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및 성경 공부

데살로니가 전·후 개요

열려라 에바다 2024. 9. 28. 10:28

데살로니가 전·후 개요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다룹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재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책들은 두통의 편지 형식으로 쓰여 있으며 몇 주일의 짧은 시간 차이로 보내졌습니다.

 

데살로니가

 

편지의 수신 지역인 데살로니가는 지리적,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를 포함한 지역을 ‘마게도냐’라고 부릅니다. 이곳은 알렉산더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데살로니가는 한쪽은 아시아의 관문인 이스탄불과 다른 한쪽은 로마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당시 세계의 수도라고 인정하던 곳이 로마와 이스탄불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는 복음 전파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였습니다. 물론 문화적으로 풍성하고, 경제적으로도 번영했습니다.

 

바울 선교팀이 제2차 전도 여행 중에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으로 아시아로 가려던 계획을 유럽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마게도냐 지방의 관문 도시인 빌립보에 도착해서 사역을 시작했지요. 그후 데살로니가로 와서 복음을 전합니다.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많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믿자 유대인들이 이를 시기하여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온 도시를 소동하게 했습니다. 이 도시에서 바울 팀이 “천하를 소동케 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리웠습니다(행 17:1-9).

 

견고한 믿음과 재림에 대한 오해

 

바울과 실라는 그 소동을 피해서 베뢰아로 갑니다. 그곳에서도 많은 헬라인과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만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그곳까지 와서 소동을 일으키지요. 이때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그곳에 남겨두어 더 사역을 하게 하고 혼자만 아가야 지방으로 갑니다. 아덴에서 복음을 전하고 더 내려가 고린도에서 사역할 때 마게도냐 지방에서 사역하던 실라와 디모데가 와서 합류합니다. 바울은 이들에게서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해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좋은 소식은 이들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모든 믿는자의 본이 되었다.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 처에 펴졌다”(1:7,8),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서도 너희의 믿음으로 위로를 받았다”라고 이들을 칭찬합니다(3:6,7). 데살로니가교회가 많은 환난 중에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있는 것을 보며 바울은 큰 위로를 받습니다.

 

반면에 나쁜 소식은 데살로니가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오해로 혼란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이 재림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도록 두 통의 짧은편지를 보냅니다.

 

바울은 두 가지 면에서 재림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재림을 오해해서 일도 하지 않고 규모 없이 사는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곧 오실 것이기 때문에 앞날의 계획을 세우거나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고여겨서 일을 하지 않았지요. 바울은 이들에게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엄하게 말하면서 노동과 계획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마치 예수께서 내일 재림하실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근신하며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맡겨진 주의 일을 행할 때는 예수께서 500년 후에 오실 것처럼 신중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하지요. 철저한 계획을 세우며 여유를 가지고 부지런히 맡겨진 일을 해야 합니다. 재림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예수님께서 재림하기 전에 죽은 사람들은 어찌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고 죽은 사람들도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동일하게 영광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죽음에서 일어나 모든 믿는 사람들과 함께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 공중에서 주를 영접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과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고, 날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억하면서, 소망 중에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합니다.

 

공통점과 차이점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는 공통점이 많지만 매우 큰 차이점도 있습니다. 전서 1장과 후서 1장이 그러한데, 전서 1장은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삶의 세 가지 요소인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말합니다.

 

후서 1장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말하지만 이것은 교회가 가져야 할 올바른 표지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는 믿음이 자라나야 되며, 사랑은 풍성해야 하고, 인내는 점점 더 견고해져서 모든 박해와 환난을 이겨야 한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개인의 삶에서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후서는 교회 공동체로서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전서는 리더와 목자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리더는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삶을살아야 하며, 돈을 위해 일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을 유모와 아비로서 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유모는 유순한 자로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을 말하고, 아비는 자녀들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징계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목자의 모습도 여러 면으로 설명합니다. 성도를 향한 애정과 근심으로 성도의 필요를 돕고 기뻐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고 격려함으로 섬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후서는 특별히 재림 전에 불법자들이 일어날 것을 말합니다. 이 땅에는 악의 세력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다스리셔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승리하게되고,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인내하며, 무질서의 삶에서 돌이켜 질서 있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실된 사역자의 삶의 일곱 가지 특징(2 1-12)

 

1. 먼저 본을 보여야 합니다(2:10-12).

