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주일설교.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라디아서서 5장 16~26절)
-- 김민호 목사추천 2조회 17324.05.14 11:51댓글 2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 15:26)라고 말씀 하시면서,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실 것인데 그 성령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말씀 하시면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들은 것(예수님이 선포하셨던 말씀을 포함하여 성경의 모든 말씀)을 말할 것이며(과거),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실 것이며(현재),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실 것(미래), 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며, 보혜사(파라클레토스-옆에서 변호해 주신다는 뜻) 이시며, 그리스도인(하나님의 자녀)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4월 동안 그렇게 알기 원했던 거룩함, 그리고 5월에 살펴 보고 있는 ‘열매’ 맺음은 오직 진리의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오셔서 함께 해 주실 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고백할 수 없으며, 성령이 아니고서는 순종과 섬김과 사랑을 실천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사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 받으셨습니까? 성령으로 거듭나셨습니까? 성령 충만 하십니까?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계십니까?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아 보셨을 겁니다. 전부 아멘이시죠?
우리 모두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을 더욱 더 믿고 싶다면 오직 성령 충만, 성령의 인도함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강림주일에 약속하신 성령이 우리 심령에 임하실 것을 믿으며, 간절히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릴 때, 거룩하신 진리의 성령이 여러분 모두에게 은혜로 임하시는 역사가 함께 하시기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편지입니다. 말씀을 읽고, 들으실 때 진리의 성령이 인도하시는 감동과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먼저 16, 1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바울은 성령의 일과 육체의 일을 대비하면서 “너희(은혜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으로 권면을 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라”는 말씀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 이것을 그대로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고, 그대로 행함의 결과인 열매를 맺어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1장 22절에서 “그(하나님)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의 보증이 되시는지 아닌지는 심판 날에 드러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한 사람은 그 행한대로 보증하여 주실 것이고, 성령을 따라 행하지 않은 사람은 그 행하지 않은 그대로 보증하여 주실 것입니다. 성령이 이렇게 뚜렷하게 보증하여 주시기 때문에 심판 날에 각자 행한 대로 심판한다는 성경 구절이 있는 겁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판 날에 판단의 근거가 되기 때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심판 날에 영생으로 갈 수 있는 최종 판단을 받기 위하여 지금 현재 이 자리에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영생의 나라에 들어갈 방법이 무엇입니까? 알고 있지만 죽을 때까지 반복 교육이 필요 합니다.
영생의 나라에 가기 위한 방법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온전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평생 성령을 따라 행하여서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가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른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지역의 교회들을 향하여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강력한 권면을 한 이유가 있습니다. 복음의 기초가 흔들리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인들 중에는 그들의 거짓된 말에 흔들려서 복음에서 멀리 떠나버리려 했기 때문에 성령을 따라 살아갈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지역의 성도들이 다른 복음을 따르는 헛된 생각을 버리고 다시 복음 앞에 서기를 바랐습니다. 그들 마음 안에서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이 대적하는 상황이라고 바울은 설명합니다. 육체는 성령을 거스르려고 하고, 성령은 육체의 소욕을 잠재우려고 하는 싸움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택하려고 한 것은 육체의 욕심이었습니다.
육체와 성령에 대해서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도 자세하게 말합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면서 육체(육신)와 영은 완전히 대조적이고, 대립적이고, 대결적이라는 것을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육체와 성령의 대해서 결정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결국 끝까지 육체(육신)의 생각을 따라 가는 사람은 성령이 없는 사람이며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도 아니라는 겁니다. 결국 육체의 사람은 심판 날에 구원 받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17절에도 육체가 성령을 대적한다고 했습니다. 대적하는 자라는 어원은 사탄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며, 성령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사탄의 목적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싫어하고, 멀리하고, 떠나고, 배신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음모와 유혹을 반드시 이겨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에 의해서 보호 받고 있고,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을 강력하게 갈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바울의 이 권면이 복음을 거부하려는 마음, 복음을 안일하게 대하는 무방비의 마음, 복음으로 무장하지 않으려는 나태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때 들려준 권면임을 우리 모두는 자각해야 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이 말씀이 성령강림주일에 육체의 소욕(욕심)을 이겨 내라고 우리 마음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굳게 믿으시고, 오직 성령이 말씀하여 주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거룩하게 사는 것에, 열매 맺으며 사는 것에 관심과 집중을 기울이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에 이어서, 육체의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성령의 열매는 무엇인지를 비교해서 설명을 해 줍니다. 18~23절 말씀을 읽어 드립니다.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아멘.
19~21절까지 15섯 가지의 육체의 일들이 나오며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이런 사람은 여전히 율법아래 놓여 있고 성령의 인도 함을 받는 자들이 결코 아니라 여전히 세상에 속한 자이며,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게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이에 비하여 22~23절에는 9가지 성령의 열매가 나옵니다. 이같은 9가지 성령의 열매는 금지할 법이 없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법은 율법을 말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율법 아래 놓여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금지 시킬 만한 이같은 법(율법)이 더 이상 없다, 방해물은 하나도 없다라고 확실하게 말해 줍니다.
성경에서는 복을 받는 경우보다 저주 받는 경우를 훨씬 더 많은 분량으로 설명 합니다. 죄의 목록을 말할 때도 악한 것들이 선한 것보다 월등하게 많게 설명 됩니다.
