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슬기로운 성도의 모습

열려라 에바다 2024. 4. 21. 16:52

슬기로운 성도의 모습 7:13-24, 25:1-13

 

옛날 어느 마을에 큰 부자 집이 있었는데, 하루는 주인이 미련하다고 생각되는 머슴을 불러 지팡이를 주면서 "여보게, 내가 보기에는 자네보다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은 없을 것 같네. 그러니 이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가 자네보다 더 미련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거든 주게나." 하고 놀렸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서 그 부자 집 주인이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머슴이 주인을 찾아갔을 때 주인은 "여보게, 나는 이제 얼마 있지 않아서 먼 길을 떠나게 되었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머슴이 "어디로 가시며, 갈 준비는 다 되었는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주인은 이 머슴이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듣고 미련을 떤다고 생각하면서 "아니, 이놈아, 죽음의 길에 무슨 준비가 필요하며,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머슴은 "주인어른, 하루 여행을 떠나도 목적지를 정하고 준비를 하는데 죽음을 앞두고 아주 먼 길을 떠나는데 그런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생각하니 주인어른은 참 어리석고 미련합니다. 그러니 이 지팡이를 도로 받으시지요." 하면서 예전에 주인에게 받았던 지팡이를 다시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구약 본문의 말씀은 노아 시대 사람들의 타락으로 인한 홍수 심판과 그 심판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구원을 받은 노아와 그 가족들, 그리고 방주 안에 들어 간 동물들이 살아남게 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 당시의 사람들은 세상 것에 취하여 살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심판에 대한 대비도 없이 세상 것만 바라보고 살다가 멸망하는 비극을 맞게 되었습니다.

신약 본문의 말씀은 열 처녀 비유를 통해 등은 준비 되었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가 기름을 준비하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와 이미 문이 닫혀 신랑을 맞이할 기회를 잃게 된 것과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있다가 신랑을 맞게 된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비유를 통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슬기로운 성도의 모습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슬기로운 성도는,

 

1.주님 은혜를 받고 사는 성도입니다.

노아 당시 사람들이 너무 죄로 인해 타락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 하시고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6:5-7)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부패한 인생들의 수명을 120년으로 제한하시고 유예기간을 두셨습니다. 120년 후 무드셀라(그가 죽으면 올 것이다.)가 죽을 때 홍수 심판이 올 것을 예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해라"고 축복해 주셔서, 사람들이 번성해지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번성해졌으면 더욱 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어야 할 텐데, 오히려 죄악이 땅에 차고 넘치는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실 때 사람들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인생 지으셨음을 한탄 하시고 홍수로 심판하시기로 작정 하신 것입니다.

노아는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살았지만 은혜를 받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6:8)했고, 9절에서는 은혜 받은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노아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악한 모습으로 살아도 성결한 자로 살 수 있게 됩니다. 은혜 받은 자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대비하며 사는 자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 가운데 타락한 자가 되면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든 것은 자기만 구원받으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방주를 타야할 사람들은 방주를 타지 않고 오히려 짐승들만이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이 타락하면 무지한 자가 되고 짐승이나 미물 보다 더 못한 존재가 되고, 분별력도 없게 됩니다. 오히려 미물들이 민감한 모습으로 위기를 알아차립니다. 어떤 배는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할 때에는 쥐를 같이 태워 쥐가 배안에 그대로 있으면 항해를 시작하고 쥐가 배에서 빠져 나오면 그 배는 항해를 하지 않는데, 이 배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쥐가 먼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미가 이사를 가고 동물들이 장소를 옮기면 무엇인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어리석게 나아가다가 화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경륜 가운데 세우신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구별된 백성으로 살면서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우셨지만 많은 사람들이 외면합니다. 방주를 예비하는 노아를 어리석다고 비웃는 것처럼 복음 전하는 자들을 어리석다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방주를 만드는 노아나 전도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비웃는 자들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사모하여 은혜를 받고 듣든지 듣지 않든지 한 사람 이라도 더 구원 얻기를 소망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노아처럼 은혜 받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성도입니다.

