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편 37편 1~11절)
주일설교.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편 37편 1~11절)
-----------------------------------------------------------------------------------------------------------------
8월에는 ‘질투(시기, 투기)’를 주제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질투가 가져다주는 결과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씀과 일상에서 서로 노엽게 하거나 투기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주에는 내가 질투를 발하는 주체일 때를 생각하며 내 마음과 언행이 어떤 상태이고, 어떻게 변화되어 가야 하는지 생각하며 말씀을 들었다면, 오늘 말씀은 내가 질투(시기,투기)를 당하는 대상으로서, 질투를 발하는 상대방(남, 타인)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는 8월 첫째 주 말씀처럼 하나님은 진짜로 우리들을 향하여 질투를 하고 계십니다. 왜 질투를 하실까요? 세 가지로 답변해서 말씀 드리면,
첫째, 아직도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애정 표현이며,
듈째, 아직도 나는 너에게 관심이 많고 대화하고 싶다는 감정 표현이며,
셋째, 아직도 나는 너에게 회개하고, 돌이키고,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포기하지 않으심의 표현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다면, 관심이 없다면, 완전히 포기하고 버리려고 한다면 질투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질투하시는 것은 내가 잘하여서가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아직은 진노와 멸망에 이르는 최악의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것은 이러한데, 그럼 사람이 하는 질투는 무엇일까요? 그냥 죄일 뿐입니다. 나쁜 마음, 악독한 생각, 비열한 비난, 난폭한 공격이 그 사람의 마음 안에서 주체할 수 없이 증폭될 때 질투가 일어납니다.
질투를 당하는 사람 또한 원인 제공자라고 말하면서 질투를 하는 자나, 질투를 유발한 자(당하는 자)나 다 마찬 가지라는 양비론(둘다 나쁘다)으로 접근 해서는 안 됩니다. 질투는 그냥 일방적으로 질투를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입니다.
그럼 이토록 나쁜 사람들이나 하는 질투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향해서 멈추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시는 너랑 말 안해, 다시는 보지 말자 라고 단호하게 물리치면 시원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질투라는 공격에 노출 되었을 때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가르침 대로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7월에 다윗의 시편 39편을 말하면서 다윗은 그를 심지어 죽이려는 자들을 향해서 말로 범죄(말로 명령해서 죽여라)하지 않으려고 기도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오늘 시편 역시 다윗의 시편이고, 다윗은 질투(시기,투기)에 대해 어떤 대응을 했는지 그의 생각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본문 1~2절을 읽어 드립니다.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1절만 표준새번역으로 다시 읽어 드립니다.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아멘.
세상에는 악한 자들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왜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 겁니까? 따질 수 있으나, 다윗은 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1절은 기본적으로 다윗이 나라를 다스려가는 통치철학이자 하나님 안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믿음의 올바른 태도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말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는 것은 말은 쉽게 할 수 있어도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만약 악인이 나를 향하여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면서 공격을 가하는 상황이라면 “하나님은 이 악한 자를 왜 가만 두십니까?” 라고 호소하기 마련이지 그냥 아무 말도 없이 원망도 안하고 꾹 참고만 있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또한 나라 안에서 불의를 행하는 자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혼란을 부추기는데도 그들을 향하여 일체 시기하지 말라는 것은, “통치의 권세를 묵혀두고 그냥 방관하고 내버려 두라는 말입니까?” 라고 따질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말로 공격당하여 마음에 근심이 쌓여가는데도 입에 재갈을 물리고 참으라고 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원망하지 말라고 하고, 불의한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고 하니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고 실천해 나가기는 더욱 괴로운 말씀입니다.
다윗이 이토록 참아내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난 번 시편 39편에서도 다윗은 말로 자기를 공격하고, 저주하고,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을 향하여 입에 재갈을 물리는 심정으로 참아내며 혀로 범죄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호소를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호소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상대 했습니다. 오늘 말씀도 원망하는 자들, 불의한 자들을 직접 상대하기 보다, 그들을 징계하고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 이심을 새삼 강조하는 말입니다.
