는데, 이는 저자가 한 사람이 아니라 공동 저자임을 가리킨다. ③ 히브리서는 사상적인 맥락에서 그 저자가 분명히 바울 주변의 인물임에 틀림없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로 그러한 인물이다(참조, 롬 16:3). ④ 이들 부부는 디모데와도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참조, 딤후 4:19) 본 서신 중에서 디모데에 관한 기사를 쓸 수 있었다(참조, 히 13:23). 이 외에도 로마의 클레멘트설(Erasmus), 누가설(Calvin, Delitzsch), 필자 불명설(von Soden, Westcott, Bruce) 등이 본 서신의 저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된 견해들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 서신의 저자 문제에 관한 한 누구도 확정적인 언급을 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히브리서의 저자 문제는 오히려 저자를 확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정설로 간주될 만하다. 다만 본고에서는 이상의 논의에서 살핀바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음의 몇 가지 조건을 갖춘 인물인 것만은 분명하게 밝힐 수 있겠다. 먼저 그는 유대교인으로서 구약에 통달한 인물이다. 두 번째로 그는 디모데와도 친분이 있는 인물이다. 세 번째로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70인역을 전용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교 교리에 정통한 인물이다. 네 번째로 그는 헬라어의 미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유능한 인물이다. 다섯 번째로 그는 전도자였지만 목회자는 아니었다(참조, 히 13:7, 17, 24).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사도는 아니나 사도들의 제자이며, 헬라의 영향을 받았고 유대인 교회의 회원이고, 바울 추종자이면서 알렉산드리아 문화의 색채를 겸한 자, 그리고 디모데의 친구인 사람이다(Dods)라고 할 수 있겠다.

 

   2. 수신자

 

     1) 수신 지역

   저자에 대한 확실한 언급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신지에 대한 분명한 시사점도 발견되지 않는다. 학자들은 히브리서의 내용에 따라 본 서신의 수신지를 대략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로마의 세 지역으로 주장한다. 먼저 예루살렘의 근거는 히브리서의 내용이 주로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것이고, 히 13:12에 언급한 '성문'도 예루살렘 성문을 가리킨다는 점에 둔다. 하지만 이 견해는 히 2:3에서 헬레니즘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 이미 기정사실로 된 예루살렘 교회의 궁핍(참조, 히 6:10; 10:34; 13:16), 70인역의 사용, 교회 내에서 어느 누구도 아직 순교를 당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히 12:4 등을 근거로 볼 때 논의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팔레스틴 전역을 포괄할 만큼 풍부하지 않은 히브리서의 내용으로 보아 헬레니즘적 요소가 지배적인 지역이 히브리서의 배경으로 보다 적합할 것이다. 두 번째로 알렉산드리아설은 히브리서의 구약성경 인용이 전적으로 70인역에 의존하였다는 사실과 본 서신의 사상이 알렉산드리아의 헬레니즘에 깊이 관계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인들의 산물로 간주되는 70인역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나 알렉산드리아인들의 것으로 확인되는 개념들이, 본 서신에서 발견되는 사실들이 히브리서의 수신지를 알렉산드리아로 정하게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알렉산드리아의 사상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지역 전체에 널리 유포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알렉산드리아 교회가 히브리서의 수신지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은 처음으로 본 서신의 바울 저작권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알렉산드리아도 본 서신의 수신지로서는 부적당하다. 세 번째로 로마설은 대다수의 학자들(Westein, Alford, Holtzmann, Zahn, Nestle, Purdy, Moffatt, Goodspeed, McNeile)이 지지하는 견해로서 히브리서를 최초로 인용한 교부가 로마의 '클레멘트'였다는 사실과 '이달리아'에서 온 자들의 문안(참조, 히 13:24), 저자가 다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사실(참조, 히 13:19), 디모데에 관한 관심(참조, 히 13:23) 등을 근거로 한다. 또한 수신인들의 관대함에 대한 언급들은 로마 교회에 대해 알려진 사실과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열거한 세 가지 견해 중 어느 것도 확정할 수 없다. 그들 견해들이 제시하는 근거들은 모두 다른 수신지에서도 근거로 제시할 만한 것들이며, 반박의 근거도 된다. 때문에 보다 명확하게 본 서신의 수신자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본 서신의 독자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수신인

