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요13;4~7예수님의 섬김20190915주일

열려라 에바다 2024. 4. 16. 08:10

요13;4~7예수님의 섬김20190915주일

요13;4~7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6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2019도곡교회 김백수목사 .................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요13;4~7말씀으로[예수님의 섬김]이러한 제목으로 하나님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사랑과 축복으로 지난 한 주간  특별히 추석에 반가운 가족과 오래 만에 집안사람들을 기쁨 가운데 만나보셨는지요?
 모든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늘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축복이 있어지길 우리들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 생활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본문 말씀을 듣기 전에 성령님 감동하심으로 기록된   본문이 기록된 요13장은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유대인들의 손에 잡히실 그날 밤에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과 그 일로 인하여 섬김을 보여 주십니다.
 이 씻어주심은 구약시대 유월절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는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님이 실제로 그들의 죄를 씻어주시는 것으로 자신이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을 보여 줍니다.
유월절에 성찬식을 기념하면 행하는 것과 더불어 매우 중요한  심오한 구속의 진리를 보여 줍니다.
 원래 죄 값대로 마땅히 죽어야 할 인간을 대신하여 죄 값을 치르시고 인간은 살리시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에 의해 죄 씻음을 받는 자만이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히9;14;요일1;7;계7;14),
 구원받은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겸손하심으로 낮아져서 인간들을 섬김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한 것을 기억하며 우리들도 섬김으로 봉사함으로 주변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성도의 삶을 보여주는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두 가지로 생명의 양식을 주십니다.
*첫째로 겉옷을 벗고 4-5
*둘째로 이 후에는 알리라 4-7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낮아져 섬기는 삶을 살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말씀을 들으면 우리들은 깨달아 알게 되고 주님의 실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증언하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들도 주님을 날마다 알아 가면 증언하는 자로 남은 생애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말씀에 이끌려 따라가면 성령님 감동으로 하나님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겉옷을 벗고4-5
                 
 본문성경 요13;4-5말씀에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고 여기 옷은 위옷(상의(上衣)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  달려 돌아가실 때는 통으로 옷 된 옷을 입어셨는데 로마 군병들을 그 옷을 벗기고 벌거숭이로 십자가상에 매달아 못 박아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옷을 서로 가지려다가 제비를 뽑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본문성경 요13;4말씀에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섬기기를 원하지 아니하므로 그들을 섬기기 위하여 옷을 벗고 종들이 하는 섬기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상의는 권위나 격식의 표시입니다. 위 옷을 벗고 종의 자세 모습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성경은 에덴동산에서 범죄 함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수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지어 입고 수치를 가리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 많이 있는 그 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 갈 수 없어 부끄러워 하나님 음성을 듣고 나무 밑에 숨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양을 잡아 옷을 만들어 입혀 주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수치를 가리주기 위하여 옷을 만들어 입은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오늘날 옷을 입는 것은 모진 기후와 불쾌하거나 위험한 접촉으로부터 육신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사는 곳 따라 옷의 모양이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옷이 그 민족의 고유의 모습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전통의상이 자리 잡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한복으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화려하고 멋지고 고풍스런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옷에는 장식과 더불어 오늘날 그 사람의 하는 일들을 나타내 보이기도 합니다.
 군인은 군복을 경찰은 경찰복을 약사는 까운을 일하는 사람은 그곳에 맞는 작업복을 입게 됩니다.