질투에 대해서 믿음의 사람들이 꼭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질투하는 나쁜 사람들을 노려 보시고 그들을 향하여 무섭게 질투하고 계시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뒤로 빠져 있고, 나도 질투에 동참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주의 해야 함은 물론, 남이 나에게 질투를 가해 온다고 하여도 그와 맞서 상대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보 같이 피하고 도망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질투하는 자들을 상대 하시도록, 그들을 판단 하시도록, 그들을 징계 하시도록 맡겨 드리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질투에 대한 대처 방안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이런 승리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 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원망하기 보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저렇게 악한 원수들 일지라도 그들을 위해(불쌍한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기 보다 그들이 계속 시기 할지라도 맞 부딫쳐서 서로 시기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아버지의 참 뜻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도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이 곧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의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향하여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있을 때,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들과 힘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참아내실 수 있으십니까? 안 할거야, 나는 절대로 그렇게 못해 라는 생각은 접어 두시고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쳐 준대로 그 원망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 부르짖어야 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했고,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에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향하여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않고 억울하고 분해서 못살겠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하지 않고 침묵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 시기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눈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했고,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에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고 인정 받은 것, 그리고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한 것은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않고, 시기를 시기로 상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원망하고 시기하는 자들을 전부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징계하시도록 완전하게 맡겨 드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혀로 범죄하는 말씀 드릴 때 입에 재갈을 물리도록 침묵하고 마음에 근심이 쌓여도 참아내라는 말씀 드리면서 저는 굉장히 미안함이 들었습니다. 위로는 못해줄망정 아픈곳 한데 더 때리듯이 참기만 하라고 말해야 하니 저도 참 담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한 번 원망도 시기도 다 받아내고 참아내고 일체 맞서지 말라는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미안하고 답답한 말씀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감정대로, 생각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말하지 않고 반대의 경우로 인도할때가 많습니다. 받아들여 합니다.
힘들지만 우리는 악을 행하는 자들을 원망하지 않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죽어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 합니다. 저도 그런 감정 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때가 가장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임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답답한 마음이 들 때 하나님과 일대일로 상대하고,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고, 나아가고, 만나게 될 은혜의 시간이 왔음을 기억 하십시오. 하나님은 약하고, 고통 받고, 엎드려 눈물 흘리는 자를 가장 먼저 찾아오시고 그 마음에 평안과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원망스럽고 원통한 일이 많이 있으실 겁니다. 불의함으로 공격하는 자들을 시기(미움, 증오)하는 마음도 많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오늘 1절 말씀을 떠 올리시고, 다윗의 삶과 예수님의 삶을 떠올리면서 참고, 인내하고, 결국 승리하는 길로 나아가셔야 합니다.
2절에서, “그들(악을 행하는 자들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 그리고 원망과 시기 하는 자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잠깐 동안은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 마른 풀처럼, 시들은 채소처럼 되어 버릴 겁니다.
이번 달 암송 말씀이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 불의한 자를 향하여 무섭게 진노하시며 질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나서서 질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 소멸(전부 태워 없앰) 시키실 겁니다. 우리가 상처 받았다고 화내면서 그들을 내 힘으로 없애버리겠다고 헛된 싸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망하고 시기하지 말고 참아 내라는 말씀이 답답하고 힘겹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 내가 친히 앞서 가서 싸우리라” 말씀 하시며 악과 불의를 전부 소멸시키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승리에 동참하라는 기쁨의 선언임을 아셔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이 말씀을 받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원망과 시기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다윗과 같이 참아내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원망하고 시기하면 다 소멸시킨다는데 거기에 동참할 이유가 없습니다. 풀과 같이 베이고 채소 같이 시든다는데 굳이 헛된 힘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 많은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어 억울함과 고통을 당한 적이 많으실 겁니다. 내가 가해자였는지 피해자 였는지는 각자의 양심이 말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 듣고 결신하시기를, 다시는 스스로 악인이 되고 불의한 자가 되는 것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과 맛서 싸우려고 원망하고 시기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굳게 결심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당장 질투의 대상이 되어 공격을 당할지라도 그 때마다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만 상대하고, 하나님으로부터만 위로와 능력을 공급 받으며 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주시는 십자가 은혜의 길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의의 길로 올바르게 전진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원망하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기쁨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3~6절을 읽어 드립니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아멘.