   히브리서의 내용으로 보건대 수신인들은 어느 특수한 공동체였던 것으로 보인다(Zahn, Thiessen). 그들은 목격자로부터 말씀을 받았고, 표적과 기사들을 보았다(참조, 히 2:3, 4). 또한 그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알았고(참조, 히 6:1), 선행의 열매가 풍성하며(참조, 히 6:10), 부당한 취급을 당한 사람들을 보살폈다(참조, 히 10:32-34). 뿐만 아니라 그들은 초기의 박해들에 대해서도 말한다(참조, 히 12:4). 이러한 사실은 특수한 공동체가 전제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저자에게 알려져 있었으며, 저자는 그 공동체를 방문했었고(참조, 히 13:19), 곧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또한 그 공동체는 보다 큰 공동체의 일부를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저자는 수신인들에게 이제는 선생들이 되었어야 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교회의 일반 회원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편 수신인들의 성향을 보면 그들은 유대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서의 전체 분위기는 헬레니즘적 배경이지만 세부 사항은 구약성경과 깊이 연관되어 있고, 유대교로의 복귀를 경계하며 유대인의 풍속과 신학에 익숙한 점들이 고대의 외증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는 '히브리인들에게'라는 표제와 어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서신의 수신자는 로마에 있던 유대인 가정 교회로 보는 것이 가장 어울린다 하겠다.

 

   III. 기록 연대

 

   저자와 수신자 문제를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히브리서의 기록 연대를 결정하는 문제도 지난한 작업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본 서신이 포함하는 내증에 비추어 볼 때 히브리서의 기록 연대 문제는 바울서신 중에서 연대 결정에 문제가 되는 어떤 서신보다도 그 범위가 훨씬 좁다. 물론 외증도 이에 못지않게 뒷받침해 준다. 따라서 히브리서의 내용과 외증에 따른 몇 가지 기준을 본 서신의 연대 결정에 앞서 전제할 수 있다. 먼저 로마의 '클레멘트'가 히브리서를 자신의 서신에서 인용한 연대가 96년경이므로 본 서신의 기록 연대는 이 시기를 넘을 수 없다. 두 번째로 히브리서는 주로 제사 법전에 관련된 기사이므로 아직 예루살렘에서 제사가 진행될 때인가, 혹은 그 이후인가의 결정이 관건이 된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70년에 멸망되었으므로 본 서신의 기록은 70년 전후가 될 것이다. 세 번째로 히브리서가 언급한 신자들의 박해 시기 문제이다. 그런데 이 같은 박해는 49년경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참조, 행 18:2)이 있고, 65년경 '네로' 황제의 박해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리고 68-70년 사이에 벌어진 예루살렘 함락 때의 유대인들이 받은 위기를 가리킬 수도 있으며, 95년경 '도미티안'(Domitian) 황제의 보다 조직적이며 광범위한 박해를 가리킬 수도 있다. 네 번째로 히브리서가 비록 바울서신은 아니라 할지라도 바울의 영향 아래 있었던 것은 분명하므로 바울서신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전제된 조건의 폭이 넓은 관계로 학자들 사이에서 주장되는 견해의 폭도 다양하다. 먼저 히브리서의 기록 연대를 예루살렘 함락 이후로 보는 학자는(Scott) 그 연대를 80-90년 사이로 본다. 이 경우 '스코트'는 히브리서의 제사 법전을 단순히 이론적인 것으로 보고 성전의 모형보다는 회막에서 행해졌던 제사 모형의 이론적 재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자들의 대다수는 예루살렘 함락 이전에 히브리서가 기록된 것으로 간주한다. 그 이유로는 아직 성전에서 제사가 행해지고 있었고(참조, 히 8:1 이하; 9:6, 9; 10:1 이하; 13:10 이하), 박해를 받는 중에 있었지만 아직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언급은 나타나지 않는 점 등이다. 따라서 히브리서의 연대는 58-6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는 견해를 배제하고 예루살렘 함락이 가까운 연대로 좁혀졌다. 대개 그 폭은 64-69년 사이가 되는데 학자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다수의 학자들이 받아들이는 연대는 67, 68년 사이이다(Westcott).

