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추석 가정 추모, 장례 예배 예문, 결혼

스크랩 추석 명절에 가족이 함께하는 예배

열려라 에바다 2024. 9. 14. 11:13


 
추석 명절에 가족이 함께하는 예배
 
 추석은 우리 민족이 신라시대부터 지내온 명절로 오늘날에도 가장 큰 명절로 지내고 있다. 한가윗날은 연중 달이 가장 크고 밝은 날이다. 그해의 첫 곡식으로 송편을 빚어 먹으며 감사하는 즐거운 날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초실절(레 23:9-14)을 주신 것처럼 우리 조상들에게 "추석"을 추수절로 주신 것으로 볼 수 있다면 달 밝은 한가윗날을 우리 민족의 "추수감사절"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각 민족은 그들 나름대로 추수절을 지내오고 있는 것이다. 성묘하는 일도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에게는 죽음이 인생의 끝이 될 수 없다. 사후에 몸은 비록 묘지에 묻혀 있으나 부활의 믿음은 영원한 소망이다.
 
 *** 추석 명절 가정 예배 순서 ***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드립니다.
묵상기도 -   다같이
기     원    -    인도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복을 주셔서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추석명절 이 아침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오니 받아 주시고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      송   - 488 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기      도  -  가족 중에서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우리들을 지켜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지난날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겸손히 주님 앞에 예배드리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가 너무나도 놀랍건만 믿음이 부족하여 다 감사드리지 못한 저희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지난 과거, 우상을 섬기며 살아온 이 나라와 민족에게 구원의 복음을 주셔서 생명의 길을 걷게 하시고 소망의 주를 바라보며 살게 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사랑의 하나님! 저희 가정을 주의 사랑 안에서 거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부모 형제 일가친척 모두가 주안에서 화목하게 하시며,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예수님의 사랑의 띠로 하나 되어 이웃에게 주의 사랑을 증거 하며 살게 하옵소서. 때로는 어려움을 만나나 그때마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굳센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항상 성령께서 저희 가정을 이끄셔서 화평과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이 자리에 참석 못한 가족들, 멀리 나가 있는 가족들, 특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 꼭 함께 하시어 새 힘 얻어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의 생활도 온전히 주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하루가 되도록 인도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  자녀 중에
설      교   - (설교 예문 이용)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491 장
주기도문  - 다같이

 
설교 예문 1
형제간 우애가 있는 집안(시 133:1-3)
 
 자녀 손들에게 부모님은 두 가지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계십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으로 사는 것이요, 둘째는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물론 공부 잘하여 크게 출세하는 것도 부모님은 바라십니다. 또한 돈 많이 벌어 잘 사는 것도 원하십니다.
 그러나 신앙생활 제대로 하지 않고 살거나 형제간에 서로 다투며 지낸다면 그것처럼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 부모님이 바라고 기뻐하시는 두 가지 마음의 소원을 좀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신앙이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립니다.
 사람의 근본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님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에서 떠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믿음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어렵고 힘든 때를 만나더라도 신앙으로 살려고 애를 쓰는 자녀들을 바라보노라면 부모님은 안심이 됩니다.
 믿음만이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섬기다가 하늘나라에 가 계신 우리 조부모님(혹은 부모님)께서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자녀 손들을 위하여 주님께 기도하고 계십니다. 무엇을 기도하실까요? 바로 하나님 잘 믿는 후손들 되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가장 큰 효도는 우리가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 형제간 우애가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립니다. 읽은 성경본문 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 간에 한마음, 한뜻이 되어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아름답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형제간, 동기간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부모님은 정말 기뻐하십니다. 혹이라도 우리가 다투고 불편하게 지내는 모습을 부모님이 보신다면 그것은 크게 불효하는 것입니다.
 앞서 가신 우리 조부모님(부모님)께서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자녀 손들이 하나님 잘 섬기며 형제간에 우애하며 지내기를 원하십니다. 화목한 집안 되기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우리 가정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또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바라는 것 크게 두 가지입니다. 바로 신앙과 형제 우애입니다. 앞서 가신 조부모님(혹은 부모님)을 본받아 하나님 잘 섬기고 형제간에 서로 친근히 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정말 축복이 넘치는 집안 되기를 원합니다.

