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향하여 찬양을 올려드리며 살아요 == 신명기32;1-47(240818)
PW : 믿음 BIW : 노래를 부르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온 몸과 마음으로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 앞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고백으로 드려지는 찬양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으로 300만명의 아사자들이 생겨날 때 일이라고 합니다.
그때 미국 동포 중에 어느 목사님께서 북한의 노인들을 만나서 탈출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노인네들에게 “왜 북한을 탈출하려고 하십니까?‘라고 여쭈어보았습니다.
그 노인들은 마음껏 찬양을 불러보고 싶어서 북한을 탈출하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노인들을 도와드리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까지 약 60여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그들 모두를 구출시켜 드리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서는 기도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잠시 기도하고 돌아온 노인들은 눈물이 글썽글썽거리면서 탈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왜 그러시느냐고 여쭈니까, 노인들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미국의 목사님이 우리들을 도와서 탈출시켜 주겠다고 하는데... 따라 갈까요? 어떻게 할까요? 하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서 너희들을 이 북한 땅에 남겨둔 줄로 아느냐?’라고 하시면서 거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면서 “우리들이 굶주리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까?”라고 여쭈었더니 하나님께서 “그것도 내 뜻이다.”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핍박받아서 죽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것도 내 뜻이다.”
“우리가 제대로 예배조차 드리지 못하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것도 내 뜻이다. 그것이 너희들을 이 곳에 남겨둔 이유다.”
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북한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탈출하지 않고 수용소로 끌려가서 모두 다 죽었다고 합니다.
갈기갈기 찢겨서 죽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북한 땅에는 마음껏 찬양을 부르고 싶어 하는 지하교회 신앙인들이 아주 많습니다.
속히 자유대한민국, 한민족이 자유 통일이 되어서 북한 땅에서도 마음껏 소리 지르면서 기도도 할 수 있고, 찬양도 부를 수 있는 날이 빨리 찾아오기를 소망합니다.
자유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은 얼마든지 마음껏 큰 소리로 기도할 수 있고, 찬양을 부를 수 있고, 성경을 읽으면서 예배드릴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저 늘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드리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신명기 31:19-22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그러므로 모세가 그 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라고 기록하신다.
신명기 31;30에서는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 이 노래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 들리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감동으로 노래를 만들어주시면서 백성들에게 가르치라고 말씀하신다.
이 노래가 백성들이 부르면서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로 되돌아올 수 있는 바로미터(barometer), 증거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정착한 이후에 가나안 땅에서 이제 살만해지면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하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잊어버리면서 다른 이방신들을 섬기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많은 재난, 재앙, 환난, 저주를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럴 때에 이 노래를 부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처량하고 처참하고 비참하게 된 원인을 깨닫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노래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읽어주고 가르쳐 주었는데, 이 노래가 바로 신명기 32장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노래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
D4.
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4절에서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반석이란 변하지 않는 존재이다.
반석은 아무리 세월이 바뀌고 세기가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 해도, 폭풍으로 비바람이 몰아친다 해도 반석은 바뀌지 않고 본래 모습 그대로이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다고 소개하고 있다.
6절에서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의 근본이 하나님에게 있다.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신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9-12절에서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서 자기 백성,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② 저주받게 된 원인을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
5절에서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라고 말씀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범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도 없는 삐뚤어지고 흠이 있는 세대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것이다.
사람이란 뭔가 잘 되는 일이 있으면 자기의 능력이 탁월하여 잘 된다고 착각하면서 교만의 길로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이젠 평안해지고 뭔가 잘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여지니까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 하나님께서 내리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15절에서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여수룬은 이스라엘의 별명이다. 곧 이스라엘이 기름지고 잘 되었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잘 되어지니까, 살찌고 비대해지고 윤택하여 지니까 여호와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버리고 배반의 길로 빠지는 것이다.
