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라합의 믿음
진리의증인추천 2조회 6124.04.18 12:02댓글
“1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2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3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4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5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6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7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여호수아 2:1-7)
서론: 모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싯딤’에 도착한 여호수아는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 여리고 성을 정탐하고 돌아오게 했습니다. 여리고 성을 탐지하러 간 정탐꾼들은 기생 라합의 집으로 들어갔는데 여리고 왕에게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기생 라합의 집에서 유숙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갔습니다. 여리고 왕은 즉시 군대를 보내 라합의 집을 수색했지만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안전하게 숨겨주었습니다. 라합은 이 일에 대한 보상으로 여리고 성이 멸망할 때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시간에는 “기생 라합의 믿음”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라합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여리고는 성 전체가 우상을 숭배했고 여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을 듣고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 편에 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신앙과 죄악을 환경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환경이 아니라 믿음이 없고, 의지가 약해서 죄악과 관습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인간이 환경의 지배만 받고 살아간다면 동물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동물은 철저하게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갑니다. 인간도 환경의 영향을 받지만 그리스도인은 환경도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더 좋은 편을 선택하고 더 소중한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사업에 성공하고, 직장에서 다른 사람보다 빨리 승진하고,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도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진짜 성공한 사람은 라합처럼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 편에 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신앙과 인생의 목적이 천국과 영생에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국경도 초월하고 민족도 초월합니다. 왜냐하면 민족이나 국경이나 사상이나 문화나 어떤 것도 신앙에 장애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간혹 성도들 중에 애국과 전통과 문화라는 말에 속아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오래된 전통과 관습과 문화도 신앙과 맞지 않으면 버려야 합니다. 민족과 국가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 편에 선 라합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라합은 여리고의 멸망에서 구원받고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고 메시아의 육신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과 신앙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혈연이나 지연이나 어떤 것도 신앙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선택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이 땅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고 천국과 지옥이라는 인간의 최후 운명이 결정됩니다. 라합처럼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 뜻을 선택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라합은 직업이 기생(妓生)입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신학자들이 기생 ‘라합’을 긍정적인 인물로 미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옛날에 기생은 여관업을 하며 음식을 팔았다거나 기생은 숙박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라합은 사생활이 부정한 여자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라합이 기생이었다는 성경 말씀을 부정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을 최초로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을 70인역(LXX,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72명의 학자에 의해 BC 3세기 중엽-BC 2세기 중엽에 출간된 성경)이라고 하는데 70인역에서는 라합을 매춘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공동번역 성경도 라합을 매춘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라합은 술도 팔고 몸도 파는 매춘부였다는 뜻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정탐꾼에게 그들을 숨겨준 대가로 부모와 그녀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자들의 생명을 구원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여호수아 2:8).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진 여자라면 남편과 자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정과 남편과 자녀가 없기 때문에 부모와 형제들만 부탁한 것입니다. 라합이 매춘부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기생 라합을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이냐? 하나님은 인간의 외모나 출신성분을 보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과거의 허물과 옛날의 죄를 기억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거듭난 현재의 모습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아무리 부끄러운 과거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고 후회되지 않는 과거를 가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죄를 받고 정결하게 씻음을 받기 때문에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과거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고린도후서 5:17,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죄의 종으로 살았던 옛날의 나는 죽고 하나님 자녀와 하나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자중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과거에 지은 죄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부끄러운 과거가 자랑이 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더욱 자중하고 겸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보시지 않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과거를 망각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더욱 겸손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기생 라합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라합처럼 국가와 민족과 세속적인 것들을 초월하여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 뜻을 이루고 하나님 믿고 의지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라합은 기생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웃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신앙과 진리의 문제에는 이웃과 불신자와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인격적인 비난과 멸시는 받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인격이 진실하지 못해서 비난과 멸시를 받으면 하나님과 교회를 욕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으로 여리고는 온 나라가 긴장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데 두 사람의 이스라엘 정탐이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갔다는 정보가 여리고 왕에게 보고되자, 왕은 즉시 라합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라합이 “그 사람들이 왔지만 나는 그들이 어디서 온 사람인지 알지 못하였고 그들은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 성을 떠났다”고 말하자, 의심 없이 떠났습니다. 라합의 말을 믿고 떠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정받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사회에서 정의와 진실의 바로미터(barometer, 청우계, 기압계, 척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국가와 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부정부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예외 없이 그리스도인이 연루돼 있습니다. 지난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교회는 사회로부터 정의와 양심의 보루로 인정받았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목사나 장로라고 하면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목사나 장로라고 신분을 밝히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교회의 권위와 이미지가 실추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 이단종파와 타락한 목사의 원인도 있지만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성장은 인격의 성장과 비례합니다. 신앙이 성장하면 인격도 함께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신사와 인격자가 되지 않을 수 없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저 사람이라면 틀림없다, 저 사람 말은 믿을 수 있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신앙으로는 하나가 되지 못하고 신앙은 다를 수 있지만 인격적으로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인정받고 신뢰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인정을 받아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의 전도의 문이 열립니다. 그리스도인은 기생 라합처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신뢰받는 사람이 되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기생 라합의 믿음은 행하고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라합의 행함과 실천이 무엇이냐?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탐꾼을 숨겨준 용기 있는 행동을 말합니다. 정탐꾼을 숨겨준 사실이 탄로 나면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라합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탐꾼을 숨겨준 것입니다. 성경은 야고보서 2:25-26,에서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행함은 신앙의 열매이며 구원받은 사람의 외적인 증거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행함이 없다면 그 사람은 구원이 의심스러운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구원받았다는 증거는 선한 행위와 신앙의 열매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자 나무가 말라죽었습니다. 열매 없는 신앙과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입니다. 신앙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나 이방인 중에도 선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나 이방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됩니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됩니다.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은 다음에는 순종과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계시록 1:3,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의 문제가 무엇이냐?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것은 많지만 행함이 없고 실천이 없습니다. 아는 것은 많지만 행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여러 직분이 있고 직분에 따라 주어진 사명과 의무가 있습니다. 장로의 직무, 집사의 직무, 권사의 직무가 있는데 직무에 따른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지 않기 때문에 잠자는 교회가 되고 죽은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축복은 남보다 더 받기 원하고 권리도 남보다 더 주장하지만 섬기고 봉사하는 일은 소극적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문제입니다.
교회의 간판을 달았다고 저절로 구원의 방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에 출석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저절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사명과 책임을 감당할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구원의 방주가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신앙은 입으로는 예수를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하나님과 예수를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치욕적인 비난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은 잘한다, 저 사람은 말은 잘해도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난입니다. 말은 잘하면서 행동이 바르지 못하면 현대판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됩니다.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현대판 서기관과 바리새인!” 얼마나 수치스럽고 두려운 평판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정탐꾼을 숨겨준 라합처럼 행하고 실천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기생 라합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을 선택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결과 라합은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신앙과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고 천국과 지옥이라는 인간의 최후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라합은 기생의 신분이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도 인정받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기생 라합의 믿음은 행하고 실천하는 믿음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알고 있는 대로 행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라합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실천하는 믿음으로 신앙과 인생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 4, 21.
'설교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슬기로운 성도의 모습 (0) | 2024.04.21 |
---|---|
스크랩 본받아야 할 멜리데 신앙 (0) | 2024.04.19 |
올바른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요 = 신명기23;1-8(240421) (0) | 2024.04.19 |
주일 설교. 하나님의 뜻은 너희의 거룩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8절) (0) | 2024.04.16 |
요13;4~7예수님의 섬김20190915주일 (0) | 2024.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