 

이것은 사역자의 기초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행하셨고(행 1:1), 에스라도 본을 보였습니다(스 7:10). 본을 보이는 것도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바울은자신이 본을 보이며 산 것에 대해 데살로니가 형제들과 하나님이 증인이라고 담대히말합니다.

 

2.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2:4).

끊임없이 테스트를 받고 통과하여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한번만 테스트를 받는 게 아니라 반복해서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마음놓고일을 맡기십니다.

 

3. 어려운 여건과 환경 가운데서도 포기하거나 핑계 대지 말고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실하게 주를 섬겨야 합니다(2:2).

 

4. 재정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동기로 사역해야 합니다(2:3-5). 재정을 올바르게 다룰 줄 알아야 하며 돈에 있어서 깨끗해야 합니다. 바울은 재정적으로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했습니다(2:9).

 

5.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지 말고, 오히려 주어진 권리를 다 쓰지 않습니다(2:7). 베드로는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라”라고 합니다(벧전 5:3).

 

6. 자녀를 기르는 어미의 심정으로 형제들을 대해야 합니다(2:7,8).

유순한 자가 되어 목숨까지 주는 희생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유순한’이란 ‘친절하고 부드럽고 온유한’이란 뜻입니다.

 

7. 아비의 태도로 형제들을 대해야 합니다(2:11,12).

아비는 자식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때로는 엄하게 경계하여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게 합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지침서(5 12-22)

 

● 수고하고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

● 서로 화목하라.

●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라.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자들을 경고하라.

● 믿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라-이들은 영적으로 어린 자를 가리킵니다(롬 14:1-15:13, 고전 8:10).

●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주라-이들은 몸과 마음이 연약한 자들입니다(롬 14:1-15:13).

●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 선으로 악을 이기라.

● 항상 기뻐하라.

● 쉬지 말고 기도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모든 일에 무엇이 좋은지 시험하여서 입증된 것을 굳게 잡아 내 것으로 소유하라는 것입니다.

●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악한 것은 가까이 가지도 말고 흉내도 내지 말고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홍성건 | NCMN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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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1Thessalon)

 

-저자, 대상, 내용, 기록연대와 장소 -

 

I. 저자

본서의 저자가 자신을 가리켜,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1:1) 라고 밝혀주고 있다.

실루아노와 디모데의 이름이 함께 소개되어 있지만, 이것은 실루아노와 디모데 모두, 또는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이 본서를 쓰는데 어떤 역할을 했다거나 불러 준 것을 받아썼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첫절 이후에 바울은 끊임없이 자신의 인격으로 말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을 지시하는 일인칭 단수를 사용하고 있다(2:18,3:5,5:27).

본서가 바울의 저작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1) 그런데 19세기에 바우르(F.C.Baur,1792-1860)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고 같다.

(1) 본서는 바울의 다른 서신들보다 훨씬 덜 교리적이며, 또한 대수롭지 않은 내용이다.

(2) 본서는, 칭의가 율법 행위에 의한 것이라는 관념을 공격하지 않는다.

(3) 수개월이란 짧은 시일 안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이데살로니가전서 1:78과 4:10에 묘사된 바와 같이 강렬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리가 없다.

(4)데살로니가전서 2:14-16의 유대인들에 대한 강경한 언어는,바울의 저작인 로마서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1-3)라는 말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5) 본서는 이상할 정도로 지나친게 바울적이다. 본서는 바울의 다른 서신들(특히 고린도전서와 후서)에 있는 문장들과 비슷한 문장들이 너무나 많다. 따라서 본서는 바울이 아니라 A.D. 70년 이후에 바울의 제자가 재림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쓴 것이다.

黑崎는이 편지가 정말 바울의 것이냐에 관해서는 바우르일파의 부정설이 있을 뿐, 대체로 의심 없이 바울의 편지로 인정되고 있다.그리고 바울의 부정설은 유력한 학설이 아니므로 여기에 논할 필요를 인정치 않는다]라고 일축해 버린다.

