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씀

영원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요 = 디모데전서5;1-16(241027)

열려라 에바다 2024. 10. 26. 11:08
영원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요 = 디모데전서5;1-16(241027)
 
한상원목사추천 1조회 6024.10.24 06:12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PW : 믿음             BIW : 하늘에 소망을 두라              AG : 홀로된 여인들
TS : 믿음이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왜냐구요? 바로 다음 칸으로 갑니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아저씨 이야기입니다.
어느 아저씨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서는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안녕하쉽니까? 제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 나선 이유는 가시는 길에 좋은 물건 하나 소개해 드리고자 이렇게 나섰습니다.
, 플라스틱 머리에 솔이 달려 있습니다. 이게 무엇일까여?
맞습니다. 칫솔입니다.
이걸 뭐 할라고 가지고 나왔을까여?
맞습니다. 팔려고 나왔습니다.
얼마일까여? 처어넌입니다.
뒷면 돌려 보겠습니다.
영어가 써 있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이게 무슨 뜻일까요?
수출했다는 겁니다.
수출이 잘 됐을까여, 안됐을까요?
, 망했습니다.
자 그럼, 여러분에게 하나씩 돌려보겠습니다

그러면서 아저씨는 칫솔을 사람들에게 하나씩 돌리는 것입니다.
황당해진 사람들은 웃지도 못하고 멍하니 칫솔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칫솔을 다 돌린 아저씨가 말을 이어갑니다.
, 여러분, 여기서 제가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여?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잠시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몇개나 팔렸는지 궁금해졌습니다.
4개나 팔린 것입니다.
아저씨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자 여러분, 칫솔 네개 팔았습니다. 얼마를 벌었을까요? 칫솔 4개 팔아서 4천원 벌었습니다. 제가 실망했을까여? 안했을까여?
예 쉬일망 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포기할까여, 안할까여?
저얼때 안합니다. 왜냐구요? 바로 다음 칸으로 갑니다!”

그러면서 아저씨는 가방을 들고 유유히 다음 칸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 거의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웃다가 생각해보니 그 아저씨는 웃음만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아저씨가 보여준 더 중요한 것은 희망, 바로 희망이었습니다.
그 아저씨처럼 누구에게나 다음 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도 생각해 봅시다.
우리들에게 다음 칸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여기서 주저앉아서 실망하고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 말이 있지요
돌부리에 걸리고 온갖 시련과 고난과 역경에 걸려서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 41;10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으로 다시 우뚝 일어설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P4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하면서 날마다 교회가 성장하게 된다.
예수님을 믿게 된 신앙인들이 적극적으로 헌신하면서 교회는 놀랍게 부흥한다.
한창 부흥하면서 평화롭고 은혜가 충만하던 예루살렘 교회에 문제가 하나 발생하게 된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구제를 받는 과부들이 있는 반면에 구제를 받지 못하는 과부들이 생겨나면서 헬라파 신앙인들과 히브리파 신앙인들 사이에 분쟁이 생겨난 것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사도가 되어서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들은 히브리파 유대인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태어난 모든 백성들은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와서 하나님께 자신의 얼굴을 뵈어야 하는 율법에 따라서 바벨론 포로시대 이후에 전 세계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명절을 맞아서 예루살렘성을 방문하였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유대인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고, 헬라제국이 점령했던 제국에서 예루살렘성을 방문하면서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헬라파 유대인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교회의 도움을 받아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과부들 중에는 본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과부들도 있었고, 디아스포라 출신 과부들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교회를 운영하는 주체는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들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본래 히브리 출신 과부들은 사도들과 가깝게 지냈을 것이고, 헬라파 과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가깝게 지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 성도 1000명만 넘어도 아니 500명 넘어도 담임목사가 1000, 500명이 되는 모든 성도들을 일일이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에서는 하루에도 4000, 5000명 이상씩 예수님을 믿겠다고 몰려드는 상황이다.