16-23절에서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그러므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 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라고 말씀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주할 수밖에 없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여 떠났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서 다른 신들에게 제사하면서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짐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저주하였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③ 회복하여 축복의 길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시는 하나님.
39-43절에서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이는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내가 영원히 살리라 하였노라. 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로다.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속죄하시는 은혜를 입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이란 존재는 언제든지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어깨에 힘을 주면서 교만해지고 거만해지고 자신이 잘난 맛에 살아가고 싶어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잘났다고, 자신에게 뭐든지 잘 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힘을 주면서 자랑하고 싶어한다.
그런 교만, 거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도록 유혹하는 사탄이 던져놓는 올무와 미끼가 된다.
사탄이 던져놓은 올무와 미끼에 걸리면 어느 누구든지 교만하고 거만해진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을 아주 쉽게 버릴 수 있고, 떠날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전혀 필요치 않다고 여겨진다.
그러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눈으로 화려하고 웅장하고 대단해 보이는 이방 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는 것이다.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면 하나님께서 내리는 진노와 환난과 시련의 저주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며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④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결단시키시는 하나님.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모래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면서 46-47절에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라고 말씀하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율례, 법도를 잘 지켜 행하라고 다짐시키고 있다.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고,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을 버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가나안 땅에서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격려해 주신다.
여호와 하나님 같으신 분이 없기 때문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길만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 확신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겠노라고 결단해야 하는 것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결단하지만 아주 쉽게 본래의 악한 모습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그렇지만 매일매일 작심삼일 하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순종하면서 살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노래는 부르는 이들이나 듣는 이들에게 큰 영감과 깨달음의 은혜와 감동을 준다.
노래는 회복과 치유의 능력을 준다.
노래는 가사 하나하나에 메시지가 담겨 있다.
노래는 큰 울림과 감동을 주면서 화합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L4 & B4.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가르쳐주시는 노래는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정황이라기보다는, 미래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한 이후에 발생하게 될 일들을 예견하면서 노래를 만들어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노래는 어떤 의미일까?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노래를 통하여 어떤 감동과 회복과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고 있는가?
우리 한민족은 한(恨)이 서려 있는 민족이다.
한민족에게는 민요, 타령, 트로트가 한민족의 정서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간혹 흘러간 옛날 노래나 유행가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흥얼흥얼거리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흥얼흥얼거리면서 따라부르는 노래도 너무 좋은 일이다.
여기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을 더 많이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앙인들의 입술에서, 영혼에서, 마음에서 솟아 나오는 찬양으로 힐링이 되고, 회복하고 감동이 되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신앙인들은 삼위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찬양들로 가득 채워졌으면 한다.
자나 깨나 무엇을 하든지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찬양을 듣고, 부르면서 살아간다면 온 영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모하고, 경배하고 높이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권세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는 바로 찬양에서 나온다.
미리암과 이스라엘 여인들이 출애굽의 영광스런 모습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다윗은 수금을 타면서 찬양할 때 악귀들이 떠난다.
다윗은 언약궤가 시온성으로 들어올 때, 온 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한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찬양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간절한 맘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면 있는 힘껏 찬양하고 그 찬양을 통해서 성령의 뜨거운 감동, 감화를 입을 수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고, 행복해질 수도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우리들의 각오를 새롭게 다질 수도 있고, 새롭게 도전할 수도 있다.
같은 찬양을 계속 반복하면서 부르게 되면 그 찬양의 곡조와 찬양시가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열고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기도가 되고, 우리들에게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사모하는 신앙인들은 삼위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할 때 하늘의 신령한 복이 흘러넘치게 된다.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신앙인들은 삼위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을 올려드리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할 때 하늘 문이 활짝 열리고 축복의 보따리가 활짝 열리게 된다.
그리하여 하늘의 신령한 축복의 세계를 만천하에 선포하고 자랑하는 축복의 주인공, 축복의 통로, 축복의 근원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우리들 안에 임재해 계시는 성령의 감동으로 온 마음과 영혼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갈망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TS : 믿음이란 온 몸과 마음으로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 앞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고백으로 드려지는 찬양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으로 300만명의 아사자들이 생겨날 때 일이라고 합니다.