 

아뭋든 우리는 바우르의 견해를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견해에 대해, 헨드릭슨은대사도의 모든 문서가 다 동등하게 교리적 특성을 가져야만 한다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울 서신들은 어떤 구체적 상황으로부터 생긱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각 교회의 상황은 다르다. 따라서 어떤 교회에는 교리의 명백성을 제시해 주어야 하고, 어떤 교회에는 훈계에 주어야 하며, 어떤 교회에는 책망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둘째 견해에 대해 헨드릭슨은, 바울이 오직 단 하나의 사상만 가진 사람이었는가고 반문한다.

더우기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은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의 상황과는 달랐다.

 

세째 견해에 대해, 우리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19:30,비교 20:16,막10:31)는 예수의 말씀으로 답변할 수 있다.

헨드릭슨 역시 그럴 수 없는가고 반문하면서, 사실상 본서에 의해 제공된 일련의 정보는사도행전 17:6의 서술에 의해 제공된 것으로 확증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네째 견해에 대해, 헨드릭슨은 순수한 슬픔 및 고통을 느끼는 것과 무서운 실재의 계시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우리는 주를 거역하고 제자들을 핍박하는 죄를 일삼는 동족(유대인)에 대한 바울의 애절하고도 뜨거운 사랑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견해에 대해, 헨드릭슨은 (1)과 (2)와 반대되는 논의라고 공박하였다.

사실상 다섯째 견해는, 오히려 바울의 저작임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바우르의 학설을 여지없이 반박한 학자들은 코흐(Koch-1848),뤼네만 (Luneman-1850),그림(Grimm-1850),랑게(Lange), 로이스(Reuss-1853)등이다.

본서가 바울의 저작임을 뒷받침해주는 외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본서는 말시온(Marcion)의 정경 (A.D. 140년경) 에 포함되어 있다.

(2) 본서는 무라토리 단편 (The Muratorian Fragment)에도 들어 있다.

(3) 2세기 말의 교부인 이레니우스(Irenaeus,130-202), 터툴리안(Tertullian, 160- 220),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150-213)가 본서를 바울이 저작으로 알고 인용하였다. 이들보다 먼저 폴리갚(Polycarp,69-155) 가 저스틴 마티어 (Justin Martyr,100-165) 가 인정하고 있었다.

(4) 옛 라틴어 역 성서와 옛 시리아 역 성서에 포함되어 있다.

(5) 데살로니가전서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편지들의 최초 사본인 The Chester Beatty Codex (A.D.220년경)에 단편적인 형태로 발견된다.

(6) 유세비우스(Eus- ebius)와 오리겐(Origen)도 본서를 바울의 것으로 인용하였다.

본서가 바울의 저작임을 뒷받침해 주는 내적 증거는 논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무수하다. 본서는 바울의 처녀작이며 원형대로 우리에게 전해진 신약 중에 제일 먼저 쓰여진 책이다.

 

그 몇 가지 증거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본서 자체가 저자로서 바울을 지시하고 있다(1:1,2:18).

(2) 본서는 형식과 구조에 있어서, 본서가 바울의 저작임을 부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울의 것으로 인정하는 로마서와 고린도전후서 그리고 갈라디아서와 똑같다.

(3) 본서에 사용된 용어는 명백하게 바울의 것이다. 본서의 단어 중 80%이상이 소위 바울의 4대 서신(롬,고전.후,갈)에서도 발견된다. 만일 옥중서신을 바울의 것으로 인정한다면, 4대 서신과 옥중서신 속에서 거의 그 90%을 발견하게 된다. 만일 목회 서신이 추가된다면 그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프레임,헨드릭슨).

(4) 본서에는 바울 서신에서만 발견되는 특징 있는 절들이 나타나고 있다 (프레임 핸드릭슨).

(5) 본서는 바울의 성품을 명백하게 반영하고 있다(핸드릭슨). 형제들이 장점에 대한 애정어린 인식(왈커), 목회적인 배려와 애정(부르스) 그의 개종자들에 대한 강렬한 사랑과 그들의 영적 복지에 대한 염려, 그들의 믿음과 자비에 대한 그의 기쁨, 고귀한 자립심(글로악) 등.

 

이 점에 대해 프레임은 그에 의해 믿게 된 개종자들에 대한 포근한 애정,부족한 그들에 대한 신뢰, 목회적 문제에 대한 재치 있는 처리, 사도로서의 권리에 대한 인식, 사랑의 양보, 모든 일에 있어서 독자들을 동료로 의식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동정과 기도를 위한 호소 등을 들고 있다.