 

   IV. 기록 목적

 

   히브리서의 기록 목적에 대한 논의는 본 서신을 올바로 해석하기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본 서신의 저자, 수신자 및 기록 연대 문제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록 목적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도 다양하다. 이 글에서는 학자들의 의견들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개괄적으로 살펴보겠다.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배교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 기록되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히 6장과 10장의 강력한 언어는 수신지의 심각한 상황에 대한 경고로서 의도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가장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해석은 수신지의 교인들이 유대교로 되돌아가려는 순간에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히브리서는 구체제에 비해 그리스도교가 우월하다는 점을 진술하며,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모든 유혹을 제거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보겠다. 이 점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구체적인 정의를 하려고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 '내언'(Nairne)은 유대교를 포기하기 싫어하는 지적인 특수 공동체에게 권면하기 위해서 본 서신을 기록하였다고 주장한다. 또 '보른호이저'(Bornhaeuser)와 '스피크'(Spicq)는 개종한 제사장들의 집단에게 본 서신이 주어졌으며, 히브리서의 논증은 그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지녔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본 서신의 수신자는 개종한 제사장 집단들로서 그들은 이제 교사들이 되어야 할 것(참조, 히 5:12)이라는 권면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이들 주장에 있어서 난점은 오로지 개종된 제사장들로만 구성된 공동체가 있었다는 것을 지지해 주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다. 여하튼 히브리서는 수신지 내에서 유대교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두 번째로 히브리서는 세계 선교를 격려하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맨슨'(Manson) 등에 의해 제안되었는데 '맨슨'은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유대인 기독교도들이라는데 동의하지만 히브리서에 나타난 경고가 유대교로의 회귀 때문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공박한다. 그는 수신인들에게서 발견되는 위험이란 유대교로의 회귀가 아니라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저자의 목적은 기독교의 보편적 진리가 제한된 유대교 제의보다 훨씬 우월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 제안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히브리서에서 강력한 경고를 발하는 어구들(참조, 히 10:19-12:29)은 이와 같은 명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세 번째로 아직도 새로운 신앙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 이방인 기독교도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본 서신이 기록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본 서신의 전반적인 문제와 비교해 볼 때 어울리지 않는다. 즉 본 서신은 분명히 어떤 특수한 공동체에 보내진 것으로서 그들은 이방인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 같은 주장은 본 서신의 저자 문제를 비롯한 다른 문제들 사이에서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그러나 본 서신이 갖는 목적 중에서 기독교가 다른 모든 종교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깃들어 있다는 주장은 취할 만한 견해이다. 네 번째로 소수에 불과한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이기는 하지만 본 서신은 일종의 유대교 형태의 영지주의를 논박하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나보로'(Narborough)는 일부 영지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의 사사로운 견해를 포기하도록 만들려는 시도로 본 서신이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를 보다 구체화한 학자가 '맨슨'인데, 그는 여기에서 지목한 일부 영지주의자들을 골로새 교회의 이단들이라고 제안하였다. 물론 '맨슨'은 본 서신의 저자를 아볼로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 같은 주장을 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견해를 모두 히브리서의 기록 목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의 다양한 주장에서 히브리서의 기록 목적에 대한 중요 윤곽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히브리서의 저자는 수신자의 믿음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리스도는 천사나 모세보다 우월하시며 절대적인 구주이심을 논증하고, 나아가 구약의 제사장에 비해 완전하신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밝힘으로써 배교자에 대해 경계한다. 결국 히브리서의 기록 목적은 어려운 박해의 상황과 배교의 유혹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나아가 모든 어려운 시험에 끝까지 싸워 이길 것을 권면하고 격려하는 것이라 하겠다.