은혜 받은 성도가 사는 방식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곧 다가올 심판에 대비하여 그 심판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 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모두 타락해서 육적이고 세속적인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어떻게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방주는 3층으로 되어 있고 길이가 171.5m, 폭이 28.5m, 높이는 17.2m로 총 톤 수는 13,960톤이 되는 거대한 방주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왜 이처럼 거대한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노아와 그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거대한 방주를 예비하라 하신 것입니다.

신약 본문에 다섯 처녀는 슬기로워 등과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였지만 다른 다섯 처녀는 미련하여서 등만 준비하고 여분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는 슬기로운 성도는 신부의 들러리 열 명 중 다섯 명뿐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등은 외형적인 신앙인의 모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다니고, 헌금도 드리고, 직분도 받아 누가 보아도 신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충분한 기름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여기 기름은 성령 충만한 믿음을 지닌 자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성령 충만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면 모양만 신앙인이지 말씀에 순종하여 살 수 없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아벨과 셋의 신앙 계보를 가진 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세상 풍조를 따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창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 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절에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했습니다. 타락한 신자의 모습입니다.

성령 충만한 믿음을 가진 성도가 되지 못하면 말씀에 순종하여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기름이 떨어지면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성령 충만한 믿음이 없으면 유익이 없기에 성경 곳곳에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강조하여 명령어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27: 20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으로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눅12:35에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등불은 꺼지게 되어 있습니다. 등불이 꺼지면 등이 쓸모가 없게 되어 맛 잃은 소금처럼 되어 버려지게 됩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닫친 문 앞에서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슬기로운 성도가 되어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성도들이 됩시다.

 

3.주님께 소망을 두고 깨어 준비된 신앙으로 사는 성도입니다.

노아 당시의 사람들이 타락하여 죄 가운데 살게 된 것은 세상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오로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세상일에 치심 하여 살면서 끝없는 타락과 방종과 죄악 된 세상에 빠져 살게 되었습니다. 모두 치우쳐 그러한 길로 나아가니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하나님의 한탄의 대상이 되었고, 진노의 대상이 되어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긍휼히 여기시며 죄악에서 돌이키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노아를 통해 방주를 예비하라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것은 아무리 호화롭고 멋있어 보여도 한 순간에 무너지고 없어지고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마지막 때에는 처처에 전쟁과 지진과 기근이 있을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대만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 화려하고 아름답던 도시, 어두움을 대낮처럼 밝히던 도시가 한번 지진에 맥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변함이 없고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주님께는 관심이 없고, 눈앞에 보기에 좋은 세상 것들에 소망을 두고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더 화려하고 더 아름답게 이 세상을 살까하는 것에만 골몰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노아는 당대의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 방주를 만든 후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듯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죄 많은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 방주를 예비 하시고 누구든지 돌이켜 주께로 돌아와 구원 얻을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구원의 방주 안으로 들어오라고 초청하십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어라’(55:3)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55:7),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16:31),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편히 쉼을 얻으리라’(11:28),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13) 수많은 전도지, 수많은 전도자들, 목회자들이 강단을 통해, 방송 매체를 통해,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 주께로 돌아와 구원을 얻으라고 복음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으로 들어가 구원 얻을 기회가 지나면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7:1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120년 동안 방주를 예비하기까지 하나님은 심판을 알리면서 기다리셨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하나님의 초청에 순종하여 배안으로 들어간 뒤에도 하나님은 7일 동안을 더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 아니했습니다. 끝까지 먹고 마시고 범죄하고 타락했습니다. 끝까지 회개하고 돌이키지 아니했습니다. 결국 방주 문이 닫혔습니다.

신악 본문에 나오는 미련한 다섯 처녀가 미리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기름이 떨어지자 구하러 나간 사이에 신랑이 와서 돌아와 보니 이미 문이 닫히고 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이 한번 닫힌 후에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슬퍼하며 울부짖어도 다시는 열리지 아니했습니다. 은혜 받을 때가 있고 구원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한번 지나면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노아처럼,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주님께 소망을 두고 기름등불 예비하고 기다리다 주님 맞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슬기로운 성도의 모습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슬기로운 성도는,

.주님 은혜를 받고 사는 성도입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성도입니다.

.주님께 소망을 두고 깨어 준비된 신앙으로 사는 성도입니다. 아멘.

<2024. 04. 19. 호현낙선>

 

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