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말씀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복

열려라 에바다 2024. 4. 21. 16:48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복    

   
글쓴이/봉민근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사는가?
나는 날마다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며 사는가?
나 자신 무엇을 위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삶에 핵심을 모르거나 잊고 살아간다.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자신을 주인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날마다 “주여”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을 내 인생에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를 않는다.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한 당신의 아들까지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는 날마다 세상에 그 무엇을 더 달라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주심은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신 것이다.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보다 썩어질 세상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기도보다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더 중요한데 하나님을 구하지 않는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
성경을 읽어도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성경지식 쌓기에
그친다면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편기자는 하나님 외에는 복이 없다고 고백하였다.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며 그 복이 곧 하나님이시다.
자신이 늘 복 받기를 원하면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구하지 않는다 것은 모순이다..

 

우리가 복을 못 받는 것이 아니고 복이 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복이요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복의 근원이시다.

우리는 언제나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다.
세상에 부족한 것을 위해서는 기도하며 가슴 아파 하지만 정작 자신의 믿음 없음을 위해서는
애통해하거나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살지만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 때가 더 많다.
기본이 잘못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나 자신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똑바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먼저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먼저요 하나님이 인생의 복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분이다.
믿음의 세계는 무한하다. 믿음으로 보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고 더 확실하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보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내 죄에 대하여 민감해진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복이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자료/ⓒ창골산 봉서방

 

예수님을 믿다 변절한 사람들        

 

진리를 바로 전하면
믿을 사람은 믿는다


-존 맥아더

예수믿다 변절하는 사람들
1 하나님보다 군중을 보는 자들
2 기적에 마음을 빼앗기는 자들
3 하나님 나라보다 이 땅의 것만을 생각하는 자들
4 예배에 대한 사모함이 없는 자들
5 예배가 아닌 개인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들
6 자신이 원하는 것만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자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엔 관심도 없다.
7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지 않는 자들
8 진리에 험담하는 자들.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세상엔 없다.
9 신령한 양식엔 관심조차 없다.
10 용서와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마음 속 깊은 갈망이 없는 자들

 

존 맥아더. 값비싼 기독교.

 

어부의 기도 -17세기, 작자 미상     

 

주님, 저로 하여금

죽는 날까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고,

 

마지막 날이 찾아와

당신이 던진 그물에

내가 걸렸을 때

바라옵건대 쓸모없는

물고기라 여겨

내던져짐을

당하지 않게 하소서.

 

믿음없는 사람의 특징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 한다고

다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니다.

믿음 없는 사람의 특징은

첫째로 율법 아래 매여 살아간다는 것이다.

포용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포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관계는 깨어지고 전쟁이 벌어진다.

둘째로 이런 사람들은

내적인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내적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으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애쓰게 된다.

셋째로 그 결과 삶 속에서

선악과 현상을 보이게 된다.

즉, 누가 더 좋고 누가 더 못한지 비교하고

평가하는 일이다.

선악과의 저주 아래 있으면

누군가를 판단하고 정죄하며

그 방법으로 누군가를 훈육하려고 한다.

또 누군가의 안 좋은 부분을 지적하고 험담하게 된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달콤하다.

선악과는 우리 죄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방식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오직 집 나간 둘째 아들을

무조건적으로 품어준

아버지의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이용규, <같이 걷기>

생명에 이르는 회개      

 

자신이 하나님앞에 극악무도한 죄인이며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도 아무런 할말이 없다고 단 한번도 깨닫지 못한 사람이

과연 회심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적당한 회개, 적당한 믿음, 적당한 윤리의식. 적당한 교회생활

이것의 치명적인 맹점은

자신은 그리 나쁜 죄인이 아니라 생각한다는 것

이것은 결국 fear of God, 하나님을 경외함이 거의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을 마주할때

인간은 벌벌 떤다.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때에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거듭남은 단순한 윤리의식 개선, 선의 실천이 아닐찐대.

왜 이렇게 '적당한 신앙'에 안주하고 말아버리는지

과연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았는가

성령으로 거듭나 마음의 틀이 바뀌었는가

그 거룩한 열매들이 내 속에서 맺혀지는가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푯대를 향해 열렬히 달려가야 한다.

오직 그분만이 유일한 소망이요, 생명의 샘이시다.

오직 그분만이.

 

신앙과 목숨     

 

복음서의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은 유독 '목숨'을 강조한다.

마태복음 10 장39절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태복음 22 장3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요한복음 15 장13절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도 결국 '죽음'을 말한다.

누가복음 14 장27절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결국 이 말씀들은 우리의 신앙이 '목숨걸고' 하는 신앙, 즉 순교의 자세를 가져야 함을 뜻한다.

안일한 태도의 형식주의적 신앙, 기복주의적 신앙, 주를 사랑하지 않는 신앙 등은 고난이 오면 흔들리고 타협하게 될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는 말씀은 쉽게 말하면 믿음을 지키다 죽을 상황이 되면 죽으라는 뜻이다. 그런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왜 초대교회 수많은 신자들이, 종교개혁자들이, 프랑스의 위그노들이, 그외 많은 순교자들이 기꺼이 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주님의 엄중한 말씀은 신자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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