이 네 구절은 전부 암송구절로 많이 애용되는 말씀입니다. 특히, 4절과 6절은 많이 들어보셔서 익숙하실 겁니다. 이 구절들에는 “ ~을 행하라”는 것이 세 가지가 나옵니다.
①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청종하라, 의뢰-청, 선을 행함-종)
② 여호와를 기뻐하라
③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세 가지 행하라는 명령에는 전부 ‘여호와’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질투와 시기가 왜 생기나요? ‘여호와’의 이름이 삭제된 상태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그 이름만 부르며 살아가는 것이 악을 행하지 않고, 불의함을 쫓지 않고, 원망하거나 시기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비결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줍니다.
이 세가지를 충실하게 행하여 순종하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먹을 거리를 주시고, 소원도 이루어 주시고, 나의 의로움을 빛과 같이 밝게 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들이 당장 눈에 보이는 현물이 아니어서 별거 아닌 것 같으신가요?
그럼 이 세가지를 무시하고 여호와의 이름 없이 한 번 살아보십시오. 내가 어는 순간 악을 행하는 자의 선두에 설 것이고, 불의한 행동을 일삼으며 의롭게 여겨 주시는 십자가 은혜를 싸구려로 만들게 될 것이고, 원망과 불평을 앞장서 선동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영화에서 말하는 악당(빌런)이 곧 내가 되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위 세가지 명령을 잘 따르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예비된 백성으로 변화되고 성장해 가기 위해 다듬어지는 은혜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 세가지를 진실하게 행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 세 가지를 할 수 있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평가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세가지를 행하는 것이 제가 누차 강조한 것처럼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신앙의 기본을 지켜가는 것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 말씀, 기도, 찬양, 감사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곧 행하라는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세와 태도가 아닐까요?
다윗이 악하고 불의한 사람들과 수도 없이 부딪치면서도 여호와를 청종하고, 기뻐하고, 맡기는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 것처럼, 우리 모두도 하루 하루를 신앙의 기본에 충실하며 “행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의의 길로 나아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진짜 질투와 시기함을 당할 때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7~11절을 읽어 드립니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아멘.
우리가 질투함을 당할 때 취해야 할 태도와 자세는 1절 앞 부분과 같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고 참고 기다려라”는 말씀을 따라 그대로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죄송하게도 또 참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경 말씀대로 참고, 또 참고 살다가 화병, 속병이 먼저 날 것 같기도 합니다.
극히 어렵겠지만 마음을 다잡고 참고 기다리는 가운데 특히 주의 해야 할 일은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인의 행태를 보면 저 악한 사람은 나쁜 짓 많이 했으니 금방 망해야 정상인데 오히려 계속 형통한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 점점 악한 꾀를 내어 더 형통해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를 향하여 불평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형통함에 불평을 드러내는 순간 나도 역시 질투의 수렁과 함정에 빠지고 올무와 덫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8절에서 또 한번 불평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불평은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원통해하고, 번민하고, 괴로워하고, 화를 내고, 소리지르고, 꾸짖고)하는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언제 어디에서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질투와 시기의 굴레에 갇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이 미련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불평하지 않고 잠잠한 것이 바보 같아 보이겠지만, 분노하지 않고 당하고만 있는 것이 약해빠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가면서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그러나 참지 못하고, 불평이 가득하고, 말만하면 분과 노를 일으키는 사람은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이이기에 그들은 끊어질 것이며, 자세히 살펴 보아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상대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악인들, 불의한 자들은 이렇게 다 정리하십니다.