그러니 아무리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든 성도들에게 평등하고, 균등하게 무언가를 해 주려고 해도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잘 모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구제하는 일에 제외당하는 이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들도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라 허물 많고 연약하고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잘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잘 아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하나 더 챙겨주어도 더 챙겨주는 것이 인지상정의 모습이다.
그래서 과부들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히브리 출신의 과부들은 교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디아스포라 출신의 과부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구제하는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례들이 종종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디아스포라 출신들의 과부들이 교회의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곧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향하여 원망하는 일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도들은 모든 신앙인들을 한 곳으로 모아서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라고 하면서 처음으로 일곱 집사를 세우게 된다.
이들이 안수집사의 효시가 되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의 말을 듣고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일곱 명을 선별한다.
사도들은 그들에게 안수하면서 처음으로 일곱 명의 안수집사를 세우게 된다.
안수집사들이 교회에서 제외되는 과부가 생겨나지 않도록 골고루 과부들을 구제하는 사역을 감당하게 되고, 사도들은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심하면서 교회가 안정을 찾게 된다.
그래서 사도행전 6:7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라고 그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은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난한 사람은 경제적으로 빈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있어야 할 분야가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을 가난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부모님이 계셔야 하는데 부모님이 안 계시는 고아를 가난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거주할 집이 있어야 하는데 거주할 집이 없는 나그네를 가난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남편이 있어야 하는데 남편이 없는 여인을 가난한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곧 고아와 나그네와 과부를 두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고아와 나그네와 과부는 지상 세계가 존재하는 한, 언제든지, 어느 시대든지 존재한다.
그러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언제든지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아들도, 나그네들도, 과부들도 사람이 지구촌에 살고 있는 한 언제든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도 고아와 나그네와 과부는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주님의 몸된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모습으로든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주님의 거룩한 사랑과 복음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 안에서 존재하는 과부들을 어떻게 돌봐주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오늘날에도 주님의 몸된 교회에는 어려움을 당하여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을 어떻게 돌봐드려야 할까?

D4.
 홀로 된 여인들을 도와주고 보호해 주시는 주님.
과부는 어떤 여인일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교회에 존재하는 과부들을 어떤 모습으로 해결하라고 말씀하고 있을까?
과부는 결혼했지만 홀로 된 여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남편이 있어서 남편의 도움과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데, 남편이 없는 여인을 과부라고 부르고, 남편이 없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여인이다.
결혼했던 여인이 홀로되는 경우는 이혼하거나 사별했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혼이나 사별인 경우에 과부가 될 수 있는데, 성경 시대에도 이혼이나 사별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성경 시대에는 이혼증서를 써주면 이혼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이혼증서를 써주면서 이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성경 시대의 여성이란 존재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은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에게, 결혼한 이후에는 남편에게 예속되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이다.
아버지를 떠나거나 남편을 떠나서는 여성으로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이 막연하고 힘들 수밖에 없던 처지이다.
씨족공동체, 대가족시대에서 생존하는 길은 어떠한 힘들고 어려운 시련, 역경, 고난의 시간이 휘몰아 오더라도 공동체 안에서 참고 견디면서 잘 이겨내야만 여성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신랑이나 씨댁에게 견디기 어려운 온갖 모욕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자식을 낳고 살아야만 여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성경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당하거나 본의 아니게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남으로 인하여 과부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과부가 생겨나는 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도 과부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 가지 연유로 인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에도 과부는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교회가 과부 여인들을 어떻게 도와주고 보호해 주면서 그 과부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인가? 하는 것이 교회가 가진 큰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여성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여성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서 홀로된 여인들도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지만, 성경 시대에는 여인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시대이다.
과부로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어떤 모습으로든 구제해야만 하는 것이다.

 참 과부를 존대하라고 하시는 주님.
어떤 여인을 참된 과부라고 정의할까?
3절에서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라고 권면하고 있다.
5절에서는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라고 말씀하고 있다.
9-10절에서는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가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다.