설교 예문 2
믿음의 큰 유산 (에베소서 6:1-4)
 
 가정은 인간 사회의 기본 단위요 질서입니다. 따라서 가정에서 받은 영향은 인간의 모든 생활과 보다 큰 사회의 삶을 좌우합니다. 그런데 우리 식구들이 신앙 안에서 굳게 서 있고 복된 가정이 된 것은 먼저 하나님의 축복 때문이요, 그리고 부모님이 남겨 주신 유산이 훌륭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님이 남겨 주신 큰 유산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신앙의 유산입니다.
가정은 신앙이 중심이어야 합니다. 가정이 아무리 물질로 풍요함을 갖추었다 해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이 결여되어 있다면 복된 가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가정이 복된 가정으로 살게 된 것은 부모님이 진실한 신앙 유산을 물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사랑과 화목이라는 유산입니다.
사람은 먹는 것이나 입는 것만으로 살 수 없고, 사랑과 화목이 있어야 사람다워지고 가정다워집니다. 우리 가정이 남달리 화목과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된 것은 우리 부모님이 남겨 주신 유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은 가족의 생명이 보전되며 참 교육이 실시되고 가치관이 형성되는 훈련장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이 넘치는 친교의 장, 서로 도와주는 협동과 화목의 장이어야 합니다.  부모님의 무덤 앞에서 다시 한번 사랑과 화목이 넘치는 가정을 주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효라는 유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효도의 본을 보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경은 부모공경을 약속이 붙어 있는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이 붙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참된 효성은 부모가 세상을 떠나신 후 제사를 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가르쳐 주신 그 교훈과 그 생활을 후손 된 우리가 본받고 지키며 행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은 추석 명절입니다. 우리를 낳아 주신 부모님과 조상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부모님을 잘 모심으로 효도하는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은 첫째로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안에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효도하는 길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대대로 충만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유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과 화목과 효성과 신앙의 유산을 길이 보전하고, 우리 후대에 물려주는 가정이 되기를 다짐하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 예문 3
감사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시편 50:1-15, 22-23)
 
 추석은 옛날부터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가을 풍성한 오곡백과의 수확을 감사해서 모든 가족들이 한 곳에 모여서 술과 떡과 음식을 장만하여 한 해의 풍년을 조상신에게 제사로 차례를 지내고 가족 간, 이웃 간에 따뜻한 정을 나누었던 좋은 명절입니다. 이 추석이 바로 한국적 추수 감사의 날입니다.
 그러나 알지 못했던 옛시대에는 조상들에게 감사했으나 이제 예수 안에서는 참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모든 곡식과 열매를 결실케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를 기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훌륭하신 조상을 위하는 길이요 자손들이 잘 사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 가정도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일에 모두 동참하여 복을 받읍시다. 그러면 어떤 감사를 드려야 할까요?
 
1. 과거를 생각하며 감사합시다.
 사람은 과거를 잊으려고 합니다. 괴롭고 눈물 나는 쓰라린 과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잊어버려도 지금까지 어려움 속에서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지난날 우리 가정에 베푸신 은혜와 사랑의 일들을 하나하나 내어놓아 봅시다. (예배 후에) 사람들은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깁니다만 하나님의 사람은 은혜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지난날의 은혜를 생각해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앞날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과 사랑으로 돌봐 주실 것을 믿고 또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현재를 비교하며 감사합시다.
 우리 선조들은 기가 막히게 못살았습니다. 입에 풀칠조차 하기 힘든 속에서도 묵묵히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웃을 돕고 사랑하며 많은 자녀를 뒷바라지하며 키우셨고, 그리고 우리들 자신들도 비천하고 보잘 것없었습니다만 이제 어느 정도 좋은 환경에서 넉넉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축복을 누리며 살고 있으므로 우리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드려 봅시다. 소가 되새김질하듯 지금까지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에벤에셀의 복을 늘 새롭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금년에도 풍년을 주셨으니 우리 모두 감사합시다.
 
