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하나님의 집(벧엘)이라 불렀더라 (창세기 35장 1~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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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는 "회복"을 주제로 말씀을 나눕니다. 기도로 말씀의 은혜를 사모 하시면서, 나와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 모든 곳에서, 모든 면에서 회복의 은혜가 주어지도록 힘써 기도하실 때 하늘의 크신 은총이 함께하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인공은 야곱입니다. 야곱은 그야말로 파란 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소설로 야곱 이야기를 쓴다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맞먹는 작품이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인생을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40세에 결혼해서 60세에 쌍둥이 아들인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야곱이 팥죽사건, 형의 축복을 가로챈 사건 등으로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서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납니다. 이때 야곱의 나이가 무려 77세(아버지 이삭은 137세)였습니다. 77세의 야곱은 외삼촌의 집으로 가던 중 사다리 환상을 보게 되고 그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야곱은 밧담아람에 있는 외삼촌의 집에서 77세부터 97세까지 20년 동안 가축을 길렀고, 이 때 레아와 라헬 두 아내와 결혼했는데 결혼 당시 나이가 84세 였습니다. 야곱은 두 아내와 두 첩(빌하, 실바)을 통해서 11명의 아들을 낳았고, 한 명의 딸(레아-디나)을 낳았습니다.
20년 동안 가축을 기르던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하고 97세에 외삼촌을 집을 떠나서 아버지가 머무는 헤브론으로 돌아 오던 중 형 에서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세겜 성에 머무는 동안 딸 디나가 세겜 성읍의 성주인 히위 족속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건을 겪게 되고, 레위와 시므온 두 아들은 여동생의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세겜 성읍의 남자들을 모조리 죽이는 살인을 저지릅니다.
이러한 일들은 오늘 본문이 나오기 전까지 야곱이 겪은 굵직한 사건들이고, 오늘 본문 이후에도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베냐민을 출생하다 베들레험(옛 지명 에브랏) 길 가에서 산고로 죽음을 맞이 합니다.
또한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치고 있던 중 장남 르우벤이 아버지의 아내(첩)인 빌하(단, 납달리의 엄마)와 동침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야곱이 아버지 이삭이 거주하는 헤브론(엣 지명 기럇아르바)에 머물던 108세 되던 해에 가장 사랑하던 아들 요셉(라헬의 장남)이 애굽에 팔려가는 비극적인 사건도 겪었습니다.
야곱이 바로 왕 앞에서 “나는 나그네와 같은 130년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하였는데, 이런 비극적인 수 많은 일들을 겪으며 험난한 인생을 살아 왔던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을 이해 한다면 고개가 끄덕여 질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느 인생을 살았는지 저는 속속들이 알 수 없지만 누구의 인생이던 각자의 인생 스토리를 쓰자면 야곱 못지 않은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으셨을 겁니다. 사람들은 전부다 자기 군대 시절이 가장 아렸웠고, 자기 직장이 제일 힘들고, 자기 인생이 가장 고통 스러웠다고 말들을 합니다. 아마 야곱의 인생과 단순 비교하면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인생이든 자신이 겪은 고난과 슬픔의 스토리는 그대로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각자가 겪은 비통함의 심정들을 무지르거나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각자의 인생은 무겁고, 처절하고, 절박하고, 또한 끊이지 않는 고통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 모두는 나그네와 같은 인생길을 힘겹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야곱은 거의 100세에 가까운 인생을 살아가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자신의 믿음의 방향을 올바른 궤도에 올려 놓게 됩니다. 그야말로 온전한 회복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도 각자의 고난의 인생을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며 오늘 말씀 들으실 때에 마음의 무거운 것들이 치워지고 쉴만한 멍에를 주시는 은혜를 받으셔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얻으시고, 특별히 믿음의 방향이 온전하게 회복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을 읽어 드립니다.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아멘.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던 길에 에서를 만나 죽음을 피하였지만 딸 디나가 성폭행을 당하고 아들들은 사람들 마구잡이로 죽이는 대 사건이 벌어졌을 때 야곱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야곱아,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 20년 전에 나 여호와가 나타나 너를 만났던 그곳으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고 나를 찾으라”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올라가라고 한 그 곳은 20년 전 야곱이 집을 떠나 사다리 환상을 보았던 장소인 벧엘이었습니다. 그 때 당시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라고 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창세기 28장에 나오니 읽어 보시면 됩니다.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라고 하셨기 때문에, 지금 야곱이 외삼촌 집을 떠나 이곳 까지 오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 이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왜 진작 야곱을 이끌오 오시지 하지지 않았을까? 왜 야곱의 가족이 큰 고통을 겪는 비극이 있게 하셨을까? 의문이 듭니다. 이끌어서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셨으면, 평안하게, 무탈하게 돌아오게 하실 수도 있으셨을 텐데 말입니다.