 

   V. 특징 및 구조

 

   1. 특징

 

     1) 히브리서의 정체

   히브리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철되는 통일된 한 가지 주제로 이루어졌고, 또 정교하게 구성되었기 때문에 전혀 서신을 연상시키지 않는 일종의 신학적 논증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마지막은 편지글처럼 끝맺는다.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서는 히브리서의 정체를 밝히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먼저 신약성경의 서신들을 '편지'(letter)와 '서신'(epistle)으로 분류한 '다이스만'(Deissmann)은 히브리서를 '가장 정확한 서신'이라고 하였다. 만약 그가 편지와 서신을 분류한 기준, 즉 편지는 다분히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되어 있으며, 반면에 서신은 편지 형식을 띤 신학적 논문으로서 공식문서의 성격을 갖는다는 기준에 따른다면 그의 견해는 옳다. 하지만 혹자는 본 서신을 '설교'라고 하고(Michel), 혹자는 '변증'이라 하며(March), 혹자는 '수필처럼 시작하고, 설교처럼 진행하고, 편지처럼 끝맺는다'고 하였다(Reuss). 이같이 다양한 견해는 본 서신의 정체를 밝히는 문제가 지난한 일임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신학적 논문의 성격을 띤 서신으로 보았다.

 

   2) 문학적 특징

   히브리서의 정체에 대한 다양한 견해 차이와는 달리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 서신이 문학적 형태에 있어서 신약성경 중 최대의 걸작임에 동의한다. 문체에 있어서의 미려함, 논증에 있어서의 당당함과 강력한 설득력 등은 히브리서의 문학적인 가치를 더욱 빛낸다. 특히 문학적인 특징은 바울서신과의 대조에서 보다 뚜렷해진다. 즉 본 서신의 사상은 바울의 흐름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는 오히려 바울에게서 벗어난 대표적인 독특성을 지닌다. 바울서신에서 흔히 보이는 불규칙한 문장 구조에 비하여 히브리서는 미려하고 완전한 문장을 보여준다. 특히 바울이 구약성경을 이용하였던 것에 비해 히브리서의 저자는 70인역을 전용하였기 때문에 두 서신간의 비교는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3) 사상적인 특징

   히브리서는 유대인을 상대로 한 서신이다. 신약성경 중에서 유대인을 상대로 기록한 책으로 마태복음과 야고보서, 그리고 히브리서를 들 수 있는데 이들 세 책들은 나름대로 독특한 사상적 특징을 보여준다. 먼저 마태복음은 다윗의 계통을 이은 구세주 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다음으로 야고보서는 율법을 온전히 이루는 능력으로서의 참 믿음을 제시한다(참조, 약 1:25; 2:8). 마지막으로 히브리서는 영원한 제사장직의 효능에 대한 믿음을 가르친다(참조, 히 7:23 이하). 그런데 본 서신의 사상적인 특징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론이며, 이는 후대의 신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즉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신성과 인성을 지닌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으로 표현한다. 그리스도의 신성(참조, 히 1:1-3, 8)과 인성(참조, 히 2:9, 14, 17, 18)은 같은 비중으로 강조되었으며, 그는 속성들과 업적들을 묘사하기 위해 20개 이상의 칭호들이 사용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그의 앞에 있었던 모든 것들보다 뛰어나시며, 최고의 제사와 제사장직과 언약을 제공하신다. 특별히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론을 논증함에 있어서 소극적으로는 구약성경에서 그림자(모형)를 찾으면서 그것들과 대조시키고 그 불완전성을 입증한다. 또 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똑같이 강조함으로써 역사적으로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장으로 만민을 대속하시는 그리스도를 제시한다는 면에서 매우 인상적이고 탁월하다.

