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에서 빛으로 요1:1-13, 벧전2:6-10
어두움을 밝히는 여러 가지 빛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밤이 되면 호롱불로 어두움 을 밝혔습니다. 좀 여유 있는 집은 촛불을 켰습니다. 그 후 점점 발달하여 전기 불을 켰습니다. 호롱불이나 촛불에 비하면 너무 밝고 편리하지만 태양 빛에 비한다면 역시 불완전한 빛입니다. 그 빛에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촛불이나 전기불로 농사를 지을 수 없지만, 태양은 순식간에 온 천하를 밝히고 온기와 생물에 생명을 줍니다.
이 땅위에 수많은 사상가나 종교가들이 저마다 나름대로의 삶의 빛을 얘기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빛은 호롱불이나 촛불, 더 나아가 전기 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태양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태양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두 번째 주일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어두움에서 빛으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예수님은 참 빛과 생명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이라고, 참 빛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참 빛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태양이 생물을 살리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죽은 영혼을 소생케 하는 생명의 빛이십니다.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빛을 이어받은 자임과 동시에 예수님의 생명을 이어받은 자입니다. 생명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구원받은 생명과 구원받지 못한 생명은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구원받지 못해 어둠속에 있는 생명은 살아있으나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고 했습니다.
전에 생명 되신 예수님을 모르고 믿지 않았을 때 구원받지 못한 나와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나와는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용, 모양, 가치관, 인생관, 속성, 질, 삶의 형태 등 전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기점이 되어 B.C와 A.D로 나눠진 것처럼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은 후에는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바꿔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마다 또 믿음의 분량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갑작스럽게 변화된 사람도 있고, 억지로 십자가를 주님 대신 진 구레네 시몬처럼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난 후 그와 그의 아내와 아들 가족이 모두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생명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참된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성령의 도움 없이는 내 앞길도 운명도 미래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불안하고 미래가 두렵고, 죽음 후의 미지의 세계가 두려운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앞길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답답한 것도 없습니다. 안개가 짙게 깔리면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그런 날에 차량 연쇄 추돌 같은 대형 사고들이 많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미래가 불투명하면 너무나 답답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칠 수가 없어 술이나 도박이나 마약 등에 빠지기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그러나 빛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친히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시어 우리를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영생의 길로 인도 하시니 얼마나 감사하고 평안합니까? 주님의 인도를 받는 자는 미래가 보이고, 천국이 보이고, 장래의 상급이 보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성령께서 영안을 열어 주시어 그 세계를 보게 하십니다. 그 세계를 바라보는 자는 현실이 아무리 어려움과 고난으로 차 있어도 소망 가운데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극적으로 예수님 만나 변화 받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았던 바울 사도는 박해로 인해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담대함과 소망이 넘쳤습니다. 그는 곧 닥칠 죽음을 내다보면서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6-8)라고 말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증거 하다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 얼굴이 천사처럼 빛이 났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주께서 내려다보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빛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주님을 사랑하며 기다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2.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는 빛의 사람이 되고 신분이 달라집니다.
