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스크랩 다윗으로 본 영적 전쟁 (대상22:6-8)

열려라 에바다 2024. 8. 16. 17:15
新 婦추천 1조회 6124.08.13 04:18댓글 2
다윗으로 본 영적 전쟁 (대상22:6-8)


6. 다윗이 그의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7.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이 시간에 “다윗으로 본 영적 전쟁”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에도 나오듯이 다윗은 전쟁을 많이 한 왕입니다. 전쟁을 많이 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계속하여 승리했습니다. 전쟁에서 패자란 죽음이나 노예를 의미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전쟁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1. 믿음으로 합니다.


삼상 17:36-37에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충천한 믿음을 봅니다. 블레셋의 골리앗과 싸울 때 말씀인데 이스라엘은 전의를 잃었지만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충천했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 보통 장수입니까? 


삼상17:4-7에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했습니다. 이렇게 표현한 것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골리앗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하면서 싸움을 걸었습니다. 사울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왕의 사위를 삼고 온갖 특전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어가는 사람 곁에서는 역사하시지만, 낙심하는 사람 곁에서는 하지 않으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미 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의 안부를 물으러 온 다윗이 그 말을 듣고 의분 때문에 견딜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 다윗이 사울 앞에 불려나가서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36절) 말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승리적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담대해야 할 이유는 성도는 예수 안에서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다윗만 영웅으로 만들면 우리는 할 수 없는 자가 되고 마는데, 성도는 승리를 맡아놓고 이미 승리자로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닛시'이고, 그것이 구약 용어로 하나님이 이미 붙이신 것입니다.


2. 성령으로 합니다.


삼상16:13-14에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이처럼 다윗의 용기와 지도력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삼상11:6-7에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 왔다고 한 것처럼 이 은혜는 전에 사울에게 있었습니다.


엡6:10에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 한 것처럼 먼저 성령의 능력으로 강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영적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용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서 난 것이었습니다. 양을 칠 때 기도와 찬양이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가 세속을 이기고 이슬람을 이기려면 기도가 식지 않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꽃피던 나라들이 이슬람에게 먹혔는데 기독교가 생명력을 잃었을 때 먹혔습니다. 이슬람은 곰팡이와 같은 종교입니다. 죽은 믿음에만 기생하지 살아있으면 다가오지 못합니다.


마 12장을 보면 빈집에 일곱 배나 강한 귀신이 들어와 차지하듯이 기독교가 생명을 잃으면 그 말도 안 되는 종교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가짜와 가짜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주먹이 센 놈이 이깁니다. 영적으로 죽었다면 돈 출산 폭력 국가적인 조직으로 다가오는 이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생명력을 회복하면 그 반대입니다. 미국 버지니아에 있는 CBN이라는 유명한 기독교방송에 의하면 최근 이스라엘 가자 지구와 중동 전지역에서 무슬림 600만 명이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합니다. 무슬림은 너무나 완악하고 무식하기에 전도도 불가능해서 기적이 아니고는 안 되기에 예수님을 만난다든지 수많은 기사와 이적들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저조해서 외국인들을 받는 이민정책을 시작하고 있는데 아무나 들어오면 앞으로 큰 위기가 닥칩니다. 이슬람 인구가 40만이라고 하는데 다문화를 이기는 길은 말씀을 기초로 하여 기도로서 생명 있는 기독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주신 은사로 합니다.


삼상17:34-35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했습니다.


사자와 곰을 치는 다윗의 용기와 기술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였습니다. 사자와 곰은 몸무게나 힘이 어마어마하고 야성이 강해 쉽게 죽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사자와 곰을 치는 것은 다윗에게는 매일 반복되던 일상이었습니다. 그 결과 물매를 벗어난 돌이 날아가 골리앗의 이마를 깨뜨렸습니다.


이처럼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은사로서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남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과학계로 어떤 이는 언론계로 혹은 교육계로 정치계로 혹은 사업으로 자신의 최고의 특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의 승리는 곧 예수님의 승리요 우리의 승리를 예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 안에서 승리자라는 믿음에 서고, 우리가 얼마나 말씀에 서고 기도의 제단을 잘 쌓느냐에 승패가 결정됩니다. 영적 세계는 진실만 통하지 가짜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믿음으로, 성령으로, 은사로 적과 싸워 승리하는 십자가 군병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