그때 미국 동포 중에 어느 목사님께서 북한의 노인들을 만나서 탈출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노인네들에게 “왜 북한을 탈출하려고 하십니까?‘라고 여쭈어보았습니다.
그 노인들은 마음껏 찬양을 불러보고 싶어서 북한을 탈출하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노인들을 도와드리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까지 약 60여 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그들 모두를 구출시켜 드리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은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서는 기도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잠시 기도하고 돌아온 노인들은 눈물이 글썽글썽거리면서 탈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왜 그러시느냐고 여쭈니까, 노인들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미국의 목사님이 우리들을 도와서 탈출시켜 주겠다고 하는데... 따라 갈까요? 어떻게 할까요? 하면서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없어서 너희들을 이 북한 땅에 남겨둔 줄로 아느냐?’라고 하시면서 거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면서 “우리들이 굶주리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까?”라고 여쭈었더니 하나님께서 “그것도 내 뜻이다.”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핍박받아서 죽는 것도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것도 내 뜻이다.”
“우리가 제대로 예배조차 드리지 못하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것도 내 뜻이다. 그것이 너희들을 이 곳에 남겨둔 이유다.”
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북한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탈출하지 않고 수용소로 끌려가서 모두 다 죽었다고 합니다.
갈기갈기 찢겨서 죽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북한 땅에는 마음껏 찬양을 부르고 싶어 하는 지하교회 신앙인들이 아주 많습니다.
속히 자유대한민국, 한민족이 자유 통일이 되어서 북한 땅에서도 마음껏 소리 지르면서 기도도 할 수 있고, 찬양도 부를 수 있는 날이 빨리 찾아오기를 소망합니다.
자유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신앙인들은 얼마든지 마음껏 큰 소리로 기도할 수 있고, 찬양을 부를 수 있고, 성경을 읽으면서 예배드릴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저 늘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드리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신명기 31:19-22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그러므로 모세가 그 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라고 기록하신다.
신명기 31;30에서는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 이 노래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 들리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감동으로 노래를 만들어주시면서 백성들에게 가르치라고 말씀하신다.
이 노래가 백성들이 부르면서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로 되돌아올 수 있는 바로미터(barometer), 증거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정착한 이후에 가나안 땅에서 이제 살만해지면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하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잊어버리면서 다른 이방신들을 섬기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수많은 재난, 재앙, 환난, 저주를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럴 때에 이 노래를 부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처량하고 처참하고 비참하게 된 원인을 깨닫게 되고,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노래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읽어주고 가르쳐 주었는데, 이 노래가 바로 신명기 32장의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노래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
D4.
①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반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4절에서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반석이란 변하지 않는 존재이다.
반석은 아무리 세월이 바뀌고 세기가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 해도, 폭풍으로 비바람이 몰아친다 해도 반석은 바뀌지 않고 본래 모습 그대로이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다고 소개하고 있다.
6절에서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의 근본이 하나님에게 있다.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신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9-12절에서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서 자기 백성,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② 저주받게 된 원인을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
5절에서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라고 말씀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범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도 없는 삐뚤어지고 흠이 있는 세대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것이다.
사람이란 뭔가 잘 되는 일이 있으면 자기의 능력이 탁월하여 잘 된다고 착각하면서 교만의 길로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이젠 평안해지고 뭔가 잘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여지니까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 하나님께서 내리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15절에서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여수룬은 이스라엘의 별명이다. 곧 이스라엘이 기름지고 잘 되었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잘 되어지니까, 살찌고 비대해지고 윤택하여 지니까 여호와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버리고 배반의 길로 빠지는 것이다.
16-23절에서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그러므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 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라고 말씀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주할 수밖에 없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여 떠났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서 다른 신들에게 제사하면서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짐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저주하였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③ 회복하여 축복의 길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시는 하나님.