 예수님은 광체의 옷을 의의 옷을 벗고 이 땅위에 오실 때 우리들과 같은 벌거숭이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늘나라 영광의 나라를 떠나 우리들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위한 준비를 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은 제자들에게 성찬식을 할 때 마다 생각나게 하는 잊을 수 없는 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은 영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고 십자가상에 죽으심으로 자신을 희생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주님은 발을 씻기기 위해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손은 수건을 가져다 허리에 두르신 것은 행동은 종(노예)의 행동을 하신 것을 보여 줍니다.
 교만한 사람은 낮아질 수 없습니다. 섬기는 자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주변에 불신자를 섬겨야 합니다. 나는 낮아지고 주님을 이제는 높여 드려야 합니다.
 주님 섬기는 방법은 적극적으로 섬김의 자세를 보여 주시면 진심으로 섬기는 것을 보여줍니다.
 본문성경 요13;5말씀에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지방에서는 먼지가 많고 주로 샌들 같은 신발을 신고 다닙니다. 외출 후 돌아왔을 때는 발을 씻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발은 씻는 것은 그 집의 가장 천한 종들이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그들의 선생님이신 주님께서 친히 섬기신 것은 제자들 가운데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은 서로 섬기려는 자세가 아닙니다. 세상의 사람들처럼 높임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하여 그들은 서로 다투었습니다.
 이 앙금이 그들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도 발을 서로 씻어주고자 하는 섬기는 자로 봉사할 수 없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눅22:24)
 그 때 예수님이 종의 위치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사랑과 겸손과 서로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 이처럼 하신 것은 자신이 십자가상에서 보배 피를 흘려 택한 백성의 죄를 씻어주시며 구원하여 주실 대속의 죽음을 보여 주시고 계십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대야에 물을 담아 오셨습니다. 제자들의 발 앞에 허리를 굽히시고 앉으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거룩한 손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과 발가락 사이사이를 씻어 주셨습니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수건으로 발의 물기를 닦아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만유의 주요,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엎드려 죄인들의 발을 씻어 주시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까?
이스라엘 풍습은 자기 발을 자기가 스스로 씻지 않습니다. 종이 주인의 발을 씻어 주고, 제자는 스승의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종이 없으면 서로 서로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발을, 남편은 아내의 발을, 친구는 친구끼리 씻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누구 하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서로 높아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 날 예수님께서 백성들로부터 환영을 받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헬라인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누가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특히 야고보와 요한이 더 했습니다. 그들은 그의 어머니를 통해 예수님께 우의정, 좌의정의 자리를 교섭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질투했습니다. 사람이 질투하게 되면 이성을 잃게 됩니다. 눈이 어둡게 되어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합니다.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유월절 음식을 먹으러 들어가기 전에 발을 씻어 주어야 했지만 질투하고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먼저 발을 씻길 수 없었습니다. 먼저 씻겨 주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낮은 사람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서로 네가 먼저 내 발을 씻어 주기를 바랬습니다. 베드로는 야고보가, 야고보는 베드로가, 요한은 안드레에게, 안드레는 요한에게 서로 네가 먼저 내 발을 씻어 주면 내가 네 발을 씻어 주겠다고 서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질투하고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은 서로 긴장관계가 됩니다. 서로 양보하고 섬길 수 없게 됩니다. 이때에 그들은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리는 것까지 잊어 버렸습니다.
 모두 더러운 발을 그대로 하고 상에 마주 앉았으니 발 냄새가 어떠했겠습니까?
 좁은 다락방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러 했습니다. 제자들은 발 냄새와 양고기 냄새로 속이 뒤틀렸지만 인내심으로 참으며 열심히 양고기를 먹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훈계와 책망을 할 수 있습니다. 당장 발을 씻어 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그들의 종이 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 모습은 자애로운 어머니가 개구장이의 발을 씻어 주는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들 예수님 사랑을 실천하기를 힘을 다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도 서로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사랑에 세상은 목말라 있습니다.
 우리들은 섬기는 생활을 하기를 원하시면 생활하고 있는지요?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섬겨 주기를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요?
 우리들은 주님 보시기에 섬기는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이 후에는 알리라 6-7
                