바울은 60세가 넘은 여인으로 한 남편의 아내였던 여인으로 선한 믿음의 행실을 가졌거나 자녀을 출산하여 양육했거나 나그네들에게 선대했거나 주변에 어려운 분들을 섬긴 이력을 가진 여인이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젊어서 홀로 된 여인은 과부의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차라리 재혼하여 남편의 도움과 보호를 받게 하라고 말씀한다.
홀로 된 젊은 여인들은 육신의 정욕을 이길 힘이 없어서 정욕을 쫓아서 죄악으로 빠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과부의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서 14절에서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라고 권면하고 있다.
과부의 몸으로 자신의 정결을 지키지 못하고 방탕하게 사는 여인이 있다면 참 과부의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교회에서 참 과부의 명부에 올린 과부들에게만 교회에서 구제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말씀이다.
만약에 과부의 몸으로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삶, 정결하고 성결한 삶을 살지 못하고 방탕한 삶을 사는 과부가 있다면 교회에서 구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은 교회에 있는 참 과부들 중에서 자식이 있으면 자식이 먼저 홀로된 어머니를 부양하고, 자식이 없다면 형제가 부양하고, 자식도 형제도 없다면 친족이 부양하면서 가능한 교회가 부양의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만약에 자식이 있고, 형제들도 있고, 친족들도 있는데 홀로 된 여인을 부양하지 않고 교회로 부양의 책임을 지도록 한다면 8절에서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라고 책망하고 있다.
교회는 홀로 된 여인의 주변에 그 여인을 부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가지고 그 홀로 된 여인을 부양하면서 돌아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여성의 몸으로 과부가 되었을 때 전혀 생계를 위해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던 성경시대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현대사회는 여성들이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거동이 불편하지 않고 거동할 수만 있다면 어떤 여인들도 얼마든지 스스로 경제활동을 통하여 가족들을 부양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시대이다.
어쩌면 홀로 된 여인들이 남편이 없기 때문에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열정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가족들을 부양하고 교회를 섬기면서 강인하게 살아가는 시대이다.
홀로 된 여인들이 얼마든지 경제활동을 하면서 가족들을 부양하고 교회를 섬길 수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거룩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 과부답게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소망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주님.
하나님께서 아담이 홀로 지내는 모습이 보기에 좋아 보이지 않아서 하와를 만들어 주시면서 비로소 부부가 되게 하신다.
창세기2;23-25절에서 아담은 자신의 갈빗뼈로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하와를 보면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라고 하면서 자신의 아내로 맞아드린다.
그러면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한다.
부부는 함께 동거동락하면서 살아야 하는 관계라고 말씀하신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7:1-5절에서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면서 기도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는 분방할 수 있지만, 기도하기 위한 시간 외에는 분방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분방하는 것 자체가 사탄이 시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분방하지 말고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책임을 다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사람이란 존재는 자기 혼자 지낼 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고, 그 외로움이란 감정으로 인하여 사탄이 미혹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부부는 분방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권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홀로 된 여인은 남편이 없기 때문에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노출 될 수밖에 없다.
남편이 없는 외로움은 부모도 채워주지 못하고, 자식들도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 외로움, 고독이라는 감정을 다른 그 무엇으로도 채워줄 수 없기 때문에 바울은 젊어서 홀로 된 여인들은 재혼하여 가정을 부양하며 살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인간적인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감정을 이기기 위해서 하늘의 아버지께, 우리 주님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5절에서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살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홀로 된 여인은 세상의 사람을 바라보거나 의지하지 말고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살라고 말씀하신다.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 믿음은 홀로 된 여인뿐만 아니라 적어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라면 당연히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 신앙인은 극심한 핍박, 박해, 고난 속에서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면서도 하늘의 소망을 두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가슴에 물고기 형상의 익투스를 그리면서 하늘의 소망을 두고 살았던 믿음의 의인들이다.
자기 혼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리면서 오직 예수님만 사모하고 그리워하면서 온갖 박해와 핍박과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이겨냈다.