그러면서 11절에서 악인은 끊어지고 사라질 지라도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결국 질투하지 않고 참아내는 사람, 불평하지 않고 분노를 다스리며 사는 사람, 즉 온유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평안을 누릴 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누가 하신 말씀인가요? 예수님이 하신 팔복의 말씀입니다. 온유한자가 땅을 기업을 받는 다는 이 말씀을, 예수님이 오시기 천년 전에 다윗의 입을 통하여 미리 증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천년의 시간을 관통하여, 그리고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온유한 자들이 모이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곳은 질투와 시기와 투기가 없으며, 당연하게도 불평과 원망과 분노를 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런 자들은 온유함의 기준에 함량 미달이 되어 이미 천국문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심판대 앞에서 다 탈락 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질투, 시기, 투기가 그냥 한 번 내지르는 성질이나 화에 그치지 않고 끊어지고, 사라지고, 그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을 만든다는 것을 말씀으로 보았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고 참고 기다려라”는 말씀이 답답하고 내 억울한 사정을 너무나도 몰라주시는 매정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의 모난 성격과 설화를 그치게 하여 이 땅에서 온유함이 연단되고, 실천되고, 습관이 되도록 변화 시켜 가시려는 선하신 은혜의 인도하심임을 믿고 순종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매사에 예수님처럼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권세가 있으셔도 눈 앞에서 저주하고 살기를 내뿜는 자들의 그 질투와 시기도 다 참아내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승리는 완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종에 의해서 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기에 질투와 시기로 인해 몸과 마음이 도저히 감당해 나가지 못할정도로 상처를 받을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마다 여호와 앞에 나아가 잠잠히 참고 기다린 다윗을 기억하며, 십자가에 매달리신채 조롱과 모욕과 수치를 감당해 내신 주님의 참으심과 순종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못 참아내고, 못 기다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참고 기다리심의 순간에 주님이 함께 하여 주실 것이고, 그렇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온유의 복을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실 것입니다. 이 하나만 생각하면 거뜬히 참아내고, 기다리는 능력이 입혀질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질투와 시기를 당하는 대상이 되었을 지라도 우리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심을 굳게 믿고, 그들과 악을 행하는 자들, 불의하는 자들, 원망하는 자들, 시기하는 자들과 맞서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상대하도록 맡겨 드리시고, 여러분 모두는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게 되는 온유와 순종의 길로 묵묵히 나아가시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행하고, 따르고, 참고 기다리며 모든 질투와 시기를 물리치는 강건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8월에는 ‘질투(시기, 투기)’를 주제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질투가 가져다주는 결과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말씀과 일상에서 서로 노엽게 하거나 투기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주에는 내가 질투를 발하는 주체일 때를 생각하며 내 마음과 언행이 어떤 상태이고, 어떻게 변화되어 가야 하는지 생각하며 말씀을 들었다면, 오늘 말씀은 내가 질투(시기,투기)를 당하는 대상으로서, 질투를 발하는 상대방(남, 타인)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는 8월 첫째 주 말씀처럼 하나님은 진짜로 우리들을 향하여 질투를 하고 계십니다. 왜 질투를 하실까요? 세 가지로 답변해서 말씀 드리면,
첫째, 아직도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애정 표현이며,
듈째, 아직도 나는 너에게 관심이 많고 대화하고 싶다는 감정 표현이며,
셋째, 아직도 나는 너에게 회개하고, 돌이키고,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포기하지 않으심의 표현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다면, 관심이 없다면, 완전히 포기하고 버리려고 한다면 질투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질투하시는 것은 내가 잘하여서가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아직은 진노와 멸망에 이르는 최악의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것은 이러한데, 그럼 사람이 하는 질투는 무엇일까요? 그냥 죄일 뿐입니다. 나쁜 마음, 악독한 생각, 비열한 비난, 난폭한 공격이 그 사람의 마음 안에서 주체할 수 없이 증폭될 때 질투가 일어납니다.
질투를 당하는 사람 또한 원인 제공자라고 말하면서 질투를 하는 자나, 질투를 유발한 자(당하는 자)나 다 마찬 가지라는 양비론(둘다 나쁘다)으로 접근 해서는 안 됩니다. 질투는 그냥 일방적으로 질투를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입니다.
그럼 이토록 나쁜 사람들이나 하는 질투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향해서 멈추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시는 너랑 말 안해, 다시는 보지 말자 라고 단호하게 물리치면 시원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질투라는 공격에 노출 되었을 때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가르침 대로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7월에 다윗의 시편 39편을 말하면서 다윗은 그를 심지어 죽이려는 자들을 향해서 말로 범죄(말로 명령해서 죽여라)하지 않으려고 기도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오늘 시편 역시 다윗의 시편이고, 다윗은 질투(시기,투기)에 대해 어떤 대응을 했는지 그의 생각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본문 1~2절을 읽어 드립니다.