자, 하나님은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이 땅은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곳 벧엘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벧엘까지 오도록 인도하시는 중이었습니다. 벧엘에서 20년 전에 하신 약속을 이루어 주시고 그 곳에서 영광을 받으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벧엘을 앞에 두고 세겜 성읍에 머물렀으며 아예 정착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습니다. 창세기 33장에 나오는 머물려고 했다는 해당 구절을 읽어 드립니다.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창 33:18~20)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벧엘을 코 앞에 두고 더 이상 이동하지 않고 세겜이라는 곳에 장막을 치고 거기서 오랫 동안 머물렀습니다. 야곱은 가족들 이끌고 오면서 최대의 위기였던 형 에서의 칼날에서 죽음을 피하였기 때문에 매우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이제는 걱정꺼리가 하나도 없었기에 굳이 무리해서 대 가족과 가축을 이끌고 먼 길을 급히 가야할 이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세겜에 장막을 치고, 밭까지 삽니다. 땅을 샀다는 것은 거의 여기에 눌러 앉겠다는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거기 세겜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이미 야곱의 마음에는 “이곳이 좋사오니 나는 여기서 먹고 자고 예배도 드리겠다”라는 생각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장기간 세겜에 머물러 있자 사건이 터졌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는 그 땅의 사는 여자들이 어떤지(외모, 복장, 문화 등) 너무나도 보고 싶어서 외출을 나갔다가 그만 큰 일을 겪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이끌어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장소인 벧엘까지 반드시 직행 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에서라는 가장 큰 고비를 넘기자 마음이 식어버렸습니다. 돌변하여 마음을 바꾸고 주저 앉아 버린 것입니다. 야곱에게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대하듯 우리를 대하십니다. 항상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이끄시고 인도하시고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일하고 계십니다. 돌아오게 하시려는 그 자리는 하나님을 만났던 자리,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았던 자리, 하나님이 동행을 약속해 주셨던 자리, 하나님을 예배하던 거룩한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 모두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모양으로 각기 다르게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하십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하나님을 만난 경험, 체험이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만남의 가진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 주시고(사닥다리 체험 같은)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맺어 주십니다. 그것이 믿음의 출발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호수아 1장 9절로 저에게 확실하게 말씀하셔서 동행을 약속 받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저마다 믿음이 연약하여서 인생길을 가다가 잘못 선택하고, 하나님이 동행하고 계심을 인식하지 못하여 다른 길로 나아가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야곱이 과거에 겪었던 팥죽사건은 장자의 명분을 너무 쉽게 팔아버린 에서의 잘못이 크다고 해도, 장자의 복을 가로챈 사건은 리브가가 주도하고 야곱이 동조해서 꾸민 거짓된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남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여 복을 가로채라고 하실 분이 아닙니다.
이 거짓된 행위로 인해 야곱이 죽음을 피해서 도망쳐야 했음에도 하나님은 벧엘 이라는 곳에서 야곱을 만나 주시고 그를 떠나지 않겠다, 반드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혜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야곱의 거짓된 행위들이 전부 없는 것처럼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가 20년간 노동을 하고 힘든 타향살이를 하게 된 것은 그가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 상황에서도 복을 주셔서 가족을 이루게 하시고 가축을 번성케 하는 은혜를 배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무엇을 잘못했다면 반드시 하나님은 그 일에 대해 징계를 하시고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을 되돌아 보시면 그래서 그 때 그런 일을 겪게 되었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해 나가더라도 그것을 막지 않으시고 존중해 주십니다.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하시되 다시 정상적인 길과 방향으로 돌아오게도록 이끄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런 분이 우리가 아버지라 부르고 믿고 살아가는 자비롭고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 이십니다. 얼마나 좋으신 분이십니까.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그렇게 이끌어 주시고 동행하고 계십니다.
