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 제목과 기록목적
갈라디아서는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등 13권의 바울서신 가운데 제4권에 배치되어 있는 책으로 헬라어 본문에는 "프로스 칼라타스"란 표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갈라디아인들에게"라는 의미로 이 책의 수신자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기록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6장 149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AD. 56년경 사도 바울이 제 3차 전도여행 중(AD. 53~58) 마게도냐 지방 빌립보에서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Magna Carta)이며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선언서"로 불리워 지는 책입니다 갈라디아서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마틴 루터로 하여금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진리에 눈을 뜨게 해 준 책이기도 합니다 갈라디아란 소아시아 중앙의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 도시들의 북쪽지역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BC. 25년, 로마의 행정구역에 편입된 소아시아 중앙의 모든 지역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갈라디아 지방은 그 범위가 너무 넓어서 이 서신의 수신자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북갈라디아설과 남갈라디아설이 대립해 왔으나 일반적으로 남갈라디아설을 유력하게 보고 있습니다(사도행전16:6,18:23,고린도전서16:1,16:5)
갈라디아 교회들은 바울이 직접 전도하여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떠난 후 유대주의 교사들이 들어와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고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와 율법을 주장하여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바울은 이신득의 사상을 증거하며 유대주의의 모순에 대한 그리스도의 분명한 입장을 강력하게 전달하였습니다
(2) 저자(바울, AD. 56년)
1장1절과 초대 교부들이 바울의 저자설을 인정하였으며 다른 바울 서신과의 동일한 문체와 교리상 유사점과 남다른 바울의 깊은 애정이 바울이 저자임을 명백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사도행전18:11~12) 갈라디아서는 이신득의(以信得義)(2:16)사상을 중심으로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 개종인들이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필수조건으로 모세율법과 할례를 강요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갈라디아서1:7,4:14) 바울은 갈라디아교회가 유대교화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에 대하여 강한 경고의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초대 교부들의 전승과 외적인 증거들, 그리고 바울이 사용하는 특징적 문체와 어휘 등 내적 증거를 고려할때 바울과 갈라디아에 관하여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제3차 전도여행중에 마게도냐 지방 빌립보에서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은 AD. 5년경, 소아시아의 길리기아(터키)의 중심도시 다소에서 유대인으로 출생하였습니다 그의 히브리 이름은 사울(שאול)이었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히브리명과 그리스명을 동시에 사용한 연유였으며 바울은 사울의 그리스명이었을뿐 회심의 새로운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출생과 동시에 로마시민권을 획득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바울은 고전교육과 유대교적 율법교육을 받았으며,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율법과 예언서인 구약성서와 "미드라시"로 불리우는 율법해석, 그리고 수사학을 공부하며 탁월한 신학자적 지위를 획득하였습니다 바울이 가말리엘의 문하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해 볼때 그는 바리새파의 협조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32~33년경,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기까지 자신의 신념에 따른 신앙적 행동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는 그가 공부한 대로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들과 적대관계를 맺으며 고소와 고발건으로 얼룩진 청년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스데반집사의 죽음에 바울이 관련되어 있는지는 알수 없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그의 인생이 확연히 달라진 것은 분명해져 보입니다 바울의 회심후 그는 아나니아로 부터 세례를 받고 바나바의 천거로 제자들에게 신임을 받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바울은 그후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함께 복음전파를 기울였고 그 결과 안디옥에 교회를 설립하게 되며 바나바와 함께 공동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제1차 전도여행의 동역자로서 바나바는 자신의 조카인 마가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청년 마가가 전도여행 중에 힘에 지쳤을까요? 도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일로 바울과 바나바에게 분쟁이 발생하였고 제2차 전도여행부터는 갈라서게 되는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강한 성격과 실패와 공포와 고난을 두려워 하지 않는 바울에게서 마가가 용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그러한 마가로 하여금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하고 하나님의 경전에 이름을 올리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바나바와의 "파록쉬스모스"(παροξυσμὸς paroxusmos), 즉, 돌이킬수 없는 격한 논쟁으로 헤어진 바울이 다시 바나바를 만났다는 기록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구브로를 중심으로 아테네,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으며 가는 곳과 머무는 곳 마다 교회를 설립하는 위대한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같은 신실한 동역자를 만났으며 이들과 함께 천막업을 하며 하며 하나님의 복음을 주야로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은 안디옥과 에베소를 주요 근거지로 복음을 상당수준까지 활성화 시켰으며 마게도냐지역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파하며 로마제국의 칼끝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AD. 64년, 로마제국의 새로운 지도자 네로황제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정점을 이루며 극에 달하였고 그 희생양으로 사도바울을 지목하였습니다 로마에 일어난 대형화재의 배후세력으로 기독교인을 지정하고 그 주동자로서 바울을 처형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의 한 줄기로서 세상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는 소수민족종교인 기독교를 세계보편종교의 최정상위에 세워놓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며 예수님의 12제자를 능가하는 복음의 질과 내용과 양적팽창을 주도하였습니다