“1.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2.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1절만 표준새번역으로 다시 읽어 드립니다.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며,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말아라.” 아멘.
세상에는 악한 자들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왜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 겁니까? 따질 수 있으나, 다윗은 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1절은 기본적으로 다윗이 나라를 다스려가는 통치철학이자 하나님 안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믿음의 올바른 태도를 공개적으로 드러낸 말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는 것은 말은 쉽게 할 수 있어도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만약 악인이 나를 향하여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면서 공격을 가하는 상황이라면 “하나님은 이 악한 자를 왜 가만 두십니까?” 라고 호소하기 마련이지 그냥 아무 말도 없이 원망도 안하고 꾹 참고만 있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또한 나라 안에서 불의를 행하는 자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혼란을 부추기는데도 그들을 향하여 일체 시기하지 말라는 것은, “통치의 권세를 묵혀두고 그냥 방관하고 내버려 두라는 말입니까?” 라고 따질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말로 공격당하여 마음에 근심이 쌓여가는데도 입에 재갈을 물리고 참으라고 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원망하지 말라고 하고, 불의한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고 하니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고 실천해 나가기는 더욱 괴로운 말씀입니다.
다윗이 이토록 참아내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난 번 시편 39편에서도 다윗은 말로 자기를 공격하고, 저주하고, 비웃고, 조롱하는 자들을 향하여 입에 재갈을 물리는 심정으로 참아내며 혀로 범죄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호소를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호소하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상대 했습니다. 오늘 말씀도 원망하는 자들, 불의한 자들을 직접 상대하기 보다, 그들을 징계하고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 이심을 새삼 강조하는 말입니다.
질투에 대해서 믿음의 사람들이 꼭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질투하는 나쁜 사람들을 노려 보시고 그들을 향하여 무섭게 질투하고 계시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뒤로 빠져 있고, 나도 질투에 동참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도록 주의 해야 함은 물론, 남이 나에게 질투를 가해 온다고 하여도 그와 맞서 상대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보 같이 피하고 도망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질투하는 자들을 상대 하시도록, 그들을 판단 하시도록, 그들을 징계 하시도록 맡겨 드리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질투에 대한 대처 방안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이런 승리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 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원망하기 보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저렇게 악한 원수들 일지라도 그들을 위해(불쌍한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기 보다 그들이 계속 시기 할지라도 맞 부딫쳐서 서로 시기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아버지의 참 뜻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도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이 곧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의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향하여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있을 때,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그들과 힘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참아내실 수 있으십니까? 안 할거야, 나는 절대로 그렇게 못해 라는 생각은 접어 두시고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쳐 준대로 그 원망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 부르짖어야 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했고,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에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향하여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않고 억울하고 분해서 못살겠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하지 않고 침묵하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 시기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눈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했고,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기에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라고 인정 받은 것, 그리고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한 것은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않고, 시기를 시기로 상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원망하고 시기하는 자들을 전부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징계하시도록 완전하게 맡겨 드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혀로 범죄하는 말씀 드릴 때 입에 재갈을 물리도록 침묵하고 마음에 근심이 쌓여도 참아내라는 말씀 드리면서 저는 굉장히 미안함이 들었습니다. 위로는 못해줄망정 아픈곳 한데 더 때리듯이 참기만 하라고 말해야 하니 저도 참 담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한 번 원망도 시기도 다 받아내고 참아내고 일체 맞서지 말라는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미안하고 답답한 말씀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감정대로, 생각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말하지 않고 반대의 경우로 인도할때가 많습니다. 받아들여 합니다.
힘들지만 우리는 악을 행하는 자들을 원망하지 않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죽어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 합니다. 저도 그런 감정 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때가 가장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임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답답한 마음이 들 때 하나님과 일대일로 상대하고,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고, 나아가고, 만나게 될 은혜의 시간이 왔음을 기억 하십시오. 하나님은 약하고, 고통 받고, 엎드려 눈물 흘리는 자를 가장 먼저 찾아오시고 그 마음에 평안과 회복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원망스럽고 원통한 일이 많이 있으실 겁니다. 불의함으로 공격하는 자들을 시기(미움, 증오)하는 마음도 많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오늘 1절 말씀을 떠 올리시고, 다윗의 삶과 예수님의 삶을 떠올리면서 참고, 인내하고, 결국 승리하는 길로 나아가셔야 합니다.