본문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했습니다. 주님을 믿고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서신서 본문에서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믿으면 빛의 자녀가 될 뿐 아니라 참 자유 하는 자가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빛 되신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서 1945년 8월15일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는데, 이 날을 광복절(光復節)이라고 합니다. 빛을 다시 찾아 회복했다는 뜻입니다. 자유를 빛에 비유해서 한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빛은 자유입니다. 빛이 없는 캄캄한 밤에는 자유롭게 행보할 수가 없지만, 빛이 밝으면 어디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원하고, 자유가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성도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자유 함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율법의 권세, 사단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러기에 빛과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음의 두려움, 근심과 염려, 영원한 멸망인 지옥의 형벌, 나를 멸망으로 끌고 가는 죄악으로부터 자유 함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가 나의 죄를 깨끗이 씻겨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빛의 사람이 되어 어두움을 이기고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 유명한 깡패였던 김익두의 일화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나고 변화 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전에 갖고 있던 많은 어두움의 악습과 쓴 뿌리가 없어지게 되었는데 그 중에 가장 먼저 없어진 것이 바로 술이었다고 합니다. 술에 인박혀 살았던 분이었지만 예수를 만나고 그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술친구들이 자꾸 찾아와서 술을 먹이려고 유혹하고 시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익두 씨가 술을 권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요즘 약을 먹고 있어 술 마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약을 먹느냐고 친구들이 물으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신구약을 먹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안에 빛과 생명이 되신 예수님이 들어오시니 변화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행했던 모든 악습, 그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던 쓴 뿌리, 오랜 기간 마셔 인박힌 술을 딱 끊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주시는 빛과 생명은 우리로 하여금 어두움의 일을 벗고 새로운 생명을 살게 합니다. 그가 후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한국교회 부흥을 위해 크게 기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불의의 도구가 의의 도구로 변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의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빛 되신 주님을 믿음으로 어두움이 빛으로, 두려움이 평강으로, 근심과 염려가 기쁨과 감사로, 얽매임이 자유로, 절망이 소망으로, 사단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불행이 행복으로 바꾸어지기를 기원합니다.
3.최선의 삶은 빛 되신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을 증거 하는 삶입니다.
요한복음 본문 6-8에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라고 세례 요한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 ‘여인이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가 경건한 부모를 통해 태어나고, 모태에 있을 때부터 성령의 감동을 받았으며, 광야에 거친 환경에서 경건한 생활을 하고, 헤롯왕의 불의를 책망하다 순교한 것도 칭찬 받을 만하지만 아마도 무엇보다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고, 요단강에서 주님께 세례를 베풀고, 겸손히 주님만을 높이며, 주님을 증거 하고, 주의 길을 예비 한 자였기에 크다 일컬음을 받았을 것입니다. 서신서 본문 9절에서 성도의 신분이 어떠한가를 말하면서 하반부에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당시 고난 받고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그들에게 새로운 신분과 권세를 주신 목적은 바로 죄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전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경험했던 것을 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말로하면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간증하여 알리라는 것입니다.
10절에는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는 이렇게 간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두움 가운데 살고 있었지만 그 때는 내가 죄인인줄도, 죄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게 되는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긍휼도 얻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였습니다.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그 분을 믿고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이제 어두움에서 벗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이한 빛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늘 소망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물론 복음을 전한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부하는 자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무지하기 때문이요, 또 빛이 비치면 부끄럽고 어두운 죄가 다 드러나 빛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한복음 본문 10-11절에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 하지 아니 하였으나” 했습니다. 서신서 본문 7-8절에는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중의 복은 믿어지는 것이요, 선물 중 최고의 선물은 복음을 전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어떤 부인이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서 10년을 기도했지만 남편은 꿈쩍도 안했습니다. 믿기는커녕 매일 술에 찌들어 살았습니다. 매일 술만 마셔도 문제인데 한밤중이 되면 그 술 취한 친구들을 다 집으로 데려와 술상을 차리라고 했습니다. 그 부인은 그 때마다 불평한마디 안하고 술상을 아주 잘 차려 내놓고 시중을 드는 것입니다. 남편의 술친구들은 자기들 부인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이 부인은 불평 한마디를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물었습니다. “어떻게 불평한마디 없이 그 시중을 다 하십니까?” 했더니 그때 그 부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이 사람을 위해서 10년을 기도했는데도 전혀 듣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포기했습니다. 이제 나는 천국 갈 텐데 저 사람은 분명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평안하게 해 주려고 시중을 다 들어주는 것입니다.” 어두움에서 빛의 사람으로 변화된 부인은 자신의 미래와 빛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믿기를 거부하는 자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줄을 밝히 알고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살면서 주님을 증거 하는 자로 살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맞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대강절 두 번째 주일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어두움에서 빛으로”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은 참 빛과 생명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는 빛의 사람이 되고 신분이 달라집니다.
◈.최선의 삶은 빛 되신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을 증거 하는 삶입니다.
<2024. 12. 03. 호현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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