3. 미래를 믿으며 감사합시다.
 성도는 하나님이 불러 모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녀입니다. 즉 영원한 생명과 축복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멸망받을 우리를 구원하여 성도라 부르게 하심은 최고의 복입니다. 미래까지 보장하신 복입니다. 성도는 천대까지도 복을 받으며 영원토록 복을 누리게 되었으니 우리 하나님께 감사 찬송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2절에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하신 말씀은 성도가 아닌 자들에게 내리실 저주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며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성도에게 주신 과거, 현재, 미래의 복을 깊이 생각해 봅시다.
 
 추석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다 오직 하나님께만 풍성한 감사로 제사드려 자자손손 대대로 복 받는 가족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 멘†

설교 예문 4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민수기 6:24-26)
 
 오늘 본문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역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심지어는 코로나19 등 날마다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1.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오늘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소년이 되어서는 스승님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과 재앙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3.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오늘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을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도를 다하는 자녀가 되며 온 가족이 주 하나님을 잘 섬겨 복 받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가족은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추모(追慕) 예배의 의의 
 
 추모(追慕)라는 용어가 바람직합니다. 추도(追悼)라는 용어는 죽은 이를 생각하며 슬퍼해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속에는 다분히 불신자적인 인상이 짙습니다. 추모(追慕)라는 용어의 뜻은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워함입니다. 이렇게 보면 기독교에서 사용되어야 하는 바른 용어는 추모(追慕)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추모(追慕) 예배의 의의
 
1) 불신자에게는 올바른 죽음 의식을 주는 데 있습니다. 죽음은 죗값이며 하나님을 향한 반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죽음을 잠잔다는 말로 성경은 표현합니다. 이것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영혼이 깨어난다고 하는 것을 전제한 것입니다. 영혼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다시 돌아오거나 혹은 정처 없이 세상을 방황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죽음 이후에는 심판과 부활이 있습니다.
 
2) 믿는 가족들에게는 부활신앙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시간입니다. 먼저 신앙 안에서 위로를 받고 부활신앙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신자들이 부활신앙이 없는 불신자들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 조상과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조상의 경건한 행위는 자손을 지키고 구원을 얻게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추모예배는 조상과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드려져야 합니다.
 
4) 신앙 상속을 인식하는 특별한 기회입니다. 추모예배는 신앙 상속에 대한 감사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부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부모님을 통해서 믿음을 상속받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게 됨을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고인을 기릴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5)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을 나누는 친교의 시간입니다. 가장 슬플 때에 사람들과 그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친교는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추모일이나 한식절이나 설날이나 추석절 때마다 목회자가 와서 의식을 집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때에만 목회자가 집행하고 그 밖의 다른 경우에는 가장이나 가족 대표가 진행합니다. 예배 인도자는 구습이나 미신적 요소가 나타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의문점이 있으면 담임목사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 추모 예배를 드릴 때 주의점 ◆
 