2절에서, “그들(악을 행하는 자들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 그리고 원망과 시기 하는 자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잠깐 동안은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 마른 풀처럼, 시들은 채소처럼 되어 버릴 겁니다.
이번 달 암송 말씀이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 불의한 자를 향하여 무섭게 진노하시며 질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나서서 질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 소멸(전부 태워 없앰) 시키실 겁니다. 우리가 상처 받았다고 화내면서 그들을 내 힘으로 없애버리겠다고 헛된 싸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망하고 시기하지 말고 참아 내라는 말씀이 답답하고 힘겹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 내가 친히 앞서 가서 싸우리라” 말씀 하시며 악과 불의를 전부 소멸시키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승리에 동참하라는 기쁨의 선언임을 아셔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이 말씀을 받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원망과 시기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다윗과 같이 참아내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원망하고 시기하면 다 소멸시킨다는데 거기에 동참할 이유가 없습니다. 풀과 같이 베이고 채소 같이 시든다는데 굳이 헛된 힘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수 많은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어 억울함과 고통을 당한 적이 많으실 겁니다. 내가 가해자였는지 피해자 였는지는 각자의 양심이 말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 듣고 결신하시기를, 다시는 스스로 악인이 되고 불의한 자가 되는 것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과 맛서 싸우려고 원망하고 시기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굳게 결심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당장 질투의 대상이 되어 공격을 당할지라도 그 때마다 오직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만 상대하고, 하나님으로부터만 위로와 능력을 공급 받으며 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주시는 십자가 은혜의 길에서 벗어나지 아니하고 의의 길로 올바르게 전진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원망하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기쁨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3~6절을 읽어 드립니다.
“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아멘.
이 네 구절은 전부 암송구절로 많이 애용되는 말씀입니다. 특히, 4절과 6절은 많이 들어보셔서 익숙하실 겁니다. 이 구절들에는 “ ~을 행하라”는 것이 세 가지가 나옵니다.
①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청종하라, 의뢰-청, 선을 행함-종)
② 여호와를 기뻐하라
③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세 가지 행하라는 명령에는 전부 ‘여호와’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질투와 시기가 왜 생기나요? ‘여호와’의 이름이 삭제된 상태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그 이름만 부르며 살아가는 것이 악을 행하지 않고, 불의함을 쫓지 않고, 원망하거나 시기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비결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줍니다.
이 세가지를 충실하게 행하여 순종하면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먹을 거리를 주시고, 소원도 이루어 주시고, 나의 의로움을 빛과 같이 밝게 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들이 당장 눈에 보이는 현물이 아니어서 별거 아닌 것 같으신가요?
그럼 이 세가지를 무시하고 여호와의 이름 없이 한 번 살아보십시오. 내가 어는 순간 악을 행하는 자의 선두에 설 것이고, 불의한 행동을 일삼으며 의롭게 여겨 주시는 십자가 은혜를 싸구려로 만들게 될 것이고, 원망과 불평을 앞장서 선동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영화에서 말하는 악당(빌런)이 곧 내가 되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위 세가지 명령을 잘 따르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예비된 백성으로 변화되고 성장해 가기 위해 다듬어지는 은혜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 세가지를 진실하게 행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 세 가지를 할 수 있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평가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세가지를 행하는 것이 제가 누차 강조한 것처럼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신앙의 기본을 지켜가는 것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 말씀, 기도, 찬양, 감사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곧 행하라는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세와 태도가 아닐까요?
다윗이 악하고 불의한 사람들과 수도 없이 부딪치면서도 여호와를 청종하고, 기뻐하고, 맡기는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 것처럼, 우리 모두도 하루 하루를 신앙의 기본에 충실하며 “행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의의 길로 나아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진짜 질투와 시기함을 당할 때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7~11절을 읽어 드립니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아멘.
우리가 질투함을 당할 때 취해야 할 태도와 자세는 1절 앞 부분과 같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고 참고 기다려라”는 말씀을 따라 그대로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죄송하게도 또 참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성경 말씀대로 참고, 또 참고 살다가 화병, 속병이 먼저 날 것 같기도 합니다.
