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93번째 쪽지!
□설교의 특권화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면 여섯째는 설교의 특권화입니다. 루터와 칼빈의 최대 실수는 목사직을 직업화하고 설교를 특권화한 것입니다. 성경을 사제들만 읽고 사제들만 강연했던 가톨릭을 반대해서 종교개혁을 했으면서, 그것이 목사들만 성경을 선포하고, 목사들만 가르치고, 그리고 목사들만 설교한다면 가톨릭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개신교는 ‘공교회’를 목사만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이상한 ‘개교회’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2.그러다 보니 교회는 담임 목사의 안방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부 목사들은 설교 시간에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합니다. 더 나쁜 것은 그런 자기 말을 마치 ‘하나님 말씀’처럼 포장합니다. 장기간 한 설교자에게 집중적으로 세뇌된 맹신도들은 지금 자기 교회가 ‘방주’인지 ‘해적선’인지 구별조차 못합니다. 그럼에도 한국 교회에는 설교에 오류나 변질이 있을 때 이를 시정하고 교정할 제도적 장치조차 없습니다.
3.성경에는 목수도 설교를 했고, 어부도 설교를 했고, 의사도 설교를 했고, 스데반과 빌립은 집사인데 설교를 했습니다. 자격을 갖춘 특별한 사람들만 설교를 한 것이 아닙니다. 신학교에서 몇 년 공부한 것으로 정말 예배당 강단을 그렇게 높게 쌓아야 하는 것인지... (에고, 난 모르겠다.)
4.제가 어떤 교회에 갔을 때, 한 할머니 성도님이 저에게 다가와서 살짝 말했습니다. “목사님보다 사모님이 설교를 훨씬 더 잘해.” 사모님은 신학 공부를 한 분이 아닙니다. 이로 봐서 설교는 ‘은사’이지 무슨 ‘자격’이 아닙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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