 

   2. 구조

 

     본 서신의 구조에 대한 학자들의 관심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수사학적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사상적 관심이다. 먼저 전자에 의한 내용 구분은 서론부(참조, 히 1-4장), 서술부(참조, 히 5, 6장), 교훈부(참조, 히 7-10장), 귀결부(참조, 히 11-13장) 등이다. 다음으로 후자에 의한 내용 구분은 보다 덜 복잡한데, 서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인격(참조, 히 1:1-4: 13), 본론적으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의 역사(참조, 히 4:14-10:18), 그리고 응용적 부분으로 믿음의 실천적 권면(참조, 히 10:19-13:25)등으로 나뉜다. 이 글에서는 사상적인 관심에 의지하여 내용을 구분하겠다 (참조, 히브리서 도표1).

 

   제2부 히브리서의 특별 주제들

 

   I. 히브리서의 신학

 

   히브리서의 사상은 유대교와 초대교회, 그리고 당시의 헬레니즘 세계의 광범위한 배경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절대적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목적을 띤다. 때문에 히브리서의 신학은 어떤 의미에서 초대교회 신학의 집대성이라 하겠다. 특히 히브리서의 신학은 선교의 목적보다는 신앙고백에 근거한 호교(護敎)의 목적에 더 치중하여 그리스도의 진리를 강조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나 절대적인 분으로 알아야 하고, 또 믿어야 하며, 그를 믿는 자들의 행위는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식의 보편성도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헬레니즘 세계와 그리스도교라는 두 세계관 속에서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초월하여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히브리서의 사상적 특징들을 살펴보는 것도 유익하다 하겠다.

 

   1. 사상적 배경

 

     1)구약성경

   히브리서는 신약성경 중에서 구약성경을 가장 많이 인용한 책으로 그 횟수는 74회 이상이다. 때문에 본 서신에는 구약성경적 언어와 사상이 충일해 있다. 그 중에서도 제사 법전에 관한 표현이 가장 현저하며, 이러한 배경 아래 그리스도가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점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또한 본 서신의 구약성경 인용이 완전히 70인역에 의지하였다는 점도 특이하다. 아마도 이는 본 서신이 구약성경과 더불어 알렉산드리아의 헬라적 사고와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해 주는 듯하며, 구약과 헬라 사상이 본 서신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듯하다.

 

   2) 알렉산드리아의 헬라 철학

   히브리서의 저자는 유대교와 헬라 사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또한 조화시킨 사람이었다. 그런데 유대교와 헬레니즘의 조화는 알렉산드리아를 생각하게 하고, 그 대표적 학자로는 '필로'(Philo)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 같은 양대 사상이 조화된 구체적 산물이 B.C. 3세기에 완성된 구약 성경의 헬라어역인 70인역이다. '필로'는 원래 그리스도교와 역사를 같이한 인물로서 그리스도교 사상에 끼친 영향이 크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초대교회 신학을 논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전형적인 유대인으로서 모세오경을 절대시하였다. 동시에 그는 헬라의 문학, 수사학, 수학, 논리학 등을 연구하여 높은 교양을 쌓은 철학자였다. 나아가서 그는 헬라 철학을 광범위하게 연구하여 플라톤에서 형이상학을, 스토아 철학에서 윤리관을 수립하였다. 이러한 '필로'와 히브리서 저자와의 공통점은 여러 방면에서 지적되어 왔다. 먼저 두 사람 모두 70인역을 전용하였다. 둘째, 그리스도론에 있어서 '필로'가 로고스와 하나님, 혹은 로고스와 만물을 대조한 것처럼 히브리서의 저자도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아들과 만물을 대조시켰다. 셋째, 그리스도의 무죄성을 양자 모두 논한다. 넷째, 멜기세덱을 로고스와 일치시킨 '필로'처럼 히브리서 저자도 멜기세덱을 이상적인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그림자로 제시한다. 물론 결정적인 대조점은 필로의 사상이 철학적이며 관념론적인데 반해 히브리서의 사상은 역사를 관통하여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의 순종으로 이끈다는 점이다. 이상의 내용들은 히브리서가 헬레니즘 세계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독자적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

 