극히 어렵겠지만 마음을 다잡고 참고 기다리는 가운데 특히 주의 해야 할 일은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인의 행태를 보면 저 악한 사람은 나쁜 짓 많이 했으니 금방 망해야 정상인데 오히려 계속 형통한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 점점 악한 꾀를 내어 더 형통해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를 향하여 불평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형통함에 불평을 드러내는 순간 나도 역시 질투의 수렁과 함정에 빠지고 올무와 덫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8절에서 또 한번 불평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불평은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원통해하고, 번민하고, 괴로워하고, 화를 내고, 소리지르고, 꾸짖고)하는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언제 어디에서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질투와 시기의 굴레에 갇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이 미련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불평하지 않고 잠잠한 것이 바보 같아 보이겠지만, 분노하지 않고 당하고만 있는 것이 약해빠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가면서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그러나 참지 못하고, 불평이 가득하고, 말만하면 분과 노를 일으키는 사람은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이이기에 그들은 끊어질 것이며, 자세히 살펴 보아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상대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악인들, 불의한 자들은 이렇게 다 정리하십니다.
그러면서 11절에서 악인은 끊어지고 사라질 지라도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결국 질투하지 않고 참아내는 사람, 불평하지 않고 분노를 다스리며 사는 사람, 즉 온유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평안을 누릴 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누가 하신 말씀인가요? 예수님이 하신 팔복의 말씀입니다. 온유한자가 땅을 기업을 받는 다는 이 말씀을, 예수님이 오시기 천년 전에 다윗의 입을 통하여 미리 증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천년의 시간을 관통하여, 그리고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
온유한 자들이 모이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곳은 질투와 시기와 투기가 없으며, 당연하게도 불평과 원망과 분노를 하는 자도 없습니다. 그런 자들은 온유함의 기준에 함량 미달이 되어 이미 천국문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심판대 앞에서 다 탈락 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질투, 시기, 투기가 그냥 한 번 내지르는 성질이나 화에 그치지 않고 끊어지고, 사라지고, 그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을 만든다는 것을 말씀으로 보았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고 참고 기다려라”는 말씀이 답답하고 내 억울한 사정을 너무나도 몰라주시는 매정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의 모난 성격과 설화를 그치게 하여 이 땅에서 온유함이 연단되고, 실천되고, 습관이 되도록 변화 시켜 가시려는 선하신 은혜의 인도하심임을 믿고 순종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매사에 예수님처럼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권세가 있으셔도 눈 앞에서 저주하고 살기를 내뿜는 자들의 그 질투와 시기도 다 참아내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승리는 완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종에 의해서 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기에 질투와 시기로 인해 몸과 마음이 도저히 감당해 나가지 못할정도로 상처를 받을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마다 여호와 앞에 나아가 잠잠히 참고 기다린 다윗을 기억하며, 십자가에 매달리신채 조롱과 모욕과 수치를 감당해 내신 주님의 참으심과 순종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못 참아내고, 못 기다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참고 기다리심의 순간에 주님이 함께 하여 주실 것이고, 그렇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온유의 복을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실 것입니다. 이 하나만 생각하면 거뜬히 참아내고, 기다리는 능력이 입혀질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질투와 시기를 당하는 대상이 되었을 지라도 우리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심을 굳게 믿고, 그들과 악을 행하는 자들, 불의하는 자들, 원망하는 자들, 시기하는 자들과 맞서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상대하도록 맡겨 드리시고, 여러분 모두는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게 되는 온유와 순종의 길로 묵묵히 나아가시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행하고, 따르고, 참고 기다리며 모든 질투와 시기를 물리치는 강건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을 올려드리며 살아요 == 신명기32;1-47(240818) (0) | 2024.08.16 |
---|---|
스크랩 다윗으로 본 영적 전쟁 (대상22:6-8) (0) | 2024.08.16 |
스크랩 왕들이 함께 전쟁을 만든 이유, 석유 (창세기 14장 1~2절) (0) | 2024.08.16 |
스크랩 해방의 기쁨을 영원히 누리자(눅 4:16-21) - 해방 (0) | 2024.08.09 |
스크랩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 (0) | 2024.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