야곱의 믿음의 여정의 출발점은 벧엘이었습니다. 그는 수천 km를 돌아 돌아서, 2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소비하고서야 다시 벧엘로 돌아게 되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그는 밧단 아람에서 평생 노동만 했을 수도 있고, 가족을 이루지도 못하고 홀로 독신으로 살았을 수도 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얍복강을 건너지도 못하고 에서의 단 칼에 죽임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2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끝내 벧엘로 이끌어 내셨고, 얍복강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고, 그의 생명을 칼에서 건저내 주셨습니다. 그렇게까지 동행하시고, 인도하시고, 살려 주었더니 돌아온 것은 벧엘로 인도하시는 걸음을 중단해 버리는 불순종이었습니다. 사람이 화장실 갈때와 나올 때가 틀리다는 말이 딱 이러할 때 어울리는 속담입니다.
야곱은 세겜에 머무르겠다는 선택을 했기에, 그 선택 역시 존중을 받았지만 그로 인하여 디나가 불행한 일을 당하는 것과 아들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중대한 범죄를 행하는 참담한 상황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불순종의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성경이 다시 한 번 명백하게 증거 해 줍니다.
오늘 1절의 말씀은 회복을 선언하시는 복 내려 주심의 말씀이자, 믿음의 방향을 원점으로 돌이키는 말씀이자, 하나님과 다시 동행을 시작하자고 손을 내미는 말씀이자, 내가 너를 통하여 다시 경배(예배)를 받겠다는 선언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순종하여 오랜 기간동안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깨지고, 곪아 터질 지라도 반드시 한 번 자녀로 삼아주신 결과는 변경하거나, 파기하지 아니하시며 끝까지 인도하시는 참으로 신실하신 하나님 임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야곱이 집을 떠나 벧엘에서 하나님의 환상과 음성을 들은 후 다시 오늘 본문의 음성을 듣기까지 무려 20년 이라는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20년 동안 야곱과 하나님은 어떤 관계였을까요?
그 20년 기간 동안에 야곱이 결혼하기 위해 배우자를 두고 하나님에게 물었다든가, 부당한 외삼촌의 임금착취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항의를 했다거나, 언제쯤 나를 다시 고향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냐 라고 간구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과 야곱사이에 어떤 교감의 흔적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야곱과 하나님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침묵 가운데서도 때를 기다리시고 반드시 정확하신 시간에 뜻대로 행하여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후에 노에에서 탈출한다는 약속도 끝내는 이루어졌고, 예수님이 오신다는 계시의 약속은 수천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20년 기간이 인생에서는 길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시간에서는 찰나에 불과 합니다.
우리의 현재 삶의 상황이 야곱과 같이 곤고하고 비참한 지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일수록 하나님이 벧엘로 올라가라는 음성을 들려줄 시기가 임박했음을 감지해야 합니다.
내가 20년 동안 밧단 아람에서 노동에 지쳐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어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는지, 에서의 칼을 피하고자 얍복강에서 죽기살기로 씨름하고자 했던 그 갈급함과 부르짖음이 멈추어 있지는 않았는지,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인 벧엘을 눈 앞에 두고 세겜에 머물러 안주하려는 안일함은 없었는지 내 자신을 철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성령으로 깨어 기도할 때 “너는 벧엘로 올라가라,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는 하나님의 엄중한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믿음의 원점이고 동행의 츨발점인,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그 곳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명령을 듣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야곱에게 하신 명령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나에게, 우리 각자에게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말씀이 곧 내게 하시는 회복의 말씀으로 받아 들여 지신다면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 벧엘로 올라가려는 결단이 일어나야 합니다. 나 혼자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 모두가, 교회의 모든 성도가 다 함께 벧엘로 나아가야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온 가족이 이동할 준비를 서두릅니다. 2~8절을 읽어 드립니다.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아멘.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자가 반드시 몸과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과 정결입니다. 야곱도 하나님을 만나는 벧엘로 올라가기에 앞서 온 가족에게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떼어 내라고 말하고, 야곱은 그 장신구들을 다 거두어서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기전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십계명 말씀과 “너희는 너희가 살던 애굽 땅의 풍습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데리고 들어갈 가나안 땅의 풍습도 따르지 말아라”(레 18:3) 라는 말씀을 기억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됐든 야곱이 온 가족을 거룩하게 준비시키는 것은 정말 잘 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는 기본 자세(거룩과 정경)를 취한 것을 보면 야곱은 이제야 20년 전에 너를 반드시 이끌어 내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다시 굳게 붙잡은 듯 합니다.