(6) 본서에는 선교사인 목회자로서 살고 있는 사도 바울과 방금 태어난 고난 중에 성장하는 교회와의 가장 깊은 관계가 생생하게 묘사도어 있다(宮村武天).22) 지금까지의 논의를 미루어 볼 때, 본서가 바울의 저작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데살로니가전서(1Thessalon) 개관

 

1. 배경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중요한 도시다. 바울이 제 2차 전도 여행 때에 이곳에서 세 안식일에 걸쳐서 전도한 결과 교회가 세워졌다. 그러나 그 성에 사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항하여 소동을 일으켜서 바울은 할 수 없이 그곳을 떠나게 되었으나 그곳의 어린 신자들의 영적생활에 걱정이 있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 있는 동안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퍽 희망적 인 소식이었다. 디모데는 그 교회의 두어가지 문제를 가지고 왔는데 바울은 이에 대한 편지를 써서 보낸다 주후52년 경에 썼다.


2. 주제표

초점 뒤를 돌아봄 앞을 내다봄
구분 구원 봉사 성화 슬픔 근신
본문 살전 1:1">살전 1 살전 2:1">살전 2 살전 3:1">살전 3 살전 4:1">살전 4 살전 5:1">살전 5
주제 믿음 사랑 소망
위안 교정
장소 고린도
시간 A.D 52년

3. 내용과 주요 사상

이 서신의 내용은 대체로 두 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는 유대인의 박해 아래서도 데살로니가 교회가 굳게 서 있는데 대한 칭찬이요, 둘째는 저들 가운데 자라고 있는 어떤 잘못과 오해를 교정 시키는 일이다. 여기에 주요 문제는 예수의 재림문제이다. 사람이 예수를 믿다가 예수 재림하시기 전 에 죽으면 주님이 재림 하시더라도 만나보지 못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4. 내용 분해(대분류)

1. 인 사 살전1:1-11 2. 교회의 상태 살전1:2-10 3. 사도와 교회와의 관계 살전2:1-3:13 4. 교회의 문제들 살전4:1-5:11 5. 결 론 살전5:12-28


 

. 내용 분해(대분류)에 따른 개론

(1) 교회의 상태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가진 교회였다(살전1:3). 이 교회는 복음이 말로만 들어간 것이 아니라 능력과 큰 확신으로 택함을 받은 교회이다(살전1:4-7). 이 교회는 주로 이방인으로 구성 되어 있었으나 저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소문이 퍼졌다(살전1:8-10).

 

(2) 사도와 교회와의 관계

바울은 자기에 대한 비평에 대하여 대답한다. 어떤이는 바울의 교훈은 간사하고 부정하고 궤계가 있다(살전2:3), 바울이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한다(살전2:4), 바울은 아첨하는 말과 탐심의 탈을 쓰고 있다(살전2:5), 또는 바울이 사람의 영광을 구하 고 있다(살전2:6)고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저희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하였음을 말하고(살전2:10), 그리고 바울은 그렇게 교훈한 것은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게 하려 함이다(살전2:12)고 하였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살전2:13). 살전2:13-16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지 못했으나 자기의 사랑하는 동역자 디모데를 보 냈다. 그것은 저들을 굳게하고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는데서였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에게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리 스도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보고를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3) 교회의 문제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실제적 생활에 대하여 논의한다. 먼저 성도덕의 문제다(살전4:1-8). 성생활에 순결을 지켜야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살전4:7)다. 다음은 사회적 행위의 문제다(살전4:9-12). 서로 사랑할것을 권하며 그리고 날마다 하는 일에 성의를 다하라고 바울은 권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죽은자의 부활 문제이다(살전4:13-18). 저들가운데 이미 죽은 사람은 예수 의 재림의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것이 아니냐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 으로 끌려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재림의 시기 문제다(살전5:11) 주님께서는 아무 경고하심이 없이 재림하실 것이므 로 재림의 날을 미리 알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언제 오시든지 맞이 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말한다.

 

(4) 결 론

그리스도인 생활의 3대 근본인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5:16-18)는 말씀으로 마지막 권면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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