   3) 바울 신학

   바울서신과 히브리서는 외형적으로 볼 때 오히려 대조적이다. 바울의 문장 구조는 흔히 불규칙적이고 정열이 넘쳐흐르지만, 히브리서는 비록 박력이 결여되었다 할지라도 가장 미려한 헬라어를 정연하게 조직되어 있다. 그러나 외형적인 대조와는 달리 그 사상에 있어서 히브리서에서 바울의 자취를 찾는 일은 용이하다. 물론 본 서신의 신약성경적 배경은 바울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공관복음서 등 초대교회의 사상을 폭 넓게 이해하고 수용한 것이지만 그 주축은 바울 신학임이 명백하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선재설을 역설하는 점에 있어서, 히브리서는 오히려 요한과 공통되고, 부활을 강조하는 바울과는 대조되는 듯하지만, 이 사상이 바울에게서 물려받은 것임은 분명하다. 즉 바울의 신학을 십자가의 신학이라 하겠는데, 히브리서는 비록 '십자가'라는 용어를 일 회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고난을 직설적으로 강조한다(참조, 히 8:1-10:18). 그 외에도 그리스도의 역사적 생애에 대한 언급(참조, 히 2:9; 3:1; 5:7), 장차 있을 재림(참조, 히 9:28)과 심판(참조, 히 6:2; 9:27; 10:27; 13:4)에 관해서도 히브리서는 바울서신과 공통되는 점이 많다.

 

   2. 그리스도론

 

     신약성경 중에서 베드로전서, 요한계시록 및 히브리서의 세 책은 박해받는 성도들에게 보내진 책들로 구별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박해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베드로전서는 윤리를, 요한계시록은 계시를, 그리고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론을 제시한다(Purdy).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중심 사상이 그리스도론임 짐작할 수 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궁극적 자기계시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절대적인 중보자로 제시한다. 그리스도는 창조에 있어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대리자였고,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 구약성경에서 천사나 모세나 제사장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은 말세에 이르러 아들을 계시하시고, 그 아들을 통하여 역사의 종국을 맺으신다(참조, 히 1:2). 즉 그는 역사의 시초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이룩하셨고, 역사의 종말에서 심판자로 매듭을 지으실 분이시다. 따라서 그 역사의 중간을 차지하는 구약의 선지자나 왕들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궁극성 및 절대성은 '필로'의 이론처럼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는 역사 이전에 선재의 하나님으로 하나님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셨고, 역사에 들어오셔서 탄생하시고 사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역사적 인물과 사실이 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인격이 독특한 것처럼 그의 역사도 독특하다는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또 다른 강조점이다. 그리스도의 역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 사역으로서 저자는 이를 구약의 제사직에서 논한다. 즉 대제사장이 희생의 피로 지성소에서 백성들의 죄를 속죄한 것처럼 그리스도는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 그러나 그는 구약의 대제사장과는 대조적으로 완전하신 대제사장이시다. 그는 대제사장일뿐더러 그 자신이 제물이 되어 해마다 제물을 드리거나 죽음으로 교체될 수도 없이 영원하신 대제사장으로서 단번에 자신을 드리심으로써 만민을 대속하셨다(참조, 히 7:23, 24, 27; 9:28; 10:12). 그런데 이 같은 그리스도의 제사직의 독특성이 멜기세덱이란 표본적인 인물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그리스도와 일치시킬 수도 없다. 이렇게 볼 때 히브리서의 그리스도론 논증은 구약성경에서 그림자(Type)를 찾는 모형론(Typology)을 사용하였지만, 그것은 단순히 관념론적인 대비가 아니라 역사성에 근거한 논증으로서 영원하신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제시하였다 하겠다.

