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삭개오로 본 구원 (눅 19:1-10)

열려라 에바다 2024. 4. 23. 16:13

삭개오로 본 구원 (눅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 시간에 “삭개오로 본 구원”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은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내용입니다. 9-1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런 답변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고 또 그 구원의 즐거움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을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삭개오가 어떻게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을까요?

 

1. 삭개오는 자기 본질을 알았습니다.

 

2절에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삭개오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지만 이 말씀에서 삭개오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라 했습니다. 삭개오란 “순결”이라는 뜻입니다. 아주 좋은 이름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본질이나 희망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그의 부모는 삭개오가 순결하게 살기를 원하였고, 삭개오 역시 순결을 자기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남의 돈을 토색하면서 살았습니다. 부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것도 세리장이었습니다. 7절에 삭개오를 어김없이 “죄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삭개오가 악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이유나 동기가 뭘까요? 이건 악심을 품게 하는 마음의 상처라든지 그런 어떤 동기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키가 작거나 없다고 무시를 당했거나, 혹은 자기의 이름대로 무언가 이웃과 사회를 위해 공헌하고 싶어, 착한 세리가 되어 백성들의 짐을 덜어줄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날마다 비난하고 가슴에 대못만 박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무엇이 그토록 그를 실망케 하고 슬프게 했으며 민족과 사회를 등지고 모진 결심을 하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당시 식민 치하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삭개오는 자기의 이름과 그 결과가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걸 가지고 놀랐을 것입니다. 그는 사람이 악해지면 이렇게 악해질 수도 있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삭개오가 자기 본질을 깨닫는 과정입니다. 넓게 보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악함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 없이는 살 수 없고 은혜받지 않고는 선할 수 없는 본질적 죄인임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환경이 좋아서 그 악함이 나타나지 않을 뿐이지, 인간의 선은 어떤 동기를 만나게 되면 악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악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걸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죄인이며 스스로 온전할 수 없고 하나님과 멀고 영원히 멸망할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예수 믿어도 하나님 멀리하면 쓰러지고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적당히 하는 신앙생활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걸 깨닫는 것이 진정한 인생공부요, 신앙훈련입니다.

 

2.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3-4절에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이처럼 예수님이 누구신지 확실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마16:16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삭개오가 마음의 문을 연 것은 5절에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자기를 다 알고 계셨고 보잘 것도 없는 자기를 존중하여 그 이름을 불러주시고 찾아와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나의 비밀을 알 때 깨질 수 있습니다.

 

요 1장을 보면 예수께서 나다나엘에게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하니까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7-49절) 고백했습니다. 수가성의 여인도 예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아시니 그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동네에 들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외쳤습니다.

 

이처럼 예수를 만난 삭개오는 이제까지 들은 메시야의 소문이 헛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하시고 나의 영원한 생명의 구주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말고는 다른 구원이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3.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6-8절에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 믿음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그 섬김의 여부에 따라 그 은혜 누림이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지만 이처럼 기쁨과 즐거움으로 섬기지 않기에 그 임재하심과 풍성한 은혜를 모릅니다.

 

막10:15에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천국의 어린이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전부였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그 감격이 없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택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자녀 삼으시고 영원한 영광과 함께 구원해 주시기 위해 찾아오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걸 알면서도 그 감격을 갖지 못한 것은 너무나 세상 것에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많은 것을 관여하다 보니 마음을 펼 기회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놀다가도 어떤 것에 꽂히면 하던 것을 다 놓고 다 잊어버립니다. 어린이처럼 예수님께 꽂혀야 합니다. 어린이와 같아야 구원의 감격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이걸 알아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장 문제점은 이 세 번째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감격적으로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자신이 예수가 필요한 죄인임을 알고, 또 예수님이 나의 유일하신 구주이심도 믿지만, 주님을 감격적으로 섬기는 것이 부족하다면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삭개오처럼 예수님 모셨으니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하여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복된 아브라함의 자손, 구원의 참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샬 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