바울은 초기 사도권을 둘러싸고 다른 사도들과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었습니다 사도(απόστολος',apostle)란 "파송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로 헬라어에서는 어떤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누군가를 앞에 보내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란 의미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기독교 공동체 발전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공동체의 지도자의 역할을 부여한 사람으로서 역사적 예수의 행적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자로 한정"하였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환상중에 예수를 만났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일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도로 임명을 받아야만 했으므로 바울을 지지할 경우 또다른 환상을 본 자들이 나타나 사도성을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1세기 내내 바울의 사도성에 관한 논란은 지속되었으나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의 추천을 승인하여 선교사로 그를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적 독특성은 예루살렘교회의 유대 기독교인들과도 잦은 충돌을 빚었습니다 유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종파로 인정하였기 때문에 율법과 할례 등의 유교적 전통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교 전통을 거부한 이방 기독교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의 미세한 충돌도 이와같은 견해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스데반집사를 비롯한 일곱 집사(부제,Diakonos)들 또한 모두 이방 기독교인들이었으므로 이들과 유대기독교인들의 신학적 갈등은 100년 가까이 지속되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강한 성격으로 인하여 유대 기독교인들을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형제 등으로 비난을 퍼부었고, 이에 대응하는 유대기독교인들 또한 바울을 유대전통을 파괴하는 인물로 규정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에는 이러한 논쟁에 대한 결정문이 공고되어 있는데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이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존중하였으며 교회는 빈곤계층을 위해 단합해야 한다는 공통적인 분모속에서 협력관계는 유지되도록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도들과 교회지도자들과 달리 직업을 가지며 복음을 전하는 특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헬라어로 "스케노포이오스"는 가죽가공업 또는 천막제작업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고린도교회의 집사였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전업이었습니다 이들 부부와 함께 바울은 일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독특한 방식의 생계유지형 전도를 이어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으로 부터 직접적인 계시를 통하여 복음을 전달받았습니다(에베소서3;3) 베드로도 사도 바울의 기록을 자기가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다고 전하고 있습니다(베드로후서3:15) 사도바울은 그가 전한 서신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자신의 견해를 각각 분리하는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25절과 같이 "주께 받은 명령이 없으나~내 판단을 기록"한다고 언급함으로서 이 내용은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로마서1:16,15:9) 성경은 사사로운 책이거나 읽고 해석하는 책도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을 읽고 그대로 믿어 행하는 책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에베소서3:4) 공동번역과 개역성경에는 교리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교리가 아니라 교훈으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교리와 해석이 성경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기독교의 정통성을 헤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측면에서 교리는 학문을 연구하는 중요한 핵심이 될 수 있으나 신앙인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학자용이 아니라 믿음을 위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깨닫는자에게는 성경이 결코 어려운 책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만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인간이 개발한 논리, 사상, 철학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절대로 깨달을 수 없고 믿음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사도바울은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해석하였습니다 에베소서에는 교회를 그리스도로, 사도들과 예언자들을 기초로 하여(에베소서2:20) 민족과 국가의 경계와 구별없이 세계 보편교회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유대소수민족의 선민적 사상이 종결되고 새로운 기독교는 세계의 종교가 되었으며 세계 곳곳에 세워진 교회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동일한 지혜의 책인 성경을 믿는 보편적 사상을 갖는 것입니다
(3) 주제
"이신득의"(以信得義)(2:16)를 주제로 바울은 오직 거룩한 계시를 통하여 받은 자신의 사도권을 강력하게 변호하였습니다 이는 그의 사도권을 부정하고 메세지의 무오성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설명이 불가피한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의 복음은 믿음을 요구하는 은혜의 메세지인 것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율법은 믿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를 일으킬 뿐이며 인간은 이 율법의 저주로 부터 구원 되어야 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복음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바울은 촉구하였습니다(갈라디아서5~6장) 그러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려는 인간의 노력보다 십자가의 힘과 성령의 능력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었습니다
본질상 타락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어떻게 나아 갈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유효하게 된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는 모세의 율법을 지키므로 얻어지는 공적구원은 잊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약하여 스스로 구원과 성화를 이룩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그런 행위가 필요하며 바울은 틀렸고 그는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득의 사상을 주장하며 성령을 구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바울의 이신득의 사상은 기독교의 초석을 다지는 중요한 교리가 되었으며, 이것으로 바울이 세운 교회들에서 유대주의자들은 쇠퇴의 길로 향하였습니다
(4) 내용