 

   3. 종말론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교 교인들이 종말의 도래라는 진리를 소홀하게 생각함으로 위태롭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종말의 도래를 강조한다(참조, 히 12:1-13). 특히 히브리서 저자는 서두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당시를 '마지막 날들'이라고 부른다(참조, 히 1:2). 그리고 히 2:5에서는 '장차 오는 세상'을 말하며, 도래하는 시대의 능력이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함께 침투하였다고 한다(참조, 히 6:4, 5). 이처럼 히브리서의 종말론은 베드로후서나 요한계시록의 종말론과 같이 추상적인 사변을 위해서 사용되지 않으며, 또한 종말이 지연되고 있다고 일반적인 관념에 대한 반응도 아니다. 오히려 히브리서의 종말론은 실제적인 목적, 곧 믿음의 권태와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강조되었다. 그런데 히브리서에서는 종말론의 두 측면이 강조된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미래적인 행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강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옛 시대로부터 새 시대로의 뚜렷한 변천의 시대로서의 현재가 강조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리스도 교인들은 구원의 새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는 안식의 시대요 영원한 안식을 얻는 때이다(참조, 히 10:35-37). 때문에 성도들은 '장차 올 도성'을 기다려야 한다(참조, 히 13: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세상과 분리시키고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아야 한다(참조, 히 11:13). 물론 그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성취될 때가 가깝다는 확신에 근거한다. 그러나 그것의 가까운 성취에 대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의 종말론은 바울의 경우에서처럼 급박한 것으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히브리서의 종말론적 희망은 미래에서 강조된다. 즉 하늘에 있는 그리스도가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취하셨다는 확신이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자신의 지배권을 드러내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히브리서의 종말론은 전형적인 묵시문학적 종말론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미래 사건에 대한 예견을 비롯하여 묵시문학적인 특징들이 발견되지만 말이다. 즉 히브리서의 종말론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 없게 하신 사건에 기초하여 종말의 현재성이 강조된다. 한편 종말론과 결부된 모형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방랑했던 사실이다. 즉 광야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을 그리스도교의 원형으로 인식한 것이다. 성도는 구원을 약속받았다. 또한 성도들은 순례자로서 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지도자로 소유하고 있다(참조, 히 2:10).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종말론적 관점에서 볼 때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를 지도자로 모신 전투적인 순례 여행임을 알 수 있다. 결국 히브리서의 종말론은 미래와 현재를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성도들에게 바른 신앙을 견지하라고 가르치는 실제적인 것을 내용으로 한다 하겠다.

 

   4. 신앙론

 

     히브리서는 고전 13장이 사랑의 장으로 불리는 것만큼이나 믿음의 책으로 불린다. 특히 히 11장과 같은 '믿음의 장'은 신약성경 전체를 통해 보아도 두드러진다. 히브리서에는 '믿음'이라는 명사형이 31회, '믿는다'라는 동사형이 98회나 사용되어 '믿음의 복음'으로 불리는 요한복음과 좋은 대응이 된다. 또한 히브리서의 구성상 그리스도론 다음에 믿음을 논한 것에는 두 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론이 믿음이란 행동을 위한 전제라고 할 때 그리스도론은 믿음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는 연결성을 지닌다. 즉 믿음을 떠나서는 아무리 위대한 신학이라고 해도 무의미할 것이다. 둘째, 믿음은 이론이기보다는 실천에 속한다. 히브리서의 저자도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구약성경의 히브리 신앙자의 진지한 신앙생활 체험담을 소개한다. 이러한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 히브리서는 헬라 철학의 추상적 논리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또한 믿음의 논리에 있어서 히브리서는 바울서신들과 현저하게 대조된다.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며, 율법의 행위와 예리하게 대조되어 의롭게 되는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물론 본 서신에서도 그리스도를 대상으로 하는 믿음이 무시된 것은 아니지만(참조, 히 3:1; 12:2), 대체로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믿음이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의 믿음은 미래에서의 하나님 약속을 바라보는 것으로 제시되었다(참조, 히 12:28; 13:15). 이렇게 볼 때 히브리서는 믿음에 대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는 정의나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약속을 확신하는 믿음의 내용에 있어서 영원한 기본 원리를 가르친다 하겠다.

