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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열려라 에바다 2024. 7. 5. 12:54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요일 4:7-11)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받은 축복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축복은 예수 믿으면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해 진다고 믿습니다.

저 사람이 신앙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그 얼굴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넘치면 신앙이 좋은 사람이다.

 

강단에서 얼굴 표정을 보면 기쁨이 있는지? 없는지?

마음에 행복이 있는지? 불행한지를 알 수 있다.

(잠 15:13 )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했다.

예배드리는 성도님들을 보아도, 찬양하는 성가대원을 보아도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런 성도님들을 보면 나도 너무 너무 기쁘다.

목사의 얼굴도 수심이 늘 잠겨 있거나, 우울해 보이면 성도님들도 안 좋을 것이다.

목사의 얼굴도 기뻐 보이고 행복해 보이면 여러분들도 기뻐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늘 하는 말씀인데, 성도들은 [이뻐] 보이는 것보다 [기뻐]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옆 사람에게) 내가 이뻐 보여요? 기뻐 보여요?

(예) 이 달의 가장 기쁜 얼굴, (Month of the Smile) 투표해 보기

은혜와 기쁨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헬라어에 카리스(은혜)와 카라(기쁨)는 어원이 같다.

그러니까, 은혜 받으면, 기쁨이 생긴다.

 

그런데,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사랑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든지, 남편의 사랑이나, 아내의 사랑을 받든지,

주변 사람의 사랑 받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행복하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문제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살면서도 그 사랑을 받고 있는지 모르는 데 문제가 있다.

이것이 큰 병이다.

사랑을 받고 있지만, 사랑 받고 있는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인생을 비관하고, 매우 불행하게 살아간다.

이것이 병중큰 병이다.

 

아무리 사랑을 해 주어도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랑이 효과가 없다.

사랑을 느끼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에 효과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얼마나 많이 받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을 얼마나 깨닫고 느끼며 사느냐?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다.

조금만 사랑해 주어도 그렇게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해 주어도 전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행한 것이다.

사랑은 깨닫는 만큼 효과가 있고, 행복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랑을 받고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내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이 믿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내가 사랑 받고 있다는 이 믿음만 있다면 아무리 조금 사랑 해 주어도 굉장한 효과가 있고,

기뻐하고 행복해 한다. 그러나 이 믿음이 없으면 불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또한 믿는 만큼 행복한 것이다.

 

아무리 집안이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어도 :

자기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 자녀는 행복하다.

사랑은 깨닫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고, 사랑 받고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예화) 젊은 처녀와 총각이 연애했다.

그런데, 총각은 자기에게는 45평 아파트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까 아파트가 없다는 것이다.

얼마나 속상합니까? 처녀를 속인 것이다.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속상해서 하루는 친정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 때 그 친정어머니가 하는 말씀이 사실은 김서방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은 말해야 하겠구나.

사실은 결혼 할 당시 네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서 부도나게 되었는데,

김서방이 자기 아파트를 팔아서 아버지 부도를 막아주었다.

그리고, 네가 미안해 할까봐 비밀로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얼마나 남편이 고마운지 몰라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을 때와 남편이 그토록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의 차이에는 얼마나 그 사람의 행복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은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깨닫는 만큼 효과와 행복이 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특별히 어떤 환경에서도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많은 환난과 역경이 닥쳐와도, 고통과 중병에 걸려도,

가난에 허덕인다 할 찌라도 행복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인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깨닫는 사람이다.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남편과 아내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도 행복하지만;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 참으로 행복하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라고 했다.

(엡 5:1)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살전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요, 그의 사랑을 받은 형제들이라고 했다.

 

에베소서 1장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1성부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엡 1:4)

2)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죄 사함 받았다. (엡 1:7)

3)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엡 1:13)

그렇습니다.

성삼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우리들이다.

문제는 이렇게 놀라운 사랑을 받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서도 우울증에 걸리고, 불행한 나날을 사는 것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은혜 중의 은혜이다.

 

★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

1) 제일 먼저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진다.

2) 자기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게 된다.

3) 자기의 죄와 허물이 깨달아지니까 겸손한 사람이 된다.