여기서도 육체의 소욕(15가지)이 성령의 열매(9가지) 보다 훨씬 더 많은 분량이 나옵니다. 성경의 이런 구조는 다분하게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죄성이 얼마나 고질적이고 악성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사도 바울은 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은 확실하게 죽임 당하셨습니다. 확실하게 죽으셨기 때문에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육체와 정욕과 탐심이 십자가게 못 박혔다면 이것도 역시 확실하게 죽는 것이 마땅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되어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도, 육체의 소욕이 이전 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있고, 정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더러운 방탕함을 즐기고, 탐심은 날로 커져서 돈, 돈, 돈을 외치며 살아간다면, 그런 사람은 바울 사도의 판단으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 실현 되려면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완전하게 죽었다는 의식이 마음에 가득해야 합니다. 완전하게 죽었다는 의식이 자리 잡으면 그 마음은 빈 공간이 되고 그 공간에는 부활 하신 예수님과 거룩하신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왜 나는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일까?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한다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기꺼이 죽겠다는 순종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어야만 부활 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토록 강조했던 것처럼 내 육체는 혼자의 몸이 아니라 거룩한 성령님이 오셔서 머무시는 자리임을 깨닫고 몸으로 영광 돌리려는 경건한 삶의 모습이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갈라디아서 5장을 대할 때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엄청 중요하게 인용하고, 암송하고, 기억하면서도 더 많은 분량이 언급 되는 육체의 욕심 내용들은 그냥 지나치려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마치 성령의 열매들이 이미 우리 것, 내 것이 다 된듯이 생각하거나, 나는 이러한 좋은 것들을 이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있어, 나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구별되고 선택된 사람이야, 라는 일종의 자부심 때문인 듯 합니다.
믿음에 의한 확신은 아주 좋은 것이지만 실제로 실행되지 않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씀이 실제로 내 삶에서 얼마나 진실하게 실행되고, 반복되고, 멈추지 않고 않고 계속될 때 비로서 열매가 맺힙니다.
그 열매는 내 노력으로 얻어 낸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열매라는 결과에 집중하면 안 됩니다. 열매 맺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성령이신 하나님, 육체의 소욕을 이기도록 도와 주시는 성령님에게 집중하고, 오직 순종으로 행동 할 때 열매라는 아름다운 선물이 풍성하게 주어 질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내 육체는 십자가에 완전하게 못 박혔다고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선포 하시면서, 느리고 답답하더라도 오직 성령이 말씀 하시고 인도하시는대로 묵묵히 그리스도인으로 실천과 순종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실 수 있기를 응원하며, 축복합니다.
성령강림주일에 주시는 본문 마지막 25~26절을 읽어 드립니다.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아멘.
우리가 성령을 받았으면,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명령을 들었으면, 성령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25절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성령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성령이 말씀 하시는 음성은 듣기가 쉬우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라”는 찬양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음성이 들려야 뭔가 해 볼텐데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령으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우리는 그걸 습관적으로 해냈던 사람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능통하였지만 그의 성정은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이 늘 성령의 뜻을 따라 행하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사도 바울은,
① 성령의 음성을 듣고자 간절하게 갈망하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기에 성령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② 어떤 일이든 행동하기 전에 먼저 절대적으으로 먼저 묻고자 하는, 듣고자 하는 겸손한 자세가 있었기에 성령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③ 무슨 말씀을 하시든 무조건 따르겠다는 순종이 있었기에 성령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④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며 회개하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성령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성령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⑥ 자신을 공격하는 대적자들을 용서하고 그들이 뉘우치고 돌아오도록 사랑으로 포용해 주었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⑦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으니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는 확고한 영생의 소망이 있었기에 성령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고 싶으면 바울처럼 살아가면 됩니다. 기도하기를 쉬지 말고, 겸손하게 섬기며, 회개를 빠르게 하고, 믿음을 매일 같이 확증하며, 누구라도 용서하고 사랑하고며, 영생의 소망으로 하루를 충성되게 살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가 아니라 90가지, 900가지도 얼마든지 맺을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은, 아주 특별하거나 일시적인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저 삶일 뿐이었습니다. 그저 습관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무수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으로 보였지만 자기 스스로는 오히려 약할 때 강함이라고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강하게 붙드는 것에만 집중하였습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육체의 소욕을 십자가에 완전하게 못 박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요한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은 평소에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는 말을 여러 교회의 성도들에게 말한 바 있습니다. 그만큼 철저하고 치열하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날마다 확증하며 살아냈기에 가능한 말입니다.
25절에서도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라”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삶의 현장에서 성령과 동행하며 치열한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며 살아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나같이 교회를 핍박하는 자도 성령으로 살게 해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니 “너희도 성령을 따라 행하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말과 역행하는 모습이 26절에 나와 있습니다. 성령 없는 모든 말과 행동은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지 그것들은 다 헛 것이며 사라져 버릴 안개와 같은 허무한 것이 됩니다. 성령으로 살지 않는 곳에는 늘상 서로를 노엽게 하고 투기하는 싸움판이 됩니다. 성령 없는 이 세상이 점점 그렇게 흉악하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순절에 기도하던 무리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내려 오신 참된 뜻은 은혜를 주시고 위로와 평안을 주시려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명령을 수행하도록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세워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제 성령 없는 자가 아니라 성령 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성령 없이 사는 자가 아니라 성령 있이 살아야 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하며, 성령으로 거룩한 순종을 이루어가야 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심판의 날에 성령이 우리를 보증하여 주시도록 나의 모든 삶을 맡겨야 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성령 없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며 영생의 나라에 들어갈 합당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열매로써 그들을 알리라는 말씀을 엄중하게 남겨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우리 자신을 증명해 내야 합니다.
성령강림주일에 우리 모두에게 내려주신 말씀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이 엄중한 말씀이 내 전 인생의 시간 속에서 계속 적용되고, 작동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굳건한 믿음의 말씀으로 반드시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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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보내주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내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계심을 늘 기억하고, 성령과 아름다운 천국동행을 이루어가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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