① 음식 준비 / 음식은 조상이 와서 먹는 것이 아니므로 제사상으로 차리면 안 된다. 그러나 간편한 음식을 준비하였다가 추모 예배 후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나누는 것은 좋은 일이다.
② 사진이나 영정 / 고인의 사진을 준비하는 것은 좋으나 향이나 촛불을 켜는 것은 기독교적이 아니다.
③ 절하는 문제 / 고인의 사진이나 영정 또는 음식물을 향하여 절을 하는 것은 우상 숭배를 금한 계명을 범하는 것으로 죄가 되므로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살아 계실 때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하고 살아계신 부모님께 절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죄가 되지 않는다.
④ 불신 가정에서의 문제 / 가족 전체가 불신 가정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 입장에 있을 때는 그 자리를 피하지 말고 절하는 대신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 된다. 이때 분명하게 신앙상의 이유로 절은 할 수없지만 가족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리겠다고 가족 앞에 태도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다.
⑤ 산소에 성묘 갔을 때 /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한다든지 묘지에 술을 붓는 행위는 신앙적인 것이 아니다. 대표자가 간단히 기도하고 묘에 묻힌 조상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묘지의 상태를 점검하고 돌아보면 됩니다. 불신 가정일 경우에는 다른 가족이 절할 때에 함께 서서 기도하고 가족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힘쓰십시오.
⑥ 기타 / 우리도 언젠가는 조상들처럼 육신은 한 줌의 흙이 되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깨달아야 하며, 조상들이 볼 때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다짐해야 하고, 형제자매들 간에 더없는 우애와 사랑으로 살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결심하는 시간이어야 하며, 조상들이 남겨 놓고 가신 훌륭한 뜻을 받들어 교훈을 받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 추모 예식에 따른 설교 모음 *
                                      
위대한 해후 (1) (암 4:12-13)   
고 000 성도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위대한 해후를 하셨고. 우리 또한 멀지 않은 장래에 하나님을 만나고 사랑하는 성도를 만나게 될 것이다.
 
1.  만나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하나님을 만나기에 적합하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다. 죄를 물 마시듯 마심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그들에게 임하고 있음을 그들은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예비하지 않았던 자들의 결과는 어떤 것인가? 이 세상에서 사람의 인정만 받고 주님의 인정을 등한시하며 살았던 자들에게 주님은. "나는 결단코 너희를 모른다"라고 부인하실 것이다. 우리가 친구를 방문할 때에도 예비를 하고 찾아가거든 하물며 만군의 하나님, 꿈에도 사모하던 그분을 만나 뵙기 위해 찾아가는데도 예비를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2.  위대한 해후를 위해 준비해야 할 방법은?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첫째로,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욥 33: 27;시 38: 18;렘 3: 21). 회개하지 않은 죄악 된 모습으로는 주님을 모실 수 없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회생에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죄지은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엡 2: 13-18;히 9: 15).
셋째로. 새로운 생명의 삶 가운데로 걸어가야 한다. 새 생명은 주의 보혈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예비하는 삶. 즉 거룩하고 외로운 삶을 산 사람이 기쁨의 해후를 이를 수 있다.
 
 
깨어 있는 생활 (2) (눅 12:36-40)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충성된 삶을 살았는가를 점검해 봄으로서 바른 길을 걸어가는 전기가 되어야 하겠다.
 
1. 주인과 종.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주인이 되시며. 우리에게 맡기신 소임에 충성, 봉사, 헌신하기를 요구하신다. 우리에게 소임을 맡기시고 하늘 위에서 그 일을 얼마나 잘 감당하고 있는가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고 계신다. 우리는 그의 종 된 자들로서 그의 일을 성심껏 잘 감당함으로 그것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야 하겠다.
 
2. 주님의 오시는 때.
주님이 오시는 때는 언제 어느 시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때는 밤 이경일 런지 삼경 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해야 할 태도는 특정한 때만이 아니라 항상 깨어 있는 자세로 충성 봉사해야만 한다.
 
3.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
주님은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늘 깨어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지켜보고 계신다. 늘 깨어 있다는 것은 의롭고 경건한 생활, 날마다 날마다 그분의 형상을 덧입기 위하여 수고하고 애쓰는 삶의 연속을 의미한다. 주님을 닳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부단히 노력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깨어있는 삶이란 하나님의 통치를 잘 받는 생활이므로 말씀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대장부가 돼라 (3) (왕상 2:1-4)    
다윗은 늙어 죽게 되었을 때 아들 솔로몬에게 가장 중요한 말을 유언으로 남겨 주었다. 이 유언은 가장 귀한 말로써 깊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적인 것이다.
 