 

  II. '제단'에 관한 비유

 

 

  히브리서에서 '제단'이라는 비유의 말이 도입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참조, 고전 9:13; 10:18히 7:13). 구약성경에서 제단은 제사를 거행하고 사제직을 수행하는 자리였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내에서도 '제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히브리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새로운 것이었다. 우선 제사는 속죄와 정결과 성결을 위해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이다(참조, 히 9:12-13:23). 그러나 제사는 제물로 봉헌된 제사 음식을 나누는 일을 포함한다(참조, 고전 10:18). 그러므로 '제단'이라는 말이 제물을 봉헌하고 봉헌된 제물을 나누어 먹는 장소들과 유형론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1. 제사법에서의 배제 규정

 

     겔 44:9에 따르면 이방인 중에 몸과 마음이 할례 받지 못한 자나 성전 노예들, 그리고 레위인들에게는 성전의 직무나 사제직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에스겔서를 종말론적 제사 법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종말론적 제사법에서는 성소에서 수종드는 직무가 레위인에게 할당되었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제사법의 규정들이 제사 규정에 대한 확인이 아니라 미래의 이스라엘 공동체에 대한 규정을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히 13:10이 제사법과 관련하여 정결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면, 이는 신약성경에서 '제단'이 갖는 의미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 법전은 역사적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헬레니즘을 통하여 후대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히 13:10의 배제 규정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결합, 혹은 분리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의 그림자에 불과한 제단이 구체화된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2. '제단'에 관한 제 견해

 

     우선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원시 그리스도교 문헌인 히 13:10은 특정한 사제직과 특정한 식사와 분명하게 관련된 '제단'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특히 이 시사점이 주목을 받는 까닭은 히브리서가 율법을 수행함에 있어서 이 땅에서 수행하는 것을 일차적인 출발점으로 삼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성경의 성소 개념을 전제하지 않고 이를 그리스도 이전의 것으로 간주하여 거부하기 때문이다. 진리와 현실에 대한 이해는 예수의 생애와 더불어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히 13:10에도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다. 히브리서는 분명하게 성소는 하늘에 있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그것은 옛 계약 아래 있는 이 땅의 성소에 대한 원형이다. 하늘에 있는 성소의 기물들도 예수가 바친 희생으로 인해 깨끗해졌다(참조, 히 9:23). 그러므로 예수의 희생은 이전에 제단에서 드려졌던 제물과는 대조적으로 영원한 효력을 지닌다. 이 경우 실제적인 유형의 제단은 없다. 여기에서 제단은 하나의 비유로서 예수의 희생 및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구원 일체를 가리킨다. 또한 예수 자신은 스스로 백성들의 영적 양식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제단은 성만찬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즉 제단을 섬기는 자들이 음식을 나누는 데 있어서 배제된 사실은 이들에게 새 계약 공동체의 성만찬을 허용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새 계약의 제단은 속죄의 사건이므로 장막만을 섬기고 율법적인 경건만을 추종하는 자들은 구속의 사건과 관련된 성만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단'에 대해 학자들은 ① 성만찬 식탁, ② 십자가, ③ 하늘에 있는 성소의 제사 장소, ④ 그리스도 자신 등으로 해석한다. 그 중에서도 '쉬르제'(Schierse)는 다양한 해석들을 하나의 전체적인 사유 모델 속에 총괄시키고자 한다. 즉 그는 성만찬의 식탁과 십자가와 하늘의 제단이 내적인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유대교의 전승에 따르면 '제단'이라는 말과 '주 앞에 놓은 식탁'이라는 말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참조, 겔 41:22말 1:7, 12).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에서도 이러한 제단과 식탁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참조, 고전 10:21). 따라서 히브리서에 언급된 '제단'은 식사, 곧 성만찬과 관련되어졌다고 보여 지며, 초대교회 내에서 예배 의식과 나눔의 교제를 통해서 구약의 제단 개념과 신약의 성만찬 교리가 특수한 방법으로 정착하는 과정을 시사하는 용어라 하겠다. 즉 초대교회 성도들은 식사를 나눌 때 주의 식탁과 주의 제단에 놓인 것을 먹으며 주의 죽으심을 선포하였다(참조, 고전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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