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여 살아봐요 == 신명기31;14-29(240811)

열려라 에바다 2024. 8. 8. 11:31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여 살아봐요 == 신명기31;14-29(240811)
 
한상원목사추천 0조회 724.08.08 09:52댓글 0
 
 
PW : 믿음                  BIW : 사명을 감당하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다.




화내도 하루 웃어도 하루


어느 집 입구에 이렇게 써있는 액자가 있습니다.
화내도 하루
웃어도 하루
어차피 주어진 시간은
똑같은 시간들
그러기에 기왕이면
불평 대신에 감사를!
부정 대신에 긍정을!
절망 대신에 희망을!“


우울한 날을 맑은 날로 바꿀 수 있는 건 바로 우리의 환한 미소입니다.
신앙의 사람은 고난의 시간을 믿음의 시간으로 바꾸어갑니다.
신앙의 사람은 시련의 시간을 소망의 시간으로 바꾸어갑니다.
신앙의 사람은 절망의 시간을 희망의 시간으로 바꾸어갑니다.
신앙의 사람은 고난과 시련과 절망과 낙심의 시간을 전능하신 엘샤다이의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바꾸어갑니다.
신앙인들의 삶은 이런 신앙인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축복의 보따리가 활짝 펼쳐지기를 기대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P4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기 전에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길어야 한 달이요 짧으면 며칠 정도 남아 있다.
모세는 이미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짜와 시간을 받아놓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모세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마지막 남아 있는 사역들을 정리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모세는 지난 40년 동안 격동의 시간을 보내온 사람이다.
호렙산, 시내산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 떼들을 몰고 다니면서 그야말로 세월만 까먹으면서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시떨기 나무 위에 활활 타오르는 불꽃으로 찾아오셔서 부르심을 받는다.
애굽으로 돌아가서 430년 동안 억울하게 종살이하고 있는 히브리 동족들을 시내 광야로 이끌어내라는 말씀을 듣고 애굽제국의 바로와 전쟁을 치르면서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 여호와의 군대들을 이끌고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너고, 광야로 들어와서 지금까지 40년을 살아온다.
백성들은 특하면 원망, 불평, 투정을 부리면서 모세의 속을 박박 긁어댄다.
이렇게 40년을 살아온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해 주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모압 평지에서 마지막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모세는 마지막 남아 있는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가?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기 전에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앙인들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에게는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


D4


 리더쉽의 권위를 세워주시는 하나님.


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막 앞으로 나아 온다.
그러자 15절에서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 문 위에 머물러 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에 임재하심으로 모든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모세의 뒤를 이어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주셨지만,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신뢰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로 인정하면서 따르겠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여호수아를 불신하는 무리들도 있을 수 있다.
여호수아를 불신하는 일부의 무리들에게조차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차기 지도자로 세워주셨구나.라고 인정하고 여호수아의 지도를 따라서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권위를 세워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우신 여호수아의 권위를 세워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신뢰하고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를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이다.
권위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심으로 오는 것이다.
권위는 사람의 능력이나 권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권위를 세워 주실 때에 그 권위에 파워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꾼들, 사역자들, 지도자들의 영적인 권위는 하늘 아버지에게서 와야 하는 것이다.
인간들의 모략, 지략, 모의에 의해서 세워지는 권위는 모래로 쌓아 올린 탑처럼, 신기루처럼 약간의 흔들림에도 지탱하지 못하고 스르르 무너지고 만다.


 얼굴을 숨기시는 하나님.


16-1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정착하게 되면 곧이어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여 떠나고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이 섬기던 잡동산이 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받게 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신다.
본래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역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음란하게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란하게 다른 신들을 섬기면서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면 이미 하나님께서 예견하신 대로 성경에 기록한 모든 재앙들을 내리면서 저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살면서 애굽의 잡다한 신들의 형상을 보았고, 만들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아주 쉽게 우상숭배의 죄악에 노출되어 있는 백성들이다.
비록 여호와 하나님의 강권적인 권능과 권세로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거듭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의 죄악에 너무나 쉽게 동화되어 있는 민족이다.
인간 자체가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고 떠나도록 사탄이 올무를 놓아두었기 때문에 아주 쉽게 우상숭배의 죄악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무런 형상이나 모양이 없는 영적인 존재이지만, 세상의 잡동산이 신들은 신의 형상과 모양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안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에 아주 쉽게 반응하는 존재이다.
산에만 가면 사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불상들, 환하게 웃으면서 앉아 있는 아기동자 형상들을 행복해 보인다고 반응하는 것이 인간의 근본 정서이다.
근엄하게 보이든지, 인자하게 보이든지 불상들이나 환하게 웃고 있는 아기 동자 형상들은 얼마든지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본래부터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조작에 의해서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마치 선하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신인양 추앙하는 것이 인간의 근본적인 죄악된 정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정서가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져드는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의 온갖 잡동산이 신들의 형상에 홀딱 반해서 그 신들의 형상을 따라서 음란하게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방의 잡동산이 신들의 형상에 홀딱 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여 떠나서 이방의 잡다한 신들을 섬기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저주를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27절에서도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라고 말씀하신다.
29절이 말씀에서도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길을 떠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하게 하므로 너희가 후일에 재앙을 당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모세도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기업을 분배받으면 스스로 부패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 앞에서 버젓이 악을 행하는 백성들이 될 것을 알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패역하고 목이 뻣뻣하여 교만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하나님의 얼굴을 숨기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얼굴은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을 의미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얼굴을 숨기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고 떠나버리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고 떠나버린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온갖 우상숭배와 패악의 길을 걸어갈 때,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여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때,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버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들을 세워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숨기시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포기하겠다는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포기해 버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갖 이방 민족들의 노략, 수탈, 침략을 당하면서 인간답지 못하게 온갖 고통과 신음을 당하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이방인들의 비웃음거리,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신앙인들의 삶은 어떨까?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하심,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감동하심이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는가?
아무리 애써 봐도 전혀 성령의 감동이 일어나지 않아서 마치 영혼이 죽은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가?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는 참상을 당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얼굴이 되돌아올 수 있도록 속히 하나님 앞으로 되돌아와야만 살 수 있다.