주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나를 대신해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를 멀리하고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경건하게 살려고 애쓴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제일 먼저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니, 그 마음이 행복하게 된다.

 

에베소 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잘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이 편지 쓰기를 :

(엡 3:17-19)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넓이 길이 높이 깊이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고 높은지?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기를 원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아무쪼록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새 찬송가 304장)

(1절)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3절) 하늘은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 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후렴)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그렇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을 것이다.

(시적, 문학적 표현이지만, 정말 그런 것 같다.)

(예화) 요사이 우스개 소리로 유행하는 말 중에 '대책 없는 사람' 시리즈가 있다.

이런 사람은 구제불능하고, 도대체 구제할 대책이 없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인가 한번 봅시다.

1) 몽고반점을 중국 음식점이라고 우기는 사람, 이걸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

어린 아기 응덩이에 있는 푸른 점

2) L.A 와 Los Angeles가 다르다는 사람.

3) 으악새가 새의 이름이라고 우기는 사람.

사전 찾아보았더니 으악새라고 되어있지 않고 억새라고 되어 있어요.

으악새는 방언이랍니다. 어쨌든 으악새는 [풀 이름]이지 새 이름이 아니다.

으악새가 어떻게 우느냐?고 물었더니, 으악, 으악하며 운답니다. (ㅋㅋㅋ)

그런데 으악새는 새 이름이라고 바득바득 우기는 사람, 이 사람하고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

4) 컴퓨터 바이러스가 사람의 몸에도 전염된다고 우기는 사람.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

5) 하나님의 사랑 받고 살면서 사랑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다.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자기 자신의 와 물을 보면서 또 생각합니다.

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사랑을 정하고 사는 사람,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변화가 온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적처럼 큰 기적이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적은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말이다.

 

(예화) 후지다 마스오 일본 목사.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진주만을 폭격했던 폭격기 조정사 군인이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히로시마에 살았었는데,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 하기, 바로 전날에 히로시마를 떠나서 살아났다.

그는 불교신자요. 일본신사를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서...

미국에 대한 증오심으로 불타 있었다.

일본 군인들이 미군 포로를 앙날하게 고문하듯이, 미국도 일본군 포로를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밝히기 위하여 찾아다니면서 전투하다가 포로되었던 일본 군인들을 찾아 다녔다.

어떤 친구에게 고문 당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더니,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자기를 돌보는 간호사가 얼마나 친절하고 사냥하게 정성을 다해서 간호해 주는 지

감동이 되어서 물었답니다. 네 부모는 어떤 부모님이시냐?

자기 부모는 필리핀선교사로서 필리핀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일본 군인에게 붙잡혀 총살 당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모를 죽인 원수 나라의 포로를 그렇게 친절하게 돌보아 주고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후지다 마스오씨가 듣는 순간 이상한 감동이 전율되었다.

그리고, 도오쿄로 와서 미국 선교사가 노상에서 전해 주는 전도지를 받아 보았다.

그 전도지 안에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미국 조종사가 일본 군인들에게 고문당한 이야기다.

고문 당한 미군은 일본인에 대한 증오심이 있었는데, 경비원이 던져준 성경을 읽다가

일본에 대한 증오심이 사랑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도대체 이 성경에 무엇이 써 있길래? 사람들이 원수라도 사랑하는가?

그래서 마스오씨도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깨닫고

목사가 되어 예수님을 증거하는 전도인이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을 새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니,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 때문에,

예수님도 안 믿고, 예수 믿어도 헌신하지 못한다.

 

★ 예수님에 대하여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오해한다.

ㄱ) 4대 성인 중에 하나이거나. 도덕 선생님 정도로 안다.

ㄴ) 내가 괴로울 때 위로해 주는 상담원 정도로 안다.

ㄷ) 있을 때 내 이나 고쳐 주는 의사나 간호원 정도로 알고,

ㄹ)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을 못하게 하는 훈육선생정도로 알고,

(그래서 교회가면 하지 말라는 것도 많다)

ㅁ) 죄 지은 사람들 이나 주는 형사나 검사 정도로 오해한다

ㅂ) 가장 나쁜 오해는 돈 뜯어 가는 교통순경정도로 오해한다.