그러면서 어떤 신앙인들은 화염불 속으로, 사나운 맹수의 밥이 되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자신도 똑같이 걸어가면서 순교자의 길을 걸어갔다.
초대교회 신앙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부르짖으면서 하늘나라를 향하여 기꺼이 고난의 길을 걸어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L4 & B4.
미국 프로농구의 황제라고 하면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란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마이클 조던이 어렸을 때 이야기이다.
그는 흑인이었고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에서 태어나게 된다.
그에게는 두 명의 형과 한 명의 누나 그리고 여동생 한 명이 있었다.
아버지의 보잘 것 없는 월급으로는 도저히 생계가 어려웠다.
그는 가난과 멸시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되었다.
미래에 대해서 그는 아무런 희망도 품을 수 없었다.
일이 없을 때면 그는 낮은 처마 밑에 앉아서 조용히 먼 산 위의 석양을 바라보면서 조용하고 우울한 모습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먄 되었다.
조던이 열세 살이 된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그에게 낡은 옷 한 벌을 건네주면서 마이클, 이 옷이 얼마나 할 것 같니?"
"1달러 정도요."라고 대답한다.
아버지는 마이클에게 너는 이 옷을 2달러에 팔 수 있겠니?"라고 주문한다.
아버지는 호기심에 찬 눈으로 아들을 바라본다.
조던은 "멍청이나 그 돈을 주고 사겠지요."라고 볼멘소리로 대답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눈빛은 아주 진실하고 엄중해 보였다.
아버지는 단호하게 아들에게
"너는 왜 시도해 보려고 하지 않니?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렵단다. 만약 네가 이 옷을 팔면 나와 네 엄마에게 큰 도움이 될거야."라고 격려해 준다.
그제서야 조던은 마지못해서 고개를 끄떡인다.
"한번 해 볼게요. 하지만 못 팔 수도 있어요."라고 대답하고는 일어선다.
마이클은 아버지가 준 옷을 정성껏 깨끗하게 빨았다.
집에 다리미가 없었기 때문에 손으로 옷의 주름을 펴고 바닥에 펼쳐 그늘에 말렸다.
이튿날 그는 이 옷를 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하철역으로 갔다.
그는 6시간 동안 물건을 사라고 외친 후에야 겨우 옷을 팔 수 있었다.
그는 2달러를 꽉 움켜쥐고 집을 향해 달려갔다.
그후로 그는 매일 쓰레기 더미 속에서 열심히 낡은 옷을 찾아서 그 옷들을 깨끗하게 손질하여 내다 팔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 열흘이 지났을 때, 아버지가 또다시 그에게 낡은 옷 한 벌을 건네주면서 한번 생각해 보렴. 어떻게 하면 이 옷을 20달러에 팔 수 있겠니?"라고 하는 것이다.
조던은 아버지가 준 옷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20달러의 값어치가 없어 보이는 옷이었다.
그래서 마이클은 어떻게? 이렇게 낡은 옷을 어떻게 20달러에 팔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된다.“라고 생각하면서 주저주저 망설이는 것이다.
주저주저하면서 망설이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너는 왜 시도 해 보려고 하지 않니?"라고 하면서 격려해 주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잘 생각해 보면 방법이 있을 거야."라고 격려해 주었다.
마이클은 고민 끝에 그는 또 한 번 좋은 방법을 하나 생각해 내게 되었다.
마이클은 그림을 공부하는 사촌 형에게 옷에다가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인 귀여운 도널드 덕과 미키마우스를 그려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 입구로 가서 물건을 사라고 외친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부짓집 도련님을 데리러 온 집사가 자신의 도련님을 위하여 이 옷을 구입하는 것이다.
열 살 남짓한 아이는 옷에 그려진 도널드 덕과 미키마우스의 그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5달러의 팁까지 주는 것이다.
그래서 25달러를 벌게 된 것이다.
이 돈은 그야말로 거액의 돈이 된 것이다
아버지의 한 달 월급과 맞먹었던 금액이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아버지는 또 다시 마이클에게 낡은 옷을 한벌 건네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는 이 옷을 200달러에 팔 수 있겠니?"라고 묻는 것이다.
