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2주 주일설교.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46편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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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림절 둘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에는 네 개의 촛불을 켭니다. 짙은 보라색에게 흰색으로 초의 색깔이 변해가면서 촛불을 밝히는데, 이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영혼이 영광의 빛 아래에서 조명되고 정화되어 하나님을 만날 만큼 거룩함으로 준비되어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첫 번째 촛불은 소망, 두 번째 촛불은 평화, 세 번째 촛불은 기쁨, 네 번째 촛불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지난주에 소망(기다림)의 촛불이 켜졌다면 오늘은 평화를 이루는 촛불이 켜졌습니다. 이 평화는 참회를 전제로 합니다.
예수님은 온 땅에 평화를 주시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 평화는 참회를 통한 회개와 돌이킴으로 인한 평화이어야 합니다. 죄인의 모습으로는 예수님이 주신 평화의 대열에 합류할 수 없습니다. 이번 주간에는 참회하라는 회개의 촛불이 켜져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십시오.
참회 기도하시면서 그 동안 세상속에 담겨 있었던 나의 마음과 시선을 이 땅에 평화(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게로 돌려 보십시오. 참회하는 가운데 하늘의 평강이 충만하게 임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실 것입니다.
오늘은 ‘소망’이라는 주제로 대림절 말씀을 나누면서 시편 146편으로 전해 주시는 소망이 무엇인지 함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읽어 드립니다.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아멘.
우리가 소망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만남의 은혜를 주시는 분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없으면 만남이라는 것에 큰 관심을 두지 못합니다. 마음이 간절한 분은 기다림의 지리에서 기도하며 인내와 절제의 시간을 보낼 것이고, 마음도 없고 무관심한 사람들은 술과 유흥과 즐길거리를 찾아가기 바쁠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가 어떤 소망을 품고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지, 그 마음 중심이 어떠한지를 다 지켜보고 계시며, 마음이 준비된 자에게 소망으로, 기쁨으로, 영광으로 찾아와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을 품고 간절히 기다리는 절기인 대림절이 있는 것입니다.
1, 2절은 우리가 마음 중심에 소망을 가득 안고 기다리는데 집중할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찬양’입니다. 1절은 ‘주(여호와, 야훼)를 찬양하라’는 뜻인 “할렐루야(Praise the LORD)”로 시작하는데, 시편 146편에서 150까지 다섯 편은 모두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끝이 납니다. 그래서 이 다섯편을 ‘할렐루야 시편’이라고 부릅니다.
1, 2절에는 ‘할렐루야’로 시작하면서 이후에 찬양과 찬송이라는 단어가 연이어서 나옵니다. 이 시편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시를 짓고 찬양을 부르고 있는 다윗의 마음에는 오직 하나님을 향항 사랑과 소망의 마음, 그리고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넘쳐 납니다. 그 감정과 열정을 찬양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하루의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할렐루야’, 인생의 시작이나 마지막이나 ‘할렐루야’를 부르면서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마음, 만남의 간절함을 노래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고 기꺼이 그 사람을 만나 주시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나의 생전에, 나의 평생에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라는 이러한 마음과 열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대림절을 보내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만남을 고대하는 만큼 만남의 은혜와 감동은 커질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가 소망하는 마음의 크기만큼 넉넉한 은혜를 풍성하게 주실 것입니다.
대림절 두 번째 촛불은 참회의 촛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시고,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벗겨내 주신 십자가 은헤를 기억하며, 찬송하고 또 찬송하며 내 마음 중심이 오직 만남의 소망에만 집중하며 날마다 고대함이 점점 커져가는 대림절을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찬양하며 기다리라는 말씀에 이어지는 3~4절을 읽어 드립니다.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아멘.
3, 4절은 찬양하며 소망으로 기다리는 가운데 방해요소가 되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대림절을 보내면서 기도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내가 아는 가족, 친구, 동료, 이웃등과 교제하고 접촉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세상의 소리가 커지고 많아지면서 소망은 점점 희미해지고 열정은 점점 사그러 듭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얻는 소망의 마음이 커져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에서 얻는 유희와 여운이 내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3절에 ‘귀인’이 나오는데, 이 귀인은 “권력가들(공동번역),” “힘있는 고관들(표준새번역),” “군주나 귀족들(princes, NIV)”을 말합니다. 소위 이웃이나 직장이나 사회에서 큰 권세와 권한으로 나에게 영향력을 주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3절에서는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3절에서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 했습니다. 도울 힘이 없다는 것이 권세와 재물과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할 능력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서는 그 어떤 구원의 기대치도 나오지 않습니다.
