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레
시편은 1:1에서 복(아쉬레)으로 시작하고 150:6의 할렐루야로 끝을 맺는다.
축하해 줄 때 쓰는 말로써 “축하합니다”“얼마나 행복하십니까”“참으로 기쁘시겠습니다”“아주 잘됐습니다”“복도 많으셔” 라는 뜻으로 쓰임.
구약에 45회 나오는 이 단어는 세 가지로 쓰이는데
1)번영을 누리거나 자식을 많이 둔 사람에게(8회)
2)성도가 물질의 복을 향유할 때(31회 사용)
3)물질이나 자식의 소유에 관계없이도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 올바로 처신 할 때 사람들은“아쉬레” 하고 축하해주었다고 한다.(6회).
70인역에서는 아쉬레를 마카리오스(makavrio")라고 번역했는데 주님은 산상수훈 팔복에서 이 헬라어 마카리오스를 8회 사용하셨습니다.
아쉬레 - "당신은 복둥이" 라는 의미
오늘은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시편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 시편 전체의 서론이며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는 시편 1편과 2편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복 있는 사람' 또는 '복된 사람'이라 하시는지, '복된 사람'이 행할 바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시편'은 성경 전체의 핵심이다
탈무드에서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5권의 율법서를 주었고 다윗은 5권의 찬양을 주었다고 하며 시편을 유대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토라(창, 출, 레, 민, 신)'에 비교합니다. 이는 시편이 내용적으로도 단순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개인적인 기도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핵심적인 내용과 구약의 역사, 공동체 삶의 방향과 내용을 충실하게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도 구약의 본문을 인용할 때 이사야(419번)와 함께 시편(414번)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시편은 총 150편으로 되어 있는데 세부적으로 보면 5권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권은 1편~42편, 2권은 42편~72편, 3권은 73편~89편, 4권은 90편~106편, 5권은 107편~159편입니다. 시편은 형식과 내용에 따라 찬양시, 탄식시, 감사시, 토라(말씀)시, 제왕시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구성은 그냥 마구잡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권별, 편별로 그 내용이나 저자 등을 고려해 위치가 정해진 것입니다. 시편은 앞부분이 탄식의 간구에서 점점 적들과의 상황에서의 구원에 대한 간구로 진행되다가, 감사 찬양으로 전개되어 갑니다. 특별히 시편 150편의 마지막을 '할렐루야(여호와를 찬양하라)'로 마치는 것은 전능자이시고, 창조자이시며, 아버지이신 하나님에 대한 마땅한 고백과 확신과 감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편 1편'의 독특성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편의 위치와 내용은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편은 그냥 우연히 150편 시편 중에 첫 번째로 배치된 것이 아닙니다. 시편 1편은 시편 전체의 서론이고 핵심 내용입니다.
우리가 시집이나 찬양집을 발간할 때 편집자는 가장 첫 편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할 것입니다. 대체로 첫 편은 그 시집이나 찬양집의 내용을 포괄하는 것이나 개인이나 단체에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한 것을 넣을 것입니다. 시편 1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을 편집한 사람들은 깊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가장 먼저 넣을 시를 정했을 것이고 그 가운데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시편 1편이 시편의 서론이고 핵심 내용이라는 것은 시편이 성경 전체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을 참작하면 시편 1편이 성경 전체의 서론이고 핵심이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시편 1편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편 1편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시편, 아니 성경 전체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결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편과 2편의 '아쉬레'
그런데 시편 1편은 시편 2편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편 1편과 2편은 원래 하나의 시가 2개로 나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시편 1편과 2편에 3편부터 붙여져 있는 특정 '표제'가 없는 것에서도 알 수 있고 특정 단어로 두 시가 'Inclusio(수미쌍관)' 되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내용적으로도 일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경 시편 1편 1절에 있는 '복 있는 사람'은 히브리어로 '복되도다!' 또는 '얼마나 복된 지' 등의 일종의 감탄사 같은 말인 '아쉬레'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편 1절은 "복되도다!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 "복되도다!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사람"의 의미이며, 또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복된지"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쉬레'가 시편 2편의 마지막인 12절에도 등장합니다. 우리 성경에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고 한 것이 바로 '아쉬레'입니다. 즉 시편 1편과 2편은 '아쉬레'라고 하는 단어 사이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시편 1편과 2편은 '아쉬레' 즉, '복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이 하나님 앞에서 '복된 사람'에 대한 내용이 시편 전체의 내용이고 성경 전체의 내용이며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뜻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가 복된 사람이 되어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과 민족과 국가에 복을 나누어 주는 복의 근원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창 12:2~3).
