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백발의 사도 요한이 칭찬한 신앙

열려라 에바다 2024. 4. 15. 08:15

♤ 백발의 사도 요한이 칭찬한 신앙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요삼 1:1-8)


오늘 우리가 본문을 바로 이해하게 되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그리고 우리가 성경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얼마나 잘못된 것을 가르치게 되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백발의 노인이 된 사도 요한이 복음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순종하는 가이오라는 사람의 신앙을 칭찬하면서 축복하고,  그리고 끝까지 주의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요한삼서를 바로 이해하려면 먼저 사도 요한의 생애를 알아야 합니다.


=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게 마리아를 부탁 받은 사람입니다.


(요 19:26-27)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마리아를 모시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드는 에베소로 피신하여 숨어 지내다가 마리아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AD 90년쯤에 에베소에서 복음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때는 이미 많은 사도들이 순교한 후 였고,  사도 요한도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 사도 요한은 이단과 싸워 주님의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을 지켜내기 위하여 진리를 강조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지금의 한국교회의 이단인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 통일교, 여호와 증인들과 같은 당시의 이단인 영지주의와 싸워서 복음을 지켜내기 위하여 ‘주의 복음의 말씀이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의 이치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라고 강조하기 위하여 주의 말씀을 ‘진리’라고 강조하게 됩니다.


요한일서에서는 영지주의의 가르침에 속지 말고 이미 그들이 받은 주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다시 설명해 주면서 그 복음에 순종하는 삶을 실천하자고 다시 강조하게 되고,


(계 2:1-3)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요한이서, 요한삼서에서는 영지주의 이단에게 속아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배척하면서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칭찬하고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요한삼서 하면 기억나는 것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는 요한삼서1:2절일 것입니다.


이를 어떤 사람은 삼박자 구원, 또는 삼박자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본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복적 신앙을 강조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과연 그런 것인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요한삼서를 이해하려면 먼저 본문 가운데 기록된 가이오의 신앙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가이오가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삼1:3~4)


사도 요한은 이런 가이오의 신앙을 기뻐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무엇을 말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대하여 혼동하기에 진리라는 단어를 보아도 무엇을 말하는지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주님이 남기신 말씀을 말합니다. 사도요한이 이 글을 쓸 때는 영지주의라는 것이 있었는데, 오늘날 이단과 같은 종교 단체입니다. 그들은 영혼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고 주장합니다. 육체가 악하기 때문에 금욕해야 한다는 Stoic 학파와 악한 육체를 죄악 속에 방치해야 한다는 쾌락주의 Epicurus 학파가 생겨났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신 중에 미천한 신이라고 말하고, 그 신을 만드신 하나님도 물질을 만드신 신으로 신들 중에 의뜸이 되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오직 영의 세계만을 다스리는 빛 되신 신,  로고스가 최고의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와서 그들이 말하는 진리를 배울 때에 구원과 빛 되시는 그들의 신의 자리에 나갈 수 있다고 가르치면서 기독인들을 유혹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을 신비롭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로고스(말씀)요, 빛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찮은 신이 아니라 빛의 신이라고 밝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말씀만이 진리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 주님의 말씀 따라 살아가는 것을 “진리 가운데 행한다”고 한 것입니다.


주님은 살아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고, 그것을 사도들은 성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말씀이 가이오에게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봅니다. 그래서 가이오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과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가진 것을 아낌없이 드릴 줄 아는 삶을 살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복음을 들은 제자와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예배하고, 열심히 교회 생활하고, 그러면서 비인격적이고, 욕심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교회 성도들......가이오의 신앙은 그것보다 조금 차원이 다르고 뛰어넘는 신앙이었습니다. 정말로 왕이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인품을 가진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찬양으로만 뜨겁게 “왕이신 나의 예수님”하고 부르지 않고, 주님을 왕으로 여기며 그 말씀에 죽도록 순종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켰습니다. 주의 말씀을 안다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가 너희 왕이고, 너희는 그의 백성이냐?”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유대인들과 로마인들하고 달랐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환난과 핍박 중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쫓는도다”(요삼1:5-8,10)


디오드레베라는 사람 같이 악한 행실을 가진 자들이 복음의 일군들을 폄론 하면서 돕지 못하게 할 때에도 가이오는 그들의 핍박과 훼방을 무릅쓰고 복음의 일군들을 접대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교회에 필요한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이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아니라 삶 속에서 복음의 말씀을 실천하여 나그네를 돕는 삶이 주의 나라와 주의 뜻을 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셋째로, 그는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요삼1:9)


우리는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을 통하여 역으로 가이오가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디오드레베는 스스로 교회서 자신을 높이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증거되는 것을 방해 하는데 앞장 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이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겸손히 주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11절에 귀한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요삼1:11)


여기서 말하는 “선한 것을 본 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에서 선한 것은 주의 말씀 따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현대 교회 성도들의 삶하고는 매우 다른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놀라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삶입니다. 이 땅에 그것이 회복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가이오가 해오던 것을 멈추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그러면서 디오드레베라와 같은 사람이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이런 가이오를 향하여 사도 요한이 축복 기도를 하는 내용이 2절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가이오의 영혼이 잘된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가이오의 영혼이 잘 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영지주에 빠지지 않고, 교만하여 스스로 높이지 않고, 겸손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참된 천국 백성으로 사는 것이 가이오의 영혼이 잘된 것임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열심을 내되 바른 열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신앙...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예배하고, 열심히 봉사하고...그런데 세상에서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른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면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는 “네 영혼이 잘됨 같이”는 복음적인 삶을 사는 가이오의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출처: 개척교회 목회정보 원문보기 글쓴이: 최성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