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7791번째 쪽지!
□온전케 하지 못함
1.기독교에서 건드리면 큰일나는 설교(說敎)가 교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면 넷째는 설교가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막일꾼으로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4:12)
2.‘성도들을 온전케 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영화롭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 미리 정하시고(예정),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칭의),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영화) 하셨느니라”(롬8:30) ‘온전’이 바로 ‘영화(glorification)’입니다. 영화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으로써 구원의 서정 맨 마지막에 둡니다. 더 이상의 상태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설교는 ‘영화’의 단계까지 이르게 하지 못합니다. ‘설교’로 영화를 설명은 하지만 영화되는 단계까지는 설교로는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로는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고 목회자 잘 섬기는(?)’사람 이상을 만들지 못합니다.
3.한국 교회에 <평신도를 깨운다>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아무개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적전 “기껏 평신도를 깨운다는 게 교회에 봉사나 열심히 하고 목회자나 잘 따라다니는 사람으로 만든 것을 후회한다.”고 하신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4.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해주고 배우고 가르쳤던 초대교회 방식’은 오랫동안 그 교회를 내버려 두었어는데도 교회가 목회자 없이도 제 기능을 잘 발휘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설교’로 교회를 독점하고 있는 한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일 이란 공허한 말장난에 그칠 뿐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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