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말씀

주께서 일하신다.

열려라 에바다 2024. 11. 19. 11:39

주께서 일하신다.     

   
글쓴이/봉민근

열방이 주께 돌아 옮은 주께서 일하심이다.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누구도 구원하지 못한다.

사람이 일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함께 일하신다.
앞서 먼저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성취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보시며
결과는 하나님이 만드신다.

사람은 결과를 모르나 하나님은 그 끝을 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정을 통해 그 헌신을 받으신다.
헌신할 때에 하나님의 손길은  더욱 바빠지신다.

우리에게 헌신하라 충성하라 하심은 
충성된 종들에게 상을 베푸시기 위한 것이다.

충성도 헌신도 주님이 아닌 나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다.
죽음으로 충성한 자들의  영광을 세상 그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으랴!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심이 크고 더 깊다.

우리는 힘들다 어렵다 불평하지만
인내로서 경주하는 자는  반드시  영광이 있다.

주님이 허락한 것은 무조건 믿음으로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공짜가 없다.
결코 헛된 것이 없다.

내가 힘들어할 때에 하나님이 내 손을 붙잡고 계심을
잊지 않는 다면 인생에 절망이란 없다.자료/ⓒ창골산 봉서방

내가 어찌할꼬       

 

죄인의 마음이 찔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 마크 데버

 

여러분은 진정한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너무나 값싼 복음이

전해집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하여

아무런 회개나 진정한 자기

부인이 없는 것은 전정한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들으면 마음의 찔림이 있고

불편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것들과 버려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복음의 시작은

‘내가 어찌할꼬’라고 하는,

마음에 찔림이 있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        

 

무엇을 믿는 것인가.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해

흘리신 그 보혈을 믿는 것입니다.

- 방지일

복음의 한가운데에

예수님의 보혈이 있습니다.

갈보리 언덕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믿어야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보혈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성경의

중심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희미해지면,

우리의 구원도 희미해집니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아들을 희생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철저한 순종으로 응답하셨고,

자기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아들의 순종을 받으셨고,

결국 그 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셨던 당신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얻기 위해

당신의 아들의 생명을 그 값으로 내 놓으셨고,

그 외아들은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은혜요 선물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신의 한계를        

 

[마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는 심히 통곡했다.

그 심한 통곡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부인한다고 할지라도 자신만은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것은 베드로의 진심이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런 진심어린 주님에 대한 사랑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해 버렸기 때문이다.

마음의 중심은 그것이 아닌데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게 노는 사람.

바로 이것이 베드로의 모습이었다.

베드로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심히 통곡했다.

그것은 후회의 통곡이었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태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은 늘 이런 일들이 반복 된다.

이렇게 후회하며 심히 통곡할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바르게 알라!

주 예수님은 빛을 비추어서 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한계를 바르게 알게 해 주신다.

자신의 한계를 바르게 아는 사람은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

그 사람은 모든 일에서 주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주님의 지혜를 구하며 주님의 능력을 구하며 살아간다.

이 사람이 참 된 그리스도인이다.

이 사람의 심령 속에 주님은 살아 역사하신다.

이런 사람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을 바르게 아는 사람이 되었고, 나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셨다.

나는 죽었고 주 예수님이 내 안에 나의 주인으로 살아 계신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나의 주인이시다.

 

'묵상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  (0) 2024.11.06
당신 때문에 죽으신 분이 계시다.  (0) 2024.10.31
말로만 하는 사랑  (0) 2024.10.26
나이 들어 가면서의 생각  (0) 2024.10.12
성도는 기도로 만들어진다  (0) 2024.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