4절에서와 같이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권세자이거나 혹은 아무 도울 힘이 없는 자이든지 상관 없이 모든 사람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며, 전부 다 소멸할 육체를 지닌 유한한 존재일 뿐입니다. 사람에게서는 어떤 소망의 마음을 단 한구석이라도 채워줄만한 것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대림절은 우리 영혼 구원의 문제를 고민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으며, 나에게 구원과 영생의 길을 인도해 주실 분이 누구인지를 찾고, 그분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권력자)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때 만큼 만이라도 구원과 영생으로 이끌어줄 구원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아야 합니다. 평소에 언제 이런 시간을 따로 마련해 볼 수 있겠습니까?
대림절 만큼만이라도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것을 극히 자제하고 오직 하나님 앞에 서서 일대일의 대화를 요청하고, 만남의 은혜를 간절히 간구하는데 열심을 내봐야 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다음에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대림절 시고 시간만큼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다는 마음을 다져야 합니다.
대림절이 사람을 바라보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임을 꼭 기억하시고,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은 잠시 뒤로 하고 오직 구원의 능력으로 찾아오시는 구원자를 만나기를 소망하는 단 하나의 마음만을 가지고, 나만의 골방에서 성령으로 기도하며 참 소망 가운데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여기까지 말씀을 들으니 소망으로 기다리는 것에 더 집중해야 되겠다는 다짐의 마음이 조금은 더해지는 듯합니다. 이제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고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복된 것인지 다음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5절을 읽어 드립니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아멘.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부분이 오늘 설교 제목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는 이 말씀 하나만으로도 우리가 왜 대림절에 하나님(예수님, 성령님)을 만나려는 소망을 가져야 하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습니다.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시며,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하나님 만이 우리가 필요한 복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시며, 하나님만이 우리 모두에게 구원과 영생의 복을 허락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대림절은 바로 그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나의 도움으로 삼으며, 하나님에게만 나의 소망을 두기 위해 마음과 몸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음에도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세상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살았던 나를 하나님 앞에 다시 돌려 세우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구별하여 드림으로 인하여 하나님만이 소망되심을 성령의 감동으로 깊이 체험하고,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소망 안에서 복을 누리며 살아도록 인도함 받아야 합니다.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부르시고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는 겸비한 자세를 취하는지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5절 초반에 “야곱의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하라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굳이 왜 야곱이라는 이름이 필요했을까요? 우리가 알고 잇는 것처럼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서 밧단아람으로 가는 도중에 들판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야곱의 상황은 너무나도 곤고 했습니다. 장막 안에서만 77년 간이나 지내 왔는데 들판으로 나가야 한다니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밧단아람까지는 길도 멀고 험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집을 떠나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이런 곤고한 지경에 빠진 야곱에게 하나님은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불러서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의 처지를 지켜보시다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찾아와 주신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뜻밖의 만남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함께 해 주겠다, 다시 돌아오게 해 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들은 후에야 마음의 평안을 얻었고, 담대함을 가지고 여행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만남 사건 이후에 자기의 소망을 하나님에게만 두는 자로 변화 하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소망을 하나님에게 둔다면 형통함의 복을 얻게 된다는 것을 실제 환상(사다리)체험을 통해서 확인하였습니다.
바로 야곱과 같이 인생이 곤고하고, 두렵고,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사람에게 찾아오시는 분이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야곱의 하나님”을 언급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너나 할 것없이 쉬운 삶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 곤고하고, 두렵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러한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시고 도움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는 마음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마나시고 싶어하시는 마음이 훨씬 더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나를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야곱과 같은 심정으로, 들판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을 부르짖고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하셔서 만남의 은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대림절 기간에 야곱의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일대일로 반드시 하나님을 대면하겠다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어디로 가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험난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에게만 집중하며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는 복이 있는 자로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스스로 강한척, 괜찮은 척, 외롭지 않은 척 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솔직한 내 마음을 다 쏟아 내십시오. 내가 야곱과 같은 곤곤한 심정이라는 것을 낱낱이 아뢰면서 부르짖으십시오. 부르짖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나타나 주실 것이고, 만남의 은혜가 베풀어 질 것이고, 우리는 그 곳을 나의 ‘벧엘’이라고 부르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셨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며, 그 한 번의 만남으로 인해 그 인생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는 인생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런 만남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에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라고 하였는데, 여러분이 하나님에게 두고자 하는, 하나님에게 도움을 받고자 하는 소망은 무엇입니까? 지금 당장 소망을 말해 보라고 한다면 무엇을 소망으로 삼고 싶으십니까? 이것 저것 너무나 생각나는 것이 너무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본문은 내 소망이 무엇인지를 먼저 말하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6~9절의 말씀입니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아멘.