1.  대장부의 삶
다윗은 그의 아들이 대장부가 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그 아들은 장차 자신의 뒤를 이어 국가의 총책임자가 되어 나라를 다스려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대장부가 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지 못할 때 세상의 혼탁한 급류에 휘말려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2.  대장부가 됨으로 인한 축복.
현 세상은 우리가 졸장부가 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나약한 소인배가 됨으로 약속의 땅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말세지말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 말씀 편에 굳게 서서 담대하게 전진해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 핑계될 때만이 하나님은 형통의 길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3.  형통한 삶.
대장부가 됨으로 누리는 축복은 그의 길이 형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원수 마귀가 들끓는 세상 가운데서도 신앙의 대장부가 나가는 그곳에는 모든 대적들이 다 물러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 사건으로 사탄을 결박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믿음으로 승리한 삶이 하나님의 백성이 누려야 할 삶이요, 가장 큰 축복이라고 유언하고 있다.
 
 
우리의 본향은 (4) (히 11:13-16)      
인간은 이 땅 위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나그네라도 앞으로 돌아갈 본항이 있을 때,  나그네는 이미 나그네가 아닌 것이다.
 
1.  나그네 인생.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갔다. 우리 역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도 신앙의 선진들과 같이 예비하는 삶을 살다가 주님께서 부르실 때 거리낌 없이 갈 수 있어야겠다.
 
2.  본향을 사모하는 이.
믿음의 선진들은 자신들의 돌아갈 고향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더 나은 본향을 향해 나아갔다. 성도들의 본향은 어디인가? 그곳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시고 축복하시고 약속하신 신령한 가나안인 하나님 나라이다. 그곳은 이 땅에서 간절히 사모하는 이에게 주어진다.
 
3.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곳
믿음의 조상들은 바로 이 성을 사모했기 때문에 비록 그들 앞에 고난이라는 현실이 가로놓여 있을지라도 그것을 과감히 감내하고 전진해 나갔던 것이다. 우리가 사모하는 그곳은 하늘 나라이다. 그곳은 눈물, 사망, 고통이 없는 사랑과 회락과 화평이 언제나 넘치는 곳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약속된 천국이 있으므로 그곳을 사모하여 충실된 삶을 살아야 한다.
 
 
영원히 밤이 없는 곳 (5) (계 22:5)   
우리는 밤이 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쉬어야 한다. 우리가 앞으로 갈 그곳은 영원히 밤이 없는 곳이다.
 
1.  밤은 무지의 상징이다.
현대 과학이 급속도록 발달하고 지식이 고도치 수준에 와 있지만 여전히 어둠의 베일 속에 가려 있다. 왜냐하면 현 세상은 어둠에 가리어져 있는 어둠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가 되면 현세의 고통스럽고 제한된 틀을 털어버리고 얼굴과 얼굴을 맛 대어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  밤은 죄악의 상징이다.
모든 죄악의 역사는 밤에 이루어졌다. 인간의 심성도 밤이 되면 죄악에 유혹받아 거기에 동참하기가 쉽다. 하지만 우리는 빛에 속한 자들로서 이 어두움의 장막을 훌훌 걷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하겠다. 빛의 갑옷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소망하며 그를 믿는 것을 말한다.
 
3.  밤이 없는 그곳.
천국에는 주님이 친히 빛이 되시기에 햇빛과 달빛, 별빛이 더 이상 필요가 없다. 우리와 유명을 달리하고  000 성도는 지금도 그곳에서 거하고 있다. 우리는 그곳을 사모하며 이곳을 위해 예비하는 자세로 오늘을 살아가야겠다. 천국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므로 밤이 없고 영원한 기쁨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기쁨으로 이 고난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카페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