이상은 다 오해이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관을 갖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우리가 성경 공부를 하고 설교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고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 성경 공부도 하고, 말씀을 듣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을 믿을 수 밖에 없고,

또한 헌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한 마디로 말하면"하나님은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시다. (요일 4:8)

성경은 사랑의 편지이다. 성경은 용서의 책이다.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나요?

독생자를 주신 것으로 알 수 있다.

(요일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마태복음 22:37-38) : 이 말씀은 이해가 잘 안가는 말씀이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얼마나 이기적인 말인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 말씀인가?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서 이거 너무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는 누구에게서 사랑 받기를 원하느냐?

(예) 짝 사랑 하는 분은 : 상대방의 사랑을 받기 원한다.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요구하신 것이다.

우리는 다른 것은  내어 주어도 독생자를 내놓치는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독생자를 내어 주셨다.

 

(예화) 실화이다. 어느 부인이 임신 후 남편은 죽고, 유복자를 낳아 키웠다.

그 유복자 외아들은 하바드 법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 아들이 한국 6.25 전쟁에 나가 아들이 전사했다.

이 불쌍한 여인은 목사님에게 찾아가서 울면서 말했다.

"우리 하나님은 어디 계셨나요?"

목사님 대답은 :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면서 죽어 가실 때, 하나님도 함께 고통 당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사랑도 이해 할 수 없다

열심히 봉사를 하고, 전도를 해도 십자가의 사랑을 믿지 못하면 거듭난 신자가 아니다.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시다.(요일 4:8)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1) 거룩한 사랑:

이 말은 를 허용하지 않는 의로운 사랑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를 용납하지 못하시는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공의성이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공의성은 죄에 대하여 형벌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독생자를 보내어 대신 형벌을 받게 한 것이다.

(예화) 공의로운 임금과 어머니 :

그 나라에 공의로운 임금이 있었다.

어떤 죄라도 모두에게 공정하게 을 준다.

그런데 그 임금은 사랑도 많고, 아주 효심이 깊은 임금이다.

어머니를 매우 사랑한다.

그런데 그 임금님의 어머니가 중죄를 지었다.

그 죄의 형벌은 태창으로 40대를 맞아야 하는 벌이다.

어머니가 그 매를 맞으면 돌아가신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백성들의 관심이 컸고, 의견이 양분되었다.

 

어머니를 용서할 것이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같은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형벌할 것인가?

그러니 어머니에게 가차없이 형벌할 것이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드디어, 재판 날이 왔다. 임금이 명령한다.

어머니를 향해서, 이 죄인을 쳐라.

그런데, 그 순간 잠깐 그러더니, 임금이 왕좌에서 내려 온다.

그리고 왕의 옷을 벗더니, 자신의 몸으로 그 어머니 위를 덮는다.

그리고 다시 명령한다. 채찍으로 쳐라.

이 임금이 어머니를 대신해서 40대를 맞은 것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5-6)

2) 용서 :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를 다 사해 주시는 사랑이시다.

용서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3) 행동이 있는 사랑 :

말고 혀로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내어 주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죄 값을 다 치루어 주신 것이다.

 

4) 선수적인 사랑 :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5) 변함없는 사랑 :

인간의 사랑은 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변하는 일이 있어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들은 죄인으로 태어나 를 안 지을 수 없다.

죄를 지는 순간 내 양심은 나를 참소한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실 때 내가 미래에 또, 죄 지을 것을 모르고 구원하셨을까요?

하나님은 나를 끊임없이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독생자를 주신 사랑은 변치 않는다.

이것을 믿을 때 사탄의 참소를 이길 수 있다.

 

 이 사랑을 계속 받기를 원한다면 :

1) 나도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7)

One Side Love, 짝 사랑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2) 계명을 지키며 살라 :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요14:21)

 

3)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라.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라.

(결 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다.

내가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나는 하나님 사랑의 대상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의 핵심 메세지는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멧세지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깨닫고 믿으면, 행복해 질 수 있다.

아무리 사랑해 주어도 믿지 못하면 효과가 없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