6~9절은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복된 사람이 어떤 소망을 말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지를 보여 줍니다. 어떤 영광을 올려 드렸는지 보십시오.
①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 창조주 하나님
② 하나님은 진실함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 신실하신 하나님
③ 하나님은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서 정의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 공의의 하나님
④ 하나님은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 긍휼의 하나님
⑤ 하나님은 갇힌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 구원의 하나님
⑥ 하나님은 맹인들의 눈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치료(라파)의 하나님
⑦ 하나님은 비굴(비천)한 자들을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 위로의 하나님
⑧ 하나님은 의인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⑨ 하나님은 나그네, 고아, 과부를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 공평의 하나님
⑩ 하나님은 악인들의 길을 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 심판의 하나님
무려 10가지나 되는 이러한 영광의 제목들은 전부 다 하나님의 성품, 일하심,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마음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소망을 말하기 전에 이렇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고 그 이름을 높여 드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내 소망을 말할 시간이 없더라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선포와 기도를 쏟아 낸다면, 하나님의 소망이 내 소망이 되어서, 여기에서 선포한 10가지 제목의 내용들이 나에게 선한 능력으로 역사하는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내 소망이 아닌 하나님의 소망을 드러내고 선포할 때 우리는 복이 있는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선하시고, 신실하시고, 긍휼히 많으신 한량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내 입술로 선포함으로, 그 모든 선포가 나에게 은혜와 소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질문을 드리면, 여러분은 하나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내 소망이 아닌 하나님의 소망이 내 소망이 되어지는 것이 나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개인적인 소망은 하나도 말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순위가 무엇이며 진짜 성경이 가르쳐 주는 소망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대림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를 향하여 세우신 구원의 계획, 그리고 그 계획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그 원대한 소망이 온전히 이루어졌음을 선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게 영광돌리는 시간으로 대림절을 지나시면 성탄의 날에 하나님이 행하신 소망의 일들이 나에게 은혜로 역사하여 구원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드디어 만남의 시간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이루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소망이 내 소망이 되도록, 오직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담대히 선포하면서 만남의 은혜를 간절히 고대하는 대림절 준비의 시간을 참되게 보내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소망의 말씀 마지막 절인 10절을 읽어 드립니다.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아멘.
처음 시작이 할렐루야였고 마지막도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소망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할렐루야”만 외쳐도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10절은 구원의 상징적인 장소인 시온(예루살렘 성의 옛이름, 삼하 5:7)의 이름을 부르며 그 곳에 임재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이 이 세상 만국을 영원히 다스리시고 통치하게 되실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나와 내 가족과 친구 동료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하심을 모르는 너무나 많은 이 세상 모든 민족과 열방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대림절에 기도하실 때, 나의 회개 시간에 우리 나라와 민족, 그리고 세계 모든 나라의 죄악을 함께 회개해야 합니다. 나와 내 가족의 화평을 구할 때 역시 우리 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해 함께 간구해야 합니다. 나와 내 소망을 요청할 때도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와 세계 민족이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둘 수 있도록 긍휼함을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듯 대림절은 이 세상 모든 만국이 평화의 왕, 평강의 왕을 맞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우선 먼저 믿은 우리들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이번 주는 참회의 촛불이 켜진 주간이니, 여러분이 참회의 시간을 가지실 때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위정자들을 위해서, 세계 나라들의 전쟁과 악함과 우상숭배와 음란함을 회개하며 함께 기도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온전히 회개 기도하는 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든 민족과 열방을 긍휼히 여겨주심으로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우리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하심을 만국이 알 수 있도록 범위를 넓히는 기도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시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이 뜻하는 의미들과,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려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듣고 깨달았습니다.
한 주간 삶의 자리에서 참회의 촛불 앞에 엎드리셔서 나와 가족과 교회와 나라와 세계 모두를 위해서 진심으로 참회의 고백을 드리시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영광으로 선포하시고, 우리의 온 마음이 하나님에게만 소망이 있음을 간구하시며, 다가올 만남의 은혜를 잘 준비해 나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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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도록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는 대림절이 되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여 주셔서, 참회하고, 간구하며 만남의 복된 시간을 준비해 나가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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