39-43절에서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이는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내가 영원히 살리라 하였노라. 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로다.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속죄하시는 은혜를 입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이란 존재는 언제든지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어깨에 힘을 주면서 교만해지고 거만해지고 자신이 잘난 맛에 살아가고 싶어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잘났다고, 자신에게 뭐든지 잘 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힘을 주면서 자랑하고 싶어한다.
그런 교만, 거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도록 유혹하는 사탄이 던져놓는 올무와 미끼가 된다.
사탄이 던져놓은 올무와 미끼에 걸리면 어느 누구든지 교만하고 거만해진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을 아주 쉽게 버릴 수 있고, 떠날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전혀 필요치 않다고 여겨진다.
그러면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눈으로 화려하고 웅장하고 대단해 보이는 이방 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는 것이다.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면 하나님께서 내리는 진노와 환난과 시련의 저주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며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④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결단시키시는 하나님.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모래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면서 46-47절에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라고 말씀하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율례, 법도를 잘 지켜 행하라고 다짐시키고 있다.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고,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을 버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가나안 땅에서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격려해 주신다.
여호와 하나님 같으신 분이 없기 때문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길만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 확신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겠노라고 결단해야 하는 것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이 결단하지만 아주 쉽게 본래의 악한 모습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그렇지만 매일매일 작심삼일 하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순종하면서 살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노래는 부르는 이들이나 듣는 이들에게 큰 영감과 깨달음의 은혜와 감동을 준다.
노래는 회복과 치유의 능력을 준다.
노래는 가사 하나하나에 메시지가 담겨 있다.
노래는 큰 울림과 감동을 주면서 화합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L4 & B4.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가르쳐주시는 노래는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정황이라기보다는, 미래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한 이후에 발생하게 될 일들을 예견하면서 노래를 만들어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노래는 어떤 의미일까?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노래를 통하여 어떤 감동과 회복과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고 있는가?
우리 한민족은 한(恨)이 서려 있는 민족이다.
한민족에게는 민요, 타령, 트로트가 한민족의 정서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간혹 흘러간 옛날 노래나 유행가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흥얼흥얼거리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흥얼흥얼거리면서 따라부르는 노래도 너무 좋은 일이다.
여기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을 더 많이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앙인들의 입술에서, 영혼에서, 마음에서 솟아 나오는 찬양으로 힐링이 되고, 회복하고 감동이 되면서 눈물 흘리며 기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신앙인들은 삼위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찬양들로 가득 채워졌으면 한다.
자나 깨나 무엇을 하든지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을 높이고 경배하는 찬양을 듣고, 부르면서 살아간다면 온 영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모하고, 경배하고 높이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권세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음성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는 바로 찬양에서 나온다.
미리암과 이스라엘 여인들이 출애굽의 영광스런 모습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다윗은 수금을 타면서 찬양할 때 악귀들이 떠난다.
다윗은 언약궤가 시온성으로 들어올 때, 온 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한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찬양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간절한 맘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면 있는 힘껏 찬양하고 그 찬양을 통해서 성령의 뜨거운 감동, 감화를 입을 수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고, 행복해질 수도 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우리들의 각오를 새롭게 다질 수도 있고, 새롭게 도전할 수도 있다.
같은 찬양을 계속 반복하면서 부르게 되면 그 찬양의 곡조와 찬양시가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열고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기도가 되고, 우리들에게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사모하는 신앙인들은 삼위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할 때 하늘의 신령한 복이 흘러넘치게 된다.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신앙인들은 삼위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을 올려드리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할 때 하늘 문이 활짝 열리고 축복의 보따리가 활짝 열리게 된다.
그리하여 하늘의 신령한 축복의 세계를 만천하에 선포하고 자랑하는 축복의 주인공, 축복의 통로, 축복의 근원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우리들 안에 임재해 계시는 성령의 감동으로 온 마음과 영혼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갈망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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