마이클은 이번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조용히 옷을 받아 들고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두 달 뒤에 드디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 당시에 인기 텔레비전 시리즈 미녀 삼총사의 여주인공 중에 한 사람이었던 파라 포셋(Farrah Fawcett)”이라는 여배우가 홍보차 뉴욕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영애나 김혜수와 같은 유명한 여자 배우가 온다는 것이다.
파라 포셋의 기자 회견이 끝나자, 마이클은 곁에 있던 보안 요원을 밀쳐내고 파라 포셋에게 뛰어들어 낡은 옷을 들이밀며 싸인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파라 포셋은 어리둥절하다가 곧 미소를 지으면서 순수한 소년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거침없이 싸인해 주는 것이다.
마이클은 까만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으면서 파라 포셋 여사님, 이 옷을 제가 팔아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파라 포셋은 그럼 당연하지! 이건 네 옷인 걸. 어떻게 하든 네 자유란다.“라고 하는 것이다.
마이클은 우와하면서 두 팔을 들고 만세를 불렀다.
마이클은 파라 포셋의 친필싸인이 있는 티셔츠를 200달러에 팝니다.“라고 경매하게 되었다.
그러자 치열한 가격 경쟁 끝에 한 석유 상인이 1200달러의 비싼 값을 주고 티셔츠를 구매하는 것이다.
마이클이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아버지와 온 가족은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쉴 새 없이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면서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실 난 네가 그 옷을 못 팔면 다른 사람에게 팔아 버릴 계획이었단다. 그런데 네가 정말로 해냈구나. 정말 대단하구나. 내 아들, 정말 대단해,,,“
그날 밤에 아버지와 아들은 한 침대에 누워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들아, 세 벌의 옷을 팔면서 깨달은 게 있니?"라고 물었다.
아들은 저는 이제 깨달았어요. 아버지는 제게 큰 가르침을 주신 거예요."
생각하면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라고 감동하면서 말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그건 내 맨 처음 의도가 아니었단다. 나는 그저 네게 알려주고 싶었어. 1달러의 값어치밖에 없는 낡은 옷조차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야.
하물며 우리처럼 살아있는 사람은 어떻겠니!
우리가 삶에 믿음을 잃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단다. 우리는 그저 조금 까맣고 조금 가난할 뿐이야.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니..."
아버지의 말을 듣던 마이클 조던의 마음속에 찬란한 꿈과 비전이 떠올라 그의 몸과 눈앞의 세상을 환하게 밝혔다고 한다.
마이클 조던은 낡은 옷조차 가치가 높아질 수 있는데내가 날 업신여길 이유가 없지.“라고 생각하고는 그때부터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면서 자신을 단련하기 시작한다.
마이클 조던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서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하면서 자신을 단련하였을 때, 20년 후, 그의 이름은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널리 퍼져나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농구 천재가 될 수 있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은 가장 값지고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낡은 옷도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데, 하물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들일까?
비록 우리들의 처지가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한 곳에서 살아야 하는 처지일지라도 낙심하거나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
결코 낙담하거나 실망하거나 실의에 빠져서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의 처지가 과부일지라도, 고아일지라도, 나그네일지라도 좌절하지 말고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칠전팔기하는 생각으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세상의 금은보화로도, 날아가는 까마귀도 떨어뜨린다는 세상의 막강한 권력으로도 살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록 세상에서는 누추하고 가난하고 손가락질당하면서 살아갈지 몰라도 영원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오직 우리의 영원한 구세주요 주님이요 왕이요 친구요 아버지가 되어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당당하게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성자를 이 땅으로 보내주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까지 하면서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람인데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홀로된 여인이라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과부, 고아, 나그네라고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하늘 아버지와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신 예수님과 성령님이 계시고, 신앙의 위대한 사람들이 우리들 주변에, 우리 가정과 교회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오직 주님의 거룩한 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힘차게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