'아쉬레'는 '하가'하는 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을 어떻게 받고 누리고 사는지 알고 싶으십니까? 오늘 시편 1편과 2편이 설명하는 '아쉬레(복된 사람)'에 대해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어떤 사람이 복된 사람이고 우리가 어떻게 복을 받고 누리고 살 수 있는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편 1편 1절은 "복된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앉은 자"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찌 그렇게 악인, 죄인, 오만한 자들이 많은지요. 악한 자들은 우리를 밤낮으로 꾀어 함께 속이고 불법을 하는 자로 살기를 요구합니다. 우리로 죄인의 길에 서게 함으로 '너도 똑같은 놈이야. 그러니 닥치고 있어, 시키는 대로 해, 좋은 게 좋은 거야' 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보다 높아진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우리를 눌러앉게 합니다.
시편 1편 2절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만이 이런 악인, 죄인, 오만한 자에게서 벗어나 '복된 사람'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알다시피 '토라'입니다. 이것은 시내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고 이를 지킴으로 제사장 나라요, 하나님 백성 삼겠다고 하신 바로 그 말씀입니다. 이렇게 주신 율법을 지킴으로 노예이고, 죽을 수밖에 없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백성과 다르고, 가나안 족속과 다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넓게 보면 오경(창, 출, 레, 민, 신)이고 좁게 보면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하가 1 - 읊조리다
이 '토라'를 밤낮으로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묵상'은 히브리어로 '하가'입니다. '하가'라는 단어에 있는 여러 가지 뜻을 살펴보면, 복된 사람이 되기 위해, 아니 이미 복된 사람이 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묵상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가'의 첫 번째 뜻은 '읊조리다'입니다. 단지 마음으로 음미하거나 명상하듯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음미하며 낮은 소리로 반복적으로 읽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 동서고금 책을 읽을 때 눈으로만 읽지 않고 소리를 내어 읽었습니다.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책 읽기)'라는 프로그램이 유행인데 렉시오 디비나는 뜻을 음미하며 소리 내어 읽는 것입니다.
자주 말씀드리는 이야기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반복해서 읽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경 말씀 각 단어나 각 절, 권, 나아가 특정 주제에 대한 신학적인 뜻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성경 말씀 자체에 대한 각 책의 줄거리와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용도 모르는데 뜻과 의미를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시간을 내서 읽어 보면 그 내용과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책이 두껍고 여러 권이다 보니 쉽게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다독입니다. 여러 번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서백독이면 의자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책을 백 번 읽으면 뜻이 스스로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성경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내용을 이해하는 데 좋습니다. 최소한 신앙 연수만큼 읽어야 합니다. 읽을 때 속으로 읽다 보면 잡생각도 많이 나고 졸리기도 하니 소리 내서 읽거나 여럿이서 읽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아쉬레', '복된 사람'은 말씀을 밤낮으로 틈만 나면 읽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읽다 보면 이해가 되고 힘이 나고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제가 군대 갔을 때 훈련소에서 6주간 훈련을 받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훈련도 힘들지만 걸핏하면 욕설과 얼차려를 주는데 마음이 얼마나 강퍅해지는지 온갖 짜증이 올라오고 폭력적인 본성이 드러납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입대할 때 갖고 온 신약성경과 시편이 묶인 작은 성경책을 윗주머니에 넣고 정말 틈만 나면 읽었습니다. 얼마나 지독하게 읽었는지 그 모진 훈련을 받으면서 6주 만에 신약을 1번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등병 생활 4개월도 그 못지않게 힘들었는데 이등병 생활하면서 다시 1번 읽었습니다. 이렇게 매일 틈만 나면 성경을 읽으니까 정말 마음도 다스려지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도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훈련소에서 함께했던 동기 중에 제가 틈만 나면 성경 읽는 모습을 보고는 자기도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는 다른 부대에 배치되었는데 제가 대대에서 군종병을 할 때 군종 집체 교육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 친구도 중대 군종병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매일 '라마나욧 성경묵상표'를 따라 읽는 성경 말씀이 저를 돌아보게 하고 제 삶에 대해, 가정에 대해, 더함공동체교회에 대한 방향을 정하는 데 순간순간 생생한 지침이 됩니다. 성경을 밤낮으로 '읊조리는 것'은 '복된 사람'이 되는 길이며 사는 방법입니다.
