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초대교회가 들었던 복음은 무엇인가? - 2

열려라 에바다 2024. 5. 17. 08:11

< 초대교회 성도들이 들었던 두 번째, 세 번째 계명 >


(마 5:4-5)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우리는 세월이 흐르면서 성도들이 복음이 요구하는 삶을 힘들어 한다고 교묘히 복음을 변질시켜 다르게 가르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 "심령이 가난한 자"를 "세상의 욕심을 버린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고 갈급해 하는 것"으로 변질시켜 가르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이 요구하는 것을 가르치면 복을 누리고 싶어하는 성도들이 신앙생활 하기 힘들어 하고, 그러면 교회 부흥에 지장이 오기 때문에 교묘히 변질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요구하는 신앙생활 보다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더 강조하며 가르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지않고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오늘 말씀에 “애통하는 자”와 “온유한 자”는 서로 연관성을 가진 말씀이기에 묶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 본문에 나오는 “애통하는 자”를 사람들은 어느 날부터 "자신의 죄와 잘못을 하나님께 애통하며 눈물로 회개하는 것"으로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요구하신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이 사라지고,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들 같이 기도가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기도에만 매달리는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주님은 애통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 5:38-42)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 누가 나의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도 돌려 되는 삶,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애통하는 삶인 것입니다. 누가 부당하게 나의 속옷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면 겉옷까지 줄 수 있는 삶, 누가 부당하게 나에게 억지로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같이 갈 수 있는 삶,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할 애통함입니다.


= 초대교회 중에 애통하는 삶을 살았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였습니다.


= 데살로니가교회가 복음에 순종하여 구제하는 일을 열심히 하였더니 그들의 그런 구제를 이용해 먹으려고 일하지 않고 교회에 빌붙어 거저 받아먹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그런 그들이 싫었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애통해 할 때에 바울은 그들에게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갚아 주실 것이기에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이유는 그들의 애통한 삶을 이겨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형식에 매여 있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복음이 요구하는 삶, 선을 행하는 것을 끝까지 이루기 위해 해야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살전 5:16-22)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후 3:10-13)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 우리가 알고 있는 이 귀한 말씀은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여러 가지 문제로 애통하고 있을 때에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해준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복음에 순종하여 애통하는 삶을 살면서 그 고통을 이겨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초대교회 중에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교회로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가 죄를 지었다면 눈물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애통함은 눈물로 기도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통을 참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이겨낼 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로하시고 갚아 주실 것입니다.


=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의 박해를 받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도 찬송하였고, 불에 타 죽으면서도 찬송하였고, 사자에게 물려 죽으면서도 찬송하였던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 애통하는 삶만이 아니라 팔계명의 모든 삶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았고,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본 헬라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했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미련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 그러나 오늘날에는 미련한 그리스도인은 없고 기도를 많이 해서 명석한 사람들이 되어서 복음을 초월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지 않고, 오히려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요 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온유한 자”는 애통한 일을 당했을 때에 잘 참고 갚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성품과 삶을 말합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했는데 갚지 않는 성품을 말합니다.


=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 뺨을 내어주는 마음과 행위, 내 속옷을 빼앗으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줄 수 있는 마음과 행위, 부당하게 나에게 오리를 가게 하는 자에게 십리까지 가 줄 수 있는 마음과 행위를 말합니다.


= 온유하다는 것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 같이 악한 자들에게 이용당하면서도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그리스도인들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온유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고,  나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는 성품과 삶을 말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자에게 갚지 않고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 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이것이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온유한 삶이었습니다. 그러한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었고, 서서히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해 나갔던 것입니다.


= 그런데 어느 날부터 복음의 신앙이 변질되어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검이 들리기 시작하고, 이방인에게 당했던 박해를 칼로 그들을 죽임으로 아픔을 갚으려고 했고, 세상을 칼로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복음에 순종하는 온유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서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을 버리고 칼로 세상을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전쟁이었고, 수많은 기독교 국가들의 만행이었습니다.


= 이제 우리는 처음 복음을 듣고 순종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애통하는 신앙과 온유한 신앙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참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때에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 삶을 살게 될 것이고,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의롭다 할 것입니다.

 

출처: 개척교회 목회정보 원문보기 글쓴이: 최성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