가족에게 엄청난 불행한 일들이 있었지만 이제라도 제 정신을 차린 야곱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여기서 계속 불순종하고 고집 부려서 세겜에 머무렀다면 살해를 당한 히위 족속들의 복수로 인해 야곱 가족이 멸족을 당했을 겁니다.
드디어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서 그 곳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 하였으며 그 제단의 이름을 ‘엘벧엘(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20년 만에 야곱은 하나님의 집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집에 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기 까지 오는데, 이 시간을 맞이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과 나그네와 같은 험악한 인생길을 걸어온 야곱은 참회와 감사와 회한의 눈물을 쏟아냈을 겁니다. 하나님의 집에 제일 이거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제일 이거늘,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 것이 제일 이라는 마음을 뼈저리게 느낀 시간 이었을 겁니다.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서 엘벧엘 제단을 쌓고 예배하자 하나님이 야곱에게 어떻게 행하셨는지, 야곱은 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9~15절을 읽어 드립니다.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아멘.
엘벧엘의 하나님은 야곱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① 나타나셨습니다.(9절, 인재, 현현) - 영광 받으시고 임로 충만
② 복을 주셨습니다.(9절, 복의 근원에 머물게 하시는 최고의 복)
③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셨습니다.(10절, 은혜)
④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12지파 번성)
⑤ 땅을 주시리라 하셨습니다.(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야곱은 하나님에게 어떻게 반응 했습니까?
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 하시던 곳에 돌기둥을 세웠습니다.(약속, 인도장소)
② 전제(액체)물과 기름을 부었습니다.(경배와 거룩)
③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 하시던 곳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만남, 동행)
하나님과 야곱은 완전한 관계의 회복을 이루었습니다. 야곱은 돌고 돌아 믿음의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인생 방향을 맞추었습니다. 야곱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집 안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굳게 믿고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원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 니다. 하나님의 집을 떠나지 아니하고 머물게 하시는 것, 하나님의 집을 떠나더라도 반드시 돌아오게 하시는 것, 언제나 하나님의 집에 머물며 친밀하게 교제 하는 것입니다. 방황하는 인생이 아닌 하나님의 집에 머무는 인생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야곱처럼 거짓으로 남을 것을 빼앗으려는 일을 저지리기도 합니다. 야곱처럼 쉴틈 없이 일에 쌓여 몸을 가누기도 힘들때가 있습니다. 원한을 맺은 자에게 해를 당할 것 같은 위협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가정에 큰 불행이 닥쳐 위기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몸과 마음에는 우상과 장신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 도저히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지속해 나가기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러한 인생의 굴곡들을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다가 정말 세겜에 머물러 있으려는 위험한 시도를 작정 한다면 즉시 매를 드시고 정신 차리게 하여서 “너는 벧엘로 올라 가라,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말씀해 주실 겁니다.
벧엘, 하나님의 집은 우리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자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영역이 아닌 통치의 개념이라고 많이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집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말씀을 듣는 곳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이고, 그 어디나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밧단아람에서 수없이 많은 기간 동안 방황 하고 있는 사람 이거나, 혹은 세겜에 눌러 앉아 머물러 있으려고 하거나, 엉뚱한 곳에 장막을 짓고 밭을 사려는 어리석은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집으로 초청하시는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벧엘로 당장 올라가지 않고 이 곳이 좋사오니를 외쳐 저항하려 한다면 더 큰 고통, 더 큰 어려움들이 나와 온 가족에게 몰려 올 것입니다. 야곱과 같이 눚게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다시 일어나 가족을 이끄시고 우리 가족이 머물러 있을 하나님의 집(벧엘)으로 달음박질하여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거기에서 두 팔 벌려 우리를 맞이하여 주시고 평안과 위로와 소망으로 머물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말씀을 나누고, 하나님과 아름다운 동행을 이루어 가며, 날마다 “여기가 하나님의 집입니다”라고 외치며 기쁨과 평안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빨리 순종하여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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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집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그 곳에 머물게 하셔서 참 평안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벧엘로 올라가 제단을 쌓겠습니다. 순종으로 반응하오니 우리의 몸과 마음을 온전한 길로 이끌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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