하가 2 - 으르렁거리다
뜻밖에 '하가'의 두 번째 뜻은 '으르렁거리다'입니다. 이는 맹수가 사냥감을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으르렁거리며 읽는다는 것은 전투하듯이 치열하게 읽는 것을 의미합니다. 큰 소리로 처절하게 읽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낮은 소리로 읊조리지만 읽는 태도나 자세가 마치 전쟁터에 나간 군사와 같고 먹을 것을 앞에 둔 맹수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편은 '복된 사람'이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의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1절에 이미 등장한 것처럼 '악인', '죄인', '오만한 자'들이 득실거립니다. 그들은 조용히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의인'들을 공격하고 함께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를 사자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듯이 합니다.
그래서 시편 1편과 연결된 시편 2편은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고…세상 군왕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는 자를 대적(시 2:1~2)"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의인'들이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리고 부수어야(시 2:9)"한다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전쟁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쟁터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는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이 땅 가운데 우리에게 닥쳐오는 싸움을 위해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흉배),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등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방어 무기입니다. 유일한 공격 무기는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갖 악인, 죄인, 오만한 자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끄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맹수가 먹이를 포획할 수 있는 강한 발톱이며 이빨입니다.
하가 3 - 경영하다
'하가'의 세 번째 의미는 한걸음 여기서 더 나갑니다. 시편 2편 1절은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라고 하는데, 이때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 개역개정에서 '꾸민다'로 번역한 말을 예전 성경 개역한글에서는 '경영하는가'라고 번역했습니다. 꾸민다, 경영한다, 이 단어가 바로 '하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내 삶과 상관없이 그저 음미하고 반복해서 읽고 으르렁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읊조리고 으르렁거리는 것은 내 삶의 구체적인 현실에 대해, 내가 닥친 문제에 대해, 내 직장 속에서, 내가 고민하는 어떤 선택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경영하고 일을 꾸미는 것입니다.
말씀에 길이 있고 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삶과 관계없이 그저 무슨 경전 읽듯이, 주문 외우듯이 읊조리는 것이 아니라 한 말씀 한 말씀이 내 삶의 현실과 직결되어 길이 되고 답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고 묵상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의인'이며, 그런 사람이 '복된 사람(아쉬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이 형통한다는 것입니다(시 1:3). 그런 사람을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는(시 1:6)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고', '으르렁거리고', '경영'하며 '하가'하는 '복된 사람(아쉬레)'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진정한 '아쉬레'의 비결
그러나 시편 1편과 시편 2편이 하나의 시편인 것을 고려해 연속해서 읽으며 묵상해 보면 '아쉬레(복된 사람)'가 단지 개인적으로 '하가(묵상)'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시편 1편과 달리 시편 2편은 그 범위를 개인에서 국가로, 국제적으로 확장시킵니다. 시편 2편은 이방 나라들과 민족들이, 그들의 군왕과 관원들이 여호와의 기름 부음받은 자를 대적해 그의 통치를 벗어나겠다고 선언하며 시작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세운 왕을 거룩한 산 시온에 세우겠다(시 2:6)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자를 '내 아들'이라 칭하고 '내가 낳았다'고 선언하십니다(시 2:7). 그리고 그에게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주사 땅끝까지 이르게 하고, 대적자들을 철장으로 질그릇같이 부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들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행 13:33), 예수님이 천사보다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선언할 때(히 1:5), 예수님이 진정한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심(히 5:5) 등에 적용해 인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위대한 통치를 성취함에 대한 선언(계 12:5, 19:15~16)에 인용됩니다.
'기름 부음받은 자', '아들'이 누구입니까? 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맞춤으로 순종함으로, 완전히 항복함으로 '아쉬레(복된 사람)'가 되고 '의인'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 '아쉬레(복된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고 으르렁거리고 경영하며 '하가(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쉬레(복된 사람)'입니까? 기름 부음받은 자, 하나님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항복함으로 순종하며 그를 따르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하나님의 말씀을 '하가(묵상)'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고 그의 뜻을 쫓는 진정한 '아쉬레(복된 사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위 내용은 6.5(주)에 더함공동체교회에서 이진오 목사가 설교한 내용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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