갈라디아 교인들이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의 잘못된 율법 옹호론에 미혹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 바울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의(義)롭다 함을 받을수 있다는 복음의 원리를 강력하게 증거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율법에서 해방되어 참된 자유를 누리는 비결이 선포된 갈라디아서는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Magna Carta)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얻게되는 의(義)나 자유에 대한 은혜의 복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사도직을 부여받은 바울은(1:1~5) 거짓교사들에 의한 왜곡된 진리를 정립하기 위하여(1:6~10) 믿음으로 의(義)에 이른다는 복음의 진리를 개인적인 체험에 비추어 변론하였습니다(1:11~24) 또한 그리스도인이 율법으로 부터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는 복음의 근거는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2:1~10) 베드로에 의해서도 인정과 증명이 된 진리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2:11~21) 그러나 바울 역시 율법으로 부터 자유함을 얻는다는 것이 율법 자체를 무시하거나 경시하라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사상(2:16)은 첫째, 믿음으로 시작한 갈라디아인들은 그리스도안에서의 성장 역시 믿음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정의하였습니다(3:1~5) 둘째, 아브라함의 사례와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원리는 항상 적용된다는 것입니다(3:6~9) 셋째,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율법의 저주는 구속되어지는 것입니다(3:10~14) 넷째,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은 율법으로 소멸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3:15~18) 다섯째, 율법의 목적은 구원이 아니라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3:19~22) 여섯째,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양자되게 하며 율법에서 해방시킵니다(3:23~4:7) 일곱째, 그리스도안에 존재하는 본래의 자유를 찾아야 합니다(4:8~20) 여덟째, 아브라함의 두 아들에 관한 사례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율법보다 우월함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4:21~31)
율법주의와 은혜가 상반된 개념처럼 보이지만 지나친 율법을 강조하는 측면(5:1~12)을 은혜가 제동을 걸어 통제하듯이 또한 지나친 자유만을 강조하는 측면을(5:13~6:10) 율법이 제동을 걸어 방종이 되지 않게 함으로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여 믿음에 이르게 하고, 은혜는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는 의에 이르게 하는 상호필요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Ⅰ. 이신득의(以信得義)사상
행함과 믿음, 율법과 복음, 사람들은 이 두가지 문제를 동일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은 속성상 인간의 자기 의(義)의 행함을 요구하고 복음은 예수의 십자가 구속의 복음을 강조하며 믿음을 요구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율법과 복음은 구속사의 전개에 따른 계시의 내용과 형식의 변화, 발전으로서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행함과 믿음은 신구약의 시대변화와 무관하게 인류의 구원의 근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에 따라 율법은 복음으로 대치된 것이지만 행함과 믿음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가야 할 신앙규범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멸한것이 아니라 율법이 의미하는 하나님을 불신앙하여 망한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도 복음의 명령을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라 복음의 가르침과 교훈을 불신한 연유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이신득의(以信得義)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속성과 품성이 의롭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믿음안에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앞에서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우리 스스로가 어떤 무엇에 의해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것은 의로운자 만이 구원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신득의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모든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죄와 사망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행위의 의로는 그 누구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인간과 그 해결방법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로마서3:9~18) 이신득의는 하나님께서 선악을 가르쳐 주시며 행위의 의를 요구하기 위해서 였으나 궁극적으로는 복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서만 구원을 이룰수 있다는 점을 증거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신득의 사상은 성도들로 하여금 외적 업적주의와 형식주의에 매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게 되면 인간내면과 인격을 중요시하기 보다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업적과 공로에만 치중하는 결과로 하나님에 대한 전인격적인 헌신이 무시될 것이 자명할 것입니다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랑치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이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면 그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은 구원이 행위의 댓가가 되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의미가 퇴색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신득의 사상은 16세기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오직 믿음이라는 기치를 높이 들고 로마카톨릭의 "면죄부"에 대하여 대항함으로서 기독교 태동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의 대강령이 되었습니다 이신득의의 근본정신은 구약성경의 하박국에서 바울과 루터와 기독교로 신앙의 맥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Ⅱ.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옛언약(율법)과 새언약(복음)의 비유(4:21~31)
4장24절 : 하갈과 사라 : 율법의 기원은 종의 위치에 있는 모세이나 복음은 사라와 같은 그리스도를 기원으로 합니다
4장22절 : 계집종과 자유하는 여자 : 하갈이 사라에게 속한 것처럼 율법은 복음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4장28절 : 이스마엘과 이삭 : 율법은 율법에 종속된 자를 생산하며 복음으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지만 복음은 자유한 자를 열매로 맺습니다
4장23절 : 종과 약속의 자녀 : 복음은 언약의 본질이나 율법은 복음을 섬기는 위치에 머무는 것입니다
4장25~26절 : 구속과 자유 : 율법은 인간을 영원히 속박하며 행위를 촉구하지만 복음은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4장29절 : 육체와 성령 : 율법은 인간적인 노력이 끊임없이 요구되지만 복음은 성령의 감동하심에 기인합니다
4장30절 : 추방과 유업상속 : 결정적으로 율법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으나 복음은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5) 개요
Ⅰ. 서론 : 바울이 전한 복음의 정당성(1;1~10)
Ⅱ. 이신득의의 변호 : 바울의 권위(1:11~2:21)
Ⅲ. 이신득의에 관한 설명 : 바울이 전한 복음(3:1~4:31)
Ⅳ. 이신득의의 적용 : 바울의 윤리(5:1~6:10)
Ⅴ. 결론 : 바울 교훈의 요점(6:11~18)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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