 여호수아에게 담력을 세워주시는 하나님.


23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막 앞으로 나와 있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굳건하게 세워주시면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힘을 실어주고 계신다.
전능하신 엘샤다이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대협곡을 건너서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으로 이끌고 들어가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정복하고,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배해 줄 사명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런 사명을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사명을 주시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사명을 감당하고 촉구하시면서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격려해 주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리라 믿는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명을 감당하시는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과 권세로 역사해 주시는 것이다.


 토라로 증거를 삼으시려는 하나님.


24-26절의 말씀에서 모세는 토라를 기록하기를 마치게 된다.
토라를 다 기록한 모세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들 곧 고핫 자손들에게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언약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토라도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하는 것처럼, 토라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지성소에 언약궤 옆에 둠으로써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생명의 말씀이요 율례요 계명이요 규례들임을 증거로 삼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토라, 모세5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원리요 원칙이다.
구약성경은 모세5경인 토라(TORAH)를 중심으로 예언서인 네비임(NEBIIM)과 시가서인 케튜빔(KETHUBIM)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여러 파장들이 생겨나서 밖으로 흘러가듯이 모세5경인 토라에서 예언서와 시가서로 파급되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토라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토라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분이지만, 토라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모세5경인 토라를 해마다 한 번씩 공식적인 안식일 예배의 자리에서 낭독하면서 토라에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키고 순종하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감동으로 주시는 레마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는 증표가 되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베풀어주신 특별 은총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일반 은총은 지구촌에 생존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누릴 수 있는 은총이다.
특별 은총인 성경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믿음의 고백을 한 신앙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은총이다.
일반인들도 성경은 읽을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특별한 은총을 받아 누리지는 못한다.
하나님께서 배풀어주시는 특별한 은총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으로 고백한 신앙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고유한 은총이라는 것이다.


L4 & B4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기 전에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신다.
모세는 불과 길어야 한 달, 짧으면 며칠 남겨둔 상황에서 마지막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들은 어떨까?
우리의 인생이 많이 남아 있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을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앞으로 몇 년, 몇 십년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할 수 있을까?
내일, 모래, 1주일 뒤, 한 달 뒤, 1년 뒤...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오늘 어떻게 될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앞으로 더 오래 살 수 있을지, 오늘 곧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기에 오늘 지금의 삶이 마지막 삶이라는 마음으로 오늘 맡겨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4:2에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4:6-8에서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 2;10에서 서머나교회 사자에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들에게 충성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역을 맡겨주셨든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에 충성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겨주셨든지, 두 달란트를 맡겨주셨든지, 한 달란트를 맡겨주셨든지 자신에게 달란트를 맡겨주셨다면 그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인정하고 계신다는 증표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여 자신에게 맡겨주신 달란트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은 많은 종들 중에서 특별하게 세 사람만 선별하여 달란트를 맡기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신앙인들에게 달란트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몇몇 사람들만 특별하게 선별하여 달란트라는 사명을 맡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사도로 세우지 않는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 중에서 특별하게 12명만 선별하여 제자로, 사도로 세우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많은 성도들, 신앙인들 가운데에서 몇몇만 특별하게 뽑아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교사로, 일꾼으로 세우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명자로, 직분자로 뽑힌 신앙인들의 삶은 삼위 하나님께서 어떤 사역을 맡겨주셨든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충성으로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또한 신앙인들의 삶은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 백성들이 한 곳으로, 교회로 모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신다.
사도행전 2:46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서 10:25에서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신앙인들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에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오직 예수님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살아야 한다.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에 모여야 삼위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를 올려드리면서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함께 모여야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고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릴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함께 모여야 주님의 거룩한 복음의 사역, 십자가 보혈의 사역, 구원과 선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함께 모여야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서 실현해 나가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혜와 사랑의 마음을 간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기름 부으심을 입게 된다.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역사해 주심을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역사해 주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역전의 명수이신 하나님, 복을 주시는 하나님, 긍휼과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눈동자처럼 지켜봐 주시고, 머리카락의 숫자까지 세심하게 세워보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 몸과 마음과 영혼과 내가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들까지도 알고 계시고 역사해 주시는 주님을 만나게 된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되고, 우리의 삶, 범사가 잘 되고, 우리의 영혼과 육신이 강건해지는 축복을 받는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
언제 어디서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축복을 받게 된다.


결국 신앙인들은 모이기를 힘써서 하나님으로부터 신령한 은사를 입고,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맛본 사람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이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하고 하찮은 일처럼 보여도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며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하늘의 신령한 영적인 세계를 맛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소중하고 귀한 사역인 것처럼 보여도 적당하게 시간만 맞추려고 할 뿐,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하늘의 신령한 영의 세계를 온 몸으로, 온 오감(五感)으로 느끼고 깨달았기 때문에 생명을 바쳐서 순교하면서까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면서 감당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인들은 하늘의 신령한 영의 세계, 은사의 세계를 맛보려는 경험, 체험을 사모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에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고, 자신에게 맡겨주신 귀한 십자가 보혈과 복음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워지는 은혜와 축복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