 본문성경 요13;6-7말씀에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우리들이 겸손함으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아니함으로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을 보고 자신에게 오셔서 발을 씻어 주고자 할 때 나는 씻지 아니하리라 고백합니다.
 아마 이 고백에는 자신이 겸손함으로 섬겨야 하는데 섬기지 아니하니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하시다니 후회가 있는 자신을 돌아보는 고백입니다.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본문성경 요13;6말씀에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가운데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지 아니했습니다.  베드로만이 나서서 주님과 대화를 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말씀을 보면 아마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제일 처음 씻기기를 시작 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나중에 했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처음이나 나중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겨 주고자 할 때 베드로는 자신의 더러운 발을 보면 이 냄새나는 더러운 발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어주는 그 자체를 부끄러워  자신은 씻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8말씀에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할 정도로 두 번이나 베드로는 거절하였습니다. 여기에 내 발 이라는 말과 절대로 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을 봐서 베드로는 그 발이 심히 더러워진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신적 영적 신앙적 마음의 더러움이 아주 심한 상태 자신이 혈기를 내어 마음이 분이 가득한 그대로 지금도 힘들어 하는 그 상태입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자신이 소원한 예수님 왕이 되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가 어머니를 동원하여 자신의 자리를 넘보니 싫어졌습니다.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교만하면 누구의 행동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아니합니다. 섬기고자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교만으로 마귀는 인류를 타락시킨 죄의 원죄입니다. 마귀가 교만으로 인류를 타락시켜 하나님으로 버림받게 하였습니다. 죽음을 가졌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교만으로 마귀가 타락시킴으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겸손함으로 낮아지고 낮아 져서 마구간에 나실 정도로 낮아져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상의 죽음은 더욱 낮아져 땅 끝까지 낮아져 우리들을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죽음으로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구원의 축복을 주었습니다.
 빌2;6-11말씀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은 낮아짐을 배워야 합니다.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날마다 내가 죽어지면 자존심이 죽어지지 아니하니 섬 길수 없습니다. 내가 섬김을 받으려 합니다. 
 세상 사람도 교만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내가 적임자라 생각하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 하니 아무개 장관 한 사람 때문에 오늘날 정치권이 시끄럽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고백하길 자신의 존재를 내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을 때 다 나를 버릴 것이다 할 때 그는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을 보면 다른 제자들을 무시하는 교만하게 말합니다.
 마26;33말씀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큰 소리 친 베드로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부인합니다. 제일먼저 주님을 부인한 것은 자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주님 앞에 나는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습니다,
 주님 말씀 앞세우고 겸손하게 살 수 있도록 성령으로 내 행동과 입술을 붙잡아 주옵소서 기도하면 살아야 합니다.
 C. S. 루이스라는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는 신앙인에게 있어서 교만은 영적인 암 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우리 신체에 위암, 간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 암’도 있습니다. 이것 다스리지 못하고, 키우면 우리는 영적으로 죽습니다. 우리도 망하고, 그 영향이 후대까지 미치게 됩니다.
 오늘도 세상에는 교만한 사람들로 인하여 힘들어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자신을 믿고 생활하는 자가 교만한 자들입니다. 우리들은 겸손함으로 주님을 섬기면 살아야 인생을 성공합니다.
 본문성경 요13;7말씀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에 알다가 두 번 나옵니다.
첫 번째 알다 는 절대적인 완전한 앎을 말합니다. 두 번째 알다 는 경험을 통한 더디고 늦은 앎 을 말합니다.
 우리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는 이유를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낮아져서 섬기는 본을 보여 주신 것을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이후에는 알게 되는 시간이 있을 것을 말씀합니다.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예수께서 발 씻겨 주시는 깊은 뜻을 베드로가 지금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후에는 알게 되리라 들려줍니다.
 이 말은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이해가 되지 아니하지만 성령 충만함으로 사명 감당함 때 그 때는 알게 될 알게 될 것이다.
 자녀들이 힘들게 하며 할 때 하는 말  딸이 어머니 속을 썩이면 너도 시집을 가서 애를 낳아봐라. 그러면 알 것이다.
 너도 아버지가 되어봐라. 그러면 알 것이다. 언젠가는 네가 알 것이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 것이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사실들을 잘 들려줍니다.
요셉이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할 때 그 때는 몰랐습니다.  내가 형들에 의하여 팔려와 생활하다 보디 발 가정에서 생활이 좋았는데 그곳에서 이곳 정치범만 생활하는 이곳에서 나는 죽는다 말이야 생각할 때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심으로   꿈을 해석하고 총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지난 시간이 고난과 고통의 시간들로 채워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총리가 되어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구원하는 일을 함으로서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가나안 땅에서 형들이 곡식을 사려고 왔을 때 그들에게 이처럼 대답하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창45;7-8말씀에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때는 몰라도 믿음이 자라면
그 때는 몰라도 성령 충만한 가운데
생활하다 보면 알게 될 날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이 연약할 때는 몰랐지만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면 하나님의 기쁨으로 생활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연약한 베드로 이 후에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 복음의 증인으로 살다 십자가상에 죽을 것도 아시기에 지금은  섬기면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너희들을 위해 죽은 나를 기억하면 예수 그리스도시요 하나님 아들인 것을 알아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것을 아셨습니다.
 베드로의 순교의 죽음까지 아셨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지금은 연약하여 모를 수 있지만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우리들의 남은 생애를 크게 사용하면 주님을 위해 우리들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말씀은 우리들의 생활의 미래를 아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 모든 삶을 아시는 주님 앞에 우리들은 겸손함으로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믿음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은 생애 하나님 앞에 큰 믿음 보이면 큰일을 감당하는 생애가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우리들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우리들은 무엇을 기도하면 하나님의 기쁘신 일을 하기를 소망하고 살아가는지요?
모든 것 아시는 주님은 우리들의 인생의 최후의 날 죽음도  아십니다.
아시는 주님 앞에 우리들은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충성스런 생활로 우리들의 남은 삶을 복 있는 믿음 생활로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오늘 본문을 통하여 두  가지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겉옷을 벗고
*둘째로 이 후에는 알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들을 섬기기 위하여 겉옷을 벗고 씻어 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주님처럼 이제는 나의 겉옷을 벗고 내려놓고 겸손함으로 섬기는 낮아지는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십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아십니다. 우리들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나를 내려놓고 겸손함으로 충성된 모습으로 영혼 사랑하는 섬김의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을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친척과 이웃을 겸손함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남은 삶을 생활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
 마11;29말씀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심으로 종들이 하는 발을 씻어 주시면 그들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우리들도 낮아져 섬김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우리들은 날마다 순간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을 큰 믿음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하며 생명 살리는 전도자의 일을 감당함으로 주님 앞에 설 때 인정받고 칭찬받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0915도곡교회 김백